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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책/이슈>
_ [대담]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노년에 대한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정리 | 강명효 (출판기획자)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23일 오후, 서울역 인근 카페에서 최현숙 작가를 만났다. 구술생애사 작업과 글쓰기 강의 등을 통해 다양한 노인들을 만나 그들의 내밀하고도 솔직한 이야기를 끌어내 독자에게 전해온 그에게 그저 짐이거나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주체이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노인의 욕망을 제대로 듣고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이면에는 혐오가 있다

.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표지 사진.

강명효: 최근에 산문집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문학동네)를 출간하셨는데요, 제겐 이 제목이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책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잘 드러낸 문장이라 생각하는데, 이때의 두려움은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요?

최현숙: 그 두려움은 우리 사회가 계속 사람들에게 조장시키고 있는 겁니다. 그 두려움은 뭔가 미래를 대비하게 하면서 현재를 충분히 자기답게 살지 못하게 만들어요. 더 젊어 보여야 하거나 더 능력이 있어야 한다거나 효율성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상당히 신자유주의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거라고 봐요. 이 신자유주의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이데올로기가 조장하는 두려움이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정상 이데올로기를 위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데, 부자에 비해 상대적인 가난, 젊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늙은 비장애, 또 그에 비해 장애인, 이렇게 사회가 보통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내가 추락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계속 조장함으로써 정상성이 최고인 것으로 두는 거죠. 사실은 그냥 차이일 뿐인데 차별로 몰고 가고 어떤 것을 억압하는 동시에 다른 어떤 것에 찬양이 생기게 하는 핵심이 이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 두려움 이면에 무엇을 못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혐오, 빈곤에 대한 일종의 혐오, 더 확장하면 장애에 대한 어떤 혐오나 질병에 대한 어떤 혐오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빈곤한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규정하는 마음이 상당히 있는 거죠. 내가 장애인이든 성소수자이든 빈곤한 사람들이든 다양한 소수자들을 만나면서 계속 느끼는 건 그들은 악조건에서 계속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힘으로 나름대로 자기 악조건 속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 악조건 바깥에 있는 사람은 그들이 비참해 보이고 불쌍해 보이고 동정도 가겠지만, 문제는 그 시선을 뒤집으면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 되는데’와 연관된 혐오이고 이게 배제로 넘어가고 있는 거지요. 나는 젊은 시절을 너무 많이 혼돈스럽게 살아서인지 나이 들어서 내가 지금 이렇게 혼자 살고 있고 주변에 여러 이상한 사람들, 미친 사람들, 비정상의 사람들과 섞여 사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고 좋은 삶이기도 하고 폭넓은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더 성공한 삶, 물질적으로 더 번영한 삶을 더 발전된 삶으로 보는 이들은 나를 심란하게 보지요. 그렇지만 이젠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사는 나는 젊은 시절보다 지금의 내 삶이 훨씬 더 풍성하고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이 드는 문제가 내겐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내 삶을 어떻게 다른 식으로 살아가느냐의 문제인 거지요. 느려지면 빠를 때는 못 봤던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내밀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은 관계에서 나온다

. 구술생애사 전문가 최현숙 선생님.

강명효: 대한민국은 2년 뒤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에 따라 나이 듦 혹은 에이징, 노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책에서 지적하셨듯이 작금의 신자유주의 하에서 실버산업이 점점 세를 불려 부유한 노년층의 주머니를 정말 잘 털고 있구요. 부유한 노년층만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결국은 노인의 욕망이 아주 큰 돈을 만드는 시대가 된 거죠.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노인의 욕망을 잘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구술생애사 작업을 통해 누구보다 다양한 노인들의 마음 상태, 처지, 욕망을 잘 읽어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계시는데요, 일종의 영업비밀이랄까 노인분들이 속 이야기를 꺼내놓게 만드는 나름의 방법을 전해주십시오.

최현숙: 난 구술생애사든 인터뷰에서든 가장 핵심은 ‘관계’라고 생각해요. 얼마만큼 관계가 잘 만들어졌느냐는 신뢰를 주는 것으로 좌우돼요. 그 사람이 ‘너라면 내가 다 말할 수 있어. 너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내 입장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거야. 내게 완전히 동의는 못 하더라도 내 입장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거야.’ 이런 확신을 주는 관계 혹은 라포(rapport)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별수 없이 시간이에요. 그 사람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가 가장 중요하죠.

강명효: 그분들과 대화는 어떻게 끌어가시는지요?

