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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노년 문화예술교육, ‘동사’에서 ‘형용사’로 전환하자
고영직 | 문학평론가
“고령자들이 로컬의 자산이다”

. 로컬리티:가 주최한 할매발전소 <알아차림>전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단체 ‘로컬리티:’(대표 김영채·심지혜·석양정)는 지역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할머니들과 수년째 다양한 활동을 하다 ‘할매발전소’를 만들었다. ‘생의 에너지를 전하는 할매발전소’라는 모토는 할매발전소의 지향점을 잘 요약한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노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가 하는 측면에서 좋은 참조사례가 된다. 그동안 로컬리티:는 지역 할머니들과 <할머니의 잘 지은 밥상>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는가 하면, 개관전으로 [mother’s mother 알아차림전(田)](2022) 같은 전시회를 열어 할매들이 갖고 있는 ‘역량’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주민들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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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리티:가 기획한 2023년 <사라지는 살아지는> 전시 작품. ⓒ로컬리티:

로컬리티:의 활동에서 가장 인상적은 점은 “고령자들이야말로 로컬의 자산이다”라는 인식과 관점이었다. 노인 하면 연상하기 쉬운 단절, 고립감, 무력감 같은 상투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활동을 하며 가지 않은 길을 기꺼이 가고자 한 것이다. 내러티브(서사)의 부재를 겪으며 허무함, 지루함, 그리고 비루함이라는 3종 세트의 악몽을 겪는 노년의 삶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갔다고 확언할 수 있다. 2023년에 연 <사라지는 살아지는> 전시회가 지역 사회에서 큰 화제를 모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스토리텔러이고, 창작자이며, 예술가라는 점을 확인했던 전시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새로운 노년은 발견되어야 할 아메리카이고, 60세 너머에 감춰져 있는 미지의 대륙이다”(도미니크 시모네)라고 한 말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잘 풀어낸 셈이다. 할머니들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김옥희 할머니는 “재미있었지, 작년에…”라며 만족감을 드러낸다. 학교 문턱을 밟지 못한 어느 할머니는 인터뷰에서 다시 돌상이 차려진다면 “연필을 잡고 싶다”면서 ‘배움’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표출한다. *1)
원주 신림면 할매발전소 할매들의 활약은 현재 진행형이다. 할머니들은 신림면 특산물인 무말랭이를 특화한 음식을 만드는 무말랭이 할머니를 넘어 옥수수 할머니, 감자 할머니, 전복 할머니… 가 되겠다는 열망을 마음껏 드러낸다. ‘한번 해보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은 할머니들이 이제 주체적으로 삶을 살고자 하고, 긍정적 에너지를 자기 바깥으로 표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늙기의 기쁨을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할매발전소 할머니들의 모습은 어떻게 잘 나이 듦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좋은 사례가 된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은 어떻게 그런 ‘접점’을 잘 형성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할매발전소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희곡 <도살장의 성 요한나> 속 대사가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너희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착하게 살았다는 말뿐 아니라 좋은 세상을 남기도록 하라!”

‘본다’에서 ‘보인다’의 세계로 전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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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리티:가 기획한 2023년 <사라지는 살아지는> 전시 작품. ⓒ로컬리티:

