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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업>
_ 인천 아차도 프로젝트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닌 노인의 욕망에 ‘의한’ 프로젝트로 전환하기
박유미 |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 조교수

유년 시절부터 아카데믹한 환경에서 예술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내 삶이 삶 그 자체로 느껴지지 않고 ‘예술을 위한 수단’으로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예술가의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공부를 할수록 일상생활과의 괴리감을 느끼며 지금까지 내가 제1세계 중심의 지식과 언어에 둘러싸여 있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예술의 중앙에 다가가고자 했던 욕망이 진짜 내가 원하던 것이었는지 반문하면서 삶과 더 가까운 예술을 하고 싶은 욕망으로 전환되었다.

조급함이 없는 일

2012년 우연한 계기로 프로젝트를 위해 인천광역시 강화군 민통선 내에 있는 아차도 마을에 거주하게 되었다. 작가로서, 자연인으로서 오랜 시간 몸에 밴 나만의 생활양식과 작업 방식은 처음부터 다시 고려되거나 잠시 접어두어야만 했다. 지역적 연고도, 조부모와의 따뜻한 사랑의 경험도, 비도시 거주 경험도 없었지만, 나의 의도와 기획을 앞세우지 않고 주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자체의 의미를 상기하면서 낯선 일상에 서서히 스며들고자 했다. 목적을 위한 조급함을 내려놓고 한 인간과 그를 둘러싼 공동체를 고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함이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분들께 인사를 하고 일손을 돕거나 함께 밥을 차려 먹었다. 이곳의 생활 리듬에 최대한 맞춰 보려 노력했지만, 언제나 엇박자로 뒤뚱뒤뚱 흔들리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주민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나는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몰랐다. 아주 드물게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카메라 한 대로 마을의 풍경을 촬영했다. 작가로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의 일이 무엇인지 말하기 어려웠지만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자 했다.

“우리 딸도 사진을 좋아하고 잘 찍는다. 벽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작품도 미술이지만, 작가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만나는 것 또한 미술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작가가 하는 활동을 오해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매일 새벽 일어나 일을 준비하듯이 작가도 같은 시간에 자신의 작업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2012년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차도 주민 두 분의 인터뷰 발췌

한량이나 간첩으로 불리던 작가라는 낯선 존재가 서서히 아차도 공동체 안에서 수용되는 과정에서 나는 주민이 예술을 바라보는 개별적인 시선과 개인의 구체적인 삶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술이 아닌 것을 구별하기보다 ‘예술적인 것’ 또는 ‘예술에 가까운 것’을 발견하는 가능성을 작업의 화두로 삼았다.

“한가하고 철없는 소리”에서 시작된 창작 활동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인이 아닌 그분들 스스로가 자기 삶을 성찰하고 편집하는 창작자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창작의 기쁨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림 그리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밭일과 바닷일로 쉴 틈 없이 일하는 아차도의 노동 환경에서 그림을 그려보자는 제안은 그야말로 분노를 유발하는 한가하고 철없는 소리일 뿐이었다. 이곳 생활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냐고 역정을 내셨다. 진땀을 빼며 설득한 끝에 그림 대신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당시 나는 대중교통으로 서울에서 아차도를 오갔는데 편도로만 5시간 반이 걸렸다. 워크숍을 반기는 사람이 없어도 격주로 아차도에 들어오는 모습이 안쓰러우셨던지 참여자들이 하나둘 모여 사진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순전히 동정심 때문에 시작된 워크숍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진행되었다. 나는 카메라 작동법을 알려드리고 외젠 아제(Eugène Atget),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등의 프랑스 사진작가들의 작품도 감상했다. 일하는 중에 틈틈이 찍어온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 둘러앉아 보면서 감상평을 나누고, 멋진 사진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렇게 쌓인 사진들로 첫 사진전을 열게 되었고, 그림 그리기, 시 쓰기, 영상 촬영 등 주민의 다양한 창작 활동이 이어졌다.

