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이 정책 용어로 생겨난 지 20년을 앞두고 있다. ‘문화예술’과 ‘교육’의 결합체로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의 협력으로 탄생한 이 용어는 이후 그 사이를 떠돌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20년을 보냈다.
법적으로는 ‘문화예술 및 문화산업, 문화재를 교육내용으로 하거나 교육과정에 활용하는 교육’으로 정의되며,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과정 중심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실제로는 ①학교 교육과정 틀 안에서 예술교육의 기술적 한계를 보완해주는 학교 문화예술교육 ②실용적인 방식으로 문화예술교육을 규명해 내야 하는 과제 안에서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사회 문화예술교육 그리고 최근에는 ③사회문제를 해결 ‘해야 하는’ 문화예술교육으로, 결국 결과가 중심이 되도록 설계하는 오류를 만들어냈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정책 이행, 지원기관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주목할 만한 양적인 확대를 이루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는 ‘예술’교육을, 어느 때는 예술‘교육’을 강조하며 그 사이에서 무한히 흔들렸고, 문화예술교육과 예술교육을 동일시했다가 구분했다가 하는 과정에서 지원사업 또한 이리저리 부유하게 되고 말았다. 이에 “문화예술정책과 교육정책의 만남은 문화예술교육정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제도화 추진과 정책운영 과정에서 또 다른 형태의 문화정책‧예술정책으로 회구”*1)하게 되고 말았다는, 제도화 초기에 제기된 문제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문화예술교육의 정책적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방이양일괄법’이 시행됨에 따라, 문체부에서 지자체로 지원하던 지역 문화예술교육 사업비 대부분이 지방분권화 차원에서 지방이양 사업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중앙과 지역에서 충분히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논의하거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자체의 예산 편성 자율권 확대는 자본주의, 숫자의 논리가 우선되어 문화예술교육을 변두리로 밀어내 버렸다.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된 국가권한을 지역으로 이양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나,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확립하지 못한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을 이제는 지역이 알아서 설정하고 지역 맞춤형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추진하라는 것이 과연 지역을 위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짚어볼 만하다.
올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지역소멸과 인구감소에 대응해 보겠다는 취지의 정책사업이 추진됐다. 지방소멸 가속화가 본격화 되는 상황에서 “문화취약지역 주민 대상 문화예술교육 참여 기회 확대를 통해 지역 간 문화격차 완화 및 삶의 활력 제고로 정주여건을 향상”*2)하겠다는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공모를 통해 선정된 단체에게 지역(기초 지자체 단위)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도록 1억 원 씩 총 60억 원을 지원*3)했다. 단체는 지역주민의 수요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맞춤형 문화예술교육을 실행하며 (국가 차원에서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지역 활성화와 정주여건 개선에 대한 성과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러나 사업의 필수요건으로 제시된 10개 이상, 200시수 이상의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제한은 이 사업을 단순 기능교육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더불어 주민들의 삶의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시간*4)도, 연구를 위한 예산도 지원하지 않았으며 ‘1억 원이나 지원한다’는 폭력적인 태도로 실패의 책임을 운영단체에게 전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사업은 정주여건 향상은커녕, 자본주의적 논리에서도 1억 원 만큼의 가치 있는 일들을 벌이지 못해 25년도 문체부 예산안에서도 전액 삭감되고 말았다. 이처럼 국가가 수혜의 대상으로서 국민을 내려다보며 ‘정상적(으로 규정한)’ 프로세스 내에서의 실행만 허용한다면, 앞으로도 문화예술교육은 계속해서 현장과 유리된 채 부유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교육은 세상을 살리거나 구원하는 수단이 아닌, ‘단 한 명’의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시민랩 히읗의 구애]
∙타인을, 다른 세계(관)을 유쾌하고 만나고 만들기 위한 몸 만들기의 기초
∙세상을 구하고 지역을 살리느라 갈아 넣은 나를 위한 수행과 명상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을 뺀 모든 것에 관한 상상
∙각자, 함께 만들어가는 10주 간의 문화적 여정
∙100만 원 프로젝트 활동비 지원(無정산 원칙)
∙자기 관성과 투닥거리며 이리저리 흔들리기
‘허술하게 헐렁하게 히죽거리는 문화예술교육’을 추구하는 영등포문화재단 YDP창의예술교육센터의 ‘시민랩 히읗(ㅎ)’의 수행 요건이다. 이 프로젝트에 ‘동행자’로 역할 한 임재춘 대표(커뮤니티스튜디오 104)는 가시적인 성과를 지나치게 추구하거나 너무나도 시혜적인 문화예술교육에 문제를 제기한다.
