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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말무덤[言塚]’ 퍼포먼스를 상상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 산업이 멈추고, 사회가 멈추었으며, 우리 일상 또한 멈추었다. ‘자연의 역습’에서 비롯한 재난의 상황이 일상화되는 위드(with) 코로나 시대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감염병 전문가들의 잿빛어린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코로나 블루도 우려되고 있다.
결국, 코로나19를 이겨내는 힘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있을 것이다. 전염병에 대한 개인의 면역력을 높여야 하고, 대한민국의 집단 회복력을 높여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의 삶을 깊이 생각하며 새로운 전환의 길로 가야 한다. 재난을 배울 수 있는 ‘재난학교’가 필요하며, ‘지금’의 시간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문제는 더 이상 일국적 차원의 해결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의 윤리와 감각 또한 요청하고 있다.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을 넘어 포스트-휴머니즘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고 익히며 우리의 일상을 재구성해야 한다.

‘말은 또 하나의 손이었다’라는 감각

차분한 명랑함을 잃지 않으려는 ‘심리 방역’ 또는 ‘관계 방역’ 역시 더없이 중요해졌다. 나를 소중히 여기며, 내 곁에 있는 누군가를 격려하고 지지하며 걱정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어느 시인이 “말은 또 하나의 손이었다”(백무산,「사람의 말」)라고 쓴 것은 그런 지극한 마음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우리는 ‘너’라는 존재를 쬐어야 한다.
하지만 “말은 또 하나의 손이었다”라는 감각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가. 그렇지는 못하다. 반(反)지성주의와 먹고사니즘이 득세하며 ‘일차원적 인간’(H.마르쿠제)이 넘쳐나고 있다.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은 “반지성주의는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이라영, 『타락한 저항』, 교유서가, 2019)라고 정의한다. 반지성주의는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을 모르기 위해 애를 쓰는 한편, ‘모르지만 규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시대 약자 혐오와 멸시 그리고 증오 바이러스에 중독된 말들이 득세하는 대한민국에서 적극적으로 잘 모르는 존재들에 대해 ‘감히 알려고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라영의 말처럼 “사회의 야만은 약자 멸시에 배어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자를 멸시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결코 아니다. 말의 힘을 회복해야 한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1949)에서 이른바 ‘뉴스피크(Newspeak)’ 식 가치전도의 언어에 맞서고자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조지 오웰은 ‘전쟁하는 평화’ ‘거짓말하는 진리’ 같은 식으로 전도된 언어는 뉴스피크 식 언어이며, 그런 사회는 전체주의사회로 귀결된다고 경고한다. 2013년 봄, 이스탄불 탁심 광장을 없애고 쇼핑센터를 짓겠다고 한 터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광장에 책을 한 권씩 들고 나와 ‘침묵 시위’를 할 때 조지 오웰의 『1984』를 비롯해 오르한 파묵, 알베르 까뮈 같은 작가들의 책을 조용히 읽었다는 점은 상징 이상의 큰 힘을 발휘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말의 힘을 회복하는 것은 개인이든 사회든 간에 회복력을 위해 중요하다. 내 경험적 진실에 의하면 나는 이 사실을 스무 살 문청(文靑) 시절 터득했다. 故 이형기 시인이 진행하는 시창작 수업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나는 사람들의 말을 두려워한다」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사람들의 말을 나는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너무 명확하게 말한다./ 이것은 개, 저것은 집,/ 여기가 시작이고, 저기가 끝이다.”(제1연)라고. 3연으로 구성된 시에서 시인 릴케가 말하고자 한 것은 지시(指示)하고 명령하며 사물들의 본성을 제멋대로 규정하려는 지배자의 언어에 대해 저항하고자 한 것이리라. “나는 사물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으면 즐겁다”라는 마지막연의 표현에서 시인 릴케의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시인 릴케가 말한 시의 맥락은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그대로 부합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특정한 진영 논리 혹은 자기만의 아상(我想)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물의 본성을 억압하는 동시에, ‘언어’를 지배하는가 하면 언어를 통해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위기에 처했다. 막스 베베가 명명한 것처럼 사회적인 폐쇄(social closure)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공유지는 물론이고, 공론장이 크게 훼손되며, 사회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기레기’ ‘기더기’ 같은 힐난을 듣는 언론의 타락 현상은 그 증좌이다. 인문학자 신영복 선생(1941-2016)이 동양 사상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언급한 ‘화해(和諧)’의 가치는 점점 요원해 보인다. “화(和)는 쌀[米]을 함께 먹는[口]공동체의 의미이며, 해(諧)는 모든 사람[皆]들이 자기의 의견을 말[言]하는 민주주의 의미”(신영복, 『강의』, 돌베개, 2004)라고 신영복 선생은 풀이한다. 인성의 고양이 곧 사회성의 고양이 되고, 경제 가치와 정치 가치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화해사회라는 이상은 한낱 이상일 따름인가.

