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일이 계기가 돼서 고향을 자주 가게 됐다. 가으내 이곳저곳도 들러보고 옛 동창들을 중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나보기도 했다.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의 저자 양미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내 고향은 멀지 않지만 분위기나 정경은 적잖이 다르다. 물론 군(郡)의 동쪽은 산악 지역이며 거기서 흘러나오는 물이 강을 이루고 그 강이 오랜 시간 흐르고 넘치고 하면서 서쪽 에는 널따란 평야를 만들어 놓았다. 이런 평야를 경관생태학에서는 충적평야라고 부른다. 나는 어릴적에 그 강에서 살다시피 했다. 여름에는 헤엄을 치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거나 사냥(?)을 하기도 했다. 장맛비에 범람한 강물이 들판에 넘실대던 일도 여러 번 봤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는 농촌과 강에 대한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는데, 물론 그 기억이라는 것이 황금빛 기억일 리만은 없다. 가난과 설움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꿈을 자주 꿨다. 전라선 열차가 철교를 건널 때, 특히 밤에는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곽재구, 「사평역에서」)을 단 밤 열차를 강둑에 앉아 바라보면서 모더니티를 동경하고는 했다.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떠날 수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이 모더니티가 황지우 시인의 말처럼 끔찍한 것임을 이내 깨닫게 됐다. 그렇다고 돌아갈 땅이 있는 것도 아니니 유랑민 같은 심정으로 살아왔다고나 할까.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의 저자처럼 내가 『녹색평론』의 충실한 독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런 경험들 때문이리라.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을 펼쳐 읽으면서 든 첫 번째 감정은 어떤 당혹감이었다. 그 원인을 자꾸 생각해 보니 내가 농촌에 대해 일종의 판타지를 갖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지칠 대로 지친 나이와 처지가 된 것일까. 물론 이런저런 일로 고향을 더러 찾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족 문제 때문이었는데, 그때마다 눈에 밟히는 것은 이리저리 파헤쳐지고 개발이 된 산과 들이었다. 『녹색평론』의 충실한 독자답게 거대한 근대문명이라는 역사적 시간을 실감했고 그것이 다시 내 어릴 적 기억을 양각시켰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농촌이 곧바로 도시의 대안일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아예 없었다.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는 왜 지금 농촌이 곧바로 도시의 대안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 이 책은 ‘시골살이’에 필요한 일자리 문제, 이동권 문제, 주거권 문제, 젠더 문제 등을 저자 자신의 경험과 취재를 통해 매우 자세하게 들고 있다. “도시는 순환하지 않는 공간”이고 “착취와 소비가 최선이고 최선인 곳”이기 때문에 “도시를 축소하고 도시적이지 않은 것들과 뒤섞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끝에 시골살이를 택했지만 “시골 또한 해체하고 재활용, 새활용을 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저자가 이렇게 ‘무자비하게’ 지금의 시골을 비판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시골이 순환하는 공간이자 대안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단절된 것들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임금노동이나 판매농이 아니어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등등.(이상 59~61쪽) 이런 기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의 시골은 정말 문제투성이다. 사실 이런 세세한 비판의 목록을 작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저자가 ‘시골살이’에 진정이기 때문에 실감할 수 있었을 테고, 그 문제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조사하고, 기록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관계 기관에 문의하고 시정을 요청했을 것이다.
이 비판의 목록이 결국 가 닿은 지점이 ‘민주주의 문제’라는 데에 나는 흔쾌히 동의하지만, 왜 시골에서는 민주주의가 더 손쉽게 실종되는지에 대한 물음이 희미한 게 아쉬웠다. 시골에서 민주주의가 도시보다 손쉽게 실종되는 것은 도시 사람들이 또는 현재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시골을 “따뜻함”이나 “훈훈함” 같은 정서의 안식처로 삼아서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저자가 ‘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가 잘 안 된 사건에 시골에서 민주주의가 실종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것을 파헤치지 못한 채 “나는 여기서 시골살이의 가장 큰 걸림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실종이다. 소수의견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이미 만들어진 구조에는 순응한다. 열린 토론과 저항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로 넘어가 버린 점은 결국 시골살이의 문제점을 반복해서 강조한 것에 머문 느낌을 준다.
‘에너지 협동조합’이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는, 저자가 들려주는 바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설비 업체들이 이미 자리 잡은 상황에서 지원금을 놓고 협동조합이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내부 의견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토론과 저항”이 없는 구조와 문화, “민주주의가 실종된 세계”(이상 225)다. 여기서 나는 질문을 하나 던지고자 하는데, 당연히 이것은 저자의 입장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대화와 토론을 위함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질문은 간단하다. 토론과 저항이 있으면 민주주의는 확보되는가?
