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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업>
<미래유물전>은 무엇을 바꾸었나, 정말 바꾸어낸 것은 무엇인가 ‘코페르니쿠스는 지금도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
이동준 | 이천문화원 사무국장
‘죽쒀서 개주는’ 가진 자의 고통을 위하여

‘죽쒀서 개준다’는 속담이 있다. 애써서 한 일을 남에게 빼앗기거나 남에게 이로운 일을 한 결과가 되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처음부터 개에게 주려고 죽을 쑨 것은 아니었겠다. 그렇담 처음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밥을 지으려고 했을 것이다. 뜨신 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이 되고 만 것이다. 경험이 부족했던 탓일까? 아니면 레시피가 없어서? 갑자기 이 속담을 좀더 진지하게 고찰하고 싶어졌다. ‘죽쒔다’는 말은 부정적인 표현이다. 시험을 죽쒔다는 건 시험을 망쳤다는 뜻이다. 개에게 준다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개는 이류 등급이다. 내가 대접하고 싶었던 대상은 식구다. 사람이 우선이고 개는 어디까지나 그다음 클래스다. 개에게는 남은 음식을 주거나 부스러기를 던져주면 된다. 그런데 죽이 되고 보니 사람에게 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버리자니 아깝고 별수 없이 개에게 고스란히 바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문화플랫폼을 만드는 일도 그렇다. 문화플랫폼은 지역에 새로운 문화의 판을 깔아주는 일이다. 죽 쒀서 제대로 개에게 주자는 것이다. 개에게도 금단의 장소인 ‘올림포스’를 개방하고 특권층에게만 허용했던 ‘암브로시아’를 먹게 하자는 것이다. 토박이가 아니어도, 지체 높은 가문이 아니어도 이제는 창고를 열고 누구나 와서 가져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 아카이브도 지역 콘텐츠를 위한 원천소스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그런 개방된 플랫폼이 되어야 마땅하다. 한국문화원연합회는 2022년 창립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문화플랫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지역문화의 플랫폼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문화원이 그동안 한 일이 지역에 있는 여러 기관과 단체, 주민들에게 이로운 일이 되었다면 앞으로도 문화원은 죽쒀서 남에게 주는 일을 계속하라는 지엄하신 분부다.

그런데 이 분부는 왠지 속상하다. 속상해할 필요가 없는데 이상하게도 속이 뒤틀리고 아프기만 하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당장 먹고사는 일도 힘겨운 폐허 속에서 문화원은 지역에 있는 유일한 문화단체로 황무지 같은 지역에 문화의 씨를 뿌려온 선구자였다. 어떻게 지켜온 지역이고, 어떻게 가꿔온 문화인데 지금 창고를 열라니 그게 말이 돼? 문화플랫폼이 되라고? 문화원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수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알아주지도 않는 일인데 이 멍에를계속 짊어질 필요가 있을까? 억지로 사명을 감당할 수는 없는 일. 문화원은 문화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문제는 간단하다. 인식의 틀만 바꾸면 된다. 문화원은 창고를 지키는 사람이었을뿐 창고의 주인은 아니라는 인식.

‘상 하나 돌려놓으면’ 세상이 바뀐다

플랫폼이 되자는 건, 판을 새로 깔자는 의미다. 형식을 바꾸자는 말이다. 문화원은 그동안 내용에만 집착해왔다. 내용은 콘텐츠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문화원은 지역에 관한, 지역의 고유한 문화에 관한 원천콘텐츠를 갖고 있고 이것만 쥐고 있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왜? 그것이 문화원의 ‘밥줄’이니까.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있다. 너무 아끼다 쓸모없게 된다는 뜻. 아무리 좋은 거라 해도 모셔만 두면 “무슨 소용 있나요?” 그러니 문화원들이여, 적절한 때 쓰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이제 시대는 문화원에게 그 밥줄을 놓으라 명한다. 아낌없이 내놓으시라. 군말이 필요 없다. 그것도 친절하게 잘 애용할 수 있게 판을 차려놓고 제대로 초대하시라는 말씀이다. 누구를? 바로 지역의 주민이다. 우리가 죽쒀서 별수 없이 준다고 생각했던 그 이류 등급이시다. 알아보시겠는가?

. [사진1]쾨니히스베르크(현재는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되어 있으며 '칼리닌그라드'로 불린다)에 있는 칸트의 동상.

내용은 형식이 있어야만 구현이 될 수 있다. 형식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동안 몰랐던 가치도 드러난다. 하지만 형식이 만능은 아니다. 형식도 내용이 없으면 빈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이걸 칸트는 ‘내용이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Thoughts without content are empty, views(intuitions) without concepts are blind)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칸트는 인간의 사유형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은 철학자다. 사람들은 사물을 인식할 때 그 사물의 인식이 사물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칸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물을 인식하는 일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감각을 통해서 들어온 것만을 인식하고 우리가 가진 개념을 통해서만 그 사물을 인식할 뿐이다.

. [사진2]세상을 보는 방식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by Jean-Leon Huens / National Geographic Stock)

이것을 사유 방식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말한다. 왜? 그동안 사람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천체가 돈다고 생각했다. 태양도 말이다. 그런데 관찰해보니 지구가 태양주위를 도는 거였다. 인간의 인식도그렇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사물만을 인식할 뿐인데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고 생각했다. 천만의 말씀. 중세에는 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모든 지식을 동원했다. 스콜라신학이 그랬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믿었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은 현상계를 넘어선 그런 초월적인 세계에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공기의 저항을 느끼는 비둘기가 진공상태에서는 더 잘 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착각.

