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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활생문화로 나아가는 생활문화
활생(活生)문화로 나아가는 생활문화

양 원모 |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관장


생활 속 예술, 예술 품 안에서의 생활

바람이 선선한 초가을이 되면 인천 남구학산문화원에서 주최·주관한 ‘학산마당극놀래’마당예술동아리 잔치를 보고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인천으로 향한다. 삼년 째다. 삼십 여 년 전 푸른 젊은 시절의 인연으로 비롯된 것이다. 탈춤의 신명에 이끌려 마당 판에서 춤추고 노래하였는데 군복무를 마친 다음, 나는 창작 탈춤과 마당극을 전문으로 하는 놀이패 ‘한두레’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인천으로 옮겨와  호인수 신부님의 도움으로 주안 5동 성당에서  문화한마당(문화학교)를 열고 후배들과 함께 놀이패 ‘한광대’를 결성하였다. 사물놀이와 노래, 춤, 그림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이 나날이 늘어 주안역 앞 건물 한 층을 빌어 문화 공간 “쑥골마루”를 열었고 놀이패 ‘한광대’, 노래패 ‘산하’, 그림패 ‘갯꽃’, ‘일손나눔’과 손을 맞잡고 갈래별 크고 작은 예술동아리를 이끌어내며 ‘우리문화사랑회’를 꾸렸었다. 
지금도 인천에는 제 신명으로 활동하는 생활예술동아리가 많다. 특히 인천 남구는 학산문화원과 학산생활문화센터‘마당’이 지역문화 플랫폼이 되어 생활예술 동아리 공동창작활동과 발표를 안받침하고 있다.


학산마당극놀래 2016 퍼레이드


경기도에도 생활예술동아리는 많다. 특히 성남은 15년 남짓 중장기 발전 계획을 마련하며 생활예술동아리 활동 지원 사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 결과 생활예술 진흥의 본(本)이 되고 있다. 
이제는 생활예술이란 말이 생경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생활예술이란 명칭은 순수예술과 대비되는 실용예술을 일컫는 또 다른 표현이었다. 그러다가 전문예술과 대비되는 아마추어예술을 생활예술로 명명하게 되었고 지금은 시민 참여 형 또는 시민 주도 형 예술을 생활예술이라 칭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정신과 문화지형이 반영된 듯하다.
생활 속 예술, 예술 품 안에서의 생활, 이것은 우리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자기다움을 담지(擔持)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리적, 심리적, 정신적 갈망이 충족되어야 존재 의의를 느끼고 자존감이 향상되며 자긍심을 갖고 삶에 응할 수 있는데 생활 속 예술, 예술 품 안에서의 생활은 삶을 넉넉하게 하고 관계를 도탑게 한다.



공동체 기반 생활예술

경기도는 현재 생활예술동아리 육성과 생활문화 공간 조성에 열심이다. 지원을 뒷받침하는 조례와 국가단위의 진흥법도 마련되었으며 예산과 지원 기관도 있다. 시민들의 문화기본권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으며 생활문화를 진흥하는데 함께 할 전문 인력 양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생활예술동아리 육성과 지원에 나설 때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하는 것은 생활예술의 뿌리가 지역사회 공동체에 튼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래야 생활예술의 내용과 형식이 풍성해지고 스스로 진화 할 수 있는 힘을 갖춘다. 달리 말하면 공동체에 기반 한 생활예술이 되어야 지지자, 후원자를 끌어 모으며 자생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 
공동체 기반 생활예술은 문화 창조 역량을 귀히 여긴다. 그리고 예술로서의 이야기 주권 회복과 행사를 중시한다. 그래서 공동체 기반 생활예술은 공동체의 의제·이슈 또는 문제·과제에 주목한다. 공동체의 관심과 이해(利害)에 기초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동체의 이해 당사자들이 행하는 예술이기에 공동체 안팎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읽으며 문제 제기 형 또는 문제 공유 형 예술의 형태를 띤 것이 많다. 예술을 통해 문제인식을 심화하고  집단지성으로 해법을 찾아나가면서 문제를 타개할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공동체 기반 생활예술의 역사는 깊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풍물패가 있었다. 정월 대보름과 단오 날에는 전국 곳곳에서 풍물 굿이 펼쳐졌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달아올랐던 탈춤 부흥운동 덕에 배움 공동체인 대학에서도 탈춤 동아리와 풍물 동아리가 우후죽순 돋듯 생겨났고 1980년대 중반에는 노래 동아리와 그림 동아리가 전국 대학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1980년대 후반에는 공단의 직장공동체에도 수많은 풍물 동아리와 노래 동아리가 생겨났고 신앙공동체인 천주교와 기독교 교단에서도 탈춤 동아리, 풍물 동아리가 생겨났었다. 법당 안마당에서는 전통혼례를 창조적으로 변용한 현대 민속혼례가 올려 졌고, 성당에서는 국악 반주의 미사가 왕왕 집전되었다. 교회 안에서 마당극이 공연되기도 하였다. 공단 작업장 외벽에는 근로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그려졌고 크리스마스 카드가 해맞이 그림 연하장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방송 매체의 도움 없이도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창작 민요와 노래 동아리에서 작사 작곡한 노래들이 입과 입을 통해 퍼져나갔다. 배움공동체, 직장공동체, 신앙공동체 모두가 생활예술 동아리를 키워내며 대항적인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였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공동체 기반 생활예술은 새로운 대안 창출을 위한 실험 속에 함께 있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마을문고, 작은 도서관. 방과 후 학교, 계절학교, 대안학교, 생활협동조합, 인문학공부방, 마을 카페, 공방, 소극장, 마을 예술제와 연계되어 있었다.
2010년대 공동체 기반 생활예술은 지역재생과 마을 디자인, 재래시장 리뉴얼, 문화공간과 예술거리 조성, 그리고 텃밭과 공원, 숲 등 도시 재구성과 새로운 생활양식 태동을 주목하고 있다. 


