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영도건물전경
‘문화도시 영도를 지키는 시민대책위원회’의 단톡방이 분주하다. 지난 11월 30일, [2차 문화행동의 날]의 행사 사진과 영상이 연거푸 올라온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여서 문화제를 하고 시민 공청회를 열어 ‘문화도시 영도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계속 밝히는 중이다.
인프라가 부족했던 고향이 다채로운 섬이 되었다고 하는 영도 출신의 청년, 동네 예술가를 만나서 적적했던 하루가 특별해졌다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예술적 감성을 보물섬 영도에서 배웠다는 초등학생까지, 모두가 달라진 영도에서의 삶을 이야기했다.
올해 사업 5년차, 1기 법정문화도시인 부산 영도구는 다방면으로 뛰어난 성과를 나타냈다. 도시의 의제를 문화예술로 대응한다는 비전 아래, 찾아가는 예술활동으로 고립감을 완화하고, 어린이·청소년 문화예술교육 전용 공간을 만들어 지역 돌봄과 인구소멸의 두 가지 난제에 동시에 맞섰다. 최우수문화도시로 선정됨은 물론, 영도라는 섬의 정체성이 담긴 ‘영도체’와 ‘한 선 잇기 브랜딩’으로 세계 디자인 4대 어워즈를 수상했다. 이렇듯 큰 변화를 만든 문화도시 사업을 영도구가 지속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업종료를 결정했다. 문화도시 사업의 지속을 원하는 주민들의 면담 요청에도 묵묵부답,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날 역시, 영도구 주요 관계자를 초청해서 지역 주민들과 의견을 나누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지만,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앞서 주민들은 문화도시 영도의 존립을 위해 9월 20일, [1차 문화행동의 날]을 열었고, 참여 시민 누적 210명이 39일 동안 릴레이 피켓시위로 영도구청 앞 출근길을 지켰다. 매일 나오는 주민이 거기서 거기고, 적은 인원이라 대응하지 않는다는 뒷말을 들으면서도 서 있는 주민들은 의연했다.
2023-문화도시박람회국제컨퍼런스-개막식
2021년,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고립’과 관련한 연구를 제안받았을 때, 시류를 고민한다는 목적과 함께 영도의 사회적 환경에 대응하는 일임을 직감했다. 낮은 재정자립도, 빠져나가는 인구, 늘어가는 빈집들이 영도구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외로워지는 사회에서 문화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안고 시작한 지 4년째, 영도의 결핍 요소를 다방면의 문화예술 활동으로 보완하고 예방하면서 끊임없이 ‘연결’과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똑똑똑예술가
똑똑똑이웃파티
[똑똑똑 예술가]는 4년째 비자발적 고립에 처한 주민들의 집을 예술가가 직접 방문하여 함께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참여 주민 개인마다 하고 싶은, 또는 해보고 싶었던 예술 장르를 선택하여 예술가와 둘러앉아 도란도란 글 쓰고, 그림을 그리며 노래도 부른다. 우리 동네 주민이자 예술가 선생님은 손님인 듯, 아닌 듯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이다. [똑똑똑 이웃파티]는 지역에 터를 잡은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 축하 파티를 열어 새로운 주민을 환대하고 이웃으로 연결하는 시간을 가진다. 동네 곳곳에서 이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순간이 펼쳐진다. 주민들이 보내준 사연의 장소로 직첩 [찾아가는 예술배달]은 문화예술 활동을 접하기 어려운 어린이집, 가족센터, 노인복지관 등 영도 곳곳을 직접 방문해서 연주회를 연다.
[시민동아리], [시민동아리PD]가 영도 전역에서 활발하게 커뮤니티 활동을 했다면, 이웃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영도의 생활문화 공간인 [연결공간]이 없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23개 영도 로컬문화 비즈니스 협력 단체들의 공동 프로젝트인 [영도 로컬문화 비즈니스 공동 행사]는 북스테이, 골목마켓, 전시체험, 업싸이클링 작품 제작, 할매 마을강사 육성 프로그램 등을 개최했으며, [YD컴온클럽]은 로컬문화인들이 호스트가 되어 동료를 찾고, 현장에서 겪은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로 구성했다. 모두 동네에서 소소하게 복작복작하는 분위기의 프로젝트이다. 특히 ‘로컬문화’, ‘로컬문화인’이라는 단어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여기까지 안과 안을 연결하는 이야기라면, 이젠 바깥과 안을 연결하는 이야기이다. 예술과 지역, 예술과 사회를 연결하고자 하는 청년 예술인이 자신만의 문화적 방식으로 영도를 마음껏 탐험하고,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실험하는 한 달간의 ‘예술인 워케이션 프로젝트’ [예술선단x내-일의 항해캠프]와 실험적인 예술 프로젝트들을 선보이는 쇼케이스 《모든 배는 파도를 넘어서 간다》는 ‘영도’를 주제로 한 렉처, 토크, 파티, 참여 워크숍 등으로 구성되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해석한 영도를 새롭게 접하는 법, 지역을 주제로 한 기획의 공감 얻는 법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영도의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한 문화상품과 여행상품을 통해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하는 [도시기록자]는 평소 알던 영도라는 곳을 새롭게 즐기는 방식을 제안했다.
