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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정책/이슈>
인문학의 본질과'한류'의 근원
양 은 창 단국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

 2014년 5월 이후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3백 명이 넘는 인명을 앗아간 참사의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으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정치권은 당리당략을 저울질하며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도대체 젊디젊은 우리 어린 학생들을 아름다운 남도 바다 속에 무참하게 수장을 시킨 원인은 무엇일까? 혹자는 부도덕한 민간기업의 탐욕을, 또는 국가 재난 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하고, 정치권의 부패가 그 원인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지적의 끝에는 인명 경시 풍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우리도 모르게 팽배해 있는 인명 경시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지탱해 온 인간 존중과 인본 사상의 밑바탕인 유교적 삶을 전도시킨 결과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단시간에 고도의 경제적 성장에 따른 삶을 영위하고 있는 국가다. 가난했던 60년대 국가 목표가 이집트나 필리핀 국민들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삶의 풍요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대가로 정신적 안위의 가치를 저버리는 길을 걸었다. 모든 가치가 경제적 삶에 맞추어져 ‘경제살리기’, ‘민생경제’가 제1의 정치적 목표가 되었으며, 인본 정신과 문화는 뒷전으로 밀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거침없는 조류 속에서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설 자리는 좁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5백 년 이상 유교적 전통에서 숨 쉬어 온 민족답게 인본주의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문학적 전통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이 아이러니 하게도 대중문화라는 점이다. 오늘날 ‘한류’라는 국가 경쟁력의 한 축을 유교가 담당한다는 사실은 유교가 근본이념으로 설정한 인본주의의 사상이 곧 대중문화로 전환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한류’와 인문학의 관계에 대한 제언이 곧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교차점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류’는 2000년대 한국사회의 중요한 대중문화 현상으로 거론된다. ‘한류’ 현상은 글로벌화로 치닫는 세계화의 추세와 더불어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호응으로 설명되지만 유독 한국대중문화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독창성을 지닌다. 전근대적인 문화제국주의는 후진국을 경제나 문화적으로 예속시키려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문화다원주의(文化多元主義)는 서구문화에 대한 이념성을 극복하고 지역문화를 확산하려는 성격과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행위로도 이해된다. 주지하다시피 타 문화의 전이(轉移)는 일방적일 수 없는 것이 현대문화의 한 특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 문화의 확산은 일시적인 현상이라 우려했던 기존의 평가와는 달리 안정화 단계를 넘어 정착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으며, 아시아권을 포함하여 유럽에까지 전파되고 있다.
  
 ‘한류’라는 어원은 2000년 2월 중국에서 일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의 열기에 호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한국음악 홍보 음반을 만들면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경제 선진국으로서 일본의 문화적 영향권을 지칭한 ‘일류’도 그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시아권에서 ‘일류’가 ‘한류’처럼 지속적인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한류’의 성격이 경제적 영향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의 ‘한류’의 시초는 중국의 대외 개방정책을 본격화되는 90년대 초반으로 파악된다. 이미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 가수들의 노래가 소개된 뒤 90년대 들어 <여명의 눈동자>, <질투> 등의 드라마가 방영된 뒤 관심이 고조되다 1997년 <사랑이 뭐길래>의 TV방영이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면서 ‘한류’는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우려를 잠재우고 대중음악으로 확산되어 HOT의 공연이 성황을 이루게 됨으로써 더욱 확산되기에 이른다. 당시 홍콩문화에 접해있던 중국 젊은이들에게 ‘한류’는 새로운 문화적 기류를 형성하여 패션, 음식, 영화, 게임, 미용, 한국어 등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한류’는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8년 <별은 내 가슴에>를 필두로 <가을동화>나 <겨울연가>가 인기를 끌면서 ‘한류 문화’ 관광상품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더욱이 2002년 월드컵을 주최하면서 한국인의 응원문화나 생활문화가 소개되어 ‘한류’의 영향이 더욱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대 이후 일본과 중국의 한류문화 열풍은 아시아 각국으로 전파되기에 이른다. 



