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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정책/이슈>
향토학의 지방주의를 넘어서
구 모 룡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2016년 6월 15일에 진행된 2차 지역문화아카데미의 '조직과 법제' 시간에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image 프랙털 구조의 ‘시어핀스키 삼각형’
(프랙털(Fractal)은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되풀이 되는 구조를 말함)

지역을 캔버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어느 화가가 캔버스에 제 멋대로 붓질을 하면 마치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어떤 ‘그림(청사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처럼 지역에서의 문화예술 기획 및 활동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애초 문화기획자 및 예술(교육)가들이 원했던 그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지원사업 구조가 지역에 대한 그런 위계화된 시선을 내면화하도록 재촉한 측면이 분명 없지 않다. 문제는 지역의 회복력이란 하루아침에 복원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은 당신의 캔버스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나는 이 말을 자주 뇌까리곤 한다.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갖은 형태의 문화예술(교육) 현장 및 활동들을 볼 때마다 기획자와 예술가들이 지역을 ‘캔버스’로 여기는 경향이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역을 캔버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어느 화가가 캔버스에 제 멋대로 붓질을 하면 마치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어떤 ‘그림(청사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처럼 지역에서의 문화예술 기획 및 활동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애초 문화기획자 및 예술(교육)가들이 원했던 그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지원사업 구조가 지역에 대한 그런 위계화된 시선을 내면화하도록 재촉한 측면이 분명 없지 않다. 문제는 지역의 회복력이란 하루아침에 복원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신이 사는 지역은 자기 회복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만 살아남고,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죽어버린 사회에서 어느 누가 지역의 회복력을 자신할 수 있을까. 작고한 철학자 M.푸코가 1975~1976년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에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환원주의자의 과학도 아니고, 결정주의자의 경제학도 아니다. 로컬 지향의 상상력과 공유인 되기의 실천이 요구된다. 로컬 지향의 상상력과 공유인 되기의 실천이란 서로 얼굴을 대하고 사는 범위 내에서 평범한 삶을 누리며 작지만 의미 있는 공헌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와 소유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물질’에 대한 집착과 욕구는 옅어졌고, 소비 형태는 물질에서 ‘일’이나 ‘관계’로 변한 최근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읽어내며 문화적 기획과 예술적 활동을 실천해야 한다.

국가에서 지역으로: 방법으로서의 지역학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일 많은 기록을 생산해 낸다. 일기와 가게부를 쓰고, 달력이나 스케줄표에 약속들을 기록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지인들과 나누고 싶은 정보를 올리기도 하고, 그때그때 생각난 중요한 아이디어를 잊지 않기 위해 메모지나 수첩에 기록한다. 초등학생들은 노트에 받아쓰기하고 대학생들은 리포트와 논문을 쓴다. 회사에서는 사업계획서나 각종 품의서를 기안하고, 길거리를 걸으면서 멋진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을 보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간직한다. 굳이 작가가 업(業)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기록물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록물을 고스란히 보존하여 후대에 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죽고 나서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다른 누군가가 내가 남긴 기록들을 뒤적이면 나의 생각과,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음식과, 내가 교류했던 사람들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에코와 카리에르의 대담을 엮은 “책의 우주”라는 책에는 고서점에서 구한 1790년대 파리의 지도와 당시 살았던 한 가구상의 상세한 약속을 적어 놓은 수첩 내용을 분석하여 수첩 주인의 동선과 사생활을 재구성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한다

4년 후인 2018년은 ‘경기’라는 지명을 사용한 지 1000년이 되는 해이다. 만약 1000년 전 지금의 수원땅 어딘가에 살던 아무개가 매일의 일을 기록하고, 그 기록이 지금까지 잘 보전되어 왔다면 우리는 그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수원의 생생한 모습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의 꼬마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하며 놀았고, 명절이 되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노래를 부르며 살았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고려 시대에 대해 남아 전해오는 기록이라고는 정사를 다룬 『고려사』나 『고려도경』 같은 당대의 기록, 기타 일부 고려의 풍습을 담은 몇몇 자료들뿐이다. 이런 단편적인 기록들을 근거로 당시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와 소설이 만들어 진다. 하지만 남아 있는 빈약한 기록들만으로 구현한 과거의 모습은 사실과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록은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이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의 필요에 부응하는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華城) 같은 경우 기록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는 1796년 화성을 완공하고 화성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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