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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_ 간다 세이지, 『마을의 진화』(반비 2020)환대하는 마을 환대하는 마음
고영직 문학평론가

여기 낯선 타지 사람들에게 개방적인 희한한 산촌 마을이 있다. 일본 시코쿠[西國] 지역 도쿠시마현 가미야마는 전체 면적의 83퍼센트가 삼림 지역인 전형적인 산촌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강원도 같은 산간 지역이지만 임업은 쇠락했고, 한때 2만명을 육박하던 인구 또한 줄어 2015년 기준 5300명으로 과소마을로 전락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가미야마 산촌에 대한 관심이 일본 전역에서 뜨겁다. 도쿄에 본사를 둔 IT 기업들이 앞을 다퉈 산골 마을에 위성사무실을 내고 있고, 청년 세대를 비롯한 다양한 이주민들이 가미야마를 찾는다.

마을은 마음이다

image2008년 6월 오픈한 그랜밸리 홈페이지 'in 가미야마

가미야마의 변신은 일본 정부가 수년 전부터 인구 감소를 막고 도쿄 일극(一極) 집중을 막기 위해 실시한 지방창생 사업·정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른바 <마스다 보고서>(2014)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 정부의 지방창생 정책과 사업은 일자리 만들기와 고용 창출에 매진함으로써 오히려 농산어촌 지역 인구 유출이 더 심해지며 도쿄일극집중을 강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방회생’과는 거리가 먼 정책인 셈이다. 야마시타 유스케 교수는 『지방회생』에서 <마스다 보고서>에 투영된 지방창생 정책에 대해 “도시의 눈으로는 지방을 살릴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가미야마 사례는 중앙정부가 주도한 사업이 아니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재미와 장난처럼 시작하며 자발적으로 주도했다는 점에서 퍽 흥미롭다. 『마을의 진화』는 간다 세이지 기자가 참여관찰 기법으로 가미야마 주민 100명을 심층 인터뷰하여 2016년 10월 3일부터 12월 16일까지 [아시히신문] 오사카 본사발행 석간신문에 총 52회에 걸쳐 연재한 「가미야마의 도전」을 토대로 추가 취재를 더해 단행본으로 묶은 책이다. 마을의 진화 혹은 도시의 진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을의 진화 혹은 도시의 진화는 무엇보다 ‘다양성의 공생’이 중요하다는 통찰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삶터, 마을, 도시에서 다양성의 공생이라는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는지 돌아보게 한다.

마을의 진화』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타지 사람들에게 ‘환대하는 마을’이 되는 과정이다. 그 영업비밀은 ‘재미’와 ‘장난’의 요소가 크게 작동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모든 ‘큰 그림’을 그린 사람은 NPO(비영리단체)법인 그랜밸리의 설립자인 오오미나미 신야(大南信也) 이사장과 그 주위에 포진한 또래친구들이었다. 이주 촉진과 IT 기업 유치를 맡기 위해 2004년 12월 설립한 그린밸리는 오오미나미 이사장이 미국 유학 시절 실리콘밸리에서 착상을 얻어 세운 비영리법인이다. 그랜밸리 설립 이전에도 오오미나미 이사장을 비롯한 또래친구들은 마을의 진화를 위해서는 개방성과 다양성의 가치가 절실히 요청된다는 점을 깨닫고 재미있고 장난스러운 프로젝트를 여럿 진행했다.
첫 시작은 푸른 눈의 인형인 ‘앨리스인형’ 귀향추진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다. 앨리스인형은 1920년대 미국과 일본의 우정의 가교를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한다. 1927년 미국 시민사회가 주도해 일본과 미국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일본 초등학교 등지에 인형 12000개를 보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가미야마에 아직 남아 있었는데, 이 인형을 고향인 미국으로 다시 보낸다는 발상을 하고 30여 명의 추진단을 결성해 인형의 주소지인 미국 윌킨스버그시를 방문한 것이다. 간다 세이지 기자는 “자신들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나니 풀뿌리 교류가 이루어졌다”라고 적는다.

이밖에도 가미야마의 오늘을 만든 요인이 재미와 장난의 요소였다는 증거는 많다. 외국 예술가, 외국어 지도교사, 국내 IT 기업, 일반 이주자들을 모집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이 과정을 보면 환대하는 마을은 결국 ‘환대하는 마음’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잘 파악한 것 같다. 예를 들어 1999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진행하며 163명의 해외 예술가들을 유치했는가 하면, 작은 산골마을에 외국어 지도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유치해 13년간 해마다 20~30명씩의 외국인 청년들을 초대해 마을에서 홈스테이하며 마을 주민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하며 외국인을 비롯 타지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는 마음의 문화를 형성했다. 마을이 필요로 하는 이주자를 ‘역지명’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재미와 장난의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미야마 주민들이 ‘마을은 마음’이라는 문화를 견고히 형성했으리라. 행정이 주도하고, 재정이 투입되는 방식으로 농산어촌 살리기 같은 다양한 정책사업을 하는 우리나라 정책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정책으로는 실제 이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안다. 해외 예술가를 비롯해 이주자를 모집하는 가미야마 사람들의 당당한 겸손함이 묻어나는 문구에 드러난 태도를 보라. 결국,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만족할 만한 시설을 원한다면 가미야마는 당신이 찾는 곳이 아닙니다. 풍족한 자금을 원한다면 가미야마는 당신이 찾는 곳이 아닙니다. 그저 일본 시골에서 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사람 중심의 프로그램을 찾고 있다면, 가미야마야말로 당신이 원하는 장소임에 틀림없습니다. _ 43~44쪽

