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9일, 오산문화원에서 지역문화원 정책 콜로키움이 열렸다. 오전에 진행된 '경기도 지역문화원 중장기 발전 방안' 심포지엄에 이어, 오후에는 문화원 현장의 구체적인 실천 사례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최영주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은 이 자리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지역문화정책 콜로키움이 아니라 지역문화원 정책 콜로키움입니다. '원(院)'이라는 글자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날 다룬 네 가지 주제는 2010년 전국 문화원이 합의한 핵심 역할에서 비롯되었다. 지역문화 축제, 다양한 형식의 문화사업, 문화예술교육, 지역 아카이브. 문화원이 지역의 문화유적, 역사문화 인물, 민담과 설화, 자연환경을 다루기로 약속한 그 합의의 연장선이었다.
특이한 점은 발표자 구성이었다. 최 처장은 "사무국장님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밝혔다. 사무국장이 아닌 실무자들이 직접 발표하고, 사무국장들은 그 발표에 살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문화원의 실제 변화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최영주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고영직 문학평론가의 기조발제는 제3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안에 대한 평가로 시작되었다. "상당히 전향적"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그는 문화원이 주목해야 할 지점을 짚었다. 네 가지 정책 목표 중 '기본이 탄탄한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이 문화원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짜 메시지는 다른 곳에 있었다. "문화원 하면 경건한 의례 같은 게 연상될 정도로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좀 어깨에 힘을 빼고 재미있게 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고영직 평론가는 전남 고흥의 여성농업인센터 사례를 소개했다. 70~80대 여성 농민들의 생애 서사를 아카이브하는 작업이었다. 화려한 성과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출발한 기록이었다. 충북 옥천의 결혼이주여성 협의회 사례도 언급되었다. 150명 중 120명이 가입한 전국 최초의 조직이었다.
"사람은 확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달라지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신영복 선생의 '탈정(脫井)' 개념을 빌려왔다. 자기 안의 우물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문화원에 필요한 태도라는 것이다. "지역의 토양을 바꾸자. 치열하게 고민하되 재미있게 실천하자."
기조발제를 진행하는 고영직 문학평론가
용인문화원 문화해설사 곽미숙의 발표는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되었다. "이게 밀착형인지 모르고 시작했습니다." 5~6년 전 참여자로서 경험한 포은문화제는 '화려함, 일회성, 나는 그저 관람자'라는 키워드로 요약되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름만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축제였다.
변화의 핵심은 '컨트롤타워'의 역할 전환이었다. 기존에는 사무국이 기획한 것을 시민들이 실행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포은문화제는 달랐다. "전달이 아닌 토의식의 것들이 내려왔습니다. 문화해설사, 지역민, 학생들이 같이 토론할 수 있는 자리가 된 겁니다."
곽미숙은 이를 밥상에 비유했다. "주어지는 밥상 위에서 먹는 퍼포먼스를 하는 게 아니고, 콩나물은 어떻게 무칠까, 깍두기 조금 맵게 할까, 이게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생들의 참여 방식이었다.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Y로드 톡파원'은 단순한 체험 참가자가 아니었다. "얘들아, 너희가 박물관을 운영해야 해"라는 과제를 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질문하고, 기획하고, 기록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온 아이들이 기획자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첫 번째 사례를 발표하는 용인문화원 곽미숙 문화해설사
김포문화원 김남호 주임의 발표는 위기에서 시작되었다. 김포 대명리 배 띄우기는 대명리 어민들이 어업 활동 중에 행했던 민속예술이다. 2010년대에 한 차례 발굴되었으나 코로나19 이후 전승이 다시 끊겼다. 보존의 구심점도 없고, 기존 고증 자료도 부실했다.
김남호 주임이 세운 우선순위는 명확했다. 첫째, 보존의 구심점 형성. 둘째, 연습 재개. 셋째, 고증 보완. 그는 80세가 넘은 전승자를 직접 찾아갔다. "선생님께서 지도해 주시지 않으면 이대로 명맥이 끊길 수 있습니다." 전승자의 의지와 결단이 맞아떨어지면서 보존회 활동이 재개되었다.
주목할 점은 문화원의 역할이었다. 김남호 주임은 "전통문화 행사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런 건 문화원이 해야지'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책임감과 위상이 동시에 담겨 있다. 지역에서 문화원이 추진하는 일에 대한 신뢰, 그리고 고령의 전승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행정 시스템(보탬e)을 대행할 수 있는 역량.