1897년 해월 최시형이 경기도 이천 설성의 앵산동에 피신해 있을 때다. 우리는 제사상을 차릴 때 벽 쪽에 신위를 두고 음식을 차린다. 그쪽에 신이 내리기 때문이다. 벽을 향해 제사를 차리는 향벽설위다. 그런데 해월신사는 이 제사상을 거꾸로 돌려놓으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절하라 했다. 무슨 의미인가? 나를 향해 절하라는 것이다. 조상님께 절하지 말고 내 안에 모신 한울님께 절하라는 것이다. 과거의 제사는 죽은 사람, 귀신이 중심이었다. 향아설위(向我設位) 제사는 살아 있는 사람, 나와 후손을 중심에 둔다. 제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제사의 주체가 바뀌고 제사상의 방향이 바뀌었다. 천지가 개벽할 제사 예법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이제는 나약하고 힘없는 백성이라고 깔보지 말아라. 다 한울님을 그 안에 모시고 계시다.

지역문화의 새판 깔기

문화원은 그동안 형식 없는 내용만 붙들고 있었다. 그래서 맹목적이었다. 공허하게 벽을 향해 절하고만 있었다. 시민이 없는 벽 쪽은 공허하기만 하다. 지금 문화원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는가? 2023년 5월, 국가유산기본법이 제정되었다. ‘문화재’라는 용어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개념이 180도 달라졌다. 과거의 유물은 ‘문화재’(property)였다. 어디까지나 과거 중심이고 물건이 중심이다. 미래의 유물은 ‘유산’(heritage)이라 부르는 게 좋겠다. 이것도 커다란 개념 전환이다. 미래 중심이고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고 삶의 경험과 양식을 담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언제부턴가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팔을 걷어붙였다. 문화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다. 앞으로 경기도에 있는 문화원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바로 이 ‘죽쒀서 남에게 주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의 지난 10년의 활동을 되돌아보니, 그동안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업이 몇 가지 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최근 들어 경기도의 지역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온 사업을 꼽는다면 [경기도민속예술제], [페스티벌31], 그리고 [미래유물전], 세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이 사업들은 경기도 31개 시・군이 다 함께모여 참여하는 대표적인 문화예술행사이기도 하다.

. [사진3]2023년 오산에서 열린 미래유물전은 '창조적 반복'이라는 주제로, 일상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행위를 문화로 승화시킨 지역장인들을 조명했다.

[경기도민속예술제]는 31개 시・군이 그해 대회를 유치한 지역의 공설운동장이나 체육관에 모여 경연을 벌이고 이를 심사하여 시상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왔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커다란 방향 선회를 했다. 이전에는 한 장소에 31개 시・군이 다 모여서 경연대회를 하고 이를 심사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지역을 일일이 찾아가 그 민속이 실제 이루어지는 동네에서 시연하는 것을 보고 심사하는 방식으로 콘셉트를 바꾼 것이다. 심사의 기준도 이전엔 그 민속의 원형과 얼마만큼 가깝게 ‘복원’하느냐가 중점이었다면 이제는 그 민속이 얼마나 그 지역의 주민들과 일상에서 조화롭게 ‘재현’되고 있느냐에 방점을 찍고 있다.

[페스티벌31]은 컨셉트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여러 번 치열한 고민과 토론이 있었던 것 같다. [페스티벌31]은 2014년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생활문화축제’를 표방했었다. 당시에는 생활문화가 뭔지 개념 정의도 불분명했고, 생활문화의 영역은 문화원이 아닌, 문화재단의 주된 영역으로 간주하던 시기였기에 다른 문화기관들이 펼치던 생활문화동아리 사업과의 변별력이 필요했다. 문화원이라면 이런 범용형 생활문화에서 벗어나야 하고 고답스런 과거의 복원과 답습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페스티벌31]은 각 지역의 고유성과 다양성이 발견되고 어우러질 수 있도록 ‘지역특성화박람회’로 컨셉트를 전환하게 된 것이다.

[미래유물전]은 문화원이 앞을 보지 못하면서 붙들고만 있던 내용에 새로운 눈을 부여하고자 했던 프로젝트였다. [미래유물전]은 과거 그 지역의 정체성과 현재를 살아가는 지역민의 일상적 삶을 보여주는 전시를 통해 우리의 어떤 모습이 미래세대에 전승되고 기억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기획전시이다. 그런데 이 전시 프로젝트는 이름부터가 모순이었다. [미래]와 [유물]은 ‘둥근 사각형’, 또는 ‘네모난 원’처럼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이런 모순이 모순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해의 지평이 더 넓어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눈으로 지역을 바라보지 못했다. 지역 밖에서, 지역의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만이 우리가 아는 전부였다. 그래서 지역 안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했다.

지역에서 살아온,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구전과 이야기 속에서 지역을 바라보는 지역민의 시선이 이미 녹아있음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 아닐까? 내부자의 시선은 지역에 이미 존재했고 그걸 다시 재발견하는 과정이 [미래유물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미래유물전]이 그 지역에서 의미 있는 전시가 되려면 문화원 직원은 적극적인 기획자로 참여해야 하고 주민들은 전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전시는 이런 부분을 선취하기보다는 ‘전시행사’라는 결과물을 내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그런 어려움 때문이었는지 올해 오산에서는 탐구의 범위를 어느 한 지역에서 여러 지역으로, 그리고 탐구의 소재와 주제를 매년 달리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지역문화의 방향성을 쉽게 찾아내고 공감대를 확산해간다는 측면에서 지역민의 관심이 더 높아지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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