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지역문화정책에 있어서 부정적인 현상과 전망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지역문화정책의 기반이 되는 현장, 즉 지역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시민들의 일상이 이뤄지는 현실 공간이란 측면에서, 지역에서 구체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문화, 즉 지역주민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지역문화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인데 흔히 “지역소멸”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듯 여러 정부의 정책적 목표가 내세우는 이상적 비젼과 방향설정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현실은 오히려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서울-수도권과 일부 광역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자립적인 생산기반이 사라져버린 게 노골적인 현실이며 이를 타개할 현실적인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몇 년 전 귀촌귀농을 위해 고향인 파주 농촌 지역으로 돌아온 예술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고향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열심히 귀농교육을 받으며 농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열심히 귀농교육을 받던 그이가 매우 실망하고 토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농림부 등에서 파견되어 귀농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들이 대놓고 “농업은 현실적으로 경제적 전망이 없다”고 얘기하며, 다만 아러저러한 정책자금을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으니 그런 걸로 농업을 유지하며 버티라는 이야기를 대놓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농지도 인근 도시 지역에 편입되는 행운을 얻을 수 있고 그러면 상당한 부동산 개발의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게 그런 강사들이 제시하는 전망이란 것이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 지역에서의 자립적 삶의 기반은 심각하게 붕괴되고 있다.
염신규 발제자
그러면서 최근 지역문화정책 관련 연구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산업, 인구 등 다양한 영역의 거시환경 변화와 연결하여 지역문화 정책이슈가 제시되고 있다. 2019년 6월 발표한 『문화분야 2045 중장기 비전과 핵심의제 연구』(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는, 미래사회 트렌드 분석으로 총 8개의 주제를 제시했는데, ▲ 인구 감소와 사회구성의 변화 ▲ 삶의 위협에 대한 저항과 사회 현상의 다양화 증대 ▲ 기술의 진보에 따른 인간 존재 방식의 혼란과 관계의 질 변화 ▲ 경제기반의 변화에 따른 협력과 공유 관계의 필요성 강화 ▲ 기술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노동과 인간의 관계 변화 ▲ 환경문제의 확대와 안전이 기반 된 도시 문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 확장 ▲ 대의 정치의 위기와 직접민주주의적 방식의 확장 ▲ 평화번영시대 새로운 한반도 문화 트렌드 분석 등이었다. 지역문화정책이 단순히 지역의 예술이나 문화향유 등 전통적으로 다루어져왔던 문화정책 과제뿐만 아니라 지역에서의 일상과 연계된 다양한 삶의 조건들을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최근 수년간 윤석열 정부의 지역문화예술정책 방향이 적절했을까? 아직 그 전반을 평가하기엔 시기상조이지만 몇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우선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1월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을 발표하고 지방분권-균형발전 5개년계획을 통합하여 추진할 것을 천명했다. 2000년대 이후 “지역”이란 단어로 대체되어왔던 “지방”이란 표현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매우 이례적이며 이는 지역정책에 대한 현 정부의 입장이 그간의 관점과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역과 중앙의 관계를 다시 수직적 위계로 보는 시각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이 계획이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특화된 계획은 아니지만 지역문화에 대하여 관광과 콘텐츠 중심 편중이 다소 심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에 앞서 2023년 3월 [지방시대 지역문화정책 추진전략]을 내놓았는데 역사 이전 정부의 정책기조를 완전히 뒤집듯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으나 콘텐츠와 관광을 강조하는 흐름은 역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런 전반적 기조에 대하여 지역문화정책의 장기적 비전과 전략, 방향성이 사라지고 80~90년대식 단순 문화 복지 사업과 정부 주도의 공급사업, 개발정책에 가까운 관광사업과 콘텐츠 지원사업의 편향성이 강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해었다. 이는 2024년 문화부 업무계획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문화복지 지원 명목으로 시민을 대상화 하는 현금성 지원, 바우처 지원이 확대되었으나 정작 시민들이 직접 문화의 주체로 참여하는 생활예술 지원과 정책은 위축되어버렸고 지역의 문화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지역문화 정책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관광정책과 개발 지향의 사업위주로 짜여져 있었다. 특히 사회문제와 지역문화정책의 연계가 지역인구 소멸이나 세대 간 갈등 문제 등 몇몇 최신 이슈에만 집중되고 사실상 당면한 현안이라 할 수 있는 기후위기 문제, 지역내 불평등 문제 등은 전혀 고려되고 있다고 분석된다. 또한 현장 중심의 문화정책을 만들어가는 기본 토양이 되는 문화/예술 관련 거버넌스가 정책 전반에서 거의 사라져버렸고 행정에 의해 기능적으로 조정되고 감독되는 문화정책과 사업 중심으로 짜여지고 있는 것은 우려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법정 문화도시 사업의 다음 버전을 표방한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에서도 드러나지만 지역의 자율성이나 복잡성에 대한 폭넓은 접근보다는 중앙 중심 사고를 전제에 깔고 지역을 기능적인 공간으로 분할하는 관점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퇴행적 방향 설계다. 지역이, 그 내부에서 스스로의 문화적 문제를 진단하고 의제를 도출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중앙의 잣대로 지역을 기능적으로 분할하여 역할을 부여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코로나 상황 이후의 사회적 공공재원의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역문화정책에 대한 기능적 측면에 편향된 접근은 사회정책으로서 문화정책이 기본적으로 담당해야할 사회적 활력의 유지와 회복력에 기여하는데 그 한계가 뚜렷할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현 단계에서는 공공정책으로서 문화(예술)정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필요한 상황이며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들을 정책방향 설정에서 앞서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사회 발전 전략으로서 지역문화정책도 당연히 필요하며 유의미하지만 그것에 대하여 기능적 접근에 치우쳐서는 정작 충분한 효과를 창출할 수 없으며 따라서 지역에서의 문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함.
둘째, 문화예술정책은 자원의 투입에 따른 산출의 효과 못지않게 그 파생 효과에 대한 기대와 예상을 전제로 짜여져야 한다. 그런데 현재 지역문화정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전략과 과제는 그 부분에서 매우 취약하며 이 역시 표면적으로는 상향식 의제설정을 표방하고 있으나 전형적으로 하향식·공급형 문화정책의 틀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무엇보다 지역 문화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의 생태계의 복잡성에 대한 고려한 자율성·능동성의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사업단위로 바라보고 있는 관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런 관점의 근본적 수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지역에서 지속적인 성과의 재생산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