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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정책/이슈>
문화원과 도서관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기도 문화자원 아카이브
송 재 술 경기도사이버도서관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일 많은 기록을 생산해 낸다. 일기와 가게부를 쓰고, 달력이나 스케줄표에 약속들을 기록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지인들과 나누고 싶은 정보를 올리기도 하고, 그때그때 생각난 중요한 아이디어를 잊지 않기 위해 메모지나 수첩에 기록한다. 초등학생들은 노트에 받아쓰기하고 대학생들은 리포트와 논문을 쓴다. 회사에서는 사업계획서나 각종 품의서를 기안하고, 길거리를 걸으면서 멋진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을 보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간직한다. 굳이 작가가 업(業)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기록물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록물을 고스란히 보존하여 후대에 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죽고 나서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다른 누군가가 내가 남긴 기록들을 뒤적이면 나의 생각과,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음식과, 내가 교류했던 사람들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에코와 카리에르의 대담을 엮은 “책의 우주”라는 책에는 고서점에서 구한 1790년대 파리의 지도와 당시 살았던 한 가구상의 상세한 약속을 적어 놓은 수첩 내용을 분석하여 수첩 주인의 동선과 사생활을 재구성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한다. 

 4년 후인 2018년은 ‘경기’라는 지명을 사용한 지 1000년이 되는 해이다. 만약 1000년 전 지금의 수원땅 어딘가에 살던 아무개가 매일의 일을 기록하고, 그 기록이 지금까지 잘 보전되어 왔다면 우리는 그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수원의 생생한 모습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의 꼬마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하며 놀았고, 명절이 되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노래를 부르며 살았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고려 시대에 대해 남아 전해오는 기록이라고는 정사를 다룬 『고려사』나 『고려도경』 같은 당대의 기록, 기타 일부 고려의 풍습을 담은 몇몇 자료들뿐이다. 이런 단편적인 기록들을 근거로 당시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와 소설이 만들어 진다. 하지만 남아 있는 빈약한 기록들만으로 구현한 과거의 모습은 사실과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록은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이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의 필요에 부응하는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華城) 같은 경우 기록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는 1796년 화성을 완공하고 화성 성곽 축조에 관한 모든 기록을 상세하게 수록한 화성성역의괘(華城城役儀軌)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화성은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손실되었지만 화성성역의괘가 있었기에 지금과 같이 온전히 복원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그럼 미래에는 어떨까? 앞으로 1000년 후, 그러니까 31세기쯤에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까? 예전에 비해 훨씬 발달한 다양한 기록 수단과 방법들, 저장장치에 힘입어 일거수일투족까지 모두 알 수 있게 될 것인가? 한 사회의 경험과 기억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기는 것과 함께 또 다른 중요한 이슈는 그 기록을 수집하여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기록을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망 보급으로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히면서 어떤 것이 중요하고 정확한 기록인지를 파악하고 선별하는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기록을 장기적으로 보존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기록의 중심이 종이에서 디지털로 이동하면서 기록 보존의 문제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정보매체의 수명이 CD는 길어야 3~40년, USB 메모리는 불과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하드디스크도 5년이 지나면 불량률이 급속히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가 컴퓨터와 디지털카메라로 매일 쓰고 찍어 보관한 기록 자료들이 몇십 년 후에도 무사히 남아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더군다나 디지털 기록물 보존의 최대 단점은 그 기록물을 읽어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까지 함께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DOS 시절 작성한 한글문서를 최근 버전 프로그램에서 열어본다면 읽을 수 야 있지만, 폰트나 문서 양식은 완전히 달라 보일 것이다. 이것을 과연 진정한 원본 기록물로 볼 수 있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기록물 보존은 피해갈 수 없다. 이미 많은 기록정보가 태생적으로 디지털을 기반하여 만들어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기존 종이 기반의 기록물이 가진 단점, 즉 공간과 이동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에서 1㎡당 190권의 도서를 수장할 수 있다고 할 때 100만 권의 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산술적으로 5,263㎡의 공간이 필요하지만, 그 100분의 1도 안 되는 공간에 디지털 형태의 전자자료 수 백만 권을 축적할 수 있다. 이렇게 디지털로 구축해 놓은 기록자료는 인터넷을 통해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고, 전 세계 누구라도 바로 열람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이미 주요 선진국에서는 디지털 자원을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0년부터 시작된 아메리칸 메모리(American Memory)는 미국의회도서관과 여타 주요 아카이브에 소장된 역사적인 유산 9백만 건 이상의 자료를 디지털화하여 서비스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전자도서관프로젝트 유로피아나(Europeana)를 통해 2,300여 개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기록관의 온라인 장서 3천 만 건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사이아크(CyArk)는 문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만리장성, 타지마할, 마추픽추 등 세계 500개 주요 문화 유산을 3D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 보존하는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문화자원의 디지털 보존을 위한 다양한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문화콘텐츠 닷컴(http://www.culturecontent.com)은 