최현숙: 질문을 할 때도 있고 어떨 땐 내 얘기를 먼저 할 때도 있고 상대방이 얘기를 미처 꺼내는 걸 불편해할 것 같으면 먼저 내 얘기를 뻔뻔스럽게 꺼내기도 해죠. ‘이 정도 얘기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죠?’ 그렇게 까는 거죠. 사실 남자들도 그렇지만 여자들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음담패설을 하며 깔깔대며 웃고 떠들고 하거든요. 내가 얼마 전에 60대에서 80대까지의 여성 노숙인들 7~8명과 모여서 같이 이야기할 때가 있었어요. 어떻게 하다가 슬쩍 이야기를 그쪽으로 끌고 갔는데 난리가 났지요. 너무 재밌고 신나서 난리가 났을 정도였어요. 그때 우리가 어느 지하도에서 점거 농성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남자들은 저쪽을 점거하라고 하고 나는 이 여자들 데리고 이쪽에서 막 웃고 떠드니까 저쪽의 남자들이 “야! 점거 한번 제대로 하네!” 그러는 거지. 경찰들이 오고 구청 공무원들이 와서 노숙인들을 쫓아낼 때는 쫓겨나더라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을 때 여기서 신나게 한 판 노는 게 제대로 된 점거이고, 이 논 경험을 가지고 같이 노는 사람들을 계속 편하게 생각하고 다음번에 또 놀 일이 있을 때 놀자고 하면 또 놀아지는 이게 바로 진짜 점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의 방식

강명효: 선생님은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강의도 하시잖아요.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는 어떤 것이고 구술생애사 작업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현숙: 나는 맨날 운동하는 여자니까 30대 초반부터 성명서나 보도자료, 규탄서 이런 거나 쓰고 살았는데 50대 중반에 구술생애사가 왔어요. 구술생애사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시작한 게 아니에요. 이 노인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어쨌든 사회적 자료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이 역사가 기록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고, 내가 글을 쓴다면 새로운 창작이 아니라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옮기고 이 할머니의 삶을 후배인 내가 내 시각으로 해석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건 가능하겠다 싶어서 시작한 거였죠.
요즘 나한테 글쓰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오는데 문예창작론을 배운 적도 없고 글쓰기 방법을 배운 적도 없고 관련한 책을 읽은 적도 없어요. 내 사례를 이야기하거나 내가 계속 글을 쓰면서 살다 보니까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러이러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걸로 강의를 해요. 나는 이렇게 했고 듣는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니 그들 스스로가 내 이야기를 하나의 사례로 하고 이제 그들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글은 쓰고 싶은, 할 말이 많은 사람이 쓰고 싶겠죠.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상처가 많지요. 정말 고유한, 자기만이 쓸 수 있는 어떤 글을 쓰는 거는 보통 사람 누구나 다 쓸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누구나 다 글을 쓰는 건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할 말이 많아서, 상처가 많아서 글을 계속 쓴다고 할 때 그 할 말의 핵심이 자기 상처라면 여기서 출발하는 건 굉장히 좋죠. 글쓰기를 통해 자기 상처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어요. 자기 상처를 직시하기 위해서는 거리두기가 필요한데, 자기 피해와 가해자에 대해서도 거리두기를 하고 그것이 나만의 경험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사회화되어야죠.

나는 글을 쓴다는 건 이런 거라고 생각을 해요. 어떤 분노나 억울함이 있는데 그냥 말하지도 못하고 부글부글하기만 할 때 거기에는 상처나 분노도 많지만 자기 오류도 또 많거든요. 수치스러움도 많고 우리 사회의 어떤 낙인에 의한 여러 가지 자기 억압도 많고 혹은 자기 스스로를 감시하는 시선도 많기 때문에 부글부글만 하다가 그 다음 단계가 이제 정말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기 시작하는 거죠. 내가 이러이러했어라고 말을 하기 시작하다가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내 말을 잘 들어주고 내 입장을 이해해 주고 ‘나도 그 비슷한 경험이 있고 또 그게 너만의 상처라거나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라고 말해준다면 그 다음에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 속에서 또 좀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자기의 그런 오류나 혼돈을 커밍아웃할 수 있는 거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마 그걸 글로 쓸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책에 썼던 어린 시절의 내 도벽이나 이런 것들도 그런 과정을 거쳤던 거라고 할 수 있죠.
정리해서 말하면 계속 감정만 부글부글하다가 그 다음에 누군가에게 말로 꺼내서 풀어보고 그 말에 대한 반응을 통해서 또 자기를 객관화하고 자기 말을 객관화하고 경험을 재해석하고 그러고 나서 혼자 들어앉아서 철저하게 직시하면서 정말 자신을 노려보면서 붙들고 늘어지면서 자기를 쪼개는 것이 내가 글쓰는 방식이에요.