생활문화 ?!

지역사회 시민문화의 일상을 이루는 생활문화는 시민들의 자각이 함께하지 않으면 숙성되지 않으며 변성(變性)없이는 문화향유는 되겠지만 새로운 문화 창조는 쉽지 않다.
현재 우리 인류는 기로에 서 있다한다. 과소비, 난개발, 지구 토양 오염, 바다 쓰레기 집적, 밀림과 숲의 축소, 탄소 배출 과다, 지구 해수면 상승 등등으로. 지속가능한 삶이 되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생활문화를 바꾸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다음세대가 너무나 큰 부담을 지어야하고 그들에게 전가될 고통이 지나치게 크다고 세계 지성들은 경고한다.
우리의 생활문화, 무엇부터 바꾸어야 하나? 그리고 생활예술은 어떻게 진작시켜야하나?


저비용, 저에너지 생활예술을 찾아내 즐기는 것부터 시작하자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는 기억하고 있다. 그들이 젊었을 때 동그랗게 둘러앉아 통기타와 하모니카만으로도 훈훈하고 정겨운 시간을 가졌던 것을. 그리고 북, 장구, 꽹과리, 징, 사물만 있으면 온 마을 사람이 신명난 춤판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을. 무대 없이도 마당만 있으면 연극이 가능했던 시절을. 그들이 청소년이었던 시절에는 유독 문학의 밤이 많았다. 시집을 사서 읽고 맘에 드는 시를 골라 낭송하는…  어린 시절에는 종이인형과 종이옷을 직접 그리고 오려 입히며 소꿉놀이를 했고 동네 골목에서는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했으며 구슬치기, 딱지치기, 술래잡기, 다방구(다살이)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것을.
적색국가에서 녹색국가로 전환한 쿠바에서는 지금도 시가(cigar: 엽궐련)를 마는 공장에는 문학고전을 읽어주는 낭독가가 있어 노동의 무료함을 이겨내게 하는 한편 삶의 깊이를 더하게 하기 위해 책을 읽어준다 한다. 저비용 고효율의 생활문화의 본이라 할 만 하다.


십시일반(十匙一飯)하며 모은 공동기금의 문화를 되살리자.
예전에는 마을 대동굿을 펼칠 때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해주며 굿전과 쌀을 추렴하였다. 
이때 내준 쌀은 집집마다 십시일반하며 모아 놓은 것이었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공동기금을 조성할 줄 알았던 선조들의 지혜가 배어 있는 전통이었다.
십여 년 전 수원에서 만원계를 꾸린 적이 있다. 1인 당 만원씩을 내고 모아 달마다 한 번씩 술자리를 갖는 주계(酒契)였다. 의정부에서는 차를 마시는 다계(茶契)를 하는 벗님도 있었다. 서로에게 부담이 없고 남는 돈은 모아 적립하였다. 그리고 필요시에는 이것을 종자돈 삼아 일일 주점을 열어 공동기금을 조성하였다. 이 기금은 크게 상부상조하는 일에도  쓰였고 공동의 문화공간을 조성하는데도 한 몫 하였다. 


더불어 함께 즐기는 문화를 일구자
옛 기록을 보면 우리겨레는 춤추고 노래하기를 즐기는 민족이라 하였다. 함께 노래 부르기, 다 같이 춤추기를 일상에서 되살릴 필요가 있다. 같이 부르기 좋은 노래모음집을 만들고 광장에서 포크 댄스를 배우고 더불어 춤을 추는 기회가 잦으면 좋겠다. 안산 원곡동에 있는 작은 공원에 가면 중국에서 건너온 재중 동포들이 이삼십 명씩 모여 춤을 즐긴다. 정신 건강, 몸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세계 여러 나라 공동체놀이를 보급하여 더불어 즐기며 친구를 사귀게 하고 군포 문화예술회관에서 하였듯 실외 외벽에 거울벽을 만들어 청소년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춤 연습을 할 수 있게 하였으면 한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그래피티 아트