말무덤(言塚)을 찾아서

image『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책 이미지.

그렇다면 화해의 세상은 어떻게 실현 가능한 것일까. 나는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일수록 문화예술의 수행적 힘이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1937-2020)의 유작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전3권, 교유서가 2020)에 등장하는 ‘말무덤’이라는 단어를 보며 더욱 실감하게 된다.
이이화 선생은 동학농민혁명은 단순한 민란(民亂)이 아니라 우리 근대사의 여명을 밝히는 상징과도 같은 혁명이었다고 말한다. 책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대목은 여러 곳이었는데, 그 중 하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18년에 집필한 『목민심서(牧民心書)』가 동민농민혁명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제1권)는 주장이었다. 전봉준이 젊은 시절 위민(爲民) 사상의 정수인 『목민심서』를 읽고 국가 개혁과 현실 개혁의 방책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좋은 정책이 바로 좋은 정치’라는 사실을 연상시킨다. 이이화 선생은 “정약용의 저술은 당시 호남 지방에서 널리 읽혔다”(1권 40쪽)고 썼다.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을 의미하는 삼정(三政)의 문란은 1862년 삼남 지역 농민 봉기의 발단이 되었고, 결국 1894년 갑오년 농민혁명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뜻에서 뜻으로’(씨ᄋᆞᆯ 함석헌) 이어지는 한국사의 큰 물줄기가 형성된 셈이랄까.

image말무덤. 긴 장마 탓에 풀이 우거져 접근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image동학농민혁명 발상지. 전북 고창 무창에서 처음 기포했다.

또 하나 내 눈길을 사로잡은 대목은 전봉준 장군이 전옥서가 있던 종로1가에서 처형당한 후 고향마을인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당촌마을에 ‘말무덤’이 세워졌다(제3권)고 언급한 대목이다. 여기 등장하는 말무덤은 말[馬]을 묻은 무덤이 절대 아니다. 사람들이 하는 나쁜 말[言]들을 모아 묻었다고 가정하는 말무덤[言塚]이다. “말은 짐승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떠드는 ‘말’을 뜻한다”(제3권 79쪽)는 문장에 내 눈길이 오래 머문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동네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서 이 말들을 모조리 무덤에 묻고 해마다 굿거리를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지 말자는 약속의 장소로 삼았다”(제3권, 같은 곳)고 선생은 기록했다. 관련 자료를 조사해보니, 말무덤은 400-500년 전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에 있는 언총이 유명하다. 문종 간 싸움이 그치지 않아 사발에 말[言]을 담은 것으로 간주하고 깊이 묻었더니 싸움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져온다.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조산(造山)에 있는 말무덤 또한 언총이라는 설(說)이 있다고 전해진다.

