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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에서 찾은 문명의 시원'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성찰
이동준 이천문화원 사무국장
어머니는 참 곱게도 늙으셨다…

4월 6일.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올해로 아흔다섯이신 어머니는 참 곱게도 늙으셨다. 자기관리에 철저하셔서 신변을 빈틈없이 정리하고 계셨다. 책상과 침대는 단정하기 그지없었고 장롱과 서랍을 열어보면 특유의 완벽주의가 실현되어 있었다. 특히 건강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셨는데 살짝만 다치셔도 화들짝 놀라 어서 병원엘 가자고 성화셨다. 그런 어머니셨는데 어느 날 긴 장맛비에 천년 고목이 쓰러지듯 코로나가 창궐하자 어머니는 우지끈 쓰러지셨다.

어머니가 쓰러지신 건 이번만이 아니었다. 십년 전 갑작스레 치솟은 당뇨로 쓰러지신 후 회복의 기미가 없자 의사는 어서 퇴원해서 돌아가실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집에서 한 달만에 어머니는 기적적으로 회복되셨다. 처음엔 어머니에게 자주 헛것이 보였다. 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이 왜 내 침대에 앉아 있냐고 어서 쫓아내라고 흥분을 하셨다…. 집에서 죽음의 문턱을 오고 간 그 한 달의 기간은 아내에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참아내고 자기를 죽이는 극한의 수련이기도 했다.

그런 혹독한 시련을 통과하고 나서야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아주 쬐금 마음의 문을 여셨다.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를 며느리에게 들려주신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는 것은 당신을 정리하셨다는 뜻이다. 당신의 삶에 맺힌 아픔과 고통을 자신의 삶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제는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겠다는 고백이다. 그렇게 길게길게 이어진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제까지 알았던 그 시어머니가 아니라 파란만장한 삶의 흔적을 지닌 한 여인의 삶이었다. 그 인생과 마주하면서 며느리는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아내는 어머니의 진짜 며느리가 되었다. 아니, 딸이 되었다.
그후 어머니는 은혜로운 권사님의 자애로움을 얼굴에 새기셨다. 새로운 습관도 생기셨는데 바로 ‘성경 필사’였다. 건강을 위해서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구약과 신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다 쓰시는 데 1년이 꼬박 걸렸다. 그렇게 제일 먼저 쓰신 필사본은 첫째딸에게 가보로 물려주었다. 두 번째 필사본은 둘째딸에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 필사본은 며느리에게 돌아왔다.

 

image다락방 필사 작업이 낙이셨던 어머니의 일어 필사노트.

어머니에겐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말로 교육을 받으셨기에 일어로 된 성경을 필사하시면 어떻겠냐고 해서 이번엔 일어성경 필사에 도전하셨다. 그 후로는 길고 지속적인 필사 목표를 세우셨다. 매일 묵상집인 ‘다락방’ 일어판을 매일매일 필사하시는 게 어머니의 목표요, 하루 몫의 즐거움이셨다. 퇴근 후 어머니 방문을 빼꼼이 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책상에 앉으셔서 돋보기를 들고 필사 중이거나 모르는 일어한자 단어장을 만들어 아들에게 뜻을 물어보시곤 했다.

두 눈엔 총기가 늘 반짝반짝하셨고 백내장 수술 후엔 시력도 몹시 좋아지셔서 화장실과 거실 바닥의 먼지 닦는 일에 매진하셨다. 최근엔 머리 뒷부분에 검은 머리가 나기 시작하셔서 우리 어머니 회춘하셨나보다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왔다. 건강에 지나친 조바심이 있으셔서 혹여 감염이 되실까봐 바깥 나들이를 전혀 안하셨다. 그러다가 4월 6일, 우지끈 쓰러지신 것이다. 이번엔 다시 회복하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소변도 튜브로 하시고 음식도 목줄로 공급해야 한다. 요양병원으로 옮기신 후에는 기저질환 노약자 감염을 우려해서 면회도 유리창 너머로 겨우겨우 하고 있다.

