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기반 통합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지원하는 사업으로 기존 어르신문화사업에서 통합지원방식으로 전환한 사업이다. 단회성 활동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이나 배움으로 만난 이웃과 또 다른 활동으로 이어가고, 가능하다면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발견하는, 다방면으로 연결되고 펼쳐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통합 프로그램이다.
2022년부터 [경험공유학교]를 시작한 과천문화원 유소영 팀장의 지역 진단은 이러하다. 과천은 1980년대 주목받았던 신도시였다. 관악산과 청계산, 경마장과 현대미술관 등 서울이 갖지 못한 자연환경과 육아 환경이 살기 좋은 최적의 주거지로 주목받았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오래된 도시가 되었으나, 오히려 그동안 보강된 생활기반 환경과 2019년부터 제2기 재건축이 마무리되면서 전체적으로 주민이 증가하면서 올드 앤 뉴(old & new)가 공존하는 도시가 되었다.
과천의 경우 은퇴 후 노년층이 살아가기 좋은 적당히 촌스럽고 적당히 모던한 도시가 되면서 노년인구가 늘어났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복지시설 외에 도시 노년에게 필요한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취약하다*1)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 진단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몇몇 분을 대상으로 예비조사를 진행했다. ‘새로 이사 와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고 있거나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두렵다’거나, ‘오롯이 나를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 ‘인문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욕구를 확인했다. 증가하는 노년들이 자신의 노년기 활동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안내받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기능이 필요하다는 데서 [경험공유학교]가 시작되었다.
오리엔테이션, 서로 익숙해지는 시간.
어르신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사업이지만, 실제 어르신 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은 스스로 어르신이길 원치 않았다. 또 자기 자신을 어르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정체가 애매한 호명 방식이 어른신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누구도 어르신이 될 수 없었다. 다만 어르신이라는 대상만 있을 뿐이다. [경험공유학교]는 참여하는 노년을 선배시민으로 부르기로 했다. 선배시민은 ‘시민권이 당연한 권리임을 자각하고 시민권을 실현하기 위해 공동체에 참여하여 후배시민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노인’*2)이라고 정의하면서 시민으로서 노년의 존재를 강조한다. 그러나 [경험공유학교]에서 ‘선배시민’은 ‘시민’보다 ‘선배’ 즉 지역에 오래 산 경험이 있는 노년으로 즉각적으로 이해되면서 현재 과천에서는 ‘일상 경험을 나누고 함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가고자 자기 이야기를 나누는 노년’으로 선배시민을 정의했다. 선배시민이라는 말은 이렇게 차용된 형태로 어르신을 대신하게 되었다.
작년(2022)까지 [경험공유학교]에는 세 개의 반이 운영되었다. 지금은 두 개 반이 늘어 다섯 개 반이 운영 중이다. 예비조사에 근거해 활동을 구성하고 기존에 강사 경험이 있는 분들이 운영하는 구조다. 활동의 구체성은 참여자들에게 어떠한 활동을 할 것이라는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어 안정감을 준다. 또한 50명 이상의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은 경험 있는 강사가 실제 필요하기도 하며 문화원에서 운영하기에 최선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기존의 언어 방식이 주는 강사-강좌-수강생으로 이어지는 익숙한 연쇄반응이 기존의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들과 다르지 않은 활동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강사들에게 지금까지 가르치고 설명했던 강사 역할에서 참여자들의 이야기와 제안을 수렴하는 역전된 역할로의 변화를 요청했다. 강사를 대신할 호칭으로 강사들이 지은 이름은 ‘이끄미’였다.
[경험공유학교]의 핵심은 자기 일상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데 있다. 경험이 드러나는 것은 이야기를 통해서다.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되묻기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느 병원이 당뇨병 노년들이 방문하기 좋은지, 과천에 안과를 찾기 힘든데 대안은 무엇인지, 모임하기 좋은 공간이 생겼다는 정보 등을 나눈다. 단연 병원 경험이 가장 활발한 주제로 꼽힌다.