노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 최현숙, 강명효(왼쪽부터), 두 사람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강명효: 사실 지금 노인들의 문제를 얘기하는 건 노인이 아닙니다. 노인이 아닌 사람들이 노인들을 위한다며 대변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 대변조차도 진짜 노인들이 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노인이 처한 문제나 노인의 욕망을 잘 이해하기 위해 그 노인의 말을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나 혹은 버려야 할 생각이 있다면 무엇일지요?

최현숙: 일단 노인들을 좀 많이 보는 게 중요하죠. 많은 시간을 노인들 속에서 같이 있으면서 내가 먼저 생각하지 말고 노인들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말하고 어떤 상황을 살고 있고 이런 것들을 충분히 보는 거죠. 그러다보면 나한테는 계속 질문만 생길 거예요. 나랑 전혀 다른 사람이랑 지금 만나고 있는 거니까 질문이 생길 거죠. 그 질문들을 메모하면서 계속 또 노인들과 관계를 갖는 거죠. 우리는 특히 나보다 좀 하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내 시선으로 규정하고 판단하고 그걸 심지어 글로 써내려고 하는 습관이나 어떤 욕망이 있어요. 그들과 함께 글쓰기를 할 때 그들이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조절해 가면서 글쓰기반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오히려 나는 그들에게 훨씬 더 많이 배워요. 나는 그 빈곤을 살아보지 않았고 그 장애를 살아보지 않았어요. 그런 사람과 만나 내가 정말 무지하게 많이 배우는데 이것은 단순히 그 한 사람을 아는 것을 넘어 감수성을 배우는 거지요. 이런 사람과 만날 때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시선을 가지고 만나야 할지, 혹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오류를 범해왔는지 배우고 깨닫는 거지요. 노인도 역시 마찬가지죠. 내가 먼저 규정하고 먼저 앞서서 생각하고 하지 않고 그들이 계속 말하고 드러내게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계속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거죠. 나는 그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측면이 많거든요.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그 가부장적인 인식들에 대해서 나는 동의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하여튼 그건 그들의 삶이었어요. 상당히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에 복종해서 산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는 상황을 일단은 그 시대적 한계에, 그다음에 그 가정이나 문화적 한계 혹은 개인적 한계들 속에서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 사람에게는 그냥 삶이야. 나는 기껏해야 판단이나 하는 거지만 그 사람들은 그걸 몸소 살아낸 사람들이거든. 그렇다면 그것을 놓고 내가 이 삶이 틀렸다, 맞았다 판단하는 것이 본질은 절대 아닌 거죠. 그렇게 살아낸 삶에 대해서 충분히 자기 생각으로 말하게 하고 그것을 내가 잘 듣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 사람이 ‘이 사람은 정말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구나. 내 입장에서 들어주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해서 이야기가 계속 더 잘 나오게 하는 거지요.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독자를 향해서 써요. 독자를 향해서 쓴다는 건 이 할머니가 ‘이 가부장에의 복종을 자기의 긍지로 삼아서 자신이 집안을, 여자의 삶을 지켰다’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나는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거죠. 이 할머니의 삶을 난도질하지 않는 방식이면서도 내 소신을 뚜렷하게 드러내 독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당신은 어떻게 이해할래? 아니면 당신은 어떻게 살래? 이렇게 산 할머니가 당신 엄마일지도 모르는데 그 엄마랑 이야기를 할래, 안 할래? 엄마가 미련하게 살았다고만 당신이 볼 수 있냐, 엄마가 바보였다고만 볼 수 있냐?’ 이런 질문들을 하는 거죠.