늘 그 자리에 있고, 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온 존재. 그래서 고마운 줄 모르고 그냥 무시해버렸던 존재.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되기는커녕 언제나 짐으로 느껴온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어느 날 송편을 빚으며 우스갯소리로 청해들었던 어머니의 유년시절, 전쟁통에 헤어져 집에 돌아와 보니 (전)남편이 다른 여자를 데려와 살고 있던 이야기, 수 틀리면 가출을 일삼았던 남편을 찾으러 자식을 들쳐 업고 거리를 헤맸던 일…. 매몰차고 괴팍스런 어머니로만 알았는데 당신도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당신도 사실은 소리 없이 울고 있었고, 애써 그 모습을 감추려 더 고약하게 성질을 부리셨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엄마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어느 어머니가 그런 사연이 없으실까.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멸시와 모욕도 기꺼이 참아내는 인내의 고수….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를 읽는 일은 한 사람의 가족사와 삶의 이야기를 나처럼 자격 없는 사람이 듣게 되었다는 죄스러움을 마음 속에 불러일으켰다. 그 미안함은 내가 나의 어머니를 그동안 이런 시선으로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는 끈을 놓치고 있었다는 회한으로 다시 다가왔다. 그런 마음의 빚 때문이었을까 이 책의 서평은 바로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속살처럼 드러내지 않는다면 정당한 글쓰기가 될 수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성찰적 거리두기 - ‘낯설게 마주하게 된’ 내 어머니

『내 어머니 이야기』 책을 소개받았을 때 참으로 난감했다. 이번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웹진 《경기문화저널》의 주제가 ‘코로나로 인한 시대의 전환’인데, 웬 어머니에 관한 책을 골라 서평을 쓰라는 것일까? 더구나 만화책이라니. 4권으로 된 이 만화책을 읽다가 내가 그만 엎드러진 것은 책의 첫 부분인 ‘프롤로그’에서였다. 프롤로그는 1908년 외할머니, 그리고 여섯째이던 엄마의 내력부터 시작한다. 열여섯 나이로 시집온 외할머니(이초샘)는 심술궂은 시아버지, 시누이 둘, 자식 일곱에 남편까지 열 식구를 뒷바라지하며 살아야 했다. 성깔 사나운 시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그녀는 한없이 시아버지의 투정을 모두 받아냈다.

image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 1권 표지.

이런 시아버지가 언제부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자 며느리는 지극 정성으로 시아버지를 간호했다. 하지만 노인네의 병세는 좋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져만 갔다. 마음이 어진 며느리는 갓난애에게 먹이던 젖을 짜서 노인네에게 먹였다. 그것도 몇차례일 뿐 아무래도 가망이 없어보이자 며느리는 마지막 방법으로 시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물렸다. 그렇게 몇 달을 젖으로 연명하시던 시아버지는 어느 날 잠시 눈을 뜨고는 그동안 며느리를 못살게 군 것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허물을 덮어달라는 시아버지의 유언이 뇌리에 깊게 남는다.

이렇게 열 명이 넘는 식구를 건사하며 조상까지 수발하고 살았던 외할머니의 삶은 김은성 작가의 어머니(놋새)의 삶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김은성 작가도 그렇게 마흔이 되어서야 당신의 어머니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뒤늦게 발견한 어머니는 예전에 알았던 그 엄마가 아니었다. 권력에 고용되어 기록으로 남겨진 실록(實錄)을 누가 객관적인 역사라고 했던가. 전혀 다른 입장에서 몸으로 겪어낸 체험의 역사, 피와 살로 만져지는 민중의 역사는 고스란히 한 사람 한 사람의 체험이 모여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는 역사로 한 장면 한 장면 우리 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는 만화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재현해낸 또 하나의 ‘민중자서전’이다. 그리고 사십대의 딸과 팔십대의 엄마가 대화를 나누면서 꼬박 십년의 세월을 바쳐 완성한 구술 작업이기에 그 공감의 폭은 더 깊다. 그래서 아주 독창적이다. 엄마의 생애는 비록 한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근현대사의 백 년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어머니의 삶은 요즘 세대의 여성들이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삶이기도 하다. 누가 이런 인습과 사회적 굴레를 쓰고 저리도 인내하며 평생을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부인하려 하지만 책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작가와 어머니는 사이좋게 이불을 같이 꿰매는 장면에 이른다. 닮았다. 어찌 그리도 닮았을까.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닮았던 것처럼 어머니와 작가의 삶도 하나로 오버랩된다.

