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충격적인 계엄령 시도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실천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 문화원이라는 공간이 지닌 민주주의적 가능성과 창의적 잠재력을 재조명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 글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많은 문화원 종사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중 30년 경력의 문화원 선배와 3년 차 후배의 대비되는 대화는 문화원의 변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선배가 말하는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는 사랑방' 같았던 문화원은, 현재 '콘크리트 벽 안에 단절된 아파트'로 그 성격이 변모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 한국 문화기관의 구조적 변동을 함축한다.
주목할 만한 전환점은 지자체 보조금이 문화원 운영에 투입된 이후이다. 이는 운영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진전이었으나, 과거에 존재하던 문화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제약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일부 공공기관화 된 정체성은 관료주의적 문화와 독성 리더십이 자리 잡는 토양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 진단은 지역문화원이 직면한 도전과 과제를 명확히 보여준다. 과거의 공동체적 가치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관료제의 경직성을 넘어설 새로운 운영 패러다임의 모색이 시급하다. 이것이 바로 지역 문화원이 당면한 시대적 과제의 본질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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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문화원은 두 가지 핵심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탁식 리더십의 만연이며, 다른 하나는 관료제의 경직화다. 이는 마치 한 뿌리에서 자라난 두 그림자와도 같다.
탁식 리더십은 조직과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리더의 파괴적 행동 패턴을 의미한다.
2008년 메릴랜드 대학의 Schmidt가 수행한 탁식 리더십 연구는 군 조직을 중심으로 한 실증적 분석을 통해, 탁식 리더십의 다차원적 특성을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의 연구는 탁식 리더십을 단순한 부정적 리더십의 하위 범주가 아닌, 고유한 특성을 지닌 독립된 개념으로 정립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Schmidt는 탁식 리더를 "비인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감독을 예측할 수 없는 패턴으로 발휘하며,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 홍보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리더십은 여러 특징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구성원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무시하는 비인격적 감독 행태이다. 또한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며 일방적 의사결정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자기중심적 사고와 과도한 자기애적 성향, 그리고 개인의 성과와 이미지를 조직의 목표보다 우선시하는 자기홍보적 성향이 더해진다. 특히 감정적 기복에 따른 비일관적 행동 패턴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큰 혼란을 야기한다.
탁식 리더십의 병폐는 서구 학계에서 주로 군대 조직을 통해 연구되어 왔다. 군대라는 공간이 위계적 권력 구조와 절대적 복종이라는 특성을 지니기에, 리더십의 부정적 영향을 가장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Schmidt의 분석틀은 현재 문화원이 직면한 리더십 문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렌즈를 제공한다.
문화원에서도 이러한 탁식 리더십의 징후들이 발견된다. 상급자의 감정과 선호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는 프로젝트 방향성, 일방적 의사결정, 소통의 부재는 조직의 창의적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장기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가기보다는 어떤 원장님이나 국장님이 취임하느냐. 혹은 그 원장님이나 국장님이 지자체와의 관계가 좋으냐에 따라 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이런 외부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내부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대다수의 구성원들을 설득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식의 사업들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들은 마치 알람이 울리는 것처럼 정기적으로 들려오는 볼멘소리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적극적인 직원들이 업무에 흥미를 잃어가게 되고 문화원에는 인내심이 많고 소극적인 사람들과 그들을 답답해하는 관리자와 리더만 남게 된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린다는 대중가요에 노랫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그러는 줄 모르고 그런 문제를 반복하며 남 탓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관료제의 경직화가 더해지면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을 제시한다. 복잡한 결재라인과 형식적 문서주의는 문화원 본연의 역동성을 저해한다. 사실 절차가 왜 있는지에 대한 본질을 고민해보고 어떤 절차를 남길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구성원들의 동의와 평가가 있다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보다는 그 절차를 버티는 인내심을 가지고있고 창의성은 부족한 이들이 남게 될 확률이 훨씬 높다. 여기에 단기적 성과주의를 뿌리면 아주 멋진 요리가 완성된다. 오로지 평가지표에 종속된 문화 프로그램들은 점차 그 본질적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이중의 도전은 문화원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관료제의 안정성과 창의성의 역동성 사이에서, 문화원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단순한 조직문화의 개선을 넘어, 지역 문화기관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재정립하는 근본적 물음과 맞닿아 있다.
