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정의의 ‘조직’은 어떤 기능을 수행하도록 협동해 나가는 체계, 즉 개개의 요소가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면서 결합하여 일체적인 것을 이루고 있는 형태를 말한다. 따라서 개인의 직업 정체성은 조직의 성장과 직결되기 때문에 조직 DNA 분석을 위해서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직업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원 직원들의 직업 정체성과 조직적 지향, 더 나아가 개인이 모여 조직된 집단이라는 관점에서 문화원의 조직문화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경기도 지역의 문화원 직원 세 명과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대담자들
대담개요
ㅇ 일시: 2024년 7월 30일(화) 오후 2시
ㅇ 장소: 서울역 인근 회의실
ㅇ 참여자
- 진행: 최실비 웹진 경기문화저널 편집위원
- 대담
· 연규자 시흥문화원 사무차장
· 황수근 평택문화원 학예연구사
· 조용균 연천문화원 사무과장
- 참관: 김명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연구원
최실비(편집위원): 우리는 누구나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직장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소질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개발하여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저에게 문화원에 재직한 시기는 일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과 추진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본인에게 어떤 내적인 힘이 있으며, 그것이 업무를 추진하는 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조용균(연천문화원): 규정짓지 않는 것이다. 원장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조 과장은 안 가려’인데, 그 말이 저에겐 큰 힘이 된다. 규정짓지 않고 다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곧 저의 내적인 힘이다. 트럭도 끌었다가 승용차도 끌었다가, 행사장에 있다가 사무실에 있다가. 규정짓지 않으니 여러 형태로 변화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조직에 빈틈이 생기면 채울 수도 있다.
황수근(평택문화원): 게임 용어로 설명하자면, HP*1)가 높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다. 체력 혹은 버티는 힘이 강하다는 건데, 꼭 육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 체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의 높은 HP는 문화원에서도 잘 사용된다. 동료들이 흔들리거나 예민할 때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흔들림을 잡아주는 역할을 많이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하지만, 흔들리지 않도록 곁에서 지지해 주면 더 튼튼한 꽃을 피울 수 있다. 단단히 잡아주는 흙과 땅이 되어주는 것이 나의 힘이다.
연규자(시흥문화원): 시류에 흔들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문화원의 여러 바람과 역경을 이겨내며 27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원장님, 국장님도 제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결국 제 의견을 존중하고 따라 주신다.
최실비(편집위원): 조직은 개인과 개인의 행위들로 구성되며, 그것을 통해 목표를 달성해간다. 개인 또한 조직을 통해 공동의 행위 속에서 직職과 업業의 균형을 맞추어 간다. 즉, 조직의 구성원인 개인은 조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실현하고 동시에 조직은 개인을 통해 그 목표를 실현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일터에서의 역할과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보았으면 한다.
연규자(시흥문화원): 총무는 ‘살림’으로 일컬을 수 있다. 살림이 자리를 잡아야 가정이 잘 돌아가듯이, 총무 역시 문화원에서 중심적인 일이다. 문화원은 비영리단체로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가 없는, 목적에 따른 결산만을 하는 곳이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회계와는 차별점이 분명히 있으며 그렇기에 신뢰가 더 중요하며 그 신뢰는 곧 원칙과 규칙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에 저는 신뢰를 지키는 사람이자, 살림하는 사람이다.
황수근(평택문화원): 학예연구사는 직업적으로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전문가를 뜻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학술과 예술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학예연구사는 소속된 조직에 따라 역할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문화원의 학예연구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연구라고 하면 지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만을 떠올릴 수 있으나, 사실은 발굴한 기초자료를 활용하여 다양한 기획을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렇기에 저는 기초자료 수집뿐 아니라 콘텐츠화를 통해 현장에 투여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일을 한다.
조용균(연천문화원): 입사 전까지는 작곡을 하면서 지내다가 고향인 연천으로 돌아왔다. 연천문화원은 규모가 작은 게 특징이다. 원장님, 국장님 그리고 저 이렇게 세 명이서 근무한다. 국장님은 보통 사업 전반의 큰 틀을 잡으시고 실무는 제가 맡아서 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이 사업을 기획하기도 하고, 행정과 회계도 해야 하고, 문화회원들과 대면하며 그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저의 역할 자체가 곧 문화원이다.