시민랩 히읗(ㅎ)의 전시, 2024 히죽히죽 팝업 실험실
‘지역’이라는 말은 일종의 싱크홀 같은 역할을 해요. 보통 지역에서 무언가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친절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운영하게 돼요. 기획자나 예술가들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깊거나 얕은 기술들을 자꾸 보여주면서 빠르고 쉽게, 사람들이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구체화하죠.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이 이론적이고 체험적인 방식으로 공회전 하게 되는 거죠.*5)
‘시민랩 히읗(ㅎ)’은 기존의 문화예술교육 원리에서 벗어나 내 삶에서 어떠한 예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을 빼자는 도전적 선언 후 어떠한 예술이 나에게, 우리에게 필요한지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중심이 된다. 10주 간의 ‘탐색-연구-실험-공동 실험’의 과정이 진행되며, 여기에는 매뉴얼도, 반드시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결과물도 없다. 임재춘 동행자는 타인을, 다른 세계를 유쾌하게 만나기 위한 몸 만들기를 위해 생각을, 상황을 전환해 보자고 제안한다. 이는 공공시설이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계속해서 제공해야만 하는 공간이 아님을, 시민은 공공서비스를 계속해서 기여 받는 존재가 아님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의 활동 공간을 ‘시설’이 아닌 ‘장소’로서 인지하도록 하며, 나의 시선과 관심 그리고 삶과 지역의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는, 즉 자기 자신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개인에서 더 확장된 ‘관계자’로 이해하도록 한다. ‘시민랩 히읗(ㅎ)’은 시민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머리로 찾는 똑똑한 이야기가 아닌,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경험을 중시한다. 임재춘 동행자는 이 실험을 통해 “시민과 문화, 실행이라는 문화기획을 둘러싼 일련의 존재와 행위들이 개인의 것으로 폐쇄적인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최소한 공공의 장에 꺼내어짐으로써 지역적인 것, 사회적인 것, 문화적인 맥락을 확보”*6)하게 된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의 공공성은 주로 국가가 개인에게 혜택을 주어야 하는 시혜적 역할로 이해된다. 이는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것들을 소유한 주체가 국가라는 것과 연결된다. 국가가 소유한 혹은 소유했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개인은 점점 더 쪼그라들게 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도시학자인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시민이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참여하는 개념의 ‘전유’를 강조한다. 그는 시민이 도시에 대해 “도시 생활에 대한 권리, 부활된 도시 중심성에 대한 권리, 만남과 교환의 장소에 대한 권리, 생활 리듬과 시간 사용에 대한 권리, 완전하고 완벽한 시간과 장소의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권리”*7)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전유는 곧, 도시 거주자들이 도시 공간의 생산을 둘러싼 의사 결정에서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며, 시민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른 공간을 창출할 권리를 말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도시의 진정한 주인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권리인 것이다. 외부세계를 향한 관심과 나와 타인의 권리를 따뜻하고도 날카롭게 살피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관계자’가 된다. 숫자의 논리, 다수의 논리에 치인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 시민으로서 사소한 권리를 주장하고, 불합리한 것에 대한 작은 불복종의 경험을 통해 타인들과 교감하는 것, 이 자체가 예술이고 배움이다.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문화원에서는 이미 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2024년 경기도 지역문화원 3대 아젠다 채택」(2023.12.15.)을 위한 선포식을 열고 3대 아젠다 중 하나로 “지역문화예술교육 거점이 되도록 노력한다”를 선포한 바 있다. ‘거점’을 사전적 정의인 ‘어떤 활동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지점’으로 이해했을 때, 문화원은 문화학교를 통해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서 단편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단순히 모이는 곳 이상의 ‘중요한 지점’이 되기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특히 문화원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현재 대부분의 문화원에서는 국악, 무용, 서예 등의 ‘지식 습득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기능교육이 무조건 잘 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지식 습득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문제다. ‘수혜자’가 아닌 ‘참여자’로 대상을 바라보며, 모인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들을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 경기도 문화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생각하고 듣는’ 문화예술교육의 두 가지 예로 과천문화원의 [경험공유학]와 평택문화원의 [월간 진위향교]를 꼽을 수 있다. 과천문화원에서 어르신 문화학교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경험공유학교]는 타인들과 ‘나이 듦’의 풍경을 나누고 존중하는 공유의 시간을 통해 어르신들이 ‘선배시민’*8)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지역 공동체에 참여하도록 한다. 또 평택문화원의 문화유산 활용 사업인 [월간 진위향교]는 시민들이 지역의 문화유산을 경험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든다.
