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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산골기업, 군겐도를 말하다』산골마을을 바꾸는 ‘군겐도[群言堂]’ 정신을 배우다
최서영 ㈜더페이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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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둘째를 막 낳았을 무렵 남편이 용인으로 발령이 났다.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는 나는 낯선 도시 수원으로 이주하였다. 28년을 수원에서 살아가며 나름 나 자신의 삶을 꾸려왔다고 하지만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일상에 지쳐갈 때 『골목잡지 사이다』를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는 10여 명의 직원과 지역문화 관련한 잡지도 내고, 책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무모하게 자꾸 일을 벌이는 나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에게 묻곤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 이 대답에 대한 고민을 늘 일상 속에서 마주했다. 여기에 답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번 편집회의에서 고영직 선생이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산골기업, 군겐도를 말하다』라는 책의 서평을 써보라고 권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름의 대답을 찾은 것 같다.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고마운 인연이다.
현재 인구 500명, 한때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던 일본 최대의 은(銀) 산출량을 자랑하던 이와미는 은광이 폐광하면서 쇠락한 산골 마을이다. 이 책은 이와미에서 100여 명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 산골기업 ‘군겐도’의 대표 마쓰바 도미 여사가 일본 내셔널트러스트 이사를 지낸 환경보존 활동가 모리 마유미를 만나 생명과 환경, 기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눈 것을 모은 것이다.

image_ 모리 마유미·마쓰바 도미 대담(정영희 옮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산골기업, 군겐도를 말하다』, 이유출판, 2020

군겐도, 사람이 모이고 뜻이 모이는 곳

모두가 시골을 떠나 사람도 돈도 도시로 향할 때 마쓰바 도미는 도시를 떠났다. 서른두 살 때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남편의 고향인 일본 시마네현 오다시 이와미 산골로 이사했다. “풀씨는 바위 위에 떨어져도 거기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풀처럼 유연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성장해 나가면 된다. 그리고 결국은 이와미로 돌아가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 아무리 팔고 또 팔아도 기계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풍요로운 시대. 그래서 끝도 없이 쫓겨야 하는 삶. 이렇게 고도성장의 꿈에 지쳐갈 때, 그녀는 수량과 속도에 압도당하지 않는 삶을 찾아 산골로 들어간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지쳐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고생해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면 함께하자. 그리고 장사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한 발 더 깊숙이 사회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마쓰바 도미가 시골로 향하며 남편에게 한 말이다. 그녀는 활동가라기보다는 장사꾼이다. 그녀는 물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건을 팔아야만 가치가 생긴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진 제대로 된 장사꾼이다. 물건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팔아 이익을 만들고 그 이익을 굴려 뭔가 재밌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정직하고 올바른 비즈니스에 뜻을 둔 사업가다.

몸에는 편하고 마음에는 건강한 옷, 군겐도

그녀는 패션 브랜드 군겐도를 만들며 오래된 것의 가치와 버려진 것의 아름다움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지역에 뿌리내린 사고방식과 일본 문화를 활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곳의 ‘역사’와 ‘스토리’가 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땅에 뿌리내린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다. 옛것의 가치 위에 그녀의 감각과 시대성을 덧붙여 군겐도만의 옷을 만들어간다.

군겐도의 옷을 표현하는 대목이 나온다. “맞아요. 입으면 입을수록 느낌이 좋아지는 옷. 그런 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입었을 때 편한 옷, 옷을 입으면 안정이 되는 옷, 훨씬 더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옷, 빨면 빨수록 세월이 더해져 정이 드는 옷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천이 가진 표정과 세월의 질감이 베인 옷. 나도 오직 나에게 맞는 그런 옷을 입고 싶다고 생각했다.

군겐도는 단순한 의복 브랜드를 넘어, 기분 좋은 삶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서로 돕고 배려하는 상호부조의 커뮤니티까지 함께 제안하고 있으며, 일과 삶이 함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옷 입는 행위 위에 철학, 생활, 삶의 방식과 의도 같은 것들을 만날 수 있다. “군겐도에는 ‘특별히 어떤 것이 대단하다’거나 ‘개별적으로 뛰어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각각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고 그것이 모여 재밌는 그림이 완성된다는 의미이지요.”