“한 세상 뜻있게 살고 싶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차도 주민의 물리적⦁정신적 고립감과 우울감이 높아지고 있을 때 주민과의 일대일 만남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전환하였다. 어느 날 아차도 주민 한 분께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오직 자신을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지 여쭙자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긴 숨을 내뱉으시며 “한 세상 뜻있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고개만 끄덕끄덕하며 이어지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또 다른 한 분께 진짜로 하시고 싶은 게 뭐냐고 여쭙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밭매는 거라고 대답하셨다. 밭매는 게 진짜고 밭을 매야 잡념이 없어진다고. 예상치 못한 말씀에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하셨으니 일하는 거 말고 다른 것을 조금만 생각해 보시라 간청했다. 한참을 고심하시더니 노래 부르는 게 좋다고 하셨다. 애창곡인 심연옥의 [한강]을 부르기로 하고 활력 있게 대화를 마쳤다.

어렵게 끄집어낸 두 번째 욕망이 금세 사그라들까 얼른 [선창 노래방]을 준비했다. 웬만해서는 저녁 나들이를 하시지 않는 분들이 소식을 듣고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름 밤바다를 등지고 평소에는 마시지도 않는 맥주도 한 모금 마시면서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지긋지긋한 모기를 모조리 쫓아내서 더할 나위 없었다. 어떤 노래는 고함처럼 들리고, 어떤 노래는 울음처럼 들렸다. 노래 부르는 게 두 번째로 좋다고 하신 분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인 밭매기로 녹초가 되어 오시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아차도 여름 캠프는 엄마나 할머니로서의 정체성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활동으로 기획되었다. 나로부터 시작하여 공동체로 순환되는 주민의 개별적 욕망과 문제의식이 가시화되고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문화예술 기획자로서 주민의 역할이 확장되었다. 개인의 욕망에서 시작된 충동, 욕구, 바람, 희망에 관심과 흥미를 느낀 타인과 함께하면서 예상보다 큰 연대감과 공감이 형성되었다. 주민이 기획한 프로젝트는 마을 안에서 개인의 역량이 노동으로만 환산되지 않고, 무형의 가치를 생산하고 공동체에 긍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2022 [선창 노래방]

아차도 문화예술위원회

아차도 주민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이제는 작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민에 의한 예술공동체가 조직되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주민에 의한 예술공동체의 조직화는 문화예술활동 지속을 위한 명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 외에 개인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공적인 자리와 지위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아차도라는 지역, 아차도 주민이 관계 맺는 다양한 예술활동 및 탐방, 인터뷰 등에서 주민이 외부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할 수 있는 대표성과 권한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올해(2023) 늦여름, 그동안 열정적으로 함께 했던 주민들과 집중된 회의 끝에 아차도 예술위원회 발족식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그 자리에는 추천에 의해 선출된 고문, 대표, 기획본부장, 창작본부장, 노동본부장, 아트센터장 외에 아차도 주민이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여 즐거운 축하 의식을 치렀다. 아차도 활동을 응원하는 작가들도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었다. 자체 제작한(내가 만든) 임명장은 발족식의 경직된 형식을 벗어나고자 미리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따로 드렸는데 모두들 정말 기뻐하셨고 노동본부장님 임명식은 당연히도 그분의 일터인 밭에서 이뤄졌다.

돌아보니 어느새 아차도에 예술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평균 나이 70대 이상의 스무 가구 남짓의, 그마저도 1인 가구가 절반쯤 되는 아차도 주민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작가들이 기획한 활동에 참여자로 존재했고 오랜 시간을 거쳐 서서히 창작 활동에 매진하기도 했다. 이제는 작품 제작을 넘어 개인의 창작 활동이 공동체에 개입하고, 잘 보이지 않았던 자기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데 이르고 있다. 점점 무인화되고 있는 아차도에 예술이 개입되며 노년 개개인과 공동체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는데, 앞으로 이 예술공동체가 또다시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지 아차도 예술위원회의 사무처장 격인 나 역시도 기대된다.

. 왼쪽부터 2023 [아차도 문화예술위원회 발족식], 2023 [아차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본부장 임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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