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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로컬의 시대, 경기도 문화원은 어떤 비전을 제시했나
고영직 | 문학평론가
2024 문화도시 박람회장에서

‘사람하는 도시, 사랑하는 도시.’ 문체부가 주최하고, 춘천시와 춘천문화재단이 주관한 [2024 문화도시 박람회]의 슬로건이다. ‘문화가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한 슬로건이었다.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강원도 춘천시 중도 레고랜드 코리아 주차장에서 열린 [2024 문화도시 박람회]는 28개 문화도시별 매력 넘치는 홍보 부스가 꾸려졌고, 다양한 도시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각종 포럼과 라운드테이블이 열려 ‘나와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가?’를 즐겁게 고민할 수 있는 자리였다. 특히 이번 박람회는 춘천마임축제와 서로 손잡고 진행됨으로써 문화도시 춘천의 남다른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충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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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 또한 적지 않았다. [지역과문화포럼]에 참여한 방송대 성연주 교수의 말처럼, 소위 로컬(Local)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지만, 로컬이란 개념이 너무나 손쉽게 소비되는 것 아닌가 돌아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화가 곧 사람’이라는 가치는 한낱 슬로건에 그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춘천시와 춘천문화재단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문화도시를 추진하는 도시뿐만 아니라 각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들이 지역사회의 의제를 문화적 관점으로 풀어내려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다시 ‘시민력(市民力)’이 강조되고, 문화분권과 문화자치가 소환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최근의 로컬 붐 현상이 마냥 긍정적은 것만은 아니다. 문화도시 박람회 [로컬감각포럼] 행사에서 고윤정 부산 영도문화도시센터장이 “브랜드(brand)만 있고, 브랜딩(branding)은 없다”고 한 말은 매우 적절한 비판이었다. 결국, ‘브랜딩화’란 시민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화도시’ 또는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지정된 각 도시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기후 위기 같은 지구적 의제뿐만 아니라, 빈집 증가 등 지역 소멸 내지는 인구 소멸 이슈 같은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문화적으로 대응할지 생각하고, 내가 사는 지역에서 즐겁게 개입하고 실천해야 한다. 문화실천과 행동이 꼭 ‘중후장대한’ 활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지역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역의 미래가 마냥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지역을 바라보는 중앙정부의 시선과 정책이 여전히 중앙집권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정부는 자금 배정 권한을 행사하며 2024년도 지방정부 교부금을 대폭 삭감했다. 지역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 지역 스스로 각자도생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각자도생은 혼자 살다가 혼자 죽는 것을 뜻하는 ‘각자도사’가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하다.
지역은 인구 소멸, 지역 소멸 같은 자기 앞의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지역은 인사와 예산 등의 권한 행사에 있어서 여전히 중앙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의존해야 한다. ‘기민(棄民)정책’에 가까운 정부의 정책 기조는 가뜩이나 상실감에 젖어 있는 지역 사람들에게 자칫하면 열패감을 줄 수 있다. 자기 문화에 대한 열등감과 자기혐오의 감정이 지배적인 상태에서 온전한 서사가 구현될 수는 없는 법이다. ‘지역의 눈’으로 전환하려는 관점과 태도 그리고 정책(사업)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문화원, 지역 소멸과 고유문화 위기에 적극 대응하자

하지만 지역의 문화원은 로컬의 시대를 맞아 최근의 지역문화정책의 흐름을 적절히 이해하며, 적절히 ‘개입’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는 전국 또 는 경기도의 문화원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화원은 지난 70년 동안 “문화원이 뭐 하는 곳이에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계속된다. 지속가능한 문화원의 존립을 위해 문화원의 비전을 고민하며, 지역 실정에 맞는 적절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2022년 12월, 31개 시·군의 문화원장을 비롯해 사무국장 그리고 전 직원들의 총의를 모아 처음으로 [경기도 31개 지역문화원 2023년의 약속]을 발표했다. 크게 세 가지 내용이었다. ▲첫째, 2023년에는 문화원 지원/육성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전체 문화원에서 수립/완료한다. ▲둘째, 2023년에는 문화원 조직경영 선진화를 위한 각종 제 규정을 정비 완료한다. ▲셋째, 2023년에는 문화원 임직원 역량강화에 힘쓴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이와 같은 ‘약속’에 따라 문체부, 경기도의 도움을 받아 중장기 발전방안 수립을 위한 컨설팅을 지원하고, [표준규정]을 제정해 직제, 인사, 보수 표준규정을 제정했으며, 원장당/국장단 해외연수 및 직원들의 직무연수를 강화했다. 2024년 현재 경기도 26개 문화원이 중장기발전방안을 완료하는 등 높은 달성률을 보인 점은 가시적인 성과였다.
하지만 지역 문화원의 조직 비전을 마련하기 위한 경기도문화원연합회의 고민은 2024년에도계속되었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2024년 경기도 지역문화원 3대 아젠다 채택](2023.12.15.)을 위한 선포식을 열고 조직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경기도 31개 시·군의 문화원장들이 주도적으로 비전을 고민하고 실천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조직 혁신의 기폭제가 되리라 기대된다. ▲첫째, 지역학(향토문화) 연구소 조직을 정비/강화하여 지역문화 아카이브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한다. ▲둘째, 지역문화예술교육의 거점이 되도록 노력한다. ▲셋째, 일하기 좋은 문화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2023년에 비해 더 진전된 조직 비전을 고민했다는 점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2023년과 2024년 문화원의 조직 비전을 아래 [도표]를 통해 비교해 보면 더 진전된 문제의식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조직 내부를 정비한 후(2023), 조직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지역’의 문화/예술교육 거점(2024)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분명히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도표] 경기도 지역문화원 3대 아젠다(2023/2024) 비교. ⓒ경기도문화원연합회.
2023 아젠다 2024 아젠다
2023년에는 문화원 지원/육성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전체문화원에서 수립/완료한다 2023년에는 문화원 조직경영선진화를 위한 각종 규정을 정비 완료한다 2023년에는 문화원 임직원 역량강화에 힘쓴다 경기도 지역문화원은 지역학(향토문화)연구소 조직을 정비/강화하여 지역문화아카이브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한다 경기도 지역문화원은 지역문화예술교육의 거점이 되도록 노력한다 2024년부터 경기도 지역문화원은 일하기 좋은 문화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조직의 비전 수립을 위해 31개 시·군의 문화원장들이 적극 앞장섰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역 소멸, 고유문화 소실 위기는 우리 눈앞의 과제이지만, 이에 대한 문화적 개입은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도 문화원의 경우, 다른 지역의 문화원에 비해 지역 소멸, 인구 소멸 같은 이슈가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이슈일 수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제라도 지역의 문화원들이 자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경영을 선진화하는가 하면, 지역 실정에 맞는 조례와 관련 규정의 제·개정을 통해 조직 운영을 안정화하며 고유문화 소실 등의 이슈에 대응하려는 노력은 결코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함석헌)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문화원의 이러한 자기 혁신이 로컬의 시대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직 배가 고프다.

