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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지역문화원이 지역을 아카이빙한다는 것
최영주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문화적 정체성보다 문화자원 옹호를

공공기록은 표준1)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이 제도적 힘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수원화성박물관장 한동민은 여기서 말하는 제도적 힘을 ‘공공이 독점한 기록의 주권’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기록을 누가 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기록물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인데, 현재 지역문화원에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권’은 단순히 소유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으로 체화된 경험이 정서적 공동체 의식으로 확장되어 지역의 상징성을 만들어 내는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입니다. 시민의 ‘정서’가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 정체성이 지역을 특성화시키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기록물의 ‘시민주권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공공의 기록만으로는 역사를 대변하지 못합니다. 공공기록은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강화하지는 못합니다. 그 영역을 민간 기록이 담당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기록은 표준이 없습니다. 민간기록물을 아카이브하는 것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이 가지는 제도적 힘을 알기 때문에 민간기록물은 항상 주목받기를 바라고, 그것이 표준이 되기를 바라는 욕망이 끊임없이 작동합니다. 기록의 의미가 왜곡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말이죠. 이것이 민간기록 아카이브가 가지는 두 번째 어려움입니다. 민간기록에 표준이 없다는 점은 변화하고 변천하는 것이 문화의 고유한 점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역문화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으로는 지역문화의 변화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것과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수아 줄리앙은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에서 ‘문화적 정체성’보다는 ‘문화자원을 옹호’2)하는 것이 낫다고 제안합니다. 즉 정체성을 말하는 순간 변화하고 변모하는 문화의 고유한 개념이 축소된다고 보는 것니다.
여기서 말하는 ‘옹호’는 문화적 자원을 ‘보전’하기보다 ‘활용’함을 의미합니다. 문화적 자원이 특정 언어 및 특정 장소와 국가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문화적 자원은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어딘가에 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기록의 주인은 그 지역의 정동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주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지역문화원은 무엇을 어떻게 남기고, 그 보관은 어떻게 하고, 그 기록이 갖는 지역적 의미를 어떻게 전승―보존만이 아닌 활용―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습니다.

<아웃랜드>와 <백 투 더 퓨처>

넷플릭스 시리즈 중 <아웃랜더>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1991년 처음으로 출간되어 2,600만 부가 팔린 다이애나 개벌든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 종군간호사였던 클레어가 우연한 계기로 200년 전의 스코틀랜드에 타임 슬립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985년부터 시작된 로버트 저맥키스 감독의 <백 투 더 퓨처>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아웃랜더>와 같이 시간여행물로서 미래는 큰 비중이 없고 대부분의 배경은 과거입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인물, 거리 등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은 당시 기록된 자료를 찾아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웃랜더>의 경우 남편 역으로 등장하는 프랭크 울버튼 랜달이라고 하는 역사학자가 쓴 가문의 족보를 통해 당시 시대상, 사람과의 관계, 마을의 형성과정 등을 알게 되고, <백 투 더 퓨처>의 경우 미국 서부 작은 마을 ‘힐벨리’의 마을사료관에서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부분의 중요한 단서를 발견합니다. 그 지역의 건물, 시계, 편지, 사진자료, 묘비 등의 모든 기록이 의미를 갖는 순간들이 전체 스토리라인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두 영화 모두 그러한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사료관이 있습니다. 그 마을은 큰 규모가 아닙니다. 작은 마을의 기록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특별하게 부각된 사례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지역문화원이 남긴 지역문화자원 아카이브의 성과가 사람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한 명 한 명의 삶의 궤적이 모여 지역을 만들고 있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지역문화로 구성된다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 대한민국 문화의 일부로서 지방이라는 관념에서 지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문화원은 지역의 무엇을 기록해 남길 것인가?

