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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고 사라지고 있는 마을의 기억을 누가 어디에 담을 것인가?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터무늬’의 상실과 복원
최서영 | 더페이퍼 대표
“우리는 고향 없는 ‘실향민’입니다”

경기도의 마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백 년 동안 터 잡고 살아왔던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2020년 공공택지지구로 지정되어 사라지게 된 의왕시 ‘도룡마을’ 마을기록을 진행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택지지구로 지정되었다는 발표 당시 기억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었다. 주민들의 심한 동요와 반대 움직임에도 국가가 진행하는 개발 사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산 사람들에게 조상의 산소가 있고 그들의 농토가 있는 그곳은 그들 삶의 원천이며 생명의 터전이었다. 그들의 상실감에는 고향에서 뿌리를 박고 대대로 살던 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그렇게 신도시가 생긴다는 발표 이후 그들의 삶은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경기도는 정부의 신도시 사업의 핵심지역이다. 그로 인해 경기도 천년의 ‘터 무늬’는 사라지고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30년간의 국가의 신도시 정책으로 기존의 마을을 흔적도 없이 밀어버리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지금 방식의 신도시 건설 사업이 시작된 것은 ‘제1기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이다. 1989년 4월 27일에 노태우 정부는 경기도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을 첫 신도시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980년대 말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가격 급등과 부동산 투기가 사회 문제로 비화되자, 정부는 그 대책으로 최초로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개발 방식인 신도시를 발표하였다. 결국 서울의 인구 팽창으로 인해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해 동안 경기도에 대규모 신도시 5곳을 한꺼번에 만들겠다는 정책이었다. 당시 정부가 구호로 내건 ‘200만호 주택건설 추진 계획’ 일환으로 추진되었고, 발표 후 정부의 공약에 발맞춰 신도시 조성은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기 신도시는 2003년 참여정부 주도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2곳의 신도시 중 수원광교, 성남판교, 파주운정, 양주, 한강김포, 위례, 아산, 동탄1, 동탄2, 평택고덕 등 10곳이 경기도에서 진행되었다. 경기도는 충청권 2곳을 제외한 전체 사업지역의 80%에 달했다.

그 후로도 30여 년 동안 꾸준히 신도시 건설계획은 발표되었고, 그 중심에는 경기도가 있었다. 최근 3기 신도시 조성을 위한 기본구상의 밑그림이 발표되었다. 문재인 정부 또한 주택시장 안정을 목표로 수도권에 30만호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남양주왕숙, 하남교산, 인천계양, 고양창릉, 부천대장, 광명시흥, 의왕·군포·안산, 화성진안 8곳의 3기 신도시와 안산장상, 과천, 용인구성, 안산신길2, 수원당수2, 인천구월2, 화성봉담3 등 공공주택지구가 여기에 포함된다. 동서남북 할 것 없이 경기도 전역이 신도시 건설을 위해 파헤쳐지고 사라져가고 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신도시는 마을 주민들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산은 무너지고, 들은 메워졌으며, 옛날 번지수를 확인하지 않으면 어디인지 찾을 수도 없다. ‘집만 지으면 끝’이라는 공급 위주 정책을 편 결과, 경기도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켜켜이 쌓아온 터 무늬를 파괴해온 것이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나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지역문화나 역사, 삶의 모습 등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역 문화원이 ‘기억의 지도’를 그리자

이 개발의 흐름을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없다 해도 적어도 그들이 살았던 터 무늬는 그려지고 기록되어야 한다.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일이지만 새로운 삶의 영역을 일구기 위해서도 우리는 사람들의 말과 걸음 그리고 이야기를 더듬으며 뒤쫓거나 따라가는 기억의 지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역에서 이 움직임은 저항의 몸짓이나 이념을 앞세운 큰 명분을 얻기는 어렵지만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치지 않고 그것을 꼭 해야 하는 결심이 그 지역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야 마을 기록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수십 년 또는 몇 대에 걸쳐 살아온 주민들의 다양한 삶의 결을 담아 소중한 지역의 역사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록은 누가 하고 어디에 남게 되는 것일까? 현재 택지지구로 지정된 마을 중 그 나마 기록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기록화 사업’이라는 용역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업의 주체는 LH이고 당연히 이 기록물은 사업주체인 LH가 가져가게 된다. 우리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 기록을 누가하는가, 어디에 보관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시민들에게 공유되는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기록의 주체가 지역과 지역민이 아닐 경우, 기록되었지만 그 기록은 어느 기관의 캐비닛 안으로 숨어버리고, 사라지는 마을의 유일한 기록물 또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택지지구로 선정되어 개발이 결정된 마을에 들어가서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이 쌓여갈 때마다 느끼는 부대낌이 있다. 아무것도 변할 수 없는 결과지를 들고 있는 무거운 마음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기록만큼은 보존되고 살아서 그 지역에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우리 동네에는 지역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역을 활동기반으로 우리 근⦁현대 역사를 담아온 ‘문화원’이 있다. 기존의 민속 중심의 연구 활동에서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져가고 있고, 사라질 위기에 있는 것들을 비롯해, 이미 사라져서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사람과 마을 이야기 중심으로 문화원의 주요활동을 가져갈 것을 제안한다. 마을 기록가를 양성하고 마을 안에 흩어져 있는 터 무늬들을 지역민이 주체가 되어 발굴⦁조사⦁수집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 기록 활동은 그 간의 문화원들의 역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결과물의 공유를 통해 꽃피우고 열매 맺게 될 것이다. 또한 문화원을 통해 탄생한 기록공동체는 기록 활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인지하고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시민들로 발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주체로 나타날 것이다.

지역을 기록하고 지역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이 활동은 지역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다. 누군가는 꼭 지켜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기억의 공유는 설명을 건너뛰게 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 함께 공유한 경험이 있다는 것, 그리고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기억할 만한 것들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게 한다. 마을이란 함께한 기억을 공유하는 관계이며, 공유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라지는 마을의 기록은 새로운 마을과 세대가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삶의 경험들을 듣고 보다 보면 그것 자체로 위로를 받아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똑같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죠. 세대 간 이해의 통로도 되고, 삶의 경험이 곧 철학이고 삶의 진리, 지혜예요. 옛날 이야기는 곧 우리의 미래에요. 깨어 있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지금같이 개발 중심의 시대에 개발이 지나간 폐허 위에 세워질,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미래를 위한 기억의 지도를 누군가는 그려 나가야 한다. 그것이 오늘 문화원들이 가져가야 할 시대의 사명이다!

. 마을주민들이 그린 기억으로 그린 마을지도

. 3기 신도시 개발지로 결정된 남양주 왕숙지구 일대

. 3기 신도시 개발지로 결정된 남양주 양정역세권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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