2024년 경기도민속예술제 우수상, 2025년 전승상 수상, 고증 지원 사업 예산 확보. 성과는 분명했다. 그러나 김남호 주임은 고민도 숨기지 않았다. "연출이 바뀌어도 고령의 보존회원분들이 따라오실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두 번째 사례를 발표하는 김포문화원 김남호 주임
평택문화원 황수근 학예연구사의 발표는 역설로 가득했다. "저희는 원사가 없어요. 사무실 하나, 25석짜리 강의실 하나가 전부입니다. 문화학교 강좌도 두 개뿐이고, 회원도 딱 50명입니다."
겉으로 보면 위기에 처한 문화원이다. 그러나 평택문화원은 직원 13명, 웃다리문화촌과 팽성생활사박물관 운영, 30여 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원사가 없으니까 문화학교도 안 하고, 시설 운영에 들어갈 에너지가 남습니다. 직원들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황수근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회원관리, 시설관리에 쏟을 에너지를 지역 네트워크 구축에 투입한 것이다.
팽성생활사박물관 사례는 이 네트워크의 힘을 보여주었다. 생활사박물관은 유물을 구입하기 어렵다. 마을 주민들이 기증해야 한다. 평택문화원은 평택학연구소의 자문위원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마을 출신 자문위원이 마을회관에 주민들을 모아주었고, 연구위원들이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저희가 가면 안 주세요. 그런데 자문위원님이 계시니까 가능했습니다."
천석지기 집에서 나온 뒤주는 조선 말기 유물이었다. 몇 백만 원짜리 유물을 기증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신뢰 때문이었다. 2025년 1월부터 평택문화원이 박물관을 공공위탁 운영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역성도 있고 전문성도 있는 기관"으로 인정받은 결과였다.
오다예 경기도문화원총람 연구원의 발표는 데이터로 시작되었다. 경기도 31개 문화원에서 운영 중인 문화학교 575개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였다.
충격적인 숫자들이 나왔다. 음악·미술·무용 3개 분야에 81.7% 집중. 그중 95.7%가 실기·기술 습득 중심. 성인 대상 프로그램이 95.1%. 영유아·청년 대상 프로그램은 전무. 주말 운영 2.6%, 야간 운영 6.8%. 이주민 대상 프로그램은 수원문화원의 2개가 전부.
더 문제적인 것은 변화의 방향이었다. 2019년과 2024년을 비교했을 때, 프로그램이 더 다양해지지 않고 오히려 특정 분야에 더 집중되었다.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오다예 연구원은 1991년 문화부의 '문화학교 운동' 정책을 언급했다. 지방문화원을 통해 전통문화 교육을 실시한다는 그때의 틀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개설된 프로그램이 현재까지도 그대로 운영되는 것이 문화원의 현주소다.
그러나 희망의 사례도 있었다. 이천문화원은 문화학교 강좌 개설 공고에 '이천의 전설과 설화를 활용하면 가산점'이라는 조건을 명시했다. '타 평생학습관의 문화강좌와 중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유의사항도 있었다. 강좌 모집 단계에서부터 문화원다운 차별성을 요구한 것이다.
토론의 포문은 축제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열렸다. 최영주 처장이 던진 화두는 이랬다. "원장님들이나 높은 분들은 사람이 많아야 성공한 축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함께한 참여자가 즐거운 축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의정부문화원 박정근 사무국장이 응답했다. "가장 교육적인 축제에 사람들이 외면할 것인가? 반대로 더 많이 오더라고요." 회룡문화제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그는 두 가지 지표를 제시했다. 체류 시간이 길어졌다. 가족 단위 방문이 늘었다.
"예전에는 체험 부스에 자녀 앉혀놓고 부모님들은 뒤에 서 계셨는데, 교육 축제로 전환하니까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어울리는 존재가 됐습니다."
그는 더 과감한 제안도 했다. "문화원이 대형 축제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요? 1억만 있으면 10개의 소규모 축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원다운 축제로."
물론 용인문화원 김지혜 사무국장의 현실적 반론도 있었다. "의정부 국장님 말씀 듣는 순간 '우리 직원들은 10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제의 본질에 대해 발언하는 의정부문화원 박정근 사무국장과 현실적 반론을 제기한 용인문화원 김지혜 사무국장
이천문화원 이동준 사무국장의 발언은 토론의 깊이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는 김포 대명리 배 띄우기의 상징성에 주목했다. "배를 띄운다는 것은 고립된 배를 다시 물에 띄우기 위해 주민들이 힘을 합치는 것입니다. 단순히 민속의 겉껍질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상징성과 의미를 재해석해야 합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보존과 창조의 긴장을 향했다. "민속예술제가 원형 보존에만 머문다면 무의미합니다. 지정 문화재가 되어 보호막을 갖게 되면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을까요?"
