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차별하지 않는다’는 영국의 ‘외로움’ 이슈가 대한민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정착하고 있을까? 2018년, 영국 정부가 외로움(Loneliness) 문제를 국정 의제로 제시하고 범부처 전략을 내놓았다. 이런 영향을 받아 국내도 관련 연구와 논의가 바로 시작되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국정철학으로 제시된 ‘혁신적 포용국가’는 삶의 질을 중심으로 한 정책 방향을 강조했으며, 저출산·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등의 사회 변화에 따라 외로움이 부상할 현상임을 시사했다. 이런 배경 안에서 2021년, 문화도시 1기인 영도문화도시센터와 별일사무소는 ‘비자발적인 사회적 고립’에 주목하여 고립 위험에 처한 8명의 부산시 영도구 주민과 7명의 복지 관계자를 찾아가 ‘고립’에 대한 발화 내용을 듣고 ‘고립의 개념도’와 ‘고립을 완화하는 방법의 개념도’로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 연구 결과에 따라 사회복지영역 ‘돌봄’, 문화예술영역 ‘사회적 관계’,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결합한 ‘문화예술 통합형 커뮤니티 케어’ 영도 모델 체계를 민관협력구조로 제안했다.*1)
이초영 발제자
주관적인 생각을 밝히자면, 대한민국에서 외로움은 차별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사회적 외로움은 당사자를 차별한다.*2)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들이닥친 사회적 외로움은 정서적 외로움으로 이어진다. 즉 비자발적 고립이 더해지면 어쩔 수 없이 외로워진다는 의미이다. 빈집투성이에 살고 있을 때, 감염병으로 바깥에 나갈 수 없을 때, 노령의 친구와 지인들이 세상에 없어 만날 사람이 없을 때, 거동이 어려워 외출이 어려울 때 등, 내가 사회와 맞닿을 수 없으면 늘 그 서로의 자리에 머물러 평행선만을 유지할 뿐이다. 특히 연구를 진행할 때, 주민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그들의 불안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누구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거나 계속 들여와서 한없이 꽉꽉 차 있고, 누구는 이불 하나, 냄비 하나, 수저 한 쌍만 있는 거의 빈집 수준으로 지내고 있었다. 비어있으면 채우거나, 채움이 부담스러우면 비우고 싶은 마음이 집과 닮아있었다.
연구 과정에서 영국의 ‘예술기반 사회적 처방’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의학적 처방으로는 즉각 해결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단순한 ‘질병 치료’를 넘어 ‘웰빙’이라는 더 넓은 관점에서 접근한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균형을 맞춰 개인의 행복감을 높이는 접근법이 개인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엔트리 구조’이며, 단순 커뮤니티 연결과 다르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매개자이자 상담역할의 ‘링크워커’를 통해 적절한 해결책을 찾는 체계를 거쳐 개인 관심사에 맞춘 예술, 원예, 달리기, 자연보존 작업 등, 사회적 처방을 받는다.*3)
영도의 연구에서도 밝혀진 주요 내용 중 하나는, 고립을 벗어나는 순간은 할 일, 갈 곳, 활동 상대가 있을 때였다. 아울러 내 상황을 우리 마을의 누군가 알고 있다는 안심이 고립감을 낮췄다. 또, 혼자만 남은 시간을 나만의 특별한 시간으로 변화시키는데 문화예술 활동이 매우 유효했다. 이를 위해 당사자의 취향과 성향에 따라 정적 활동과 동적 활동이 병행되어야 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역시 일상생활의 연장 측면으로 접근하여, 서로 안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문화로 사회연대] 사업이 2년째 진행되고 있다. [문화로 사회연대]는 2023년 5개 거점, 2024년 9개의 지역 거점센터(경북권역 포항문화재단, 수도권 총신대학교 산학협력단, 강원권역 춘천문화재단과 연세대학교 원주산학협력단, 충남권역 충남관광문화재단, 전북권역 군산문화재단, 전남권역 영암문화관광재단, 경남권역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김해문화관광재단)가 선정되어 지역별 외로움 예방 차원의 연결 구조를 만들고 있다.
