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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 마을숙소를 활용한 로컬 여행 실험그곳에 가면 누구나 살롱의 주인이 되었다
고재열 | 어른의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 여행감독
국내여행, 가성비에서 ‘가심비’로

‘여행감독’이라는 직업을 창직했다. 여행감독은 ‘여행을 연출하는 사람’, 즉 다양한 모형의 여행을 기획하는 사람이다. 여행사들의 패키지여행이 여행이 아닌 관광에만 주안점을 두면서 여행의 격(格)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고, 여행감을 살릴 수 있는 ‘수제 패키지여행’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여행감독을 자처하게 되었다.
여행감독으로서 다양한 여행 실험을 벌이고 있다. 국내 여행의 격을 높이자는 생각에 ‘명품 한국 기행’과 ‘명품 한국 스테이’ 시리즈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 여행인데 기본 가치를 3박4일 99만원으로 정했다. 그런데 숙소가 고급호텔이 아니다. 마을숙소나 게스트하우스를 활용하면서 이 가격을 받는 것이다.
이런 여행에 오려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만족할까? 만족한다. 몇 번의 시범여행을 통해 확인했다. 코로나19 집합금지(2020년 11월)가 시행되기 전 세 차례 정도 다녀왔는데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 여행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서 그 효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숙소나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이용하고 이런 비용을 지불하고도 비싸다고 느끼지 않는 비결이 무엇일까? 이에 맞는 사람을 섭외했기 때문이다.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 여행으로 인연 맺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중시하는 사람을 섭외했다.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면서 여행업 관계자들이 국내 여행에 눈을 돌리며 ‘프리미엄 국내여행’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패키지여행 대국인 한국의 등잔 밑이 어두웠다. 그럴 듯한 국내 여행 패키지여행 상품이 없었다. 대부분 가성비를 높이려는 저가형 상품뿐이었다. 가심비를 높인 프리미엄 패키지여행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를 고민해 보았다.
‘명품 한국 기행’과 ‘명품 한국 스테이’를 기획하면서 도입한 개념은 ‘업트레블링’이다. ‘내가 여행한 곳을 여행하기 전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오는 여행’이었다. 방법은 소통이었다. 여행자와 현지에서 맞아주는 사람이 끝없이 소통하도록 중재해서 여행자는 현지의 사정을 이해하고 맞아주는 사람은 여행자가 원하는 바를 알아가도록 했다.

남원 휴락에서 ‘길 위의 살롱’을 구현하다

남원의 동편제마을영농협동조합 마을숙소 ‘휴락’, 광주 양림동의 마을협동조합 게스트하우스 ‘호랑가시나무’ 그리고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인 삼척 나릿골의 ‘삼척살롱’은 이런 업트레블링 실험의 무대였다. 이곳을 반복적으로 여행하고 끝없이 소통하며 도시인의 욕망과 지역의 열망 사이의 접점을 찾아보았다.
판소리 동편제의 창시자 가왕 송흥록(1801-1863)의 생가가 있는 남원 동편제마을은 가장 적극적인 실험을 했던 곳이다. 이곳 마을영농협동조합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마을숙소와 오픈 키친을 구축해 둔 ‘5성급 마을숙소’였는데 여기서 다양한 여행 실험을 할 수 있었다. 여행감독으로서 구현하려는 여행의 가치가 ‘어른의 여행’ ‘길 위의 살롱’ ‘사람 스테이’인데 동편제마을의 휴락은 최적의 공간이었다.

우리 농촌의 미래를 개척하려면 미래를 위한 포석이 있어야 한다. 그 포석은 투자에서 나온다. 그 투자가 효율적이려면 트렌드와 맞아야 한다. 트렌드와 동떨어진 투자는 자칫 짐이 되어서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남원 동편제마을 휴락은 미래를 위한 포석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전범이라 할 수 있다. ‘도시보다 더 도시 같은’ 경험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시인들은 도시를 떠나 전원에 와서도 도시를 구현하고 싶어한다. 샤워는 할 수 있어야 하고, 화장실은 깔끔해야 하고, 벌레는 방에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도시의 삶에 최적화되어 있는 현대 도시인들이 요구하는 ‘최소 도시’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마을 숙소는 청소년 수련 시설로나 쓸 수 있을 정도로 투박한데, 휴락은 처음부터 눈높이를 높게 맞췄다. 설계 단계부터 구현하려는 바를 명확히 했다.