지역문화원은 지역의 과거를 다룹니다. 과거를 다룬다는 것의 의미를 그동안 문화원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과거로 눈을 돌려 미래의 비전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첫 번째일 것이고, 해방 이후 현대화된 대한민국을 만들기까지의 발걸음이 남겨진 역사 유산을 후세에 남기고자 하는 것이 두 번째 생각일 것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 작게는 지역이 나아갈 길을 잘 정비하여 앞으로의 세상을 짊어질 젊은이들이 미래를 생각하는 계기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역사를 회고하고 과거를 기리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투사해야 할 과거의 모습을 부각하고, 미래를 선택된 과거의 연장 혹은 반복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과거에 죽은 사람’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람’을 연결하여 ‘국가’3)라는 공동체의 영속성을 상상적으로 회복시키려 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라는 개념에 현재 살아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구성원을 포함시키면서 양쪽이 지닌 시대적 사회성을 다 벗겨내고 오직 한국인―순수한 지역민이라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이라는 속성만 남았을 때 생기는 민족적 순수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경우 순수한 지역민이 아닐 경우 배척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동일한 문화적 잣대를 가지고 해석하고, 어떤 형태의 문화가 ‘올바른 문화(?)’임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과 맞지 않습니다. 이미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있고, 저마다의 가치와 지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문화원이 비합리적 아비투스로 구성된 연고주의 네트워크라는 자기 성격이 될 수 있는 이유가 국가민족주의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인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문화원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의 많은 부분이 ‘시민 없는 시민행사’ ‘주민 없는 지역기록’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회색자료’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지역문화원은 아카이빙한다는 것을 참 낯설고 어렵게 생각합니다. 아카이브(archive)는 “소장품이나 자료 등을 디지털화하여 한데 모아서 관리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모아 둔 파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문화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디지털화해야 한다는 과제와 그것을 한 군데 모아서 관리한다는 문제와 그것들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세 가지의 과제를 문화원이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경기도에서만 80여 권의 기록물―주로 책자 형태―을 매년 발간하고 있습니다만, 문화원에서 발간한 자료는 ‘회색자료’라고 말합니다. 출생신고(ISBN 발급)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직접 문화원에서 책을 찾아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ISBN 제도는 “문헌정보와 유통의 효율화를 기하는 제도로 도서관계의 서지정보 기초 데이터로 활용”4)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각 도서를 숫자로 데이터화하여 관리·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지역문화원이 ISBN 제도를 이용하지 않은 것은 지역문화원이 그동안 발간한 책을 유통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한국문화원연합회는 2020년부터 ‘정보화전략계획’에 의거, 지역문화원이 소장하고 있는 지역문화자원을 디지털화하여 통합 관리와 손쉬운 검색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방문화원 소장자료의 일원화된 관리체계 수립을 통해 수집 단계에서 활용 단계까지 전주기적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통합자료관리 시스템을 통해 향후 지방문화원 간 업무협업, 사업경험 공유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역문화원은 공공기록이 아닌 민간기록을 아카이브하고 있습니다. 지역을 기록한다는 것은 기록물(결과물)에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어떻게 아카이빙할 것인가5)에 대한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의 기록은 처음 생산된 기록에 사람들이 덧붙이고 덧붙여서 많은 이야기가 같이 어우러져서 계속 활용되는, 기록이 살아 있는 유기체 같은 성격을 갖게 하는 ‘리빙 아카이브’(Living Archives)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일원화된 관리체계’라는 표준을 만들려는 접근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가 그것입니다.

의정부 시민기록자가 기록한 『헬로 뺏벌』

지역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시민기록자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지역적 특성은 자발적 창의적 주민들의 참여에 의해 만들어지며 지속발전을 위해서는 독립적 운영에 기초한 참여가 필수적 요소입니다. 의정부문화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역 주민 인프라 중심의 마을기록활동의 일환으로 의정부 마을기억 찾기 프로젝트 [義記to合]이라는 사업이 그것입니다.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로 기록하는 10년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첫 번째 결과물로 뺏벌 마을지 『헬로 뺏벌』을 발간했습니다. 『헬로 뺏벌』은 미군부대로 인한 의정부 변천사를 상징하는 ‘뺏벌 마을’에 대한 기록입니다. 뺏벌은 의정부 고산동에 위치한, 이름도 없이 선산을 지키는 사람들만 살던 굉장히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인 캠프 스탠리가 주둔하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기지촌이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마을 규모가 커지면서 큰 부흥기를 맞았던 의정부의 대표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군부대가 철수하고 과거의 화려한(?) 기억만이 남아 있는 마을이 됐습니다.

이 작업의 중요한 포인트는 과거를 주로 조사하는 기존의 민속조사 방식과는 다르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의정부 시민의 관점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실제 뺏벌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이 구술한 자료를 바탕으로 의·식·주를 비롯한 생업, 놀이, 의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문화원은 사전에 [의정부 시민마을기록자 양성 과정]을 진행했고, 이 양성 과정을 마친 시민기록자들이 마을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시민기록자들은 앞으로도 의정부문화원에서 진행될 조사 사업에 참여하고 점차 활동 범위를 확장해 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의정부문화원에는 또 다른 기록자들이 있습니다. 어르신 사진동아리는 개발로 사라질 예정인 마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화학교 [펜화동아리]는 펜화로 마을을 그리기(기록하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문화원 동아리의 차별화가 돋보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시제입니다. 순수한 지역민, 순수한 한국인이 존재한다거나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미가 없는 시제입니다. 절대적, 확실성이 아닌 상대적, 확률적 성격만이 존재하는 시제가 곧 현재입니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어떤 생각도 허용됩니다. 정체성이라는 고정된 틀이 존재할 틈이 없는 현재를 기록하는 것, 현재를 아카이빙하는 것이 지역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아카이빙이고, 변화하고 변동하는 확장된 지역문화로 만드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지역문화원에 제안해 봅니다.

1) 한신대 이영남교수는 “국기기록은 표준이 중요하다. 표준을 제대로 만들어서 제도의 힘으로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국가 차원의 아카이브가 기록물에 초점을 두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을기록은 표준보다는 서사가 더 필요하다. 때문에 수만 가지, 수백만 가지의 방법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영남 외, 『누구나 마을아카이브』, 더페이퍼, 2018.
2)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이근세 옮김),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 서문, 교유서가, 2020.
3) 여기서 ‘국가’라는 개념이 가지는 모호성 때문에 지역문화원이 조사하는 ‘과거’가 국가공동체와 지역공동체를 혼동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국립중앙도서관
5)  에릭 케텔라는 “기록은 산출물로서가 아니라 과정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기록의 개념을 우리 손에 잡히는 기록을 중심으로 하는 관리 체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영남 외, 『누구나 마을아카이브』, 더페이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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