무엇보다 해양문화예술교육의 원형을 만들고자 개관한 [보물섬 영도]에서는 지역 어린이들의 창의성과 감수성을 깨울 수 있도록 계절별로 창의예술프로그램을 여는 동시에, 창업스쿨과 어린이마켓까지 이벤트로 개최했다. 문화예술활동 생태계의 기반이 되는 기획자, 활동가, 문화예술교육자를 [기획자의 집]과 [문화예술교육자 네트워크]로 성장시키고 있고, 영도 어린이들의 교육환경이 나아지길 위해 실천하는 활동가들의 [스스로 실험실: 교육환경 리빙랩]도 진행한 바 있다.
내-일의 항해캠프
개인의 서사가 곧 영도의 서사라는 것을 공유하며 시대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아카이브 영도], 그간 축적된 문화도시의 의미를 전달하는 웹진 [다리너머 영도]까지, 이 모든 내용이 영도 사람과 지역의 이야기며, 그 중심엔 ‘커뮤니티’가 있다. 이처럼 영도문화도시센터의 모든 사업이 마치 [영도체] 마냥 한 선으로 이어져 있다.
또다른출항회
연결과 관계, 이 두 단어는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주제어이다. 특히 연결과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 사람, 콘텐츠(프로그램)가 있어야 한다. 한 가지 요소라도 빠져서는 안 되지만, 능동적으로 계획하고 연결하는 역할은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하는데, 현재의 대한민국 문화도시에서 그간 법정문화도시가 강조한 시민참여와 거버넌스의 내용이 정책적으로 희미해졌다. ‘자유와 연대’라는 국정철학 안에서 시민참여는 수동적인 향유자 차원의 입장에 가까워졌고, 실제 현장을 만드는 기반인 거버넌스는 자취를 감췄다. 이런 상황에서도 영도 주민들은 시민으로서의 품격을 지켜가며 문화제를 열어서 꿋꿋하게 맞서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행정에게 대화를 청하고 있다. 이렇듯 자녀의 학군 문제로, 지역 이미지 문제로 떠나려 했던 주민들은 영도에 불어온 새로운 문화의 바람으로 인해, 변화를 느끼며 단순한 만남을 너머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연결과 관계는 일어나는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사람과 함께 나누는 시간, 소소한 대화, 마음을 여는 순간들이 모여서 커뮤니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이런 연결의 힘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커뮤니티에 활력을 불어넣어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든다.
노란안녕
작년 봄, 청학동에서는 등굣길에 한 소녀가 생을 마친 매우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는 소녀가 좋아했던 노란색을 상징화하여 《노란안녕》 전시회를 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영도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프로젝트 전시이자, 이곳에 살아갈 이들의 안녕을 전하는 전시이기도 했다. 친한 주민 세 분이 몇몇 작품의 공동작업자로 참여했는데, 이분들의 자녀들은 소녀와 친구였다. 특히 더 안타까운 점은 이분들은 사고 이전에 ‘안전한 청학동 통학로’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커뮤니티는 지역을 제일 잘 알고 있다. 늘 지켜보고, 늘 곁에서 느끼고 있기에 ‘커뮤니티를 통한 안녕’을 마음에 늘 품고 산다.
올해 12월 초, 영도문화도시센터의 ‘또다른 출항회’를 지켜보고자 200명 넘는 주민들이 봉래동에 모였다. 문화도시 영도의 5년간 남긴 항로를 따라가면서 동행한 주민들과 영도문화도시센터 크루들은 ‘너도, 나도, 영도 크루닻’을 외쳤다. 더 큰 파도를 함께 헤쳐나가는 진정한 크루가 되자는 마음을 나눴다. 아쉬움보다 서로에게 고마움이 더 큰 자리였다. 유난히 내 주변을 지켜주는 다정한 안녕이 느껴졌다. 특히 부산에서 만난 여러 인연이 건네는 진심이 고맙다. 마음만은 무척 따뜻한 연말이다.
어린이 해양문화예술교육 특화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