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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지역문화원, 지역의 토양을 바꾸자
고영직 | 문학평론가
지역문화원은 무엇을 할 것인가

최근 문체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함께 만드는 문화, 함께 커가는 지역’이라는 비전 아래 ①문화자치 기반 및 거버넌스 재정립, ②균형성장을 위한 지역문화 공간전략 재건축, ③다양성 사회, 공동체의 미래로 확장되는 지역문화, ④기본이 튼튼한 지역문화생태계 구축 같은 네 가지 추진전략을 담은 <제3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2026∼2030)>(안)을 발표했다. 아직 문체부 최종안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고, 광역/기초 지자체가 스스로 지역문화진흥계획을 수립하여 운영할 수 있는 지원체계와 관리체계 또한 정비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하지만 제3차 계획(안)은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계획안이었다는 점에서 문화판에서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계획안 마련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역문화원을 비롯한 지역문화 주체들의 자발적 실천일 것이다.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생태계 구축이란 입으로 부르짖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문화원은 최근의 정책 흐름을 잘 이해하며, 적절히 개입하고 실천하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는 전국/경기도 문화원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역문화원은 1947년 인천 강화문화원을 시작으로 전국 232개 문화원이 뿌리를 내렸고, 지역학 연구와 문화교육을 중심으로 한 지역 고유문화의 보존·확산의 중심기관이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지금-여기 지역문화원이 처한 현실은 만만치 않다. 지역문화원은 언제나 항상 ‘위기(crisis)’였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일수록 ‘비평(critic)’ 정신이 살아난다. 흥미 있는 사실은 위기와 비평을 뜻하는 말의 그리스어 어원이 ‘같다’는 점은 지역문화원에게 필요한 것은 예리한 비평정신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2022년 12월 경기도 31개 지역문화원과 함께 문화원장, 사무국장 그리고 전 직원들의 총의를 모아 처음으로 <경기도 31개 지역문화원 2023년의 약속>을 발표하는 등 지역문화원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문화원 지원/육성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전체 문화원에서 수립/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문화원 조직경영 선진화를 위한 각종 제 규정을 정비 완료했는가 하면, 문화원 임직원 역량강화에 힘쓰자고 약속했다.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2025년 16개 지역문화원이 자체 5개년 계획안을 마련한 데 이어, 2026년이면 나머지 지역문화도 자체 계획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역문화원 차원에서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지역문화원의 변화 의지 또한 매우 높다. 예를 들어 2025년 8월 독립원사를 확보한 남양주문화원의 경우 시민 335명을 대상으로 지역문화원 인식조사를 한 결과를 바탕으로 실행 가능한 목표를 중심으로 <남양주문화원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했다. 기본 문제의식은 중장기발전계획안이 한낱 ‘문서’가 되어서는 안되고, 문화원과 지역을 움직이는 ‘실행 장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남양주문화원은 독립 원사 확보에 만족해하지 않고, 지역과 사람을 잇는 지속가능한 문화활동을 위해 기부·후원 문화의 정착을 시도했다. 2025년 현재 발전기금 2억7천만원을 조성함으로써 지역사업을 위한 씨드머니(seed money)를 확보한 점은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남양주문화원은 문화지킴이 회원을 통한 후원그룹 확충, 문화아아카데미 인적 네트워크의 자산화, 임원들의 공동 운영 주체화 같은 구체적인 추진 전략을 통해 문화원이 지역 내 전문가, 예술가, 주민들과 수평적인 문화정책 파트너십을 강화하고자 했다. 지역문화의 토양은 단년도 사업 중심의 운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너무나 실감하기 때문이었다.

지역별포스터 권역별 지역문화토론회 포스터

 

남양주문화원 중장기발전계획안 발표 장면 남양주문화원 중장기발전계획안 발표 장면

아직 할 일이 많다. 제3차 계획(안)에는 지역 소멸, 고유문화 소실 위기의 시대 그동안 지역문화원이 해왔고, 잘할 수 있는 ‘제땅말’ 아카이브 관련 사업 등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제땅말’이라는 키워드는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웹진 ≪경기문화저널≫에서 처음으로 명명한 표현이었다. 문화기획자 전고필이 2021년에 쓴 기사 「내 몸의 모국어 ‘제땅말’」1)은 지역의 기억과 서사를 담고 있는 지역어, 사투리(방언), 민족어, 고어 등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일이 왜 중요한가를 역설한 명칼럼이다. 지역의 소멸은 제땅말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점은 말할 나위 없다.

기본이 튼튼한 지역문화생태계, 어떻게 가능한가

거듭 강조하지만, 지역문화원이 <제3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2026∼2030)>(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기본이 튼튼한 지역문화생태계 구축’ 항목이다. 사람을 키우는 지역문화를 고민해야 하고, 지역 문화인력의 일경험 확대 및 성장경로를 지원해야 하며, 지역의 ‘제땅말’ 같은 지역의 기억과 서사를 보존하기 위한 아카이브 활동 등을 해야 한다.
결국, ‘엄근진’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발랄하고 재미있게 활동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나는 2024년 《경기문화저널》 34호 칼럼 「로컬의 시대, 경기도 문화원은 어떤 비전을 제시했나」2)에서 ‘어깨 힘을 빼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동안 지역문화원의 활동은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불필요한 의례 중심의 활동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함께 만드는 문화, 함께 커가는 지역’이라는 <제3차 지역문화진흥계획(2026∼2030)>(안)의 비전과 추진전략에 대응하려면 어깨 힘을 빼고 지역 주민들과 작은 것에서 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문화활동을 해야 한다.