30만 점 이상의 다양한 문화적인 전통, 역사 사건 등에 관한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서비스하고 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http://www.grandculture.net/)은 향토문화 관련 전문가와 기관 담당자들이 참여하여 표준화된 분류체계에 따라 지역별 역사, 지리, 인물, 산업 등 지역과 관련한 모든 향토문화자원을 총 망라 수록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만든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http://www.koreanhistory.or.kr/)은 우리나라의 역사자료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전산화하여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역사 관련 전문기관이 자료 제공전문센터로서 참여하여 운영하는 대표적인 역사분야의 디지털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 말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경기도메모리』(http://memory.library.kr)도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기록들을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한 도(道) 차원의 아카이빙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2002년부터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는 저작권상 문제가 없는 공공기관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서비스를 진행해 왔다. 도내 공공도서관과 도청 행정자료실(365도서관), 도내 문화원과 공공기관들의 협조하에 지역별로 수집한 공공기록물을 인계받아 디지털 파일로 제작하였고 현재 약 9,000여 권, 380만 페이지의 원문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수집대상을 확대하여 개인들의 생활사가 담긴 기록물을 모아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로 “e-추억상자”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여기에는 개인의 일기에서부터, 업무 수첩, 사진앨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그렸던 스케치북 등 다양한 기록물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 서비스 개편을 통해서 자료 검색과 분류 방식을 개선하여 보다 편리하게 자료로 접근할 수 있도록 개선하였고, 특화자료관을 만들어 특정 주제에 대한 관련 자료들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아직 『경기도메모리』가 경기도의 과거를 보여주고, 후세에 현재의 모습을 전승할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게 사실이다. 현재 수집한 데이터양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책자 형태의 자료 이외에 사진이나, 영상, 녹음자료, 기타 비도서 형태의 자료들을 포괄하기에는 기술적으로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개선이 필요한 과제는 기록물 생산 기관과의 밀접한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는 부분이다. 전자의 경우 시간과 시스템 개선을 위한 예산만 수반된다면 언제든지 가능한 부분이지만 후자는 아카이브의 향방과 질적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면서 상호 목표에 대한 공감과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5월 7일 열릴 “경기도 문화자원 아카이브 구축 심포지엄”은 경기도 문화원연합회와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이 상호 협력 관계를 맺는 출발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문화원은 지방문화원진흥법에 따라 향토자료를 포함한 지역 문화 자원을 발굴·수집·조사·연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각 지역에 뿌리내리고 전시와 축제, 공연 등은 물론 지역의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조사와 연구 활동을 추진해오면서 귀중한 기록물을 축적하고 있다. 문화원이 경기도 31개 시·군 전역을 포괄하며, 경기도문화원연합회를 중심으로 상호 공고한 연계망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향후 기관 간 협력 네트워크를 구성하는데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은 기록물을 디지털 형태의 파일로 가공하고, 시스템 상에 축적하여 온라인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을 갖추고 있다. 국내 최대의 디지털 도서관인 국립디지털도서관(http://www.dibrary.net/)과 자료 연계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전 세계 이용자들과 자유롭게 데이터를 공유하고 확산할 수 있는 오픈 엑세스 아카이브 “OAK 리포지터리”를 구축하여 구글 등 검색 포탈을 통해 다양한 방식의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부터 적용된 DRM(디지털 저작권 관리시스템)도 기록물 자료의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향후 보존서고 기능을 갖춘 경기도 대표도서관이 완공되면 실물 기록자료에 대한 영구적인 보존까지 가능해질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디지털 아카이빙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물 자료에 대한 보존은 반드시 함께 고려되어야만 한다. 경기도 문화원연합회의 문화자원 기록물의 수집·생산 기능과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의 정보자료의 보존·활용 기능이 유기적인 협력관계 속에 작동한다면 광역자치단체 차원의 새로운 디지털 아카이브 롤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으로 우선 기록자료의 최신성 유지를 들 수 있다. 이전에도 문화원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전달받아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을 통해 서비스해오고 있으나 연말에 지난 1년간 생산한 자료들을 이관받아 시스템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기록물의 생산과 서비스 시점 간의 차이가 최대 1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터 자동 등록시스템을 구축하고 지방 문화원에서 발간한 자료의 전자파일을 등록할 수 있도록 하면 실시간으로 최신 자료를 이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맞춤형 알림 서비스도 가능하다. 단지 독립적으로 문화원마다 자발적으로 생산한 기록물 이외에도 협의를 통해 기획 주제를 선정하고, 특정 기간 집중적인 자료수집·발굴을 진행할 수도 있다. 경기도의 단면들을 보고, 찍고, 묘사고 그 결과들을 조합하는 과정 자체가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경기도의 기록 자료들을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한 문화원과 도서관의 협력은 이제 막 시작단계에 섰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앞으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단계별로 구현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와 우선순위를 정해야하고, 주위의 유관 기관과 개인들의 관심과 협조도 이끌어 내야 한다. 경기도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수적이다. 앞으로 100년, 1000년 먼 앞을 내다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작은 실천들이 이어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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