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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업>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공간 운영을 고민하다
시스템이 안정화 될수록 유연한 적용은 규정위반으로 분류되어 버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문화예술 활동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한때 인생의 반을 투자해 벌어들인 대가로 아파트 한 채 장만한다는 비감어린 말끝에는 그래도 달콤쌉싸름한 뒷맛이 감도는 위로 같은 것이 있었다. 아무튼 도심에서 개발공사가 이루어지던 곳의 대부분이 아파트 건설에 의한 것으로 기억된다. 집단 주택에 대한 왕성한 수요와 끝도 없이 뛰는 땅값은 공적 공간을 마을 중심에서 비켜난 외곽에 자리 잡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건설비용의 효율성과 용지확보의 용이성 등을 이유로 목적이 다른 공공시설마저도 특정한 곳에 모아 짓는 공공시설의 집단화 현상이 지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천문화원(이영구 원장)은 1990년에 만들어진 2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11년 6월에 새로운 문화원사를 건축하여 이사하게 되면서 이웃하는 새로운 공공시설과 함께 문원동에 자리하게 되었다. 보다 넓고 많아진 새로운 공간은 항상 반가운 것만 아니다. 더구나 공적 영역의 공간일 경우 크고 근사한 건물은 짐이 될 수 있다. 시민의 세금으로 세워진 공간은 시민들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 존재에 대한 물음이 언제고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앞뒤 맥락이 꼬이기 시작한다. 시민 접근성이 좋은 곳에 시민을 위한 문화시설이 있어야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얘기이지만, 그런 부지를 확보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누구나 알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얘기. 

 이쯤에서 꼬인 문제의 해법은 운영하는 자의 몫으로 넘겨진다. 지은 것은 과거이고 활용에 관한 것은 당장의 일이라면서. ‘짓는다’는 행위 이전에 꼼꼼히 따져 물어야할 것들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다. 어찌되었건 지금은 새로운 원사를 갖게 되었고 몇 개의 공공건물이 한곳에 모여 있는 곳에 위치한 과천문화원 장경호 국장은 새로운 화두가 생겼다고 한다.  

“문화원이 새롭게 지어졌는데 이 일로 지역사회는 좋아진 것이 있는가?” 

 이 말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공간활용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원 공간은 시민의 공간이다. 그동안 프로그램과 체험, 행사 위주로 문화원을 운용해 왔다면, 새로운 원사로 이전한 시점에서 공간활용에 대한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생각의 시작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단체들과의 접촉에서 시작되었다. 문화원은 특수법인으로 법적 제도에 의해 공간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대부분은 비영리단체로 등록되어있거나, 사단법인으로 운영되는 단체들이라 해도 사무공간을 갖추고 있을 뿐,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공간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단지 행정과의 관계는 보조금지원 관계일 뿐이다. 단체가 아닌 시민들이 모인 문화예술활동의 경우도 공간에 대한 필요성은 절실하다.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문화시설이나 단체들은 이해관계에 의해 지원의 정도차이가 발생한다. 같은 지역사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는 동일한 입장이라고 본다면, 한정된 특정 공간을 영역화 혹은 영토화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과 공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 것이다. 

 과천문화원은 그 동안 사업과 프로그램을 통해 양적팽창을 해왔다. 이제는 지역차원에서 지역 문화 활동의 허브역할에 충실을 기하면서 공간에 대한 매개 기능이 필요한 때라고 보는 것이다. 

 새로운 원사로 입주하고 우연한 기회에 내부뿐 아니라 바깥에도 활용하기 적당한 공간이 만들어졌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의도해서 만들어진 야외공연공간이 있는가 하면 의도하지 않았으나 작은 공연을 하기에 꽤 알맞은 자리가 생겼음을... 춤동아리 팀이 공연해도 되는지를 묻는 과정에서 공연무대가 아닌 건물과 건물사이에 만들어진 공간을 찍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다. 예술이 갖는 비정형성의 매력이랄까. 공연하면 무대가 되는 공간.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공간의 용도가 바뀌는 것은 멋진 일이다. 있어 보이는 말로 하면 활동에 의한 새로운 의미의 생성이고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순간, 이것이 주체성이지 않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간이 만들어진 목적에 어긋나는 행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공간운영을 위해 정해진 규칙이 오히려 자유로운 문화예술활동에 장애가 되는 셈이다. 시스템이 안정화 될수록 유연한 적용은 규정위반으로 분류되어 버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문화예술 활동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효율이 낳은 유연함 부재에서 오는 비효율.

 어쨌든 춤동아리들과의 관계는 새로운 공간이 창출되는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공간에 맞는 연출의 변형도 기꺼이 감수하는 춤동아리들의 유연함에 문화예술이 갖는 재해석의 능력을 느낀 셈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문화원 야외공간에서 전통결혼식을 치룬 뒤 피로연까지 야외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비 때문에 피로연을 실내에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옥상은 도시농부 일환으로 여러 가지 작물들이 심어져있었다. 이 공간과 이어진 실내공간은 회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회의 공간 내부와 작물이 자라고 있는 외부공간을 연결하여 피로연 공간으로 변형시켰다. 테이블을 꽃으로 장식하고 옥상공간의 녹색식물과 연동시킨 분위기가 피로연회장으로 손색없었다. 

 이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문화원이 갖고 있는 오래된 경험의 축적 때문이다. 
 현재 과천도시농사꾼을 주관하고 있는 과천도시농업포럼 손병남 대표는 태교로 시작한 취미활동이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는 기쁨을 주었고, 과천 문화원에서 주부들에게 꽃꽂이를 가르쳤다. 이 활동은 2006년 한국사이버원예대학을 과천문화원에 개설하게 되는 단초였으며, 지금은 (사)과천도시농업포럼을 통해 과천에서 도시생태농업 육성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천문화원 옥상에 만들어진 ‘하눌타리’는 알고 보면 20년 이상의 과정을 품고 있는 셈이다.

 커다란 울타리라는 의미의 ‘한 울타리’와 야생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덩굴식물 ‘하눌타리’의 다의적 표현이라고 한다. 하눌타리는 박꽃처럼 하얀 꽃을 피우면서 텃밭 가장자리에 자라는 작물로 작물과 비작물의 경계에 있는 식물인데, 일부러 재배하지 않지만 귀중한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작물 아닌 작물. 쓸모와 쓸모없음의 경계에 있는 하눌타리는 어쩌면 예술이 갖는 비정형성을 닮아 있다.  

“새로이 지어진 문화원이 지역사회에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처음 물었던 화두를 다시 바꾸어 물어보고자 한다. 첫 물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나 여기의 핵심은 역할이다. 즉, 구체적 실천에 대한 고민이다. 시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허가를 내주는 형식을 취했다면, 문화활동가 입장에서 시민에게 제안하는 열린공간 운영이라는 적극적인 태도일 것이다. 어떤 것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곧 바로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다. ‘뭘 원하는지 알아야겠죠!’ 과천문화원 장경호 국장의 대답이기도 하다.   

 수요에 의한 공간의 활용. 또는 공간의 재탄생. 시민들이 원하는 활동에 맞는 공간 활용의 제안.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흥미로운 쌍방향 대응. 어떤 모습으로 발현될지 예측하지 못하므로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공공시설로서 과천 문화원 운영의 새로운 접근을 어떻게 시도해 갈지, 경기도내 손에 꼽히는 앞서가는 문화원으로 새로운 시도가 갖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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