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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사업>
문화발언대지역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셔라
이동준(이천문화원 사무국장)


 지역은 서울과는 동떨어진 변두리다.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개발에서 뒤쳐진 낙후지역이다. 이런 시골지역은 대체로 농산어촌지역으로 시골에 사는 사람을 뭘 모르는 촌뜨기라고 놀려대기도 했다. ‘개천에서 용났다’란 말은 시골출신이 중앙에 등용되는 걸 보고 이르는 말이다. 지난날 우리의 시골은 그저 중앙정부와 서울 같은 대도시의 문화만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수준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원래 그 지역이 가지고 있던 문화는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수준이 낮은 변두리 문화로 천대받으며 살아왔다. 왜 시골은 개천이어야 하는가? 왜 시골을 떠나 중앙으로만 가야 하는가? 
  
 하지만 지역에는 콘텐츠가 샘솟는 우물이 있다. 지역문화야말로 그 지역의 도시를 살리고 나아가 나라를 살리는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자각이 어느덧 싹이 텄다. 바로 지역문화의 탄생이다. 촌뜨기 프랑스말이 유럽의 외교언어가 되듯이 안동사투리와 제주방언이 서울말을 물리치고 주인공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시골말이 그 지역의 문화를 물씬 담고있는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되는 새로운 문화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문화’란 지역의 관점에서 문화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행하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지역성’(Locality)의 발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대정신의 시작점이요, 피와 살이 느껴지는 생활현장의 발견이다. 절대불변의 보편진리를 추구하기에 오직 라틴어로만 집전되는 중세의 보편교회(Universae Ecclesiae)에서는 가난한 시골 지역의 민중들은 성경을 접할 수도 없었고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성경이 시골말인 독일어로, 촌뜨기 프랑스말로도 번역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럽에 ‘지역교회’(Local Church)가 등장했다. 지역말로 예배가 집전되고 지역민의 생활 속에서 그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와 애환을 함께 나누는 교회. 바로 그 지역의 문화와 정서, 주민들의 공동체 위에 기반하여 지역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문화’(Local Culture)의 발견은 우리나라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14년 7월 29일 지역문화진흥법과 지역문화진흥법 시행령이 시행됐다. 이 법의 시행이 우리 사회에, 우리나라의 문화계에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지는지, 어떤 충격을 줄 것인지 아직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참다운 지역문화는 없었다. 
  
 요즘 많은 도시들이 평생학습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평생학습도시란 시민들이 전 생애를 통해 학습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도시다. 하지만 시민들의 학습이 필요한 이유는 배우는 즐거움이나 급격한 사회변동에 따른 재고용 증대를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평생학습을 통해서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다. 평생학습이 그 위에 세워져야 할 토대가 되면서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목표가 있다. 바로 지역이다.
  
 이천을 예로 들어보자. ‘이천’의 문화는 단지 ‘이천’이라는 지리적 위치와 행정구역 범위 안에서 이뤄진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천’에 살고 있다고 해서 이천의 예술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천’에 주소가 있다고 해서 이천의 대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천’이라는 지역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기초로 해서 예술 활동을 해야 그가 비로소 이천의 예술가가 되는 것이요, 학생들에게 지역의 정체성과 정신문화를 가르치고 눈뜨게 해야 비로소 이천의 학교다운 학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역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는 평생학습이란 시민들에게 지역 정체성을 반영한 인문정신을 갖게 만들며,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창조적인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중앙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지역이라는 보물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있는 우물에서 생수를 마셔야 할 때다. 왜냐고? 그 우물에 무한한 문화의 자원과 콘텐츠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걸 시민들에게 인식시켜주고 그걸 발굴해서 시민들이 맘껏 이용하게 하고 창조적인 작업과 예술활동과 새로운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는게 지방문화원의 사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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