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하남문화원 사무국장)
가까운 어느 후배가 말하길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친구들을 데려와 본인을 ‘내 아빠, 내 엄마’라 소개하였다 한다. 아! 요즈음 아이들은 영어처럼 그렇게 부르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단어이긴 하지만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나’라고 하는 표현 방법은 오늘날을 사는 기성세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80년대 중반 이후 가장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우리나라 전반에 걸친 문화계의 가장 큰 화두였다. 전국에 산재한 각 지역마다의 독특한 문화정체성이 곧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 여기며 중앙 중심문화에서 벗어나 지역성을 발현하자는 부흥이 일기도 하였다. 그런 즈음 나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며, 지역의 문화적 독특성은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노력을 기울여 보았으나,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 이후 서양에서 발간된 책자의 번역본을 뒤지며 내가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우리의 것이 무엇이냐고 서양에 묻는 역 오리엔탈 성향을 보였던 바 있었다.
9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전국에 지자체를 시행하면서 20여년이 지난 현재 어느 시·군을 막론하고 독특한 지역성의 발현을 실현시켜온 지역을 딱히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도시로 대변되는 중앙중심문화로의 변모는 지역민들로 하여금 가장 편리한 삶의 이상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수세기동안 지속되어온 ‘울’(우리)안의 동리의 개념과 지역색조차 점차적으로 사라져 지역을 넘어 한국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 특색을 찾아보기란 오늘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라는 단어의 유래는 고대 북방의 우리민족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안위를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했던 필연적인 방법으로 마을마다 ‘위리’ 혹은 ‘위례’라는 울타리를 세워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 온 것으로 ‘나’라고 하는 단수적 개념에서 벗어나 공동체가 함께하고자 하는 복수적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식구란 밥을 같이 먹는 가족을 일컫는 것이며, 적은양의 고기를 공동체가 함께 나눠먹기 위한 국과 탕의 문화였으며, 여러 식구가 오랫동안 두고 먹어야 하는 염장과 숙성 음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나아가 동리사람 서로가 품앗이를 통하여 협동하고 함께 노동요를 부르며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모습에서도 ‘우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집안과 집안이 혼인을 맺고 동질성 관계를 지속시키며, 친목회를 구성하여 ‘울타리’의 결속을 다지는 모습은 분명 한반도 공동체 문화의 독특한 형식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요즘세대가 쓰는 ‘나’라고 하는 단수적 언어는 아마도 도시구조의 합리적 문화에서 자란 성향일 것이다. 도시문화로의 변환 과정에서 우리 고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소홀히 하여 정체성 관련 텍스트를 마련해 두지 못해 우리 것에 대한 문화의 의식을 심어주지 못한 반증의 단어로도 생각된다. 서구식 합리성을 지향한 도시문화로의 변화는 더 이상 ‘우리’라는 테두리로 구획 지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며, 과거 어른들의 몸짓과 행동을 답습하며 익혀오던 기술력과 사회성 또한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사라져 신·구세대의 동질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음을 말함이다. 후일 이로 인해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훈계하고 교육할 동질의 성향이 사라져 영어의 높임말 중 끝에 쓰여 지는 썰(sir)과 같이 존칭의 단어들조차 변화될 것이다.
‘우리’ 아주 오랜 시간 문화와 역사, 그리고 공동체적 의식을 만들어 왔던 울타리 문화는 자라나는 세대에 의해 소통을 위한 단어일 뿐 그 의미는 사라질 것이다. 전 국민이 삶의 질적 향상을 꿈꾸고 있는 오늘날 다시 ‘우리’의 문화가 무엇인지 세심히 들여다보고 현대에 맡게 접목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늘날 아이들이 쓰는 ‘내 아버지’, ‘내 엄마’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 방법을 울타리 안에서 상생을 꿈꾸며 존속하여 왔던 ‘우리’라는 공동체의 고유개념 속에서 ‘나’라고 하는 개체의 장점을 찾아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오늘날을 사는 기성세대의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