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과거(역사)로부터 배우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Man learns from the past and builds on it.)"
최무장(경기도향토문화 연구소장)
1. 시작말
한반도 면적은 220.000㎢이다. 현재 북한 지역은 123.000㎢이며 남한은 97.00㎢이다. 한반도 기후는 1년의 4계절이 뚜렷하지만 지역 간의 차이는 현저히 다르다. 한반도의 북쪽 경계지역은 중국과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으며, 기타 3면은 바다에 면해 있다. 그리고 좁은 땅덩어리 사이에 지역 간의 언어 차이도 뚜렷하다.
한민족은 고아시아족(Paleoasiatic) 또는 고시베리아족(Paleosiberians)에 속하며, 언어도 이웃 중국과 완전히 다른 우랄알타이(Ural-Altai) 계통이다. 비록 우리는 철기시대(기원전 300~기원전후)부터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언어와 생활 묘사 등을 중국문자를 빌려 사용하였지만, 전통적인 우리 문화는 1910년 일본에 식민지화되기 전까지 유지되어 왔다.
우리 민족의 기원을 살펴보면, 기원전 10세기경 예맥(濊貊) 족이 형성되었으며, 이 예맥족으로부터 기원전 5세기경 부여(夫餘)족이 독립되어 최초로 도시국가(city-state)가 탄생되었다. 또한 이 도시국가로부터 기원전 1세기경 고구려, 백제, 신라 등 3국이 도시국가를 세웠다.
고고학 측면에서 적어도 50~30만 년 전에 이 땅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기원전 6.000년경에 사람들이 큰 강가에 정착하여 곡물재배(기장, 피, 수수, 조, 쌀 등)와 가축사육(개, 돼지, 소, 사슴류 등), 마제석기(돌도끼, 창날, 화살촉, 칼)와 토기(빗살무늬토기, 무문토기) 등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움막집에 지붕을 덮어 생활하거나 죽은 자들을 매장시킨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고인돌(Menhil) 문화 즉 거석문화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대표적이며, 한민족의 가장 대표적인 선사문화 중 하나이다.
고대국가간의 문화차이 즉 고구려, 백제, 신라 왕국사이 또한 지역 간의 문화차이는 기후와 주어진 환경(암석과 토양) 차이로 재배 농작물의 차이가 뚜렷하다. 예로 대나무는 남쪽지역(따뜻한 기후)의 전남지역부터 충남 공주 또는 부여지역까지 자라고, 그 이북 지역은 재배가 불가하다.
“인간은 과거(역사)로부터 배우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Man learns from the past and builds on it)”는 의미를 깊이 인식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은 위대한 민족이다. 비록 1910년에 일본에 식민지화되고, 1950년 북한 공산당의 공격을 받아 비참한 생활사가 약 30년간(1980년) 지속되었지만, 현재는 남한 대부분의 가정에 1대의 자가용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문화생활이 발전되었다. 1910년부터 금년 2012년까지 약 100년의 시간이 지나 갔다.
2. 과거
․ 1949년 6월17일, 서울 특별시사 편찬위원회 설치, 매년『향토 서울』 출판.
․ 1950년 6.25 전쟁 이후, 향토문화 연구원 시작
․ 1956년 4월5일, 경주, 신라 문화 동인회
․ 1965년, 고령, 대가야 향토사 연구회
․ 1969년, 대구, 향토문화 연구회
․ 1972년, 광주, 향토문화 개발협의회
․ 1976년, 부여, 백제사적 연구회
․ 1976년, 전주, 전북향토 문화 연구회
․ 1978년, 충주, 예성동호회(예성문화연구회)
위와 같이 다양한 연구소와 연구회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대한 조사연구가 시작되었다.
3. 현재
2010년까지 73곳의 연구소 또는 연구회가 한국 향토사 전국협의회에 등록되었다. 강원 7곳, 경남 5곳, 전남 11곳, 경북 10곳, 서울 5곳, 경기․인천 등 9곳, 전북 8곳, 제주 2곳, 충남․대전 12곳, 충북 12곳 등이다.
4. 미래
상기한 73곳의 향토 연구소 또는 연구회는 장래 한반도 전통문화 즉 한민족의 뿌리 문화를 연구하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각 지역의 기후와 지질환경, 그리고 선사와 역사시대의 문화유적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지표조사를 실시 할 필요가 있다. 예로 신석기 시대(기원 6.000~1.000년)의 마제석기와 토기(빗살무늬토기) 그릇 등의 잔편이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 있지만 최근 농경이 기계화되면서 중장비의 차량이 지나다니면서 산산이 조각되어 장래 약 5년 이내에는 도자기 1편도 채집이 불가능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표 조사는 리(里), 읍(邑), 면(面)과 군(郡), 특별시(市) 등으로 나누어 서서히 하면 된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선돌(Menhil)도 철저히 조사되어야 하며, 도로포장과 신도시 건설로 고인돌과 선돌 등을 옮겨서는 절대 안 된다. 문화재는 현장 그대로 영원히 보존되어야만 상석의 방향, 지석의 축조상태와 주위의 환경에 따른 축조법을 인식하게 된다.
조상들의 무덤도 그 자리에 영구히 보존되어야 하며 다만 미래에는 새로운 장소(공동묘지) 등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 땅에 최초의 공동묘지는 일본인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조선왕조의 가장 큰 실패는 1910년, 일본인들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지역 선사문화에 대한 철저한 지표조사, 지역에 잔존된 무덤문화, 또한 현인에 의해 전속된 무속문화, 지역 간의 언어차이, 제례의식, 예로 아파트에서 새로운 아이가 태어났을 때 걸어 놓는 새끼줄(금줄)에 고추 또는 숯을 매달 수 있을까?
또한 전통 가옥의 앞문방향, 우물터와 변소 위치 등에 관한 조사도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 간의 전래된 이야기, 선조들이 간직한 서적과 그림 등, 그리고 동네 굿들에 대한 정리도 철저히 하여야 하며, 메주, 간장과 곡식저장, 모자, 옷, 신발 등의 제작과정과 보존상태도 영구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지역 간의 언어학적 구분(확인)도 철저히 하여야 되며 우리 생활 속에 외래어, 예로 우리가 먹는 보리(barley)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어느 곳에서 시작되었는지 확인되어야 한다.
인간 사회조직은 남과 여, 결혼과 잉태로 소위 가족(family)이 생기고 가족의 자식이 3명 이상으로 또 다른 각자의 가족형태를 갖출 때 씨족(clan)이 된다. 신석기시대는 이것을 모계 씨족사회로 부르고, 금속농구 사용 시기(청동기, 철기시대)의 시작으로 경작지를 사유제로 인정시키면서 부계 씨족사회로 발전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즉 가족→씨족→촌락(village)이 형성되고, 물물교류 중심 장소로 도시(city)가 탄생되고 세금납부와 신앙→종교 등에 의해서 새로운 단체 등의 행정기구와 학교 등이 탄생된 예를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