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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정책/이슈>
지역브랜드는지역민의 자부심이 되어야 한다.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각자의 마음 속에 어떻게 기억될까? 몇 장의 빛 바랜 사진으로, 혹은 영화 트레일러처럼 압축된 영상으로, 혹은 아무개 아무개의 표정으로, 혹은 거기가 아니면 찾기 어려운 독특한 냄새로… 등등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새겨지기도 하고 또 기억되기도 할 것이다. 
  
 이런 기억들은 다분히 사적이지만, 다른 이들의 기억과 연결되는 순간 공동의 경험으로 확장되고, 서로가 서로의 기억에 영향을 미치며 지역 고유의 살아있는 이야기로 성장한다. 그 연결은 마치 에너지 같아서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만의 매력으로 발전해 타지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기억이라고 해서 항상 긍정적일 순 없다. 악몽도 있고 트라우마도 있다. 그것들이 모이면 지역에 대한 자부심 대신 혐오감이 증폭된다. 지역을 폄하하게 되고, 좋지 않은 이야기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다. 당연히 지역은 활력이 떨어지고 찾는 사람의 발길도 끊어진다. 
  
 ‘스토리 개입'(Story Edit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나쁜 이야기'를 다시 편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일 수록 '심리적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이 악순환 구조는 지하로 나선을 그리며 끝도 없는 심리적 추락을 강제하고, 마침내는 ‘학습된 무기력'을 조장한다.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지 않아 당한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 단정하고, 고통의 반복을 당연하게 여기며 심지어 고통의 상황을 자초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지역 브랜드를 교정하는 법, 
스토리에디팅  
 예를 들어 성적이 안 나온 걸 머리가 나빠서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만큼 노력을 덜 하게 되고, 노력을 덜 하니 성적이 더 나빠지고, 결국 스스로 머리가 나쁘다는 확신을 가지며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식이다. 최근 총리 후보로 나섰던 모씨가 강연했다는, “조선 민족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 DNA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 또한 같은 맥락이다. 조선 사람 자체가 형편없기 때문에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독립과 새로운 정부 수립을 향한 노력은 부질없는 짓으로 결론짓는 것이다.
  
 이런 비참한 예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자기 동네를 일정하게 불신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대외적으로는 훌륭하게 포장돼 알려진 관광지나 문화프로그램들도 막상 지역민에게 물어보면 ‘현실은 다르다,’ ‘거품이 끼었다'는 말들을 자주 듣게 된다. 
  
 작년 가을 인천에 들렀다 잠시 차이나타운을 찾은 적이 있다. 마침 요기를 해야 해서 망설이지 않고 짜장면을 만들어낸 공화춘을 찾았다. 지상 4층 건물을 모두 쓰는 공화춘은 한마디로 으리으리했다. 정문을 들어서니 꼭대기 층으로 안내한다. 인천항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메뉴판을 받아 보니 '공화춘 짜장면'이 1만 원. 딱 3초 고민한 뒤 눈 딱 감고 그것으로 주문했다. 짜장면 원조집에 와서 1만 원을 아낀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짜장 형식으로 나온 공화춘 짜장면에는 돼지고기 대신 해물이 가득 들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길이 남기고자 인증샷을 찍고 페이스북에 자랑삼아 올렸다. 이내 좋아요 숫자가 올라가며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천 사는 친구의 댓글이 심상치 않았다. "이런…. 동네 사람들은 그 '공화춘'에서 안 먹어요. 주로 초입에 있는 신승반점 간짜장 먹습니다. '공화춘' 설립자의 손녀분께서 운영하시는 곳인데…"
  
 순간 머리가 멍했다. 나름 벼르고 별러 맛본, 그것도 무려 1만 원이나 투자한 공화춘 짜장면인데, 그게 진짜가 아니라 짝퉁이라니, 진짜배기는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이라니! 다른 인천 분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길 왜 갔냐? 거긴 아니다. 진짜는 따로 있다. 
  