역설적이게도, 지역문화원의 가장 큰 잠재력은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작음'에서 발견된다. 거대 문화재단의 관료적 몸집과 달리, 문화원의 소규모성은 오히려 민첩한 실험과 창의적 도전을 가능케 하는 토양이 된다. 이는 마치 전통 장인의 작업실이 대규모 공장보다 더 섬세한 혁신을 이뤄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화재단에서 일을 하다 문화원에 취직한 한 직원은 문화재단에서 일할 때 사업 대상자로 문화원을 만나고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대부분 공모를 진행하고 관리하는데 머무르는 문화재단의 기획자와는 달리 문화원에서는 스스로가 기획을 진행하고 실행까지 하여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문화원에서도 기획자의 의도를 담아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고 그 직원도 결국 근속 년수 3년의 벽을 넘지 못했다.
문화원의 운명은 리더십의 성격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리더십 아래에서는 직원들의 의지와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프로그램의 DNA처럼 스며들어 자연스러운 문화적 진화를 이룬다. 반면, 권위적 리더십 하에서는 이러한 자생적 발전이 억제되어 문화적 화석화를 초래한다. 이는 문화원장과 사무국장의 역할이 단순한 행정가를 넘어, 지역 문화생태계의 정원사와 같은 존재여야 함을 시사한다.
현대 문화산업의 흥미로운 사례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한국에서 공연을 기획하는 기업 [프라이빗 커브]는 8인의 소규모 조직이다. 하지만 2024년에 186억 원 매출규모의 공연을 진행하고 대규모 음악 축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였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많은 문화공연 분야의 기업들은 그 규모와 명성에 비해 소위 '작은 거인'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공공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는 문화원의 입장에서 사기업들의 매출규모를 들먹이는 것이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이는 오히려 지역 문화원이 거대 문화재단과는 차별화된, 고유한 생태적 지위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원은 이제 '작지만 강한'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을 재발견해야 한다. 관료제의 틀은 최소한으로 유지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창의적 실험이 가능한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닌, 지역 문화의 새로운 실험실로서 문화원의 진화를 의미한다.
지역 문화원의 혁신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닌, 문화적 실험실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요구한다. 이는 마치 전통 한옥이 현대적 주거 공간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처럼, 과거의 가치를 현재에 맞게 재구성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이러한 혁신의 시작점은 '작은 거인 전략'의 채택에서 찾을 수 있다. 대형 문화재단이 놓치기 쉬운 미시적 문화 현상들, 즉 골목길의 이야기, 시장의 속삭임, 마을의 기억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원의 고유한 영역이다. 이는 지역 문화의 DNA를 보존하는 핵심 작업이며, 문화원만이 수행할 수 있는 특별한 사명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리더십의 패러다임 전환도 절실히 요구된다. 문화원장과 사무국장은 지역 문화의 '촉매자'로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들은 더 이상 직원들의 창의성을 억제하는 관리자가 아닌, 지역 문화의 씨앗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는 원예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수직적 명령체계에서 수평적 협력 구조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혁신의 또 다른 핵심 축은 실험적 프로그램의 활성화에 있다. 문화원은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모든 문화적 시도를 값진 학습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는 마치 장인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만의 기법을 완성해가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이 모든 노력의 궁극적 지향점은 문화원을 '지역의 문화적 살림터'로 재정립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문화 행사의 집행소를 넘어,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삶이 유기적으로 숨쉬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진화는 문화원이 진정한 의미의 지역문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지역 문화원의 혁신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오래된 한옥에도 수세식변기와 전기가 필요한 것처럼 그간 약점으로 지적되어왔던 문화원 조직의 취약성을 강점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문화적 거점으로 거듭나는 것과 같은 섬세한 진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러한 혁신의 핵심에는 '미시적 문화생태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제가 있다. 문화재단과의 직접적인 경쟁을 하기 어려운 거대 담론이나 화려한 행사를 추구하기보다는 지역의 일상적 문화 실천에 주목해야 한다. 크기보다는 디테일과 신선함을 중요시하고 많은 수의 참여자들을 동원하는 것보다는 한 명 한 명 참여자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문화원의 회원이 되거나 문화원의 행사에 적극적이고 헌신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회원을 만들어, 문화원이 펼치는 다양한 사업에 파트너의 감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늘려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조직 문화의 근본적 전환도 시급하다. 관료제의 경직성은 최소화하되, 창의적 실험의 가능성은 최대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조직도의 변경이 아닌,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펼칠 수 있는 소통을 최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원들이 마치 자신의 일이라 착각(?)하는 수준의 책임감을 가지고 사업을 운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는 정확한 해법이 없는 문제이며 경영과 관리의 덕목과 부딪히고 협상해야 하는 지점이지만, 문화적 생명력이 숨쉬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소통하여 찾아야 한다.