‘사람 중심의 프로그램’이라는 문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문화예술교육/활동을 비롯해 생활문화사업, 마을 만들기 사업, 마을큐레이터사업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사람 중심의 활동이 우선’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정신이 제대로 구현되며 진행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쉽게 자신할 수 없으리라.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의 프로젝트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결과’ 내지는 ‘성과’에 연연해하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곤 한다. 경제가 아닌 사람, 수도권이 아닌 지역, 일자리가 아닌 노동 중심의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가미야마 사람들은 사람들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예술가, IT 기업, 이주자들을 모집하고, 지역 공헌 같은 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지역 공헌 따윈 전혀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일단 한번 해보시라’고 사람들을 충동질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가미야마 어른들의 태도가 놀랍지 않은가. 거기에서는 팔짱 끼고 ‘너 하는 것 보자’ 식의 마음의 문화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실현시키기 위한 계획입니다”

image1953년생 오오미나미 신야 이사장(왼쪽)와 또래친구들은 가미야마 진화의 산 증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미야마는 여전히 최첨단 과소화 지역이라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 풀어가려는 행정과 민간의 협력 방식 또한 참조할 점이 적지 않다. 면(面)과 그랜밸리를 비롯한 민간이 서로 잡을 잡고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해마다 15세 미만의 어린이가 두 명 있는 4인 가족 다섯 팀, 모두 20명을 받아들이자고 합의하고 ‘창조적 과소’를 과감히 지향하자고 합의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창조적 과소는 사람 숫자가 아닌 내용을 보자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사람의 격(格)을 생각한다고 해야 할까.

『마을의 진화』에는 이처럼 창조적 과소를 지향하려는 가미야마의 매력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6개월 체류형 직업훈련을 하는 ‘가미야마 주쿠[塾]’를 운영하고, 실험 이주를 권장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청년들을 유인하며 청년 및 이주자들의 자기실현을 응원하며 삶과 일을 연결하려는 가미야마 라이프스타일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설계비는 줄 수 없지만, 젊은 손으로 자유롭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식이다. 오오미나미 이사장이 “기업 유치가 아니라 사람 유치”(103쪽)가 중요하다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새물결이 일어나는 휴머노믹스(humanomicd)를 지향한다고 역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인간 교차점’이 되고 있는 가미야마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다. 젊은 이주자들 또한 도쿄에서는 불가능했던 ‘수평적인 직장’을 저마다 실현하며 친절이 순환하는 마을살이를 한다.
이 모든 것은 민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민과 관이 서로 손잡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면(面)으로 대표되는 행정 또한 ‘이의 없음’으로 결론 내리고 예정조화설이 통하는 형식적인 회의문화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거버넌스를 구현하며 적극 행정에 앞장선다. 결국, 가미야마 프로젝트는 민과 관이 서로 손잡는 원리에서 비롯한 것이다. 고토 면장이 ‘이대로 가면 닥쳐올 미래’를 민과 관이 서로 상상하며 내놓은 계획에 대해 “이것은 실현시키기 위한 계획”이라고 역설하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1인칭으로 내가 하겠다 하는 사람이 없는 프로젝트는 전략으로 채택할 수 없다”고 민관이 서로 합의한 것이다. 고토 면장이 “민간이 힘차게 나서고 행정기관이 뒤를 따르는 상태”(170쪽)라고 언급한 대목은 민관 거버넌스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교과서가 아닌가 한다. 면사무소 직원 니시무라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자신이 제안한 지산지식(地産地食)을 원리로 하는 로컬푸드 프로젝트 일에 몰두하고자 한 것도 ‘1인칭의 마음’이 없고서는 실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듯 가미야마는 가능성이 있는 곳이고, 가능성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을 잘 말해주는 곳이다.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사는 삶터인 마을/지역/도시에 대한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는 책이다. 그것은 마을의 진화는 마을의 주인은 ‘나’라는 1인칭의 마음을 갖고 사는 주민들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1961)에서 “꿈의 도시를 설계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도시를 재건축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이 책은 민과 관이 서로 손잡고 마을의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다양성’을 깊이 수용하려는 환대하는 마음을 견고히 형성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는 책인 셈이다.
이 책은 아카이브 기록물은 아니지만, 마을 아카이브 기록 차원에서도 던져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광주 5·18 당시 가두방송으로 유명한 전옥주 씨가 “내가 생각하는 민주화는 최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회”(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기획, 『광주, 여성』, 후마니타스, 2012)라고 말한 것처럼, 가미야마의 매력은 민관이 손잡고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마을 아카이브’ 기록물이다. 30대 시절부터 마을사업에 참여해 지금은 일흔 살 노인이 된 오오미나미 이사장을 비롯한 또래친구들이 젊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곁을 내주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성숙한 나이 듦의 문화 또한 기억해야 마땅하다. 이들의 모습은 결코 ‘꼰대’가 아니라 아름다운 ‘꽃대’의 모습이다. 인간의 ‘탐욕’이라는 바이러스에서 비롯된 자연의 역습 상황에서 접한 『마을의 진화』에서 21세기 구현된 오래된 미래의 모습을 발견한다.

image마을의진화

image위크 가미야마 홈페이지

image가미야마에서는 지산지식을 원칙으로 하는 농사교육을 중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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