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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업>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리고 미래가 숨어있는 남한산성, 詩와 함께 날다!
제3회 
경기도민과 함께하는 시낭송의 밤

“인문학으로 만나는 경기도, 산성시가” 리뷰


 늦더위가 기승을 하던 8월 27일(화) 이른 저녁,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남한산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어스름이 내린 구불구불 산성길을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의 길안내로 조심스럽게 산성입구로 향했다. 산성에 올랐다가 모두들 내려오는 시간에 올라가는 터라 버스엔 승객이 나 혼자였다. 라디오로 사연 몇 개와 노래 몇 곡을 듣고 나니 어느덧 버스 회차 지점에 도착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내가 너무 늦었나? 생각보다 너무나 고요한 입구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외행전 쪽으로 방향을 잡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외행전 입구에 다다르니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을 꾸는 것처럼 행궁을 무대로 신비로운 공연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리고 미래가 숨어있는 그 곳에서 “인문학으로 만나는 경기도, 산성시가”를 만났다. 

 “시는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 이라는 부제로 2011년부터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해 온 경기도 시낭송의 밤, 그 세 번째 이야기가 경기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자 민족자존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남한산성을 배경으로 새롭게 야외에서 펼쳐졌다.
 오늘 시낭송의 밤에서는 경기도 출신의 시인을 새롭게 조망하고, 시를 매개로 경기도의 인문학적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준비된 시간으로, 단순히 유명 작가들의 시를 낭송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기도의원 및 경기도문화원장님과 더불어 경기도 31개 시군문화원을 통해 추천받은 지역시인을 발굴하고 이와 더불어 남한산성을 경계로 활동하고 있는 광주, 성남, 하남 지역의 인문학 동아리를 발굴, 기획 단계부터 참여시킴으로써 경기도 지방문화원 스스로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진 인문학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데 앞장서고 있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모든 행적이 함축된 남한산성이라는 역사적인 공간을 무대로 삼은 만큼 공연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총 3가지 주제로 진행되었다. 그곳에서 펼쳐졌던,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따라가 보자.   

과거는 기억이고..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아리랑’으로 문을 연 1부는 과거는 기억이라는 주제로 남한산성을 사이에 두고 함께 어울려 있는 광주, 성남, 하남문화원과 문인협회, 도의원, 예술창작모임이 함께 준비했다. 현재 시조시인으로 활동하고 계신 광주문화원의 남재호 원장님과 성남문화원의 한춘섭 원장님은 남한산성을 주제로 한 자신의 시를 낭송했고, 하남문인협회에서는 회원들이 그들의 자작시를 함께 낭송하였다. 이와 함께 조광주 성남 도의원도 추담 오달제 시인의 “형님 앞으로 보내는 글”을 낭송하였다. 매 낭송마다 각 주제에 맞는 라이브 연주와 늦여름 어스름이 내린 산성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아름다운 조명은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시낭송의 운치를 살려주었다. 이어서 예술창작모임 “성남 art for 人”에서는 이곳 남한산성을, 조선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쳤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충절과 충의를 표현한 시조 “삼학사”를 성악으로 새롭게 창작한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 선 굵은 남성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그 당시 나라를 걱정하며 민족의 자존을 외쳤던 세 명의 학사들을 다시 살려낸 듯 했다. 공연을 마치자 뜻밖의 깜짝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경기문화재단의 엄기영 대표. 앵커시절의 선 굵은 목소리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를 낭송해주셨다.  

현재는 선물이며..

 과거의 기억을 발판삼아 ‘현재는 선물’이라는 주제로 넘어온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현재의 경기도의 모습을 담은 시와, 경기도 출신의 작가의 시, 그리고 경기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 위주로 구성되었다.  

 허재안 성남 도의원은 이원 시인의 “태극기의 바람”을, 그리고 우호철 화성문화원장님은 이경렬 시인의 “산길에서 이름 지을 수 없는 사랑을 만나네”를 연이어 낭송했으며 이어 이동화 평택 도의원과 이귀선 평택문인협회지부장이 함께 평택의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아름다운 평택호반”을 낭송하였다. 또한 심노진 용인 도의원과 김장호 용인문화원장님이 용인의 정취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이양기 시인의 “용인 내 고향”을 낭송했다. 경기도 각 지역을 소재로 한 시를 통해 막연히 넓게고 개별화된 도시로 인식되던 경기도가,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으로 새롭게 눈앞에 그려졌다.   

 다음으로는 광명의 대표 시인인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을 김경표 광명 도의원이, 도종환 시인의 “꽃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를 김문경 구리문화원장님이 낭송하셨다. 대학시절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中,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라는 마지막 시 구절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아리게 만들어, 가만히 곱씹고 곱씹게 만들었던 그 시를 오늘 남한산성에서 다시금 만나니, 새삼 반갑기도 하고, 시인의 탄식을 거울삼아 스스로에게 옛 시절 나의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던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달라져있는가 새삼 반추해보게 되었다.  