“올해 문화원이란 곳에 처음 와 봤습니다. 2020년에 서울에서 살다가 과천으로 이사 왔어요. 작년에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어요. 복지관에서 수영과 어학 강좌를 들었는데 어느 날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낙서예술반을 선택했습니다. 처음에는 내 경험을 서로 공유한다는 것이 생소했어요. 관심 있는 강의를 듣고 오면 되는 건데,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건가 했지요. 지금은 조카 같은 선생님과 (참여자들에게)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에 긴장감이 풀렸습니다. 정든다고 할까요. 나이 들어 가방끈 길이나 재산 자랑은 피곤한 일이에요.” _ 김명희, 낙서예술반 참여자
노년의 특징 중 하나는 노화에 따른 신체적 쇠약을 극복이 아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신체적 변화는 일상의 방식과 취미 변화를 초래한다.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끼고 있다는 김명희 참여자는 자신이 배려받고 있음을 준비물도 챙겨주고 간식도 챙겨주는 짝꿍에게서 느꼈다고 말한다. 노년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나누려면 자기 상태를 먼저 밝혀야 한다.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상대의 신체 상태에 대한 선(先)이해는 편안한 관계로 이어진다. 한자의 ‘존(存)’은 아들의 아들의 아들… 이라는 시간성을 의미하고, ‘재(在)’는 여기라는 공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공간 위에 놓인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자연스럽게 불안정한 무엇이다.
낙서예술반(이끄미 이지혜)에서 이야기 나눔에 활용하는 카드.
[경험공유학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조른다. 말하는 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과 공간과 함께하는 다른 이들의 관심을 점유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있다는 경험은 다음 시간을 예약한다. 내가 와도 괜찮은 자리라는 안정감이다. 적극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거나 다는 논의를 논박하는 말하기가 아닌, 자신의 지나온 경력이나 정체성을 과시하거나 고백하는 자리도 아닌, 서로 연루된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관계적 자아가 회복되는 자리, 이를 ‘서사적 우정’*3)이라고 한다. 동년배들이 동시대적 경험을 배경으로 공감을 이끌어내고 개인적 사연을 나누면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즐거움이 2년을 연이어 참가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다섯 개 반 모두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렴하는 공통된 운영방식을 고수한다. 물론 기초적인 제작 기술을 익히는 시간도 있다. 상상디자인반(이끄미 박우진)은 소재를 이끄미가 정하지만, 재료와 디자인은 참여자들이 직접 정한다. 낡은 티셔츠로 실을 만들어 직조를 해보자고 이끄미가 단초를 만들면 다음의 일들은 참여자들이 알아서 진행한다. 옆사람의 기술을 배워와 짜고 풀고를 반복한다. 집에 싸들고 가는 참여자들도 생겼다. 전에 없었던 일이다. 상상디자인반 성진선 참여자는 “손수 만드는 과정의 기쁨이 의미도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지금은 주어진 소재가 나무다. 평소 아쉬웠던, 혹은 불편했던 일상을 되짚고 필요한 모양의 스케치를 한다. 놓여질 공간에 맞게 치수를 기입한 설계도를 그리고 재단되어 도착한 목재 더미에서 치수에 맞는 목재를 골라내어 작업 준비를 하는 식이다.
상상다자인반 스케치
올해(2023) 새로 생긴 주말산책_나와반(이끄미 방수영)은 주중에 참여하지 못하는 노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새로 생성된 파일럿반이다. 주중에 손주들을 보살피고 있을 노년들이나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거나 혹은 주중에 해야만 하는 일로 참여할 수 없는 노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다. 토요일 오후에 만나 개인적인 산책의 경험을 나누고 코스를 짠다. 그날그날에 따라 코스가 두 개가 나오기도 한다.
더 걷고 싶은 사람, 중간에 쉬고 싶은 사람 등 참여자들의 컨디션에 따라 코스가 정해진다. 누군가는 같이 걷고 싶어서 혹은 누군가 함께 걸으면 조금 더 오래 걸을 수 있어서 참여했다고 한다. 산책 경험이 오래된 주민들이 안내하는 코스를 가보기도 한다. 60-70대가 대부분이다. 여성 참여자들이 열 명이고 남성은 한 명이다. 걷기는 노년기 건강에 필수 활동이지만 혼자 나가서 걷는다는 것이 두려운 면도 있다. 집에서 멀어진다는 그 자체가 걱정되는 나이기 때문이다.