더불어 문화원에는 '실패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문화적 실험에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따르기 마련이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그 실패로부터 배우는 지혜다. 이러한 시행착오와 학습의 과정을 통해 문화원은 진정한 의미의 실험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문화원은 이제 단순한 문화행사의 실행기구를 넘어, 민주주의와 창의성이 공존하는 실험실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희망이 담긴 실천 방향을 제시하여 많은 이들과 토론하고 싶다.
무엇보다 문화원은 '기억의 방주'로서 기능해야 한다. 지역의 미시사(微視史)와 생활문화를 섬세하게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은 문화원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이며 특기이다. 급속한 도시화와 세대교체 속에서 사라져가는 지역의 기억들을 수집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절실한 문화적 사명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문화원은 문화적 민주주의의 실천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관료제적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구성원 모두가 창의적 실험의 주체가 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닌, 일상적 업무 과정에서 실천되어야 할 구체적 과제다.
더불어 세대 간 문화적 가교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인구가 늘어나는 지역이 있는 반면 생활조건이 열악한 지역은 여전히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문화원은 여전히 현대적인 문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전통과 지역토박이, 노년층과 가깝다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 전통과 현대, 노년층과 청년층, 토박이와 이주민 사이의 문화적 소통을 매개하는 것이 문화원의 핵심적 기능이 되어야 한다. 이는 지역사회의 문화적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을 담보하는 근간이 될 것이다.
문화원은 또한 문화적 실험의 안전망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실패를 용인하고 그로부터의 학습을 장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쉽게 찾아와 해보고 싶은 사업을 이야기하고, 문화원이 그들과 함께 실패를 각오한 도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와 경기도 지역문화원들이 추진한 '미래유물'이라는 슬로건은 이제 다른 지역에서도 사용하는 공공의 자산이 되었다. 미래유물전 사업의 성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실패를 각오하고 지속한 사업들이 현재 빛나고 있는 모습은 문화원이 창의적 실험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도전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문화원은 문화적 네트워크의 허브로서 기능해야 한다. 개별 문화원의 고립된 활동을 넘어, 지역 내 다양한 문화주체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문화원의 실험이 지역문화 생태계 전반의 혁신으로 확장되는 토대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문화원의 혁신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나 제도 개선의 차원을 넘어선다. 조금은 거창하지만 이는 지역문화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여는 역사적 과제일 수 있다. 과거의 따뜻했던 공동체적 가치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미래지향적 문화실험의 장으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문화원이 마주한 시대적 소명일 것이다.
참고자료
머니그라피 유튜브 : 3일에 42만원? 페스티벌 티켓 비싸도 매년 적자나는 이유 (feat. 코첼라, 서재페, 펜타포트, DMZ) | B주류경제학
https://www.youtube.com/watch?v=RdGHjRIkRfY
전영수, 이희수, 손승연,「독성(Toxic, 毒性) 리더십: 문헌고찰 및 향후 연구방향 제시」 리더십연구????, 제10권 3호 2019: 95~121쪽
김영곤, 노성민, 「상관의 유해한(Toxic) 리더십이 조직 구성원의 이직의도에 미치는 영향????, 「한국지방행정학보」 제14권 제2호(2017. 8): 201-227쪽
손승연, 박희태, 이수진, 윤석화, 「상사의 성격 특성과 차 상위 상사의 지원이 상사의 모욕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경영학연구????, 제 38권 4호 2009, 1059~1084쪽
한승주, 이철주, 최흥석, 「정부 관료제의 예견에 대한 책무성 고찰」, 「행정논총」 제58권 제2호(2020. 6): 35~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