 알고 보니 진짜 공화춘은 1983년에 이미 문을 닫았다. 음식점 장사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정부의 화교 재산권 제한 정책에 발목이 잡혔다고 한다. 이후 20여 년간 폐허로 방치되던 '원조'(이런 접두어를 붙여야 한다는 게 서글프지만) 공화춘 건물은 2006년에 등록문화재에 등재됐고, 2010년에 인천 중구청이 매입해 짜장면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50미터 떨어져 영업 중인 짝퉁 공화춘을 운영하는 회사의 정식명칭은 '(주)공화춘프랜차이즈'다. 한국인 이현대 씨가 2002년에 상표등록을 마치고 2004년에 지금의 자리에 본점을 열었다고 한다. 국민음식 짜장면이 만들어진 곳이니 상표 욕심을 낼 만도 했을 거다. 물론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정을 아는 지역민들은 이곳을 외면하고 있었다. 공화춘을 이야기하는 지역민의 이야기에는 진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배어있는 듯했다.


지역 브랜드 사업의 착오,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지방자치제가 20년이 넘어가면서 선거 때마다 지역마케팅이 화두로 떠오른다. 다양한 형태의 스토리텔링 사업도 펼쳐지고 있고, 문화원형 개발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지역에서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것들은 그야말로 ‘뒤지고’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대규모 기념물이나 국제 대회를 유치해 단번에 주목받는 지역으로 부상시키고 싶어 한다. 일종의 ‘스토리에디팅’ 작업이다. 지역에 대한 호감을 증진시켜 방문의 목적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일련의 이런 활동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사업의 지향을 ‘바깥 사람'에 고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타지역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 와서 밥을 먹든, 잠을 자든 돈을 좀 써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 내 이야기를 포장도 하고, 각색도 하고, 과장도 한다.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에서 날고긴다는 업체들에게 용역을 준다. 그렇게 폼나게 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실제 지역의 주인인 지역민들은 이런 논의 구조에서 대부분 배제된다. 이른바 전문가란 사람들과 상인회 같은 이해 당사자들이 정책결정 과정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그저 보도자료로 나온 기사나, 하나마나 한 공청회에서 귀동냥을 할 정도다. 어떻게 하면 타지인의 눈과 귀를 잡아당겨서 우리 지역을 찾게 할까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사람이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우리 지역을 A로 기억해달라고 부탁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보이고 싶은 모습인 A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닐 때 지역민은 지지자가 아닌 고발자로 둔갑한다. 공화춘의 예처럼 지역민이 공화춘 짜장면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할 때 방문객들은 어느 쪽 이야기를 믿을까?


지역 브랜드 사업의 1차 대상은 
바로 지역민이어야
 흔히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할 때 그 원형을 신화와 설화에서 찾는다. 공동체의 근원에 대한 질문, 즉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폴 고갱의 그림 제목)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첫 번째 목적이다. 
  
 고조선을 이룬 단군신화도 그렇다. 하늘에서 환웅이 웅녀와 결혼해 단군왕검을 낳았고(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 도읍을 평양에 정했으며(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해야 한다(어디로 가고 어떻게 살 것인가?). 여기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하는 규범이 만들어진다. 이 신화가 공동체에 내면화되고, 다른 부족과 구별 짓게 하는 자부심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을 해보자. 고조선의 신화 스토리텔링은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일까? 다름아닌 고조선 공동체를 향한 것이었다. 주변에 있는 타지인들에게 들려주려고 만든 게 아니다.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같은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이 같은 스토리텔링을 했고, 그 결과 고조선이라는 차별화된 브랜드가 형성된 것이었다.
  