휴락은 단순히 숙소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길 위의 살롱’을 구현했다. 요즘 도시에서도 모임을 할 때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해서 파티를 열곤 한다. 휴락을 점유하고 몇 번 ‘길 위의 살롱’을 구현해 보았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남원(지리산)에 살롱문화를 구축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인숙 동편제마을영농조합 위원장이 공간을 마음껏 연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서 우리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휴락을 보았을 때는 위치가 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딱 봤을 때 풍경이 좋다 싶은 곳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휴락은 동편제마을 언저리에 논과 밭, 논과 마을, 논과 숲의 경계에 있었다. 마을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간섭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원경은 좋았지만 근경은 다소 산만했다.
그런데 이곳을 예닐곱 번 드나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휴락은 독특한 공간감을 선사했다. 마을의 일부이면서도 마을과 적당히 분리되어 있었다. 사계절의 변화를 휴락을 둘러싼 농작물의 변화로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시골 마을이 주는 포근함이 있었다. 시골 출신인 나에게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마치 논 한가운데 있는 인도네시아 리조트들을 연상시켰다.
시설을 설계할 때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지은 점도 돋보였다. 여행자의 휴식에 방점을 찍고 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오 위원장이 꼼꼼하게 디테일을 직접 챙겨서 창호의 견고함이나 바닥 마무리나 빈틈이 없었다. 지리산 둘레길의 오마주로 긴 회랑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호텔 복도를 연상시켜 숙소를 고급스럽게 느껴지게 했다.
건물이 품고 있는 ‘옆마당’을 잔디밭으로 가꿔서 행사를 할 수 있게 한 점도 돋보였다. 이 공간에서 휴락의 메뉴를 책임졌던 셰프가 야외결혼식을 열었는데 그런 행사를 진행하기에 딱 맞는 공간이었다. 처음부터 ‘마을 잔치’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이라고 했다. 고립되지 않았음에도 외부와 적절히 분리되어 있는 특유의 공간감이 좋았다.
휴락에서 여러번 ‘길 위의 살롱’을 구현하면서 여행에 최적화된 공연 모형을 가늠할 수 있었다. 휴락의 식당은 좌우 개폐식 창문이어서 이를 열면 바깥쪽 데크를 무대로 쓸 수 있었다. 여기서 세 명의 뮤지션(하소라/가야금, 정찬희/소프라노, 최원경/플라멩코)이 [지리산 카르멘] 공연을 했다. 동편제마을 휴락은 여행감독으로서 취향의 큐레이션을 하기에 아주 유용한 곳이었다. 휴락에서의 여행 실험을 통해 현대 도시인에게 맞는 ‘최소도시’ ‘최소예술’ ‘최소기획’이라는 여행 모형을 정립할 수 있었다.

문화예술 클러스터, 양림동 호랑가시나무게스트하우스

광주 양림동에 있는 호랑가시나무게스트하우스는 로컬 크리에이터들과 교우하는 곳이다. 매년 몇 차례 방문하면서 관계가 두텁게 형성되었는데 이 게하가 옛 선비들의 ‘정자’와 같은 기능을 하는 느낌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만난 이한호 10년후그라운드 대표, 정헌기 호랑가시아트폴리곤 관장, 이이남 작가와 다양한 교류를 했는데, 그 결정체는 올해 진행한 ‘양림골목비엔날레’였다. 이들이 벌인 예술 잔치에 여행팀을 조직해 함께 했다.
광주 양림동은 광주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광주의 시계는 늘 ‘1980년 5월’에 멈춰 있다. 마치 광주의 역사는 1980년 5월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광주에 가는 사람은 맨 처음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린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빼고 광주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1980년에 광주가 함몰되어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광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볼 필요가 있다. 광주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추천하는 곳이 바로 양림동이다.
1900년대 초반 양림동 언덕에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웠다. 당시 양림산 기슭은 일종의 풍장(風葬)이라 할 수 있는 초분(풀로 임시로 만든 봉분)이 있던 곳으로 ‘초분골’로 불리던 곳이었다. 갈까마귀가 서식하던 이 버려진 땅 5만6천 평을 사들인 선교사들은 이곳을 호남 선교의 교두보로 삼았다. 남장로회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교단이다.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에 속한 선교사들이 목회 활동을 한 곳이 가장 진보적인 도시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들에게는 가장 보수적인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진보적인 것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선교사들이 전한 서양문화와 예향의 전통문화가 결합하면서 독특한 문화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읍이 시가 되고, 시가 광역시가 되는 과정에서 양림동은 전통문화와 서양문화, 도시문화와 시골문화가 만나는 접점이었다. ‘광주의 어머니’라 불리는 곳이지만 양림동은 도청이 이전하고 광주가 신도심 위주로 발전하면서 다소 쇠퇴했다.
호랑가시나무게스트하우스와 호랑가시나무창작소 그리고 아트폴리곤을 운영하는 정헌기 관장은 그런 양림동을 부흥시킨 인물이다. 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호랑가시나무가 빛나는 지점은 격조 있는 문화예술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림동 골목과 호랑가시나무게스트하우스는 서로를 받쳐주는 기둥이다. 호랑가시나무에 숙박하면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와 들어오기 전 양림동의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고, 양림동에 여행 왔을 때 호랑가시나무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양림동의 고요한 시간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
호랑가시나무게스트하우스에 숙박을 잡으면 자연스럽게 ‘길 위의 살롱’이 구현된다. 미리 세팅하지 않아도 된다. 키친에서 거실에서 테라스에서 삼삼오오 살롱을 구축한다. 바비큐와 수제맥주를 준비해서 본격적으로 살롱을 열었더니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숙소가 숙소 이상의 사교의 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공유 아지트’가 된 삼척살롱