내가 최근에 고향을 자주 가게 된 이유에는 다른 것도 있지만, 고향에 숨겨져 있는 역사와 강의 생태적 가치를 조금 더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의뢰 받은 과제의 주제도 바로 ‘민주주의 문제’였다. 사실 민주주의만큼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인 말도 없을 것이다. 독재자도 민주주의를 들먹이고 파시스트도 민주주의를 아무 데나 갖다 붙인다. 이런 상황의 연속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았는가, 도대체 무슨 연유 때문에 반민주주의자들마저 민주주의를 파렴치하게 들먹이고 있는가, 이게 최근의 개인적인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더 ‘촘촘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지자체 단위도 너무 넓다. 민주주의는 집과 마을에서 먼저 시작해야 한다. 처음 귀촌해서 살았던 친구들 이야기다. 친구들이 집을 짓기로 하고 장소를 찾을 때였다. 그중 중요한 고려 사항에는 ‘아이들의 의견’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떤 결정에서 배제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누군가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226)
문제는 현실에서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고, 지켜지지 않는 것을 넘어 왜곡되거나 이미 합의된 약속과 제도를 기만하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벌어진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도 당연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제를 체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대 아테네의 인구는 현재 대한민국의 농촌 기초자치단체 수준보다 조금 더 많았다. 알려진 바로는 12만에서 15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 도시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이유로 적은 인구를 들고는 한다. 근원적으로 민주주의는 인구가 많은 국가 단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단지 인구 때문이었을까? 펠레폰네소스 전쟁 기간에 있었던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문을 읽어보면 아테네 시민들의 결속력이 얼마나 강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공동체 구성원이 자기가 사는 장소에 대한 정서적, 정신적 동질감이 형성될 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종국적으로 실패했다. 그 이유는 물질적 부를 좇는 문화가 팽배해져 스스로 제국화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나라 안팎으로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 것도 물질적 부에 맹목적으로 매달린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의 예에서 보듯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의 도시 밖을 끊임없이 욕망했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사는 장소에서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 자리에 물질적 부를 향한 공통된 욕망이 들어오게 된다. 결론만 간단히 말하면, 주민들의 내면에 지역성(locality)이 사라지면 민주주의도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가설 하나를 우리는 조심스레 세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대체 ‘지역성’이라는 것이 무엇이냐일 텐데, 그것은 거칠게 말해서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생성된 고유한 내면이라고만 해두자.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보유되는가? 가장 첫 번째로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밥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밥에도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배어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깨진 상태에서는 풀뿌리 민주주의도 위험에 빠진다고 나의 경험들이 아우성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역을 말할 때, 지역의 리얼리티인 깨져버린 지역성을 먼저 느껴야 하지 않을까?
양미의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는, 뒤집어서 생각하면 그 밥을 얻기 위한 쟁투의 기록이기도 하다. 도시의 순환되지 않는 밥은 먹지 않겠다는 결심이 저자를 시골로 향하게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시골은 지역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이 먹는 밥에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그 자리를 이런저런 형식적인 제도와 법리들이 꿰찼다. 그런데 이게 시골 자체의 문제인가? 그것은 그동안 대한민국의 근대사가 도시만, 특히 서울만 비대하게 살찌우느라 시골을 방치하다 못해 이용해왔기 때문 아닌가? 그리고 뭐가 뭔지 모르겠는 서울의 문화를 시골에 이식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 꺼져가는 모닥불에 마른 장작을 던져주듯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말한 지역의 리얼리티가 고통스럽게 표현된 시 한 편을 소개해 보겠다.
사기당해 밤길 밟아 고향을 떠났던 누이
스무살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에 밤길 밟아 달려왔다
조각난 얼굴
어디에도 없는 눈
아들의 마지막 얼굴은 누이의
가슴속에서 조각난 채로 무너졌다
구석이 흐느끼다가
구석으로 밀려났다
잘못 디디면 끝도 없이 떨어질 벼랑으로
누이는 밀리고 또 밀렸다
만날 때마다 늘 마지막이었던 아들
저승에서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밀려난 구석이 가슴을 쥐어짰다
―박경희, 「구석에서」(『미나리아재비』, 창비)
시의 내용은 참담한 개인사지만, 그 바탕에는 “잘못 디디면 끝도 없이 떨어질 벼랑”이 지금 우리의 시골이라는 뜻하지 않은 메시지가 잠겨 있다. 모든 것이 “밀리고 또” 밀리고 있는 시골에 이식되고 있는 것은 바로 도시의 이그러진 민주주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