. 『할배의 탄생』 표지 사진

『할배의 탄생』(이매진 2016)에서 인터뷰한 할아버지들을 만날 때는 그분들이 왜 자기의 계급을 배반한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지가 궁금했어요. 나는 정치활동가였으니까 그런 것이 궁금했던 거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러 인터뷰를 한 건 아니에요. 남자다워서 박정희를 찍고, 남자다워서 김대중을 찍었다더군요. 물었죠. 김대중이 왜 남자다운지요. 박정희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기 소신을 지켜서 남자답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박정희가 남자다운 건 별도로 있고 김대중이 또 남자다운 건 별도로 있는 거예요. 이 할아버지는 평생 자기가 남자답지 못하다는 콤플렉스가 과잉돼 있던 분이었죠. 진보 진영 사람들이 이 할아버지가 박정희를 찍은 걸 두고 단순하게 세뇌되어 그렇다라고 말하는데 그건 아니라는 거죠. 나름대로 매번 선거에서 자기 기준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자기 고민을 하면서 투표를 중요하게 생각한 거죠. 『할배의 탄생』에 나오는 첫 번째 할아버지는 그와는 다르게 일종의 과잉된 남성성을 표상하는 분이었는데 그렇게 두 분이 대비가 됐죠. 첫 번째 분은 자기의 남성성이 굉장히 자랑스러운 사람이에요. ‘나는 아주 그냥 어렸을 때부터 예뻤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했고 전라도 출신이어서 좀 쭈그려서 살았지만 군대 가서는 전라도 팀의 조장을 하면서 군대가 제일 좋았어. 폭력 이거 자꾸 맞으면 맞는 법도 알게 되고 나중에 때릴 수 있게 돼.’ 이런 식이었어요.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군대 안의 그런 폭력성이 왜 사람들에게 계속 그렇게 그냥 익숙해져 버리고, 당했던 사람이 그 폭력을 다른 사람에게 가하게 되는지 그 경로를 이 한 개인의 말을 통해서 이제 뒤집어 보자는 거지요.
나는 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이해하기 쉽지 않은 노인에 대한 분열된 감정이나 혼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제대로 잘 뚫고 지나가면 자신이 여지껏 얼마나 무지막지한 인간이었는지, 자신이 노인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었는지를 직시할 수 있을 거니까요.

노인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강명효: 마지막 질문입니다. 요즘 많은 문화센터에서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이런 게 노인들에게 필요할 거야, 노인들이 이런 걸 배웠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으로 노인 아닌 이들이 만든 것이 대부분입니다. 문화 프로그램이 노인의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고 노인의 자발적인 역량을 이끌어낼 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바뀌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최현숙: 제 주변에 노인들 속으로 들어가 글쓰기나 미술, 연극 등을 하는 청년 예술가들이 상당히 있어요. 그 친구들에게 강의하거나 혹은 기획을 같이 할 경우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의 예술을 가지고 들어갈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그들 속에 이미 예술이 있다. 당신이 예술을 뭐라고 규정하는지 난 잘 모르지만 그 예술 말고 그들 속에 이미 그들이 즐거워하는 어떤 것들, 그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고 신나 하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이 바로 당신이 말하는 그 문화고 예술이다.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고 그것이 노인이 아닌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게 하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니 예술이 어떻게 전복되게 하는가가 바로 노인들을 만나면서 배울 부분이다. 뭐를 가르쳐주고, 뭐를 주고 이럴 생각 절대 하지 말아라. 이미 그들 안에 다 있는 거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대로 사는 맛이 있고 그 안에서 계속 사는 어떤 전략이 있고 여지껏 살아내느라고 가지고 있는 힘이 있는 거다. 그 가난을 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어떤 힘이 있는 거다. 당신이 그것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면서 그것과 만나고 그 힘과 그 즐거움, 전략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면서 그것을 당신이 말하는 예술과 접목해내는 게 중요하다. 항상 노인이 뭐를 좋아할지 혼자서 생각하지 말고 그 속에 들어가서 그들이 뭐를 좋아하는지를 봐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그들에게 뭐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그들에겐 이미 있어요. 여지껏 살아온 것에서 끌어내서 나오게만 하면 되는 거죠. 할머니들이 편하게 입는 몸빼라든가 뭐 땡땡이 가라(물방울 무늬)라든가 그건 왜 예술이 아니냐고요. 왜 당신이 그들이 입고 있는 촌스럽고 혼란스럽고 그 가지각색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그거죠. 이미 충분히 말도 있고 욕망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아픔도 있고 상처도 있으니 그것을 만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소설가. 1957년생. 2000년부터 천주교를 통해 사회운동을 시작했고,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과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약 10년간 진보 정치에 몸담았다. 이후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노인 돌봄노동을 하며 본격적으로 개인, 특히 가난한 노인의 생애사를 생생히 기록하는 구술생애사 작업을 해왔다. 2020년부터는 홈리스 현장에서 활동하며 주로 늙음과 죽음, 빈곤에 대해 관찰하고 느낀 바를 글로 써오고 있다. 구술생애사 저서로 『천당하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할배의 탄생』, 『할매의 탄생』, 『억척의 기원』 및 산문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작별일기』,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소설 『황노인 실종사건』, 「창신동 여자」를 펴냈고, 공저로 『이번 생은 망원시장』,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에 참여했다.

강명효: 자개 디자이너, 출판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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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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