김명수 연구원의 발언이 이어졌다. "아파트에서 성주신이 어떻게 모셔질까요? 원래 세대주마다 성주신이 한 분씩 계시는데, 200세대 아파트라면 성주신이 200분 모여 계신 거 아닐까요?"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 어디서 시작될 수 있는가. 그는 "문화원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답했다.
민속의 현대적 재해석에 대해 발언하는 김명수 연구원
가평문화원 심우석 사무국장은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방문화원 진흥에 관한 법률의 조항들이 행정가들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강제 규정이 없습니다. 지방행정조직과 3년째 갈등 중입니다. 내년 지방선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영주 처장의 답변은 문화원의 이중적 위치를 짚었다. "시청에서는 '보조금이 나가니까 말 들어야 한다'고 하고, 곤란할 때는 '독립법인이니까 알아서 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호함이 때로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총회가 최종 결정기구입니다. 군청이 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고 우길 수 있습니다."
행정 편입의 딜레마에 대해 토로하는 가평문화원 심우석 사무국장
오산문화원 장복실 사무국장은 칸막이 행정의 문제를 제기했다. 다문화 프로그램을 하려 하면 "왜 너희가 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교육청과 협업하려 해도 안전 문제로 무산된다. "지자체에서 이 칸막이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문화원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고영직 평론가는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이런 건 문화원이 해야지'라는 말이 듣기 좋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일을 하는 데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도 문화원이 해요'라는 태도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동준 사무국장은 서발턴(subaltern) 개념을 끌어왔다. 사회 제도적으로 배제된 이들, 자기 목소리를 표출할 수 없는 이들. "그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내 자리를 양보하거나 깎아내는 것. 그런 자기 비움이 없다면 플랫폼이란 말을 써서는 안 됩니다."
토론이 끝나갈 무렵, 고영직 평론가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했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기쁘게 지내면 멀리 있는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온다. 핵심은 '열(悅)' 자입니다. 기쁠 열. 가까이 있는 문화원이든 휴먼 네트워크든, 즐겁게 해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이날 콜로키움의 가장 큰 성과는 실무자들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사무국장이 아닌 문화해설사가, 주임이, 학예연구사가 자신의 경험을 날것 그대로 풀어놓았다. 이동준 사무국장의 표현대로, "시키면 하는 을의 입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느끼는 생각들을 표출시키는 기회"였다.
물론 한계도 있었다. 경기도 31개 문화원 중 참석한 문화원은 소수였다. 최영주 처장이 농담처럼 던진 말이 여운을 남겼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에서 하는 일이니 으레 우리랑 관련 있겠거니 믿고 안 오신 것 같습니다."
2025년은 제3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이 시작되는 해다. 2027년에는 제2차 지방문화원 지원·육성 5개년 계획이 시작된다. 2031년부터는 모든 지자체의 지역문화진흥계획 수립이 의무화된다. 문화원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일 것이다. 고영직 평론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이날의 정신을 요약한다. "변화가 쉽지는 않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봉기를 선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밥상을 함께 차리는 축제, 끊어진 전승을 잇는 노력, 원사 밖으로 나가는 용기, 30년 된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 이날 공유된 사례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문화원이 '조금 달라지는' 방법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었다.
최영주 처장은 내년 계획을 밝혔다. 아직 중장기 발전 방안을 수립하지 못한 16개 문화원을 대상으로 3박 4일 해커톤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채찍을 세 개쯤 걸어놓고" 진행하겠다는 농담 섞인 예고였다.
참가자들이 자리를 떠나면서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저녁 식사 자리로 이어진 '히든 섹션'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이 오갔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며 나눈 대화가 때로는 공식 발표보다 중요하다는 의정부 박정근 사무국장의 말처럼.
문화원의 자립을 향한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만 이날 확인된 것이 있다면, 변화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현장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콩나물을 어떻게 무칠지 고민하는 것, 80세 전승자를 찾아가는 것, 마을회관에 술 한 박스 들고 가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문화원의 내일을 만든다.
"문화원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연합회가 문제입니다." 최영주 처장이 던진 자조 섞인 농담이 오히려 진심처럼 들렸다. 문화원 현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그 움직임을 연결하고 확산시키는 것, 그것이 연합회의 몫이자 이 콜로키움이 던진 숙제일 것이다.
콜로키움 현장에서 열띤 토론을 이어가는 참가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