러시아의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1916년 발표한 『방법으로서의 예술』이란 책에서 예술의 목적을 “자동화된 인식체계를 비틀어 새롭게 느끼게 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일상화되고 타성에 젖어 바라보는 대상을 낯설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로 그가 제시한 것이 바로 ‘낯설게 하기’(ostranenie; defamiliarization)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가 말한 ‘거리두기(Verfremdungseffekt)’와도 통한다. 『내 어머니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던 익숙한 어머니를 밀어내고 이제까지 몰랐던 어머니의 ‘민삶’을 마주하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강요해온 이미지로만 어머니를 알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익숙함의 함정에 우리 자신이 더 이상 함몰되지 않도록 깨어나야 한다.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마침내 팬더믹을 선언했다. 2019년 겨울에 시작된 코로나19가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우리 인류가 내놓은 대항 방식은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였다. 매일매일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시간 단위로 올라오고 그 숫자가 갱신되면서 인류의 사회 시스템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대책은 가능한 한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공연도, 전시도, 온갖 문화행사와 축제도, 집회와 사소한 모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활동을 자제하라는 것이다. 이른 바 언택트 사회의 도래로 비접촉·비대면 방식의 사회활동만이 허용되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거리두기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뿐 아니라 생활 속 거리두기(distancing in daily life),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자가격리(self quarantine)와 같은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 간 접촉을 최소화해서 감염병 전파를 감소시키려는 통제전략이다. 이런 조치들로 인해 지금 사회적으로는 어떤 흐름들이 만들어지고 있는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기업은 근로자를 재택근무로 몰고 갈 것이고, 사무실과 작업장에 투자한 자본을 회수할 것이다. 대부분의 상거래와 쇼핑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배달과 택배가 폭증하면서 물류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지하에 물류전용 터널망이 구축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이러한 조치들은 고립감과 외로움,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증폭시켜서 심리적 패닉 상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거리두기일까? 이 시대적 상황에서 거리두기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이해되고 수용되어야 할까? 우리는 현재의 사회 시스템을 알게 모르게 무비판적으로 승인하며 살아간다. 코로나가 극도로 악화된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면 이 사회 시스템은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를 제일 먼저 포기할 것이다. 그리고 기득권의 수준에 따라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가지고 그들을 배에서 밀어낼 것이다.
이 사회 시스템이 내세우는 거리두기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냉정한 끊어내기를 언제든 할 수 있도록 사전에 마음 준비를 시키는 무서운 계략일지도 모른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가치와 의미를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와 눈앞의 이익으로부터 거리를 둔다는 차원으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거리두기는 코로나 사태가 악화될수록 서로가 서로를 투쟁의 대상으로, 믿지 못할 의심의 대상으로 우리를 몰아갈 공산이 크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지배권력의 인식체계, 기존의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상대방을 원초적으로 다시 마주하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태도를 성찰적 거리두기(reflective distancing)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어머니의 언어 그대로 - ‘마더 텅’

1981년부터 십년 동안 뿌리깊은나무가 발간한 민중자서전 20권은 내게 그야말로 날것 그 자체였다. 이 자서전의 주인공은 이름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당사자가 글을 직접 쓴 게 아니라 구술 작업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 이름 없이 살아온 힘없는 서민대중의 한평생을 가감 없이 그들의 말로 구술한 것을 풀어낸 구술 작업이었다. 토씨 하나 흘리지 않고 구술자의 농투사니 말투를 그대로 옮겨 적음으로써 그 사람의 체온과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image대모신(Great Mother Goddess)으로 표현된 작가의 어머니.