좌담모습
최실비(편집위원): 그렇다면 앞서 이야기 나눈 본인의 특성이 문화원이라는 조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해 달라.
황수근(평택문화원): 저는 역사 전공자로서 역사적 지식을 연구와 책 기획 등으로 점점 확장시켜왔고 그것이 축적되어 평택문화원이 지역학에 전문성을 갖춘 단체가 됐다. 평택시의 박물관 건립 관련 부서에서도 문화원에 자료와 자문을 요청하며 긴밀하게 소통하는 등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더불어 제가 중요시 하는 건 콘텐츠 활용이다. 연구, 조사, 발굴된 원천 콘텐츠를 기반으로 지역주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인데, 이야기, 영상, 애니메이션, 소설, 축제, 공연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저는 사실 역사를 연구하는 것보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전략을 짜는 것, 즉 기획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지역 문화유산을 활용한 축제를 꾸준히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는데, 내가 가진 지식과 나의 지향점이 잘 결합하여 조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규자(시흥문화원): 조직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내가 또 그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게 잘 돌아가면 조직이 발전하는 것 같다. 총무 업무를 하면서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총무를 담당하기에 상위기관인 시와 업무를 할 때도 있고 외부와의 접점이 많아서 외부에서 저를 통해 문화원을 보는 시각이 생기는 것 같다. 그렇기에 저라는 개인의 이미지가 문화원의 영향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에 자긍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조용균(연천문화원): 문화원에서 일하면서 제 경험의 장점을 살려서 신뢰도를 쌓아 가고 있다. 연천문화원은 문화학교에서 오카리나, 우쿨렐레 교육을 하고 있는데 음악은 제가 해왔던 것이다 보니 발표회를 할 때 공연에 필요한 걸 알고 있어서 좀 더 수월히 진행할 수 있다. 특히 문화원 행사에 굳이 음향팀을 부르지 않아도 진행할 수 있다. 사실 입사 초에는 음악을 한 경험이 문화원에서 쓸모가 없을 수 있겠다 싶어서 아쉬웠는데, 이제는 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즐겁고 잘 써먹고 있다.
최실비(편집위원): 이어서 개인이 모여 조직된 집단의 관점에서 문화원 조직문화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문화원 내부에서 개인이 성장하는 힘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조용균(연천문화원): 문화원 입사 전까지 예술인으로서 공연을 하고 돈을 받는 입장이었기에 행정이나 기획의 시각은 갖추지 못했었다. 그런데 역할이 바뀌어 지역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시각이 많이 트였다. 저에게 연천이라는 동네는 조그맣고 조용한 곳이었는데, 문화원의 직원이 되어 보니 문화원의 여러 사업이 이곳 저곳의 움직임과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목격한다. 연천의 젊은이이자 매개자로서, 지역과 문화예술의 교차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황수근(평택문화원): 문화원은 공공의 지원을 통해 여러 사업을 추진하지만, 한편으로 민간단체인 비영리 사단법인이고, 소규모의 조직이라는 특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수익률을 따지지 않고 문화 그 자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면서 동시에 효율을 추구할 수 있다.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 방향에 따라 효율적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작은 조직의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구성원 간 합의만 되면 빠른 결정과 추진이 가능한 구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문화원의 조직문화는 빠른 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최선의 효율을 위해 최고의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원 직원 개개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조직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한 명의 기획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즉각 확인할 수 있고, 또한 지역주민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그들의 평가로부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문화원에서는 이를 활용해서 직원들의 인정 욕구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제가 문화원에 10년 이상 재직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원의 조직적 특성을 통해 추진한 일을 통해 인정욕구가 소화되었기 때문이다.
