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크리에이터들은 “함께 쓸 거점이 없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주변에는 쓰이지 못한 유휴공간이 넘쳐난다. 미술관, 창업보육센터, 마을회관, 공유오피스처럼 ‘누구나의 공간’이라 불렸던 곳들은 지어짐과 동시에 한쪽에서는 폐쇄된다. 전국의 국·공유지 내 공공건축물 1만2천여 동 가운데 약 23%가 유휴 상태로 추정되고, 이는 단순한 미사용이 아니라 운영 주체와 쓰임이 사라진 지역의 구조적 공백을 의미한다.
불 꺼진 건물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지역의 온도는 조금씩 내려간다. 사용되지 않는 공간은 범죄와 화재 위험을 키우고, 주변 상권의 신뢰와 자산 가치를 갉아먹는다. 하나의 빈집이 또 다른 빈집을 낳는 연쇄가 시작되면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관계가 멈춘다. 이른바 ‘빈집의 전염성’이다. 공간이 비면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관계가 멈춘다.
해녀들이 줄어들며 점점 유휴 공간으로 변해가는 해녀 탈의실
유휴공간의 문제는 건물의 부족이 아니라, 짓는 일의 논리와 쓰는 일의 논리가 어긋난 데서 비롯된다. 행정은 여전히 “얼마나 지었는가, 예산을 제때 썼는가”로 성과를 평가한다. 그러나 공간의 진짜 가치는 “얼마나 오래, 자주, 누구와 무엇을 위해 쓰였는가”에서 결정된다. 완공 순간이 절정인 사업은 완공과 동시에 휴면에 들어가고, 안전·보험·절차가 개방보다 앞선다.
부서 간 권한은 건설·관리·운영으로 나뉘고, 규칙이 서로 얽히면서 ‘닫힘’이 기본값이 된다. 운영의 공백과 책임의 분절은 새로운 사용을 가로막는다. 결국 공공건물의 불이 꺼지는 이유는 위험해서가 아니라, 그 위험을 함께 감당할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민간도 사정은 비슷하다. 집과 건물은 이제 ‘사는 곳’이 아니라 ‘보유할 자산’으로 변했다. 비어 있는 집은 손실이 아니라 또 다른 전략이 되고, 도심의 상가 공실과 농촌의 유휴농지는 장기 보유의 기대에 묶인다. ‘같이 쓰는 일’은 ‘이익을 나누는 일’로 오해되고, 그 부담을 피하려 문은 닫힌 채 남는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공간의 물리적 유무가 아니라, 사람의 시간표와 공간의 일정표가 만나지 못하는 데 있다. 어디가 비어 있고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정보는 흩어지고, 책임은 분산되어 있으며, 운영 주체는 공백이다. 문을 열어도 프로그램이 없고, 프로그램이 생겨도 운영의 주체가 없다. 공간은 있지만, 시간과 관계가 비어 있다.
유휴공간을 살리는 일은 복원이 아니라 전환이다. 사용은 성과의 잣대를 “얼마나 지었는가”에서 “얼마나 쓰였는가”로 바꾸는 일이다. 완벽히 고쳐야 연다는 관념을 내려놓고, 임시 사용·시험 운영 같은 작은 열림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렇게 공간은 ‘사업’이 아니라 ‘생활의 무대’가 된다.
‘돌봄’은 운영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대부분의 공공건물은 개관 이후 인력과 예산이 빠져나가며 ‘개관 동시 폐관’ 상태가 된다. 문을 여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상시 운영자와 열림·닫힘 캘린더, 안전·청소 매뉴얼이 자리 잡을 때 공간은 신뢰를 얻는다. 주민조직과 청년팀, 사회적 기업이 일상의 운영자로 참여하면 지속력이 생긴다. 운영비를 ‘손실’이 아니라 ‘투자’로 재정의해야 한다. 그 일상적 돌봄의 누적이 결국 공간의 신뢰와 재방문을 만든다.
‘협력’은 흩어진 권한을 잇는 일이다. 짓는 기관, 관리 부서, 운영 단체, 주민이 같은 지도 위에 있어야 한다. 공공과 민간, 주민이 함께 자산을 신탁해 소유·운영·수익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커뮤니티 트러스트’ 같은 구조가 필요하다. 위험과 수익을 함께 나누면, 행정은 지시자가 아니라 파트너가 된다. 닫힘을 막는 것은 규칙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공동의 책임이다.
옛 매표소를 주민과 기업, 행정이 함께 워케이션 센터로 조성한 후 마을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 추진 사례
운영의 원리는 책상 위 문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움직일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는 동료들과 함께 세 가지 실험을 시작했다. 아직 작고 거칠지만, 지역이 마음을 열고 공간을 내어주는 순간들을 통과하며 다음 단계의 확신을 모았다.