오래된 집을 고쳐 마을을 살리고

오모리 마을은 인구가 줄면서 빈집이 늘었다. 마쓰바 도미는 오래된 것의 가치를 되살리고 생활에 아름다움을 더하고자 빈집을 사서 고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에도 시대 촌장의 집을 사들여 10년 넘게 손보아 군겐도 본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빈집을 하나하나 매입한 것이 어느새 열 채가 넘는다. 그렇게 되살린 집을 본점으로, 직원 숙소로, 살림집으로 쓰고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임대도 하고 있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며 마을을 찾는 손님들을 맞고 있다.

빈집 안에 담긴 세월과 삶의 흔적을 남겨 오래되고 소중한 것을 후세에 전하고, 필요 없는 것을 만들지 않는다는 기준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어떤 장소든 사람들이 경제적 욕망으로 모여들면 일시적으로 번영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일시적인 번영일 뿐입니다. 땅의 목소리를 듣고, 집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화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있다면 땅도 그에 상응하는 힘을 내려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고 있어요.”

이와미긴잔 생활문화연구소 ‘회사라는 하나의 집’

산골회사 군겐도(법인명 이와미긴잔 생활문화연구소)는 직원 개개인이 가진 자신만의 이야기를 근거로 채용하는 회사이다. 젊은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일본의 생활문화를 젊은 세대에게 이어주고 싶은 마음에 젊은이들을 채용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매출이 늘어나는 것을 계획하고 좀 더 제대로 된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인구과소화가 진행 중인 산골 마을에 90명이 넘는 고용을 창출하고, 젊은 인구를 끌어들이고, 전통 가옥에서의 생활하는 등 사람들이 동경할 만한 아름답고 진솔한 삶을 실현하고 있다.
본사인 위크스테이션을 만들 때도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진지한 듯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마음의 여유, 시간의 여유가 느껴진다. 씨앗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유연하게 일어서는 풀들의 춤을 보는 것 같다. 특히 매사에 지나침이 없는 것, 참 배우고 싶은 여유로운 태도이다.

‘물건 만들기’에서 ‘음식 만들기’로 확장하다

처음에 패션 소품 등 물건 만들기로 시작한 군겐도는 점차 사업 영역을 넓히며 음식 만들기에도 관심을 쏟았다. ‘생활을 즐겁게,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나머지, 생활방식 자체를 디자인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먹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공장에서 쏟아져나오는 물건에 지쳐 있던 터에 음식은 먹고 나면 전부 없어진다는 이유도 있었다. 지금은 타향 아베가에서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어주며 같이 이야기 나누는 일을 즐긴다.
시골이라는 이유로 향토 음식만 내는 건 아니다. 제철 재료나 어울리는 재료가 있으면 뭐든 준비한다. 아베가 요리의 기본은 가정식 요리, 즉 ‘집밥’이다.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정성 들인 음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고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잘 먹고 잘사는 일을 실행해 나가고 있다.

잘 먹고 잘사는 일을 꿈꾸며

여성복 브랜드로 시작한 군겐도는 이제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이제 그녀가 만든 물건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활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고 싶어 한다. 자연에 둘러싸인 조용한 시골 생활, 손으로 만든 옷, 정성이 깃든 음식을 그리워하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속도와 이익과 효율성이 전부가 아닌 세상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았고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를 일궈나갔다.
이와미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그 생활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절대적인 좋고 나쁨이 없는 시간, 어느 정도의 가벼움, 어느 정도의 재미, 진지함, 그리고 사랑이 식지 않는 거리감,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그리고 자연의 존재에서 따온 이름. 이 모든 것이 담긴 물건을 만들겠다는 마음이 이와미에 있다. 일본의 작은 동네 이와미에는 이렇게 삶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에필로그_나에게

마쓰바 도미처럼 사고방식이 견고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는 회사가 있고, 그것을 운영해나가야 한다는 책임이 있어요. 그래서 해나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또한 적절히 균형감 있게 생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이거다 하고 내세울 만한 대단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요. 무언가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고, 장사를 좋아하고, 여기에서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것. 단지 그것뿐입니다.” 매순간 좀 더 선한 것을 선택하며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꾀하며 오래되었으나 낡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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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군겐도 홈페이지 www.gungende.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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