 ‘한류’가 지속 가능한 문화적 현상이든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든 모두 ‘한류’ 붐은 예측한 현상이 아니라는 데에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류’ 열풍의 배경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요소가 ‘한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다. ‘한류’의 형성 배경에 대한 가설은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다르나 큰 틀에서는 문화적 동질감에서 원인을 찾는 것인 일반적이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아시아권의 문화는 역사적으로 ‘중화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문화를 이루는 기저가 상통하는 것으로 가치관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문화는 일찍이 서양의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정체되어 있던 중국이나 아시아권의 문화보다 선진화된 감각과 풍토를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권 나라들이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거부감이 있지만, 한국문화는 서양의 문화를 수용하여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친근성으로 재구성한 문화이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즉, 동양적인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서구적인 새로운 문화를 담고 있는 참신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한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적인 문화의 정신이 ‘한류’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반적으로 ‘한류’가 형성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한 가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제국주의문화론’으로 자본을 앞세운 경제적 우위에 있는 국가가 후진국에 문화 상품을 수출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기저로 형성된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문화 글로벌화론’으로 유통과 통신의 발달로 말미암아 지구촌의 문화가 혼합되어 지역적인 협소함에서 벗어난 문화들이 지배와 피지배의 일방성을 극복하고 문화다원주의를 형성한다는 이론이다. 또한, 문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본력을 제3국이 갖춤으로써 경제적인 독립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유독 한국에서 일어나는 ‘한류’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셋째, ‘수용자 동화론(受容者同化論)’으로 문화적 상황이 비슷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문화를 수용한다는 가설이다. 정치적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과 중국 모두 동일한 문화적 상황을 겪음으로써 문화적 수용성에 대한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도덕적 자기검열이 엄연히 존재한 동양권에서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한국의 문화적 개방성이 대리 역할을 수행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주장은 문화적 동질성을 위주로 성립된 가설임을 알 수 있다. 즉, 일본과 중국, 대만, 베트남 등의 아시아권 국가들은 한국과 문화적으로 근접해 있기 때문에 한류가 수용될 수 있다고 보는 주장이다. 최근 이란에서 <대장금>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연장자를 존중하는 예의와 남녀가 유별한 전통이 이슬람의 전통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이에 해당한다. 더욱이 문화의 전이(轉移)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달되는 형태가 아니라 한국에서 중국으로 전달되는 형태에 대해서는 중국은 오랜 공산화와 문화혁명으로 인해 유교적 관습이 소멸되거나 파괴된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넷째, 한국의 대중문학이 지닌 ‘토대론(土臺論)’이다. 한국의 방송만큼 드라마나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국가가 드물다는 이유가 그것이다. 저녁은 물론 아침부터 드라마가 방영되며 일요일 골든타임에도 어김없이 드라마가 방영된다. 더욱이 서구의 드라마처럼 폭력적이거나 외설적인 내용이 아니라 가족 간의 우애나 친구, 연인들의 애정 문제가 주요 테마이다. 영상물 보급에 있어서도 한국은 국내 영화의 점유율이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특히 가요 프로그램의 경우 전통가요인 국악에서부터 트로트, 발라드, 록, 인디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중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드물게 자국의 대중문화 자생력을 지니고 있는 국가에 해당한다. 더욱이 IT 강국으로서 대중문화를 보급하는 기술력까지 갖추고 있어 대중문화 성장에 토대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전략적 기획력’을 들 수 있다. ‘한류’ 문화를 주도하는 젊은 가수들의 경우 화려한 외모를 가진 인력을 선발하여 전문적인 기획사가 훈련을 시켜 수요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 대중문화 산업에서 기획사들의 영향력은 전체 시장을 지배하는 중요한 구심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다 경쾌하고 빠른 리듬을 가진 음악을 위주로 젊은 층을 공략하는 전략이 유효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순수한 한국 전통문화의 응용력이다. 