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남구학산문화원(현 미추홀학산문화원)은 지방자치시대 파편화되고 단절된 지역문화의 공동체 회복과 문화 시민력 향상을 위한 지역문화공동체만들기의 일환으로 마당예술학교를 열고, 학산마당극놀래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2014년에 시작된 학산마당극놀래는 올해 열 한 돌을 맞이하였고, 그 사이 170여 편의 시민마당극이 무대에 올려졌고, 창작활동에 참여한 주민들은 1,800여명 정도에 이른다.
박성희 발제자
2014년 마당예술학교에서는 시민마당극 추진위원회를 꾸려 지자체에 21개 동 주민센터에 마당예술동아리(시민마당극팀)를 만들어 상설화하고, 21개 동 마을마당극을 모아 경연마당을 벌이는 학산마당극놀래를 문화 정책으로 추진할 것을 여러차례 제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남구(현 미추홀구) 자치단체장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으로 21개 동 주민자치회와 주민자치협의회를 찾아갈 수 있는 길을 확보했다. 학산문화원에서는 각 동을 수십 차례 방문하면서 학산마당극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설득하여 21개 동 별 마당예술동아리를 몇 개의 산을 넘으면서 어렵게 조직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 취지에 공감하는 마당예술강사를 모집하여 (일정의 역량강화 교육을 마치면) 각 동 마당예술동아리에서 마을마당극을 만드는 길라잡이로 마당강사을 파견하였다.
학산마당극놀래가 지향하는 시민마당극은 ①참여의 면에서 시민들이 참여하여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문화예술활동이고, ②주체의 면은 시민들이 창작의 주체로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소재를 정하고 대본을 같이 쓰고 연습을 거쳐 공연발표에 이르기까지 단순 향유자가 아닌 창작자로서 활동한다. 이 때 마당강사는 주민들의 창작활동의 길을 열어주고 막히는 곳은 풀어주고 부족한 면을 강화시켜주는 길라잡이 역할이다. ③형식의 면에서는 마당에서 음악 춤 노래 풍물 연극 영상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융합한 통합적 문화예술활동이다. ④ 그리고 소재의 면에서는 이야기주권을 회복하는 활동이다. 주민공동의 문제나 마을의 역사 또는 나와 이웃의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룸으로써,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지역과 우리의 보편적 일상을 문화예술로 발화시키는 활동이다.
이런 학산마당극놀래의 시민마당극 지향점은 주민공동창작 방법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이야기 뼈대 만들기(공동체 지향의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주의 훈련) : 주민들이 마당극의 주제나 소재를 정하고 이야기의 뼈대를 잡을 때‘다수결에 따르거나 소수자의 의견 배려’보다는‘가능한 더 가치 있는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 낸다.
* 주관 자아 객관 자아의 역할놀이를 통한 장면구성 : 이야기 뼈대가 잡히고 작품의 흐름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면, 역할놀이로 장면구성을 진행한다. 장면구성은 강사나 특정 멤버 누군가가 미리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 자아, 객관 자아를 경험하는 즉흥 역할놀기와 토론을 통해 장면을 구성하고 대본을 완성한다. 대사는 외우지 않고 주제어와 상황으로 기억하면서 즉흥 대사를 통해 집단적 상상력을 고양시킨다.
* 극놀이를 통한 마당구성 : 역할놀기로 짠 장면들을 이어서 하나의 마당으로 구성하고 이어 보고 수정 보완하면서 전체 이야기 구성을 곧추세우는 내재적 논리를 마련한다.
시민마당극은 앞서 말한 4가지 측면의 지향성과 주민창작방법론을 중심으로, 각 동을 근거지로 마을축제와 결합하면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1개동 마을릴레이 축제를 지향했던 주안미디어문화축제와 결합해서 각 동 마을축제에서 공연 발표를 하고, 마을릴레이 축제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21개 동 시민마당극 경연대회인 학산마당극놀래를 개최하였다. 학산마당극놀래는 시민창작예술축제이면서 동시에 지역문화공동체축제로서의 모델링을 세우는 작은 단초들을 하나 둘 쌓아가고 있었다.
마당극의 소재는 지역 화두(원도심재개발, 노인인구 증가, 쓰레기처리 등), 소외와 편견(아파트와 원도심 주택가의 갈등, 이주민, 장애인, 공공과 민간 등), 지역 역사(숭의동 109번지, 골목길의 추억, 문학산의 전설 등), 세대 고민과 갈등(치매, 학군, 청소년의 방황 등)처럼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가 직간접으로 체험하고 알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지역 이야기를 친근했던 이웃이나 가족이 무대 위에 올라 자신들의 언어와 몸짓으로 풀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본인도 그 공연의 오롯한 일부가 되는 경험을 했다.
개인의 취미나 교양을 위한 생활동아리는 배타적인 사적 공간으로 머물게 됨으로써 지역사회의 변화에 일조하거나 공동체를 일구는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지만, 각 개인이 공공성을 담지하는 시민마당극과 같은 활동은 개인의 정체성을 함양하고 예술적 기량을 확보하면서도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초기 탑다운 방식의 조직과 관변단체 위주의 주민 참여 방식에 대한 비판도 많았고, 주민들이 사회적 비판적 소재에 대한 거부감과 자기 검열로 마을 미담같은 홍보용 작품을 선호하거나 의사결정과 창작에 대한 경험과 훈련 부족으로 이미 완성된 대본을 요청하는 등 학산마당극놀래가 추구하고자 했던 방향과 서로 어긋나기도 하고 한참을 돌아가기도 했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3년을 맞이할 즈음에는 21개 동을 움직이는 시민마당극의 힘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주민들 사이에 회자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자체, 주민자치회, 구의회 및 지역 문화기획자들 사이의 갈등과 이해관계 등 여러 변수가 겹쳐 주민과의 소통을 모토로 삼았던 주안미디어축제의 방향이 좌초되면서 마을마당극 또한 ‘문화공동체예술’의 근거지로서의 마을축제와‘이별’함으로써 그 동력을 상당히 상실하게 되었다.
2017년 이후 학산마당극놀래는 청소년복지관, 다문화가족센터. 시각장애인복지관, 아파트공동체 등 중간조직이나 자발적 연극 동아리 등으로 그 기반을 전환하여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마을기반 지역공동체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했던 애초의 방향이 흔들리고 학산마당극놀래의 예산 지원이 대폭 삭감되면서 현재는 제2의 전환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 사이 문화원 담당자들이나 마당예술강사들도 주어진 프로젝트를 큰 문제없이 해내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시민마당극에 7~8년 넘게 참여한 동아리들의 문화 시민력이 답보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학산마당극놀래는 하는 이와 보는 이의 경계없이 더불어 참여하고 어우러지던‘마당’을 모토로 주민이 창작의 주체가 되고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선순환되는 문화예술생태계를 지역공동체로부터 만들어가는 일을 목표로 한다. 가족과 청소년들이 변화되고, 마을이 변하여, 문화를 통해 미래의 꿈을 그리는 그러한 삶의 터전이 되기를 바라며 그 마중물이 되기를 바랬던 염원이 중단되지 않고 지속이 될 수 있는 힘과 에너지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