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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포스트코로나 또는 위드 코로나 시대와 역사 전환
윤한택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 연구원

아직 우리는 인간중심적이며 이분법적 사고로 대표되는 근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현재’를 ‘현대’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대표되는 바이러스가 근대를 넘어 진정한 ‘현대’로의 진입을 재촉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코로나의 등장을 역사 발전 과정 안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답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역사의 현장인 지역의 문화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예측하기 위하여, 보다 정교하게 현 단계를 진단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코로나 팬데믹

2019년 12월 1일 국제 의학 저널(《란셋》)이 중국 우한에 있는 병원에서 유형의 코로나 바이러스 폐렴이 확인되었다고 밝히면서 시작된 코로나 사태가 반년을 넘어섰다. 사태 확인 한 달 만인 12월 31일 우한시 보건위원회는 폐렴 전염병을 처음으로 공표하였다. 이듬해 2020년 1월 9일 우환 폐렴 첫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1월 12일 한국에서 첫 의심환자가 발생하였고, 이후 태국, 일본, 미국, 프랑스, 네팔, 캐나다, 캄보디아, 독일, 핀란드에서 해외 확진 환자가 이어지면서, 1월 29일에는 중국 외의 15개국으로 늘어났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확진 환자가 확인되자,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 조정하였고, 계속해서 북한, 몽골,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서 국경폐쇄, 여행 제한 등이 이어졌다. 1월 27일 네 번째 확진자가 발생하자 정부는 경보 수준을 ‘경계’로 상향 조정하였다. 1월 30일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1월 31일과 2월 1일 우한 교민이 귀국하여 충북과 충남과 경기에서 격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2월 3일 유치원·초·중·고교 개학 연기와 휴업을 결정하였고, 2월 6일 전국 대학 개강 연기를 권고하였다. 2월 5일 현대자동차는 중국 부품 공급 중단으로 생산을 중단하였고, 이후 기아자동차, GM 코리아로 이어졌다. 2월 18일 대구 신천지교회 첫 확진자 발생 후 신천지 대구교회와 청도 대남병원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였고, 이에 정부는 대구·경북 지역을 지역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였으며, 23일 위기 경보 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였다. 28일에는 WHO가 세계적 위험 수준인 최고 단계인 ‘매우 높음’으로 격상하였다. 3월 6일 분당제생병원 집단 감염, 3월 8일 서울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이 발생하였다. 전 세계 발병 국가가 3월 6일 97개국, 3월 10일 118개국으로 증가하자, WHO는 3월 11일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하였다.

전염병과 문명 - 작물화·가축화와 병원균

페스트(흑사병)가 중세 유럽을 초토화시키고 근대로의 이행을 촉진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위력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적 전환과 전염병의 상관관계와 그 함의에 대해서는 그리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후 전개된 이성을 바탕으로 한 근대 사회의 발전과 이념적 대립이 이 문제를 부차적인 요인으로 취급하게 한 경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전염병과 문명의 연관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인류 미래에 대한 근대 문명의 한계를 대륙간·민족간 문명화의 불평등성에서 찾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였다. 그는 인류 최초 문명이 작물화·가축화의 역사로서 유산자와 무산자를 갈라놓았고, 그것은 바로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인 전염병의 역사와 한 몸임을 보여주며, 엥겔스가 문명의 목록 속에 넣었던, 가족과 국가와 사유재산에 한 항목을 추가하였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동아시아에서의 전염병 발생과 문명 교류의 연관에 대한 산발적인 사례들이 있었다. 기원전 1세기 백제의 역병 유행을 기원전 108년의 한나라 공격을 받은 고조선의 멸망과 이에 이은 사람들의 이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고, 6세기 북위의 멸망에 따른 대규모 유이민 발생이 고구려, 일본으로 전염병을 옮겼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당시 보편 종교였던 불교 전파가 이를 매개했을 가능성이 지적되기도 했다. 7세기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후 신라에서는 대규모 역병이 돌기도 하였다. 고려 왕조에도 송과 요와의 국제 관계 속에서 발생한 전쟁이 급성 유행성 열병인 온역(瘟疫)을 발생시켰을 것으로 보이며, 조선 왕조에서도 왜란·호란의 전란에다가 당시 지구 기온 저하가 발생했던 중기에 발병 빈도가 가장 높았다. 개항기에도 러시아와의 통로인 원산, 일본의 거류민 지역인 부산에서 콜레라가 발생된 사실이 보고되었고, 국제적으로 온역 방역장정이 마련되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문명이 전염병과 한 몸이라면, 문명의 현 단계에서도 역시 그러하고 앞으로도 영구히 그럴 것인가?