의아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한류’ 속에는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요소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국 시청자들은 동양적 가족 관계를 위시한 순수한 사랑, 한국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존중과 정절, 자신의 삶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한국적인 여성상, 강렬한 힘과 순수한 정열 등은 모두 한국 전통문화의 소산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동양적인 유교주의적 배경이 있다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즉, 드라마의 경우 장면은 매우 현대적이고 시대적 요소를 잘 갖추고 있지만, 내용만은 전통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유교적인 전통을 스토리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요소는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포용과 관용의 미덕을 보여줌으로써 호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즉, 전체 전개는 빠르고 생동감 있게 진행되지만, 내용은 여전히 유교적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친숙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류’의 중심 연령층이다. 조사에 따르면 중국, 일본, 베트남의 경우 ‘한류’의 주요 소비층이 20대와 50대가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대가 빠르고 생동감 있는 현대적인 요소에 호응하는 소비층이라면 전통적이고 동양적인 정서를 지향하는 소비층은 50대가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것은 20대가 음악 위주로 소비하는 반면 50대의 장년층은 드라마를 위주로 소비하는 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문화에 대해 아시아 각국의 문화적 호응이 이루어지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문화적 동질감에 있다면 동질감을 일으키는 원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화적 할인’이란 문화적으로 거리가 먼 나라의 문화상품은 수입되거나 수출될 때 그만큼 가치가 낮아진다는 뜻인데, 중국인들은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북한, 영국, 미국, 한국, 남한, 독일 중 문화적으로 가장 친근하다고 느끼는 나라는 남한과 북한으로 조사되었다는 점은 이를 반증한다. 또한 한국, 한국인, 한국문화를 좋아할수록 한국 드라마를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베트남에도 적용되는데, 유교적 영향에 인한 문화적 유사성뿐만 아니라 한국을 베트남의 경제모델로 적용한 결과를 비롯하여 ‘문화적 할인’이 일으킨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류’의 본질은 유교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유교문화권 국가이면서 유교문화의 전통을 대부분 잃어버린 아시아 각국들이 전통에 대한 향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장금>과 같은 전통문화를 담고 있는 드라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교문화를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그들의 정신 속에는 유교문화가 지닌 덕목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유교적인 문화와 아울러 열정적인 면모는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巫俗)과 관련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유교문화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도 일반 민중들의 정신을 지배한 것은 무교(巫敎)였다. 고려시대 불교가 민중신앙과 복합적인 요소를 지닌 것도 무교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일제 침략기를 거치는 동안 집요한 민족정신 말살정책과 함께 무교가 지닌 집단성과 열정적인 면모는 잠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국전쟁과 근대화란 명목으로 무교는 점차 들어설 자리를 잃어갔다. 미신과 비과학적이라는 명분으로 무교를 배척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교의 명맥은 ‘철학관’이란 명목으로, 또는 산 정상에 돌무더기를 쌓아 올리는 행위 등, 생활 속에 잔존해 있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이데올로기나 시대적 사명에서 자유로워진 대중들의 의식은 집단화된 열정을 문화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대중들의 열정이 폭발적으로 증대된 배경에는 이러한 무교적 대중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류’는 한국인의 대중문화가 세계화를 지향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한류’가 지닌 상업주의적 성격을 비판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한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결과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류’의 본질은 문화제국주의가 추구하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유교문화’라는 동질적인 정신문화의 맥에서 기인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유교문화의 원형을 잃어버린 아시아 각국의 정신적 원형을 추구하는 결과이며, 미처 한국인들도 인식하지 못한 정신적 소산임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을 직시하면 인본주의 바탕인 인문학이 우리 사회에 어떤 위상으로 정립되어야 하는지 자명하다. 유교주의 근본은 인본주의이다. 즉, 인문학의 바탕 없이 대중문화가 존속할 수 없으며, 인문학의 위기 속에 인문학이 나아야가할 방향이 뚜렷이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문학의 저변을 확대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인문학의 본질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문화마저도 잃어버린다는 예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한류’ 문화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본질적인 지원 없이 대중문화를 육성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임을 문화 정책 입안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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