한편, 지금까지 정책 차원에서 정의해 온 문화예술교육 거점은 지역 안에서 문화예술교육 활동이나 자원을 기획하여 엮어내고 촉진하며, 문화예술교육 환경 및 생태계 그리고 협력 구조의 조성과 활성화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를 의미해 왔다. 이를 위해 중앙 차원에서는 공모사업을 통해 지역의 현 상태를 섬세하게 진단하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주체들과 의논하는 구조를 만들어가도록 국고 보조금*9)을 지원한 바 있다. 그러나 ‘지원사업’이라는 틀 안에서의 지원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3년 간(2020~2022) 이어진 사업이 종료된 지금 그간 사업을 통해 구성된 거점의 형태가 얼마나 흩어졌을지는 짐작할만하다. 그러나 문화원은 법적 근거를 기반으로 설립된 법인으로서, 공공의 자원을 토대로 민간의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수행해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정책적 의미의 문화예술교육 거점을 그대로 이어가기 보다는, 문화원만의 거점 형태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하던 대로’의 관성에 의해 매번 똑같이 운영되거나 회원 수 유지에 목적을 둔 수업, 또 가르치는 대로 배워야 하는 노래교실, 국악교실이 아닌, ‘한 사람’을 염두에 둔 문화예술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해진 매뉴얼도, 결과물도 없기에 흔들리거나 불안정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조금은 이타적인 활동 말이다. 그러한 문화예술교육을 계속해서 생산해 내고 확산하는 주체로서의 문화원의 역할이 필요하다. 문화원이 가진 지역 원천콘텐츠에 대한 이해, 지역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을 기반으로 한 실험과 시도, 용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을 지역의 다른 주체와 공유하며 조금 더 나은 것을 만들어가는 실험,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낸 프로그램을 이곳저곳에서 실현할 시도, 그리고 또 다른 실험을 위해 ‘내 것’이라 여기지 않고 움켜쥐지 않을 용기 말이다. 앞으로 전개될 문화원의 ‘문화예술교육’ 말고, “문화예술교육!”이 기대된다.
과천문화원, 경험공유학교 같이 가치 축제
* 1) 이병준, 「문화예술교육정책의 비판적 재구성과 미래전망: 문화정책과 교육정책의 불완전한 통합을 넘어서」. 『문화정책논총』 제19집,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07, 11면.
* 2)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2024 예술로 어울림] 공모안내문 참조.
* 3) [2024 예술로 어울림]은 정책적 목표에 따라 문화취약지역을 2개의 유형(산업단지형/문화취약형)으로 구분하여 60개의 단체와 기초 지자체 단위의 사업지역을 선정했으며, 단체별 1억 원의 지원금을 통해 사업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 4) 본 사업의 실제 운영기간은 6월 4주부터 12월까지로, 6개월 남짓에 불과했다.
* 5) 영등포문화재단 YDP창의예술교육센터의 ‘2024 창터 포럼 [배움의 여정]’에서의 임재춘 대표의 발언 중에서.
* 6) 영등포문화재단 YDP창의예술교육센터, 2023 YDP창의예술교육센터 시민랩 히읗(ㅎ) 실험기록집, 2023, 35면.
* 7) H. Lefebvre, 『Right to the City』, 강현수, 『도시에 대한 권리』, 책세상, 2010, 30면.
* 8) ‘선배시민’이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시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시민권 이론을 토대로 더 나은 공동체를 상상하고 변화시키고자 실천하는 ‘나이 든 보통 사람’을 의미한다.
* 9)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간 [기초 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 구축 지원사업] 공모를 추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