그런데 이런 정성스러운 기록 작업을 2000년대에 다시 날것으로 만날 일이 생겼다. 바로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라는 책에서였다. 이 책에도 함경도 북청 지방에서 살았던 지독스러운 함경도 말투가 첫장부터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이 말투에 독자가 전적으로 익숙해지려는 투신이 없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 힘들 것이다. 철저하게 재현된 함경도 사투리는 우리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1908년 함경도 어느 촌구석 마을로 데려다 놓는다. 재현된 것은 사투리 뿐만이 아니다. 함경도 명태식해와 명태순대, 그리고 함경도의 풍속들도 재현된다. 특히 우거지, 무채, 명태알, 조개 조린 것, 두부 삶은 것과 소고기 볶은 것 등을 넣고 만드는 명태순대 레시피는 군침이 돌 만큼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어머니의 말을 표기방식인 문자로 변환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 어머니로부터 말을 배운다. 그래서 언어에서 더 원초적인 것이 말(parol)이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이 중세 유렵에서는 오직 유일하게 공인된 표준언어요 문자체계였던 라틴어로 인해 전적으로 부정되어왔다. 우리가 엄마로부터 배운 말이 신의 언어인 라틴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자각. 거기서부터 근대의 휴머니즘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배운 말을 우리는 마더 텅그(mother tongue)라 부른다. 그대로 직역하면 ‘엄마의 혀’로부터 울려나오는 이 원초적인 말이 우리의 언어와 사고를 자극하고 길러낸 것이다. 하지만 근세 유럽에 와서 정작 라틴어를 대체한 것은 머더 텅그가 아니라 국가의 언어였다. 처음에는 시골말이었던 독일어와 불어, 앵글로 색슨어가 국가언어가 되면서 이들 언어는 또다시 라틴어의 지위를 차지하고는 무수한 지방언어들, 사투리 속에 새겨진 지역의 문화를 박해하고 획일화시켜서 국가의 통제 속에 가두려고 했던 것이다. 마더 텅그는 영어사전의 번역처럼 ‘모국어’가 아니라 어머니의 젖을 빨며 어머니의 혀에서 울리는 소리로 느끼는 엄마의 말이기에 ‘모어(母語)’라고 해야 한다.
이런 절절한 모어를 풀어낸 엄마의 이야기가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는 엄마의 삶이 녹아 있고, 엄마가 가족을 키우며 울고 웃었던 애환이 속속들이 스며 있다. 먼저 역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권력을 차지한 세력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기술한 실록이 이 땅의 역사가 아니라 사실은 이 땅에 이름 없이 살아온 가난한 민초들이 온몸으로 겪어내고 뚫고나갔던 삶의 이야기들이 실개천처럼 흐르고 서로 이어지면서 역사라는 큰 강을 이루어온 것이기에. 그래서 수많은 이 땅의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구술되어야 하고 그 기억과 기록들이 하나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image윤석남, [빛의 파종(999)],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주의 화가 윤석남은 김은성과 마찬가지로 사십이 되어서야 미술에 입문하고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윤석남은 모성을 주제로 자신만의 언어로 작품활동을 펼쳐왔다. 버려진 나무판자와 빨래판을 조합하여 그 위에 그려넣은 어머니는 오직 가족만을 위해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살아왔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의 작품 [빛의 파종](Seeding of light)에서는 999개의 나무토막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 땅의 어머니들이 소환되어 그들의 한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려고 한다. 999에서 모자라는 그 하나를 채워주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이 작품은 소마미술관에서는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관에 갇힌 채 대롱대롱 매달린 형태로 재현된다.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이 사회의 남성적 지배 권력에 가려진 어머니들의 내면의 힘, 끈질긴 생명력이 이제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고 밖으로 표출되리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어머니 중에는 열여섯 나이에 시집와서 열 명이 넘는 식구를 건사하며 살았던 작가의 외할머니도, 작가의 어머니도 물론 들어가 있다.

『내 어머니 이야기』의 에필로그는 ‘다함께 춤을’이라는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작가의 어머니와 딸은 빨래도 하고 겨울에 덮을 이불 바느질도 하면서 펼쳐진 이불 위에 함께 누워 부드러운 감촉을 처음으로 느껴본다. 이불 위에서 함께 뒹굴며 모녀가 서로 끌어안는 모습은 첫 우주가 열리는 모태의 양수에서 유영하는 아기처럼 자유롭고 원초적이다. 진정한 해방과 쉼의 공간이다. 권력의 신화에서 신은 이레 만에 안식을 취했지만, 어머니는 이제서야 딸과 함께 이불 위에서 곤히 휴식을 취한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대모신의 모습이다. 대지는 어머니의 몸이다. 세상을 창조한 모태요 온갖 식물과 동물을 내고 길러낸 근원적인 힘이다. 어머니가 되는 첫 과정은 무엇인가? 생명을 품고 기르는 일― 바로 생산(生産)의 원초적인 의미였다. 이 근원적인 생명력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파괴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그 힘은 우리의 어머니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인류문명에 의해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고 보듬으려면 우리에겐 다시 그 모성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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