먼저 ‘사람’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제땅말 보존과 활용을 위해 지역문화 아키비스트를 체계적으로 키워야 한다. 이와 관련해 경북 칠곡군 할매들이 쓴 시집 『시가 뭐고?』 사례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칠곡군 문해교육 활동을 하는 주민강사 선발과 실습 과정에는 확실히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지역에 확실히 뿌리를 내린 강사들을 선발해 섬세한 역량강화 교육과정을 짜고 꾸준히 진행했다는 점이다. 문해교육을 담당하는 늘배움학교 주민강사를 선발할 때 두 가지 요건을 꼭 충족시켜야 선발했다. 첫째 칠곡군에 거주해야 하고, 둘째 칠곡교육문화회관이 운영하는 2년 과정의 평생학습대학 출신자여야 했다.
칠곡군은 그렇게 선발한 30-40대 여성 주민들을 영남대학교와 손을 잡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강사’ 자격증 과정을 신설해 주민강사로 양성했다. 그리고 주민강사들을 마을회관에 파견해 지역으로 환류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지역 주민인 강사들이 지역 어르신들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주민강사들은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할매들의 세계를 탐문(探問)하려고 했고, 이는 곧 할매 참여자들의 자기 주도성을 끌어내는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 십년 전 인터뷰 당시 칠곡군 담당 공무원이었던 지선영 계장이 “마을에 딸을 한 명 더 보내드리는 것 같다”고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지역문화원은 지역 청년들의 성장과 성숙을 돕는 재미있는 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전남문화재단이 2023년부터 청년문화기획자프로젝트로 추진하는 <사가지>(‘사회적 가치 지향’의 약칭) 활동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해를 더할수록 청년들의 참여 열기가 더하며 지역을 바꾸는 큰 활력소로서 제 역할을 다한다. 예를 들어 시즌3로 진행된 2025년 활동에서 <저↓출생, 저!출생> 프로젝트를 진행한 위서지 씨는 지역에서 공동육아를 고민하며, 돌봄의 위상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먼저 필요한 일 아닐까 하는 고민을 사람들과 나누었다.

사가지 프로젝트 전시 장면 사가지 프로젝트 결과공유회 장면 2025년 사가지 프로젝트 시즌3 전시 및 결과공유회 장면

또 2017년부터 지금까지 근 십년째 진행되는 충북문화재단 ‘헬로우아트랩’ 사업은 지역 문화교육을 고민하는 지역문화원에서 적극 참조할 만하다. 헬로우아트랩은 일종의 ‘랩(lab)’의 형식으로 하던 대로 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려는 ‘탈정(脫井)’의 문제의식이 각별한 사업이다. 재단과 단체 사이에 일종의 ‘평상’을 놓으며 수평적 협력의 문화가 뿌리를 내렸고, 연구와 실행 사이에 튼튼한 다리를 놓았으며,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주체들’을 키우는 인큐베이터 노릇을 톡톡히 했고, 학교와 지역을 잇는 ‘마을-학교’의 가능성을 실험하며 ‘교육예술’을 제대로 구현하는 성과를 낳았다. 이것은 ‘CoP(실천공동체) 지원’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사가지> 프로젝트든 헬로우아트랩이든 간에 동료들과 ‘사례’가 아니라 ‘고민’을 공유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런 고민을 공유하며 내가 사는 지역의 문제를 살피고 적절한 예술/교육적 개입을 하는 과정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큰 공부가 되었다. ‘할 줄 앎’을 쌓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든 어르신이든 간에 배움이 아니라 가르침에 저항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기능만 남은 예술수업은 외면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생태계 구축은 정책사업만으로는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중장기계획안이 문서가 아니라 지역의 토양을 바꾸는 ‘실행 장치’가 되어야 한다고 한 남양주문화원의 주장이 현실이 되려면, 지역의 토양(soil)을 바꾸려는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지역의 공기를 바꾸는 활동을 해야 한다.특히 자연에 대한 ‘감사’와 ‘보답’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지역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작은 모임들을 더 많이, 더 자주 해야 한다. 미국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는 『향모를 땋으며』(2013)에서 “감사는 충만의 윤리를 계발하지만, 경제는 공허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 말처럼 지역문화생태계 구축은 어쩌면 돈으로 구매할 수 없는 가치들, 우정·관계·돌봄·나눔·보호·공동체가 굳건할 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태(eco)보다 경제(economy)를 더 추앙하려는 마음의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이 바라는 활동은 작은 것들이다. ‘재미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활동에 열광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논어』에 “近者悅遠自來”라는 말이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해야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지역문화원 내부 사람들과 ‘기쁘게[悅]’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며, 조금씩 지역의 토양을 바꾸자. 치열하게 고민하되 재미있게 실천하자.




1) 전고필,「내 몸의 모국어 ‘제땅말’」,『웹진경기문화저널』제26호, 2021.10. http://kccfgg.org/webzine/src/webzine_view.php?idx=46&Focus=269
2) 고영직,「로컬의 시대, 경기도 문화원은 어떤 비전을 제시했나」,『웹진경기문화저널』제34호, 2024.7. http://kccfgg.org/webzine/src/webzine_view.php?idx=54&Focus=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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