친자연 문화를 일으키자
공동운영 텃밭에 참여하는 가족들이 많다. 유기농 채소를 기르고  이웃도 사귀고 산출된 것들은 서로 나누며 땅도 살리고 공동체도 자연스럽게 살려낸다.
유럽에서 실험 중인 “나우토피아(Nowtopia)”에서는 ‘가이아의 정원’이 실험되고 있다 한다. 다년생살이 곡식, 약초, 화초, 과실나무를 섞어 심어 조성한 정원으로 일명 “먹거리 숲”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공공원의 일부를 분양받아 실험하기도 하고 공동으로 또는 개인이 땅을 구입해 조성하기도 한다. 재래종 씨앗을 모으고 나눈다. 가이아의 정원의 모델은 동아시아의 옛 정원이었다고 하는데 오랜 종가집 앞마당과 뒤뜰에 조성된 정원이 연상된다. 사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겨레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생활 속에서 자연미를 흠뻑 즐길 줄 알았던 매우 슬기로운 민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인들이 뜨악해하는 아파트 공화국을 만들어 스카이 라인을 훼손한지 오래되었고 그윽한 자연의 미감을 많이 잃어버렸는데 다시금 친자연 문화를 되살려 생태적 미감과 미의식을 회복하였으면 한다.


활생(活生)의 생활문화

생활문화를 비롯하여 문화일반의 핵은 사회구성원이 그들이 사는 세계를 이해하고 구성하는데 길눈이가 되어 줄 세계관이다. 인류문명의 대전환을 앞두고 프란체스코 교황은 새로운 세계관, 신앙관의 기초가 되어 줄 바탕 학문으로 “온전한 생태학” 연구와 토론을 제안하였다.
현존하는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구성한 사회에서는 고대와 중세에는 신 중심의 세계관이 대세였으며, 근현대에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팽배해있다. 하지만 다가올 문명은 이를 넘어 설 수 있다. 범 생명 중심의 세계관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최근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으로 살처분 된 동물들이 너무도 많다. 공장식 축산으로 전염이 가속화되었는데 이를 개선하는 노력은 더디기만 한다. 동물들이 가축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밥상에 오르기 직전까지는 그들도 짝을 짓고 새끼를 기르고 그들 나름의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하는데 사람들이 돈벌이에 급급해 생산성 향상과 수지타산만을 따지며 그들을 죄수보다 못한 취급을 하며 생지옥으로 내 몬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인류의 업장(業障)이 깊어 메르스 사태와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다시 올 수도 있다. 동물복지에도 관심을 갖고 조선시대 건강식 같이 단백질 섭취를 균형 있게 취할 필요가 있다. 이것 또한 생활 문화와 관련된 것이다.
4년 전 인도의 환경산림부는 돌고래를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s)’로 보아야하며 이에 따른 고유한 권리를 지닌다고 공표했다. 따라서 돌고래를 포획하여 공연목적으로 길들이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고래류는 바다를 삶의 근거지로 하는 고등생명체이며 그들 또한 그들끼리의 언어를 구사하며 사회생활을 한다. 최근에는 코끼리 또한 언어생활을 한다는 것이 코끼리 언어연구학자에 의해 밝혀졌다.
근래 식물의 뇌에 관한 책들이 여럿 소개됐다. 식물 또한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다. 
사람 중심의 세계관, 인간 중심주의, 인류 종 우월주의를 포기하고 뭇 생명 모두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며 범 생명 중심의 세계관에 공감을 표하는 분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미 세계관의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안에서 현대를 넘어서는 이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2015 자비의 희년 _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을 
  수놓은 동물들 ‘우리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인식의 지도 역할을 하는 역사 연구가 확장되고 있다. 빅 히스토리(Big History)의 등장이다. 빅뱅부터 현재까지 137억년의 우주사와 46억년의 지구사 그리고 35억년의 생명의 역사를 다룬 서적과 영상이 소개되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빅 히스토리 연구와 보급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이론물리학자들은 초끈이론을 심층연구하다 M이론을 내왔는데 11차원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이라는 차원을 바탕에 깔고 10차원의 공간을 밝히고 있다. 점차 가까워오고 있는 지구촌 시민사회 형성을 위해 확장된 의식이 필요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더불어 주고받는 공유지식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빅히스토리로 쓰여 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유발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의 생활문화는 공진화하여 2020년대에는 활생문화로 나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생(自生)하고 상생(相生)하며 공생(共生)을 희구하는 바람은 자연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며 뭇 생명 모두를 살리는 활생(活生)의 생활문화를 지구촌 곳곳 지역사회 안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현재 경기도에서 펼쳐지고 있는 생활예술과 이를 감싸 안은 생활문화도 숙성하면 활생문화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일 것이다. 앞날을 내다보고 슬기롭게 오늘을 돌보는 것이 생활문화정책의 바탕이 되길 바래본다.

2017. 10.31
                                                              
* 양원모 aka 라원식 : 교육예술가, 미술비평가, 현재 경기문화재단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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