사회적 거리두기와 뉴노멀 - 대응 양상의 전환

이번 사태 대응과 관련하여 그 초기 단계부터 세계는 바이러스 게놈 획득부터 백신 개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위기 경보 단계가 최고 단계에 도달하자 정부는 전통적인 방역 방식인 마스크 착용과 환자 격리 등을 동원하였다. 2월 29일 마스크 대란이 심화되자, 정부는 마스크 국외 반출을 전면 중단하고,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하였다. 3월 22일부터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였다. 3월 31에는 2021학년도 수능 연기를 발표하고, 유치원 개학을 무기한 연기하였다. 4월 9일 고3·중3에게 교육 당국이 제공한 학급관리시스템을 이용해 사상 첫 온라인 개학이 이루어졌다. 6월 10일 실내 집단시설에 QR코드 전자출입명부를 도입하였다. 6월 8일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였다. 한편 6월 22일 오면돈 서울대 의대교수는 코로나 종식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돌파해야 하는가? 코로나 이후 세계의 각 부문의 대안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마스크 착용을 비롯한 개인 방역,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온라인 강의 등 뉴노멀이 일상화되고 있다. 한편 백신 개발과 관련해서는 과학기술 낙관론부터 생태백신·행동백신 주장까지 다양하다. 역사 전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세계사의 지평: 종자-분자-원자-양자

가족, 국가, 사유재산에 전염병을 문명의 항목에 추가한 연구를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발전시킨 것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문명사적 의미는 그 후기 ‘신이 된 동물’에서 단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그런 판단의 근거에 과학기술혁명의 총아인 ‘인공지능’이 놓여 있는데, 이런 지극히 비관적인 전망과는 다르게 이 주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대극에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가 서 있다. 이 책의 부제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이 암시하듯, 기술의 “발전은 온 우주가 우리 인간의 손가락 끝에 놓일 때까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라며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결론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이 두 가지 극단적인 관점은 양쪽 모두 이것을 ‘가치중립적’이라고 간주하는 점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물질을 ‘실증적’으로만 바라보려던 근대 이성의 객관주의적 한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미 물리학에서는 1920년대 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닐스보어의 ‘양자역학’의 새로운 인식이 기존의 ‘원자론’에 도전장을 던졌고, 이후의 사회역사 발전에 그 영향력을 높여오고 있다. 이제 물질은 파동함수 한 순간의 어느 경계에서 확률로 포착되는 ‘데이터’가 되었고, 그 자체가 투입에 대한 산출이 정확하게 반영되는 ‘노동력가치’를 지향하게 되었다.
많은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바로 그 불확정성, 비결정성 때문에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이제 ‘양자’의 세계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것을 기준으로 이전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도달하였다.

이 작업의 진입로에서 다시 『총, 균, 쇠』는 든든한 원군으로 등장한다. 문명의 시작이 작물화·가축화였다는 것은 인류 역사 첫 단계인 고대 사회의 생산양식과 사회구성의 기본축이 ‘가축(cattle)’이었다는 마르크스의 가설을 입증하는 것이다. 바로 고대사회의 지배적 생산수단으로서의 가축과 곡물의 ‘종자’와 그 잉여가치로서의 ‘이자’에 대한 인류학적·고고학적·생물학적 실증자료가 확보된 셈이다.

이 고대사 인식에 대한 빅히스토리를 바탕으로, 근대 자본주의 상품생산에 대한 마르크스 분석의 역사적 의미도 재평가할 수 있다. 자본과 그 잉여가치로서의 ‘이윤’을 낳는 ‘원자’로서의 상품의 역사적 위치가 재확인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상품생산을 바탕으로 한 근대 ‘원자’와 작물화·가축화를 바탕으로 한 고대 ‘종자’ 가운데 ‘봉건적 토지소유’를 매개로 한 중세 ‘분자’의 시대를 되살려 놓으면, 종자-분자-원자로 이어지는 역사발전의 경로가 재구성될 수 있게 된다.

사물의 불확정성, 비결정성을 존재-당위로 끌어온 것은 가치지향적 과학기술의 힘이다. 이를 매개로 인류 역사는 오래 결정론의 시대를 경과해왔고, 이제 바야흐로 인류는 전사(前史)를 거쳐 본사(本史)로 접어들고 있으며, 그 뒷골목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 전환의 함의: 영역과 경계, 모순과 상보

전염병과 한 몸인 문명이 역사 전환을 경과한다고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작물화·가축화의 종자, 봉건적 토지소유로서의 분자, 상품 소유로서의 원자의 시대는 시간과 공간을 양축으로 한 영역의 시대, 지배와 예속의 시대, 억압과 착취의 시대, 모순의 시대였다. 자연으로부터 분화된 인류는 자기를 만든 자연과 더불어 진화해가기 위해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그것과 불화하는 단속적인 역사 시대를 경과하였으며, 이제야 겨우 그것과 화해할 수 있는 문 앞에 서 있다. 순간에서 기착하고, 경계에서 평행을 이루며, 확률로 파악되는 상보의 세계가 저기서 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 시대는 영역의 시대에서 경계의 시대로, 모순의 시대에서 상보의 시대로의 이행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시대의 유산을 정확하게 견지하면서 전망할 수 있는 미래를 가진 시대가 우리 시대이다. 가치지향적 과학기술을 어떤 계급이 끌어가는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 코로나가 가치중립적 질병이 아닌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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