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문화원과의 인연은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었으나 민속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문화재 관련 연구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마을을 조사하여 숨겨진 민속문화와 인문자원 등을 발굴하거나 개발이나 댐 건설 등으로 인해 사라지는 마을에 대한 세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마을 조사는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문헌을 통한 면밀한 사전조사가 필요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바로 지역의 문화원이었다.
내가 제대로 된 마을조사를 처음 시작한 곳은 통영의 한산도 섬에 있는 ‘ 문어포 ’ 라는 마을이었다. 이곳을 대상으로 마을재생사업이 추진되었는데, 1년 차에는 마을의 전통문화와 민속문화를 조사 발굴하고, 2년 차에는 이것을 자원화하여 마을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업이었다. 마을에 대한 사전조사를 위해 도서관에서 이것저것 문헌자료를 찾아보았으나 60가구가 채 되지 않는 바닷가 마을과 관련된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행여나 관련된 자료가 있다고 하여도 대부분 확보하기 어려운 자료들이었다. 이때 통영문화원이 사업의 공동 추진 주체였는데, 인사차 들렀던 문화원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의 지역에 대한 대부분의 자료가 모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았던 자료들도 쌓여 있었다. 그리고 당시 문화원 사무국장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헌자료를 통해 절대 알 수 없는 마을에 대한 정보와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박한 지식 등 현장을 직접 겪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귀중한 내용들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민속학을 계속 공부하면서 여러 마을에 대한 조사를 꾸준하게 진행하였으나 그때마다 본격적인 마을조사를 하기 전 항상 지역의 문화원을 방문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문화원을 방문할 때마다 소장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역사ㆍ문화적인 자료를 보고 놀라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문화원은 한마디로 그 지역의 역사ㆍ문화자원의 보고 그 자체였다.
특히 문화원이 직접 제작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자료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지역민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자료라는 것이다. 민속학이나 지역학을 연구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의 관점으로 이해된다. 첫 번째는 바로 조사 대상(마을 또는 집단 등)의 입장, 즉 내부인의 시선에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외부인의 시선에서 이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시선에 대해 광부와 금세공인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내부인의 시선이 현장에서 원석을 캐고 황금과 돌덩이를 분류하는 역할을 한다면, 외부인의 시선은 황금덩이에서 순금을 추출해 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문화원의 자료들은 지역의 언어와 지역 주민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자료이기 때문에 지역 문화의 원천자료로 볼 수 있다. 지역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역사, 문화, 전통, 가치관 등 내부적인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특히 지역민의 이야기에는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의미와 맥락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를 지역민의 시각으로 그대로 정리한 것이 문화원의 자료들이었다. 나에게 있어 문화원의 이런 자료들은 지역 문화의 본질에 근접하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그러나 문화원 자료들의 그 중요성과는 달리 제대로 활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문화원의 자료가 활용되기 어려웠는데, 첫 번째는 자료의 체계적인 관리가 미흡하였다. 문화원의 자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문화원을 직접 방문하여 자료를 스스로 찾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민속학이나 지역학 연구자, 또는 지역의 향토사학자들의 연구자료로 활용되는 경우가 전부였다. 지방문화원에서는 지역 문화에 대한 발굴과 조사에 집중했으나,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 문화원에서는 지방문화원 원천콘텐츠 발굴 사업으로 인해 지방문화원의 자료들을 디지털화하여 지역문화의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문화원의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지방문화원의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되고 있으며,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문화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문화와 관련된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좀 더 쉽게 지역민에게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사업은 장기적으로 지역민에게는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워주고 지역 정체성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문화원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의 부족이다. 지방문화원의 자료들은 지역의 역사ㆍ문화와 관련된 세밀하고 미시사적인 자료이며, 이는 지역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자료였다. 그러나 이는 지역 내에서 중요한 요소였을 뿐 제도권 안에서 이를 발휘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주의 깊게 살펴볼 부분은 바로‘ 국가유산 ’ 정책의 변화이다.
최근 문화재보호법이 전면 개정되어 국가유산기본법이 제정되면서 ‘ 문화재 ’ 라는 용어가 ‘ 국가유산 ’ 으로 대체 되었다. ‘ 문화재(財) ’ 는 그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재화의 개념으로 사물, 가치, 행정, 규범적으로 한정된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중심으로 중점 보호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다. 반면 ‘ 문화재 ’ 로 지정되지 못한 ‘ 문화유산 ’ 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이번에 ‘ 문화재 ’ 를 대신하여 변경된 ‘ 국가유산(遺産) ’ 이란 명칭은 기존의 재화의 개념에서 벗어나 역사‧정신을 아우르는 확장을 꾀하고 사적 소유의 개념보다 공동체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개념이다. 기존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던 비지정문화재 및 향토문화유산, 그리고 잠재적 유산까지 보호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포괄적 보호체계로 정책이 전환되었다.
지방문화원의 역사ㆍ문화 자료들은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자료이지만 이를 보호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 국가유산기본법의 제정은 지방문화원의 역사ㆍ문화 자료를 바탕으로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지역의 역사와 전통문화와 관련된 자료가 축적되어 있는 지방문화원에서는 굉장히 익숙한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가유산청에서도 이전처럼 지정된 ‘ 문화재 ’ 의 보호에서 벗어나 지정되지 못한 ‘ 문화유산 ’ 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부터 추진된 미래 무형유산 발굴ㆍ육성 사업은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으나 미래에 지정될 수도 있는 지역의 중요한 무형유산을 발굴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 강원도는 ‘ 속초 돈돌라리 전승 확산 ’ 과 ‘ 평창 메밀농경과 음식문화 ’ 가 공모에 선정되었다. 두 사업 모두 문화원의 대표 프로그램이었던 어르신문화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던 사업이었다.
속초의 ‘ 돈돌라리 ’ 는 함경도 민요로 실향민들이 속초에 정착하면서 지속적으로 부르게 된 독특한 지역의 문화이다. 속초문화원에서는 예전부터 이를 발굴하고 프로그램화하여 어르신 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 진행하였다. 또한 어르신 문화동아리를 구성하여 공연과 같은 문화 봉사활동을 진행하였다. ‘ 평창의 메밀농경과 음식문화 ’ 는 예전 어르신문화프로그램의 ‘ 생활문화전승 ’ 이란 프로그램에서 발굴한 사업이었다.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 산촌마을에서 어르신들이 평생 먹어왔던 음식 이야기를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촌마을의 전통 음식문화를 어르신들과 함께 재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문화원이 지역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운영해 오던 프로그램들이 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더욱 그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이처럼 문화원은 끊임없이 지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가꾸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지역 역사ㆍ문화와 관련된 자료들이 축적되었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과 제도가 정착되었다. 문화원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고리타분한 어르신들의 문화가 구축된 곳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고리타분한 것들이 정말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화원이 가진 가장 큰 힘이 발휘될 조건이 갖추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