주말산책_나와반 몸푸는 중
올해 새로 생긴 반이 또 하나 있다 기록하숏반(이끄미 박수림)으로 핸드폰을 활용해 자기 이야기를 기록하는 과정이다. 60대가 많은 가장 젊은 반이다.
“과천에 30년 살았다. 주택 있는 동네에서 살았다. 지금은 절반이 빌라가 되었다. 손녀 돌봐주면서 손녀도 기록하고 낮은 담장도 찍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골목 간 분쟁을 해결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배우고 있다. 담장 집은 개를 키우는 것이 문화였다. 지금은 개 짖는 소리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분과 강아지 키우는 스토리를 담아 공유하려고 한다. _ 구무숙, 기록하숏반 참여자
같은 개 소리라도 ‘그’ 개의 소리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어떤 개가 짖고 있는지 상상되면 이해되고 용서도 된다. 주거 형식이 삶의 형식도 바꾼다. 이제 문화와 시대가 변화했다. 내 노력이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지금은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2년째 활동하는 마을잡화반(이끄미 임용훈)은 사람이나 공간, 병원과 약국, 우물터나 사찰, 음식점 등 가리지 않고 과천의 이야기가 담긴 곳을 알고 있거나 알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 함께 논의해 찾아가 볼 곳을 정하고 직접 가 본다. 마을잡화반 활동에 참여하는 김기용님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요. 과천의 많은 사람들이 여기 오니 있더군요”라고 말한다.
과천에 사람이 없을 리 없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만나면 인사를 주고 받는’ 사람들이다.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고 간혹 대소사가 있었다면 한마디쯤 건네는 것이 인사의 형식이다. 사람을 알아차리는 행위인 것이다.
동네 모임이 가능한 카페 겸 갤러리 공간 ‘발견’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 마을잡화반
이처럼 동네에서 만나 한 시간을 함께 걷는 사람들, 변화된 마을에서 함께 살기 위해 강아지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노력, 서로 만나면 눈을 보고 인사하는 사이…. 바로 마을에서 맺는 비스듬한 관계*4)다. 특히 노년층에게 비스듬한 관계가 중요한 것은 또래로만 인맥이 구성되면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외로워지기 때문에 연소자들과 편안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연함, 타인을 맞이하는 문화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문화원의 최대의 장점은 직접적인 친인척 관계가 아니라 해도 지금은 사라진 이웃 사촌과 같은 안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지역에서 오랜 기간 노년 활동을 지속해 왔다는 점이다. 문화원이 노년 문화예술 플랫폼으서 역할이 충분히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경험공유학교]에서는 매년 하반기에 ‘통통시민’이라는 사업을 통해 서너 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모임을 지원한다. 같은 취향의 노년들이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통의 주제를 놓고 만들어가는 활동이다. 올해는 다섯 개 정도의 모임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은 [경험공유학교]의 지향은 통통시민 모임에 있다. 이런 작은 모임이, 많은 다양한 주제로, 여기저기 만들어지는 것. 경험으로서 선배는 물론 시민으로서 ‘선배시민’으로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자기 이야기를 말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다시 되묻기를 하는, 태도로서 관점은 [경험공유학교]가 고집해야 할 핵심이다.
[반짝장_보노보마켓. 그동안 배운 것을 시민과 같이 해보고자 급하게 마련된 장터.
어떤 연유로 시작되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진원지는 잡화반으로 알려졌다.
*1)과천시, 『과천시 시정백서』, 2022.
*2)유범상·유해숙, 『선배시민,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기, 마북, 2022,
*3)김애령, 『듣기의 윤리』, 봄날의박씨, 2020.
*4)김찬호 칼럼 「비스듬한 관계」, 경향신문(2022.11.3.)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1030300075#3F64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