 잠시 다른 생각에 잠겼다가 무대를 바라보니, 광주 너른고을문학회의 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광주시를 무대로 활동하고 계신 광주 너른고을문학회는 단순히 시 창작을 넘어서 시 속의 함축된 이야기를 극화 시켜, 시라는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예술장르로 확장시키고자 다양한 실험을 하고 계신단다. 오늘 공연에서는 허정분 님의 “어머님 전상서”를 몸짓 언어로, 박병순 님의 “건망증과 꿈”이라는 시를 노래 단막극 형식으로 선보였다. 기존 시낭송의 모습과는 다른 전달 방식에 관객들의 집중도가 높아졌다. 

미래는 신비니..

 현재의 선물을 뒤로 하고 만나는 세 번째 이야기는 “미래는 신비”라는 주제로 왠지 모를 설레임을 품고, 국내 최고의 마임이스트 고재경의 퍼포먼스-“나비”가 펼쳐졌다. 배우와 관객이 하나 되는 행복한 상상이 가득한 공연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마임이스트 고재경. 역시나 이 날, 그의 무대도 행복한 상상이 가득 들어차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함께한 관객 중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한 분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등장한 마임이스트의 연기가 뭘 하는 걸까 마냥 신기하셨는지, 즉석에서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무대에서 펼쳐지는 마임동작에 대한 해설을 하기 시작하셨다. “어이쿠, 날아간다. 잡아야지~ 옳지, 잡았어!” 이에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까르르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관객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이 신선하고 재밌는지, 무대 위의 마임이스트도 그 변사의 대사에 반응하며 자신의 동작을 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동작의 크기와 템포를 조절하는 것 같았다. 그간의 무대는 시라는 언어적 매개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자 했다면, 마임공연은 몸짓을 통해 상상력 가득한 새로운 소통 방식을 선보이는 시간이었다. 

 이어서 경기도 도의원들과, 문화원장님들의 시낭송이 계속됐다. 정재영 성남 도의원은 고은 시인의 “별”을, 염종현 부천 도의원이 김경미 시인의 “문밖의 문”을, 그리고 이영희 광명문화원장, 조정현 가평문화원장, 나채선 하남문화원장(직무대행)이 함께 신경림 시인의 “대설 전”을 낭송했다. 계속해서 강석오, 박광서 광주 도의원 두 분은 일상의 냄새가 묻어나는 김기택 시인의 “삼겹살”을, 안계일, 윤은숙 성남 도의원은 박후기 시인의 “탄력에 대하여”를, 윤태길, 최철규 하남 도의원은 하남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김여정 시인의 “꿈의 알자리에 날빛이”라는 시를 사이좋게 낭송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 시낭송으로 오늘 출연했던 출연자들이 함께 나와 고은 시인의 “후일”을 함께 낭송했다. 낭송 무대가 끝나자, 무대 한쪽에 준비된 영상에서는 국내 최초 샌드애니메이션 1호 작가인 김하준 님의 퍼포먼스가 오늘 시낭송 공연의 하우스 밴드인 Luna-hill의 퓨전국악연주와 함께 펼쳐졌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오늘의 주제에 맞춰서 진화하고 있는 인류의 모습을 생동감 있는 샌드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나갔다. 모래알로 변화무쌍하게 그려지고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새로운 장면으로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마주하는 과거-현재-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인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오늘을 있게 한 과거가 우리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내재되어 오늘을 버티게 하며, 그 현재를 선물처럼 살기 위해 우리는 어쩌면 시와 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해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찾고, 현재를 통해 맞이하는 미래 또한 신비로 인도하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설렘으로 오늘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닐는지..

 삼국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숱한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는 남한산성에, 시의 노래와 함께한 관객들의 추억이 한 겹 더 얹혀져 어제와 다른 남한산성을 만들어 내고 나니, 산성의 밤은 깊고 깊어져 있었다. 

 간만에 꽉 찬 주제와 이야기를 담은 알찬 공연을 보게 되어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을 느끼며, 다시 먼 길을 돌아오는 길에 오늘 시낭송을 통해 경기도의 이야기, 경기도의 인문학적 정체성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던 인사말이 떠올랐다. 남한산성이 오늘날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동안 쌓여온 숱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터, 올해로 3회를 맞이하는 시낭송의 밤이 앞으로도 계속 한 겹, 한 겹 이야기를 쌓아갈수록, 경기도의 인문학적 정체성이 좀 더 뚜렷이 빛이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함께 그 이야기를 만들어갈 경기도문화원연합회 및 31개 시군문화원의 앞으로의 활동을 응원하며, 내년은 어떤 모습의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덕분에 한여름 밤, 멋진 세상을 잠시 구경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리며..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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