[문화로 사회연대]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적 외로움을 주제로 삼는다. 혼자인 기분이 들거나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이러한 외로운 감정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함께 나누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9개의 지역 거점센터의 사업을 살피면, 포항문화재단은 무너진 지역사회의 일상 회복을 주제로 하는 문화안전망 사업에 꽤 오래전부터 집중했다. 특히 예술가, 기획자, 복지기관 담당자로 구성된 ‘연결자’를 중심으로 문화와 복지,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연결하고 있다. 총신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서울시 5개구 문화재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4대 권역 심리지원센터와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심리상담 서비스, '친한친구되기(친친)' 모임 운영, 마음 나눔 전문가 양성, 사회생활 지원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였다. 춘천문화재단은 강원권 2개 문화재단과 1개 도시재생지원센터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맞춤형 처방 프로그램 [마음을 잇-길], 외로움 인식 제고를 위한 공동 캠페인, 안녕포럼 등을 추진했고, 연세대학교 원주산학협력단은 ‘사회적 처방’에 주목하여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형 처방 프로그램 운영, 글로벌 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충남문화관광재단은 사회적 연결척도 검사의 온라인 진단 서비스를 개발했고 충남권 3개 문화재단과 협력하여 지역의 다양한 주민들과 심리상담, 소셜다이닝, 도자 수업, 뜨개질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군산문화재단은 약 석 달간 저녁시간에 전문 심리상담서비스 [심야마음돌봄]을 운영하였고, 영암문화관광재단은 은퇴자, 고립 청년, 노년층을 대상으로 복지 및 정신 건강센터, 의료기관과 연계하여 문화를 통한 사회적 처방 프로그램 [마음뜨개]를 진행했다. 특히 도서 및 산간, 다른 지역민들과 편지 나누기, 일상 탈피 소풍, 서늘한 바람 아래 낮잠 즐기기, 힐링 수목원에서 함께 산책하기 등 다양한 마음 처방 프로그램을 기관과 협력하여 진행했다. 김해문화관광재단은 지역사회 문제 발굴 및 현안을 모색하고 대응하는 [GIM HAEPPY] 포럼을 개최하였으며,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고립·은둔’에 주목하여 창원, 진주 등 거점 도시 중심으로 청년 대상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운영하였다. 동시에 '문화우물 두레 모임'과 연계하여 농어촌 노인 대상의 문화 돌봄 모델을 발굴했으며 전 과정에 청년, 청소년, 사회복지, 심리상담, 정신건강의학 분야 전문가가 협력하였다.
현대 사회는 공허함과 외로움의 시대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끊임없이 루틴을 만들어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운다. 그러다가 외로워지면 커뮤니티를 찾는다. 커뮤니티에서는 만남의 밀도가 높지 않아도 된다. 만나는 순간, 즐겁고 진심이면 된다. 이렇듯 커뮤니티의 속성이 끈끈한 연대에서 느슨한 연대로 변화되고 있다. 최소한의 연결을 유지하며 ‘상냥한 타인*4)’, ‘절묘한 거리감*5)’, ‘완만한 유대*6)’의 관계를 원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시대는 네트워크가 해법이 아닐 수 있다. 특히 서로를 돕는다는 역학관계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관계에도 기울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단순히 연결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외롭고 고립된 상황에서 서로가 활동 상대, 만남 상대, 이야기 상대가 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즉, 존재로서 바라보는 관계,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연대의 새로운 꼴을 고민하는 일, 이젠 누구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1) 연구 보고서: 사회적 고립 완화를 위한 문화예술 통합형 커뮤니티케어 영도 모델 개발(영도문화도시센터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ydartcity/223694968916)
*2) 외로움의 대표적인 유형 분류는 정서적 외로움과 사회적 외로움이다. 정서적 외로움은 애착 상대가 없어서 나타나는 쓸쓸한 감정, 불안정한 상태를 뜻하며, 사회적 외로움은 공통의 관심사와 활동을 공유하는 친구, 동료, 이웃이 없거나 사회적 연결망이 사라졌을 때 개인에게 나타나는 상실감, 사회적 배제를 의미한다. (신인철‧최지원, 외로움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질병, 2019, 서울연구원)
*3) [영국의 사회적 처방을 이끄는 허브, NASP를 가다] 사이시옷의 글로벌 스터디 #4 국립사회적처방아카데미 인터뷰 https://brunch.co.kr/@joecool/178 (2024. 11. 17. 발행)
*4) 우주비행사 마이클 콜린스는 아폴로11호의 동료 세 사람을 ‘상냥한 타인들’이라고 표현했다. “꼭 필요한 정보만 공유하며,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은 나누지 않았다.” - 제임스 R. 핸슨 [퍼스트맨]
*5), *6) 日 시골 마을의 '최저 자살률' 비결, 이웃간 '절묘한 거리감'이었다 [방구석 도쿄통신] (2024.9.10.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