최실비(편집위원): 그렇다면 문화원에 소속된 직원으로서 문화원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황수근(평택문화원): 문화원은 조직적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지역문화의 산파 역할을 하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잘 만들었으니 이제 너희가 가져가, 우리는 또 다른 걸 만들게’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문화원은 그런 기반 조성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평택문화원의 경우 평택농악보존회를 만드는 데 역할을 했고 경기도의 각 문화원들 역시 경기도민속예술제를 통해 공공의 예산이 투여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민속예술을 보존하고 확장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이 문화원의 역할이다.
연규자(시흥문화원): 시흥문화원은 문화유산해설사 교육을 지역 내에서 최초로 시행해서 그분들이 경기도문화관광해설사가 되었다. 시에 문화관광과가 생기면서 소속이 바뀌었지만 문화원이 지역문화 매개자를 양성한 것으로 산파 역할을 한 것이다. 월미농악보존회 또한 문화원이 발굴했고 그 결과로 보존회가 만들어졌다. 문화원을 경영 측면에서 봤을 때, 수익을 창출할 수 없고 예산의 90% 이상을 시로부터 지원받다 보니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해나가고 있고 해 낸 거다. 그렇게 해 나가는 것을 지속하니, 개인으로서는 성취감이, 조직의 구성원으로서는 자긍심이 든다.
지역의 문화예술 영향력을 분석하는 각종 연구, 통계 등에서 문화원이 제외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역문화는 오롯이 문화원의 것인 줄 알았던 시간이 지났다. 문화원이 만든, 문화원을 만든 축적의 시간은 막을 내린지 오래다. 문화원에서는 뒤늦게 위기를 인지하고 이유를 찾으니 ‘인재人材’가 없기 때문이란다. 왜 하필이면, 문화원에만 인재가 없는 것일까. 혹시 조직이, 리더가 인재를 품고 기를 능력이 없어서는 아닐까.
원장이 바뀔 때마다 문화원이 바뀐다. 문화원에서 10년 이상 재직한 어느 직원은, 여러 명의 원장님과 함께 일했는데 문화원의 지향점이 원장의 지향에 따라 바뀌었고, 그때마다 시행착오도 반복되었다고 한다. 문화원의 설립 목적에 따라 방향을 설정하는 게 아니라, 리더 개인이 추구하는 개인적 목적이 더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원은 리더가 바뀔 때마다 왜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하는지 진득하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문화원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이 더 중요한 조직이다. ‘누구의 것’인 문화원이 아니기 위해서는 외부적로는 지역 현장과 끊임 없이 소통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임원과 회원을 위해 직원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우수한 직원들을 살필 눈이 없는 리더는 직원들의 마음 한 조각 얻지 못하고 결국 고립되어 버리고 만다.
그것이 결국 조직의 좀비화를 이끈다. 장석류 교수는 [좋은 문화행정은 무엇인가]에서 조직의 좀비화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처음에는 서로를 불편해하며 눈을 피하고 서로 인사를 하지 않는 증상을 보이고, 증상이 심해지면 한편의 느와르 영화처럼 꼭 필요한 사람의 등에 화살을 쏘기도 한다는 것이다. 좀비화가 더 심화되면 서로를 비난하고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 이로써 조직은 우울증을 앓게 된다.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조직은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된다. 인간은 내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특히 직업으로서 문화예술 계를 택한 사람들은 금전적인 성취보다 지역주민들이 문화예술적 경험의 과정에서 존재와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역할과 기여를 하고자 하는 선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직원들의 직업 동기와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기회를 주면서 인정욕구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리더의 성패를 가른다. 신뢰를 받고 싶으면, 신뢰를 보내면 된다. *2) 문화원 직원들과의 대담은 직원들의 직업 정체성과 가치관을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제 더 이상 회피할 곳이 없다. 조직이 인재를 품고 기르면, 인재는 다시 좋은 조직을 만들 것이다. 인재는 귀하고, 소중하다. *3)
*1) HP는 Health points의 축약어로 게임에서 캐릭터가 피해를 버틸 수 있는 능력을 수치로 표현한 것. 주인공 캐릭터의 HP가 0이 되는 순간 캐릭터는 사망하거나 진행불가 상태가 된다.
*2) 장석류, 「좋은 문화행정이란 무엇인가」, 사과나무미디어, 2023, 197면
*3) 위의 책, 1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