 다른 스토리텔링도 마찬가지다. 족보를 중심으로 한 가문 스토리텔링, 전설을 중심으로 한 마을 스토리텔링, 제사를 중심으로 한 가족 스토리텔링 모두가 1차적으로 ‘자기' 혹은 ‘우리’를 위한 스토리텔링, 나아가 우리의 브랜드를 공감하고 확인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그런데 요즘의 스토리텔링과 브랜드화 사업을 보면 1차 대상을 지역민으로 생각하고 펼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이 마케팅과 경제효과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타 지역 사람들을 유혹하는 기술 정도로 생각을 한다. 지역민은 이 같은 브랜드화 사업으로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경제적 효과를 부수적으로 누리는 존재 정도로 포지셔닝된다. 자연히 지역민에게 지역의 스토리텔링 사업과 브랜드화 사업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지역민의 자부심과 무관한 
브랜드화 사업은 사상누각
 2010년 마산과 진해를 통합한 창원시는 통합과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조선 초기 무장이었던 정열공 최윤덕 장상의 동상을 국내 최대 규모로 시청 로터리에 세우고 축제 때마다 그를 기리는 선양사업을 펼치고 있다. 당시 창원시 문화원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이 모여 최윤덕 장상을 상징인물로 선택한 이유는 그가 창원의 동읍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상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지금도 싸늘하다. 창원 동읍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징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냉정하게 말해 전혀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100만 명이 넘는 창원시민 중 창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공단과 일자리를 찾아 타향살이를 선택한 타지인들이다. 그들에게 600년 전의 창원출신 장군이 와닿을 리 없는 것이다.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상당수의 사람이 대대로 지역에 뿌리를 내려온 사람들이 아니라 서울 가까이 일자리를 찾아 정착한 이주민이다. 심지어 생활의 대부분을 경기도가 아닌 서울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지역민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지역의 브랜드화 사업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근본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우리 지역에 이런저런 문화원형이 있으니, 그것으로 브랜딩을 해보자는 건 장님 코끼리 만지기나 마찬가지다. 브랜드화 사업 과정 자체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참여를 이끌어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전 역사에 가면 ‘성심당'이라는 빵집이 있다. 본점은 대전역에서 걸어 10분 거리의 대흥동에 있다. 이곳의 명물은 ‘튀김소보루'와 ‘부추빵'이다. 많은 이들이 대전역이나 본점에 들러 이것들을 구매한 뒤 인증샷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대전 시민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이곳 성심당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다른 지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지역 빵집으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으니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정작 성심당에서 홍보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 계정 정도 운영을 하지 특별히 자기를 알리기 위해 무리한 활동을 펼치지 않는다. 대신 대전에서 성심당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팔 걷어부치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우리 지역에 이런 멋진 빵집이 있으니 기회 있을 때마다 빵집 자랑을 하는 것이다. 대전 시민들은 성심당을 자기의 모습을 상당히 근사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 대가 없이 성심당 홍보에 나서고 있다.


지역민과 함께 만들고 키우는 
브랜드화 사업
 지역의 브랜드화 사업은 성심당 같아야 한다. 전문가 몇이서 결정할 내용이 아니라 시민들이 좋아하는, 시민들이 자랑스러워 할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꼭 역사적인 인물일 필요가 없다. 오래 된 건물일 필요도 없다. 뻑적지근한 국제대회일 필요도 없다. 그 어떤 것일지를 결정하기 이전에 지역민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찰해야 한다. 우리 지역민들은 어디에서 자부심을 느끼는지, 어떤 부분에서 지역의 삶을 자랑스러워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 위에서 지역민과 대화해 나가며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민과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소셜미디어가 이미 보편화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지역민이 직접 참여하는 논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방법론은 여러 군데서 이미 검증되고 있다. 500인 토론류의 타운홀 미팅 방법도 있고, 함께 변화된 미래를 상상하는 소셜픽션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이런 논의 구조에 최대한 많은 시민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놓아야 한다.

 물론 단순 논의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 구조 위에서 자부심을 강조하고 혐오감은 줄여가는 실천적인 정책들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제든, 복지든, 녹지든, 문화예술이든 활용 가능한 지자체의 역량을 지역민의 자부심을 높이는 데 동원해야 한다. 자기의 참여로 지역이 바뀌는 게 확인될 때 지역민은 놀라운 활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에너지가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에너지를 부러워하는 타지인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브랜드는 
권위와 유사하다  
 브랜드란 권위와 비슷하다. 세우는 당사자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효과가 결정된다. 아무리 전문성과 힘으로 특정의 브랜드를 전파하려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권위든, 브랜드든 받아들이는 사람이 인정할 때 비로소 빛을 발휘한다.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에서 지역의 브랜드화 사업들은 재조정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의 주인인 지역민들이 자기 지역에 대한 브랜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들 속에 비쳐진 지역의 모습이 바로 지역 바깥의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역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토리란 대부분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지역 브랜드화 사업을 추진하는 방법이 지역민에게 다가가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지역민들 스스로가 지역을 자랑하는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나서지 않을까? 마치 성심당을 사랑하는 대전시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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