여하튼 나는 이이화 선생의 문장에 매혹되어 지난 8월 중순 고창 당촌마을의 말무덤을 찾았다. 고창 사는 후배 서영길의 안내를 따라 찾아간 말무덤은 마을 뒤편 서해안고속도로변에 위치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제 형태를 온전히 볼 수 없었다. 유독 긴 장마 탓에 온갖 풀들이 무성해 접근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당촌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고창군 상하면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퇴직한 조철웅 어르신을 만나 “어릴 때부터 말무덤 근처에서 날이면 날마다 놀았다”면서 “말무덤에서 따로 동네행사는 하지 않는다. 더 오래전이라면 몰라도…”라고 한 말에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창 당촌마을 말무덤을 찾아 나선 기행은 문화예술적 퍼포먼스를 자극하는 상상력의 촉발제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다시 말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동학의 기포 정신을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학의 기포 정신은 코로나19 시대 휴머니티를 재창조하려는 상호관계성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프랑스 예술 프로젝트 가 인간계-동물계-식물계-광물계-기계를 비롯한 다섯 가지 생명체계를 포괄하는 ‘종간(種間)’ 관계 회복을 촉구한 대목은 1백여 년 전 이 땅에서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표방하며 등장한 동학의 정신과도 맥이 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말무덤은 이 점에서 ‘말씀의 무덤’ 이상의 상징적·실체적 의미를 지닌다고 나는 상상한다.

말무덤을 짓고, ‘겸손’을 배우자

image무창 기포지에 세워진 기념상. 동학의 뜻을 이어받아 새로운 종간 협력을 위한 연대선언이 필요하다.

말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말무덤의 부활 같은 예술적 퍼포먼스가 필요하다. 문화예술적 의례(ritual)의 힘은 협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모든 화(禍)는 입에서 비롯한다’는 구시화문(口是禍門)의 현장인 대한민국을 넘어서려는 일종의 대동굿 퍼포먼스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광화문광장에 전국 17시도에서 흙을 한 트럭씩 싣고 온 흙을 한데 섞어 말무덤을 세우는 퍼포먼스를 나는 상상해보는 것이다.‘흙’을 의미하는 라틴어 후무스(Humus)와 ‘겸손’을 뜻하는 휴밀리티(Humility)의 어원이 서로 같다는 점은 이 점에서 결코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좀 더 ‘겸손’의 의미를 배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G5] 프로젝트의 선언처럼 오만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 사회에 말무덤이 필요한 곳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청와대, 여의도 국회의사당 같은 권력의 공간뿐만 아니라 우리 삶터와 일터에 말무덤이 조성되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현실 공간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도 말무덤이 필요하다. 말의 타락 현상은 온라인 공간에서 더 심하다는 점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무덤 퍼포먼스’는 우리가 침묵을 배우고, 겸손을 배우며, 서로 의존하는 존재로서 ‘서로’의 의미를 생각하는 재미있는 예술적 퍼포먼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주장을 내가 하는 이유는 ‘레토릭 자체가 메시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 새로운 담론과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약자를 멸시하고, 혐오하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 미래는 암흑일 뿐이다. 베네수엘라의 저 유명한 예술교육 프로젝트인 [엘 시스테마(EL Sistema)] 의 슬로건은 “연주하고 싸워라(Play & Fight)”이다. 나는 이 의미를 “예술가들이여, 무엇이 두려운가. 상상하라, 그리고 싸워라”라고 풀이하고 싶다. 지역의 회복을 위해,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교육하고, 단합하고, 궐기하라!’ 같은 즐거운 저항정신이 코로나19 시대에 문화예술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옮음이고, 아름다움이다. 제주 4·3평화기념관 안에 상설 전시된 [백비(白碑)]를 보라. 아무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으나, 정명(正名)의 그날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백비는 말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문화예술의 수행적 힘은 그런 것이다. 우리 삶터에, 일터에, 온-오프라인 공간에, 그리고 저마다의 마음 깊숙한 곳에, 말무덤을 조성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말무덤 앞에서, 혹은 말무덤 안에서, 우리는 말을 삼가고, 겸손을 배우는 장소로 삼아야 한다. 말무덤은 그러므로 우리 시대 지성소(至聖所)이다. 지금 당장, 말무덤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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