세 번째 모형인 삼척살롱은 수요자가 적극적으로 로컬의 공간을 활용해서 모형을 만들어낸 예라 할 수 있다. 도시재생 사업을 하면서 앵커 시설 공간을 만들었는데 마땅히 운영할 주체와 운영 프로그램이 없는 경우, 지자체에 흔한 경우다. 삼척 희망게스트하우스도 그랬다. 시설을 만들어 두었지만 운영 주체와 예산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현행법상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대로 두면 리노베이션한 공간이 2년 뒤에 원주인에게 그냥 반환될 상황이었다.

이 공간을 서울 단체들의 로컬 활동 공동 베이스캠프로 구축해 보기로 했다. 지역에서 청년 일자리 사업을 하는 사단법인 점프 그리고 사회주택조합을 이끄는 녹색친구들과 공동으로 임대한 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멀리 삼척 시멘트공장이 보이는 ‘인더스트리얼뷰’를 가진 이곳은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 단체 활동가들의 워크숍 공간으로도 손색 없었다. 우리는 이곳을 ‘삼척살롱’으로 명명하고 영동 지역의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여기에 ‘업트레블링’ 실험을 하나 더 얹었다. 안 쓰는 캐리어에 다 읽은 책을 넣어 나만의 책캐리어 도서관을 만들어 기증하는 ‘캐리어도서관’ 프로젝트를 이곳에서 진행했다. 이용 그룹들로부터 책캐리어를 기증받아 거실에 임시로 캐리어도서관을 구축했다. 코로나 국면이라 외부 공개는 못하지만 일단 이곳을 이용하는 단체 활동가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세팅했다. 이후 이 지역의 도시재생 사업과 연관해서 진행해 볼 예정이다.

가을에 나릿골 마을 주민들과 함께 축제를 열기로 했는데 코로나19 재확산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 ‘삼척살롱’을 애용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마을축제를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상황 때문에 어려워졌다. 이 행사는 내년에 도모해 볼 예정이다. 삼척살롱처럼 ‘공유 아지트’ 모형의 공간을 계속 확대하려고 한다. 여행 클럽 멤버들과 함께 나는 자연인인 줄 알았던 도시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농어촌에 남긴 빈집을 활성화하고 있었는데 삼척살롱이 좋은 전범이 되었다.
이런 공간을 바탕으로 ‘워크스테이’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원래 해외 휴양지 프로젝트로 진행하려고 했던 것인데, 국내에서 먼저 진행하려고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공간에 와서 일과 휴양을 함께 하는 것이다. 오전엔 각자 일을 하고, 오후엔 따로 또 같이 액티비티를 하고, 저녁엔 공유부엌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네트워킹 파티를 하는 모형이다. 자발적 격리 시대를 극복하는 능동적 격리 모형으로, 프리랜서나 자유직인 사람들에게 맞을 모형인데 회사에서 태스크포스팀이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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