첫째는 씨-리얼(SEA:REAL)이다. 서귀포 수협이 보유한 항만 인근의 유휴 공간, 유동인구는 많지만 활성화되지 못한 장소에서 지역 크리에이터들과 편집숍·마켓을 열었다. 항구의 창고와 판매 공간을 임시로 열어 수산·로컬 브랜드가 한자리에 서게 하자, 관광객과 주민의 동선이 자연스레 겹쳤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먼저 열고 쓰면서 완성한다”는 감각이 현장에서 공유되었다.
둘째는 해녀탈의장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다. 해녀 수 감소와 고령화로 쓰임이 줄어든 어촌계 공간을 해녀의 쉼터로 개선하고, 방문객을 위한 작은 문화 체험 공간으로 열었다. 민간기업(오비맥주)과 지역 조직이 거버넌스를 꾸리고, 해녀들의 생활 리듬에 맞춰 동선과 편의시설을 손보는 데 집중했다. 기존 구조를 존중하면서 돌봄의 손을 얹는 방식이었다.
셋째는 대정읍 ‘촌-피스(Chon‑Peace)’다. 한때 배 매표소였던 유휴 건물을 주민·지역 기업·행정이 함께 재생해, 농어업 특화 워케이션과 커뮤니티 거점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연면적 163.45㎡, 2층 규모의 공유오피스·회의실·세미나실로 구성해 마을이 위탁·운영하는 구조를 택했다. 개소와 함께 글로벌 프로그램이 유입되고, 국내외 팀들이 장·단기 프로젝트로 머물며 마을 안에서 일과 교류를 시작했다. “촌에 있는 사무실, 촌‑피스”라는 이름처럼, 지역의 일과 삶을 잇는 작고 단단한 거점이 되고 있다.
세 프로젝트는 공통적으로 사용–돌봄–협력의 원리를 한꺼번에 움직였다. 먼저 임시로 열고(사용), 일상의 운영 루틴을 만들고(돌봄), 주민·기관·기업이 함께 책임과 비용을 나누는 구조를 설계했다(협력). 아직 시작 단계의 실험이지만, 지역과 마을은 점점 마음을 열고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열린 문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국내를 넘어 해외의 팀과 개인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지역의 시간이 새로 적층되고 있다.
엄청난 양의 마을 아카이브 콘텐츠가 보관되어 있는 유휴 공간
원리만으로는 공간이 열리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열기–채우기–묶기의 순서를 밟아야 한다. 먼저 열기. 흩어진 유휴공간 정보를 표준화해 공개하면 ‘있는 데도 없는 공간’이 ‘보이는 공간’으로 바뀐다. 일본의 ‘공공R부동산’과 국가 차원의 ‘전국판 빈집·빈토지 뱅크’는 행정을 관리자에서 중개자로 바꾸며 관계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다음은 채우기. 완벽한 계획보다 저비용·저위험의 임시 운영이 장소의 기억을 바꾼다. 멤피스의 ‘MEMFix’, 시애틀의 ‘Seattle Restored’, 런던의 ‘Folly for a Flyover’처럼, 하루의 실험과 팝업이 투자와 장기 전환으로 이어진다. 작은 사용의 반복이 도시의 체온을 되살린다.
마지막은 묶기. 임시에서 상시로 넘어가려면 거버넌스와 재원을 고정해야 한다. 영국·일본의 ‘사회적 부동산 신탁’은 공익 운영자가 매입–임대–운영을 끊김 없이 수행하도록 설계해 임시 사용의 불안을 줄이고 장기 신뢰를 만든다. 중요하게도, 묶기는 행정 절차가 아니라 관계를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는 일이다. 이 순서들은 직선이 아니라 순환이다. 정보 공개는 새로운 사용을 부르고, 사용은 협력을 낳고, 협력은 다시 더 많은 공간의 개방으로 이어진다. 순환이 자리를 잡을 때 재생은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의 습관이 된다.
이제 필요한 건 거창한 계획이 아니다. ‘얼마나 지었는가’에서 ‘얼마나 쓰이게 했는가’로 성과의 잣대를 바꾸고, 닫힘을 기본으로 한 규정을 열림의 설계로 전환하는 일이다. 문화원과 주민, 청년팀, 지역 기업이 한 팀이 되어 운영하고, 주 7일의 ‘작은 일과’로 비는 시간을 메운다. 재원은 공공지원·후원·대관·회원제를 섞어 운영비와 기금을 분리 관리하고, 성과는 개방시간·재방문·프로그램 다양성·파트너 수 같은 ‘사용 중심’ 지표로 평가한다.
빈 교실 하루 개방, 골목 팝업 일주일, 마을회관 저녁 시간 공유처럼 작지만 반복 가능한 단위부터 시작하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먼저 열고, 함께 쓰고, 끝까지 돌보는 일. 그 반복이 쌓일 때, 멈춰 있던 공간은 다시 사람의 시간표로 돌아온다.
공간을 살리는 일은 건물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의 시간과 관계, 책임의 구조를 다시 잇는 일이다. 짓는 논리보다 쓰는 논리가 앞설 때, 도시는 비로소 따뜻함을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