어깨 힘을 빼자

고민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나는 가장 먼저 ‘어깨 힘을 빼자’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외부에서 볼 때 그동안 문화원의 행사와 활동은 다소 어깨에 힘을 많이 들어가는 행사와 활동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말은 조직이 다소간 ‘경직’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불필요한 의례(ritual)와 행사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지역 문화원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직 비전과 지역 실정에 맞는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실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누군가가 코끼리를 먹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한 번에 한 입씩!’이라고 한 답변은 퍽 생각할 지점이 있다. 물론 사고실험 차원의 질문이니, 오해는 마시라. 여하튼 ‘한 번에 한 입씩’이라는 태도는 문화원의 활동에서도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지역문화 아카이브와 관련해서는 전남 고흥군 여성농업인센터가 지금의 70-80대 여성 농민운동가를 대상으로 2018년부터 지금까지 구술 채록 작업을 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걸출한 이름도, 보란 듯 내세울 것도 없지만, 살아온 시절이 대견했노라고 자신과 이웃을 토닥여 주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생애 구술을 채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은 지역 문화원에서도 이미 하고 있는 활동들이다. 다만, 예민한 문제의식을 갖고 지역의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복원하고자 한 점은 높이 사야 할 것 같다. 『꼬부랑책방: 여섯 할머니 이야기』(2018)을 비롯해 정식 출간된 『미치도록 눈부시던: 1세대 여성농민운동가 구술기』(도서출판 말 2023) 등의 기록물은 여성운동에 부재했던 ‘여성농민’ 기록으로 역사의 공백을 채우는 값진 시도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또 전남 고흥 특유의 ‘갑계(甲稧)’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흥군문화도시센터의 ‘문화갑계’ 활동 또한 지역 문화원에서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200명의 주민들이 취미와 취향을 나누며,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지역을 잇는 문화갑계 활동은 고흥군의 대표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추진된 문화갑계 활동이 주민들 사이에서 ‘브랜딩’되어 가는 과정에서 브랜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대안학교 설립 이후 132명의 학부모가 지역에 귀촌한 충북 제천간디학교 이야기는 지역에서 학교가 고립된 섬이 아니라 지역 사회 네트워크의 중심이 된 훌륭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실상 문화원이 이와 같은 문화 허브(hub)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은 말할 나위 없다.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간디그룹’ 총수 이병곤 교장의 영업비밀은 지역문화진흥원 웹진 《지:문》(2023)에 소개된 바 있다. *1)
이렇듯 사소하고 시시한 사례들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 거창한 것들에 짓눌리지 말자는 의미에서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중후장대한 계획들에 지쳐버리지 않았던가. 주민들이 바라는 활동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고 사소하되 사소함 속에 큰 흐름과 의미가 있는 활동들에 열광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느 논자가 좋은 ‘여건’을 만드는 일보다 ‘얼마나 여지가 있는 곳’(서진영)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한 말은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나와 당신이 사는 지역이 사라지는 지역이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살아지는’ 지역이 되길 바라는가. 나와 당신이 사는 지역이 ‘조금 다른’ 지역을 꿈꾸고, 다른 삶과 다른 시간을 존중하려는 문화의 바탕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시민들이 스스로 가꾸어가야 한다. 토박이 시민, U-턴 시민, J-턴 시민 등 누구랄 것 없이 고루 문화돌봄을 누리고 지역에 사는 재미를 느낄 때 가능해 질 것이다. 지역의 서사가 소멸되지 않도록! 경기도 31개 시·군 문화원들의 작은 실천들을 기대한다.

*1)고재열·이병곤, 「132명의 귀촌인을 ‘배출’한 학교랍니다」, 지역문화진흥원 웹진 《지:문》, 2023년 여름호. https://rcda.or.kr/webzine/202307/detail_meet1.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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