여러 논자들은 노년기에 가져야 할 삶의 태도는 과거 지상주의도 현재 지상주의도 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젊은 세대의 ‘언젠가’가 늘 배신당하고, 노년 세대가 살아온 ‘예전대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세대 간 존중은 어려워질 수 있다. 이 점에서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 형용사의 세계이다”*2) 라고 말하는 소설가 김훈의 주장은 노년 문화예술(교육) 활동 측면에서 참조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그는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면서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라고 강조한다.
김훈은 늙기의 기쁨이란 ‘본다’에서 ‘보인다’의 세계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은 나이 듦과 노년 문화예술교육/활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늘 보던 것이 새롭게 ‘보이는’ 형용사의 세계란 어쩌면 노년 문화예술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동사에서 형용사로 노년 문화예술교육/활동을 전환하자는 주장은 결국은 프로그램 공급자의 관점을 버리자는 말과 같다. 어느 작가가 “삶은 나날들이 아니다. 삶은 밀도다”(조에 부스케)라고 한 말과 통한다. 나는,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과연 ‘밀도 있는 삶’을 사는가 질문하고, 무엇이 나이 듦의 과정에서 밀도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가 생각하고 대상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예방적 사회정책으로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제시해야 한다. 나이 듦이라는 이슈는 모두가 직면하는 생애 최대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동안 노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는 지나치게 ‘동사’의 세계를 권장하고 재촉하는 프로그램이 유독 많았다. 50+ 신중년 프로그램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을 비롯해 베이비부머 세대와 70대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노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하고 활발한 교육/활동을 통해 나이 듦에 저항하려는 항노(抗老) 혹은 안티에이징(anti-aging)의 담론과 사례가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노화를 긍정하고 나이 듦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향노(向老/香老)’의 태도를 수용하며 재미있게 진행하려는 문화예술교육/활동은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항노’에서 ‘향노’로 노년 문화예술교육/활동을 전환할 수 있을까. ‘매끄러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안의 나이 듦의 문화를 조금씩 바꾸려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인 문제가 아니라, 노인 존재를 보려는 활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원주 할매발전소가 ‘고령자들이 로컬의 자산’이라고 한 관점이 훌륭한 점은 그런 이유와 무관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곧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초고령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사회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2020년 현재 15.7%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720만 명에 달하는 1차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년 세대에 편입되면서 기존 노년 세대와는 다른 ‘신노년’으로 부상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기존 세대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모색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년 문화’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세대 간 교류와 대화 또한 달라질 것이다.
노인 문화예술교육/활동 또한 참여한 노인 당사자들의 ‘내 삶으로부터’ 시작하는 예술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인천 아차도에서 추계예대 박유미 교수가 수년간 진행한 생활공동체 문화예술교육/활동을 주목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차도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관리하고, 진행하며, 전체 과정을 운영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즉 노인을 ‘위하여’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 아니라 노인 스스로의 욕구에 ‘의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한 점이 퍽 인상적이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충북 괴산군 <두레학교> 활동과 충북 옥천군 안남면의 <어머니학교> 사례를 기억해야 마땅하다. 자치회를 중심으로 배우고 싶은 프로그램을 직접 선택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를 추구하는 <어머니학교>는 노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적극 참조되어야 한다. 또 한글 문해교실로 시작했지만, 지난 십여 년 동안 꾸준히 활동하면서 지금은 괴산의 평생학습을 위탁 운영하면서 ‘인생노래극장’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 참여자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십분 살리며 진행하는 <두레학교>의 활동 또한 퍽 인상적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어르신의 시(詩)와 그림을 활용해 제작한 ‘달력’에 수록된 시 작품 100여 편을 모아 조만간 시집(시화집)으로 제작해 유통할 계획이다. 경북 칠곡 할매들의 시를 묶은 『시가 뭐고』(2015)처럼 큰 화제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결과물에서 서사 없는 ‘텅 빈 삶’이 아니라 ‘삶은 이야기’라는 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력, 신발의 역사

. 노년 문화예술교육/활동,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나 자신에 저항하려는 관점과 태도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로컬리티:

풀어야 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노인끼리만’ 소통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자신보다 더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젊게 늙어갈 수 있는 문화적 형식들에 대한 고민들이 더 심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년 세대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선배시민’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사라지는 매개자’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유범상·유해숙은 『선배시민』(마북 2022)에서 선배시민이란 ‘시민으로서의 노인’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 사회가 나이 든 보통사람의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사례 관리에서 ‘사회 관리’로 전환해야 하고, 가족 돌봄에서 사회 돌봄으로 전환하자고 말한다. 나는 『선배시민』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이어받아 노년 문화예술교육/활동의 방향은 ‘사라지는 매개자’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프로젝트를 재미있게 수행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움켜쥔 손을 펼 줄 아는 ‘위대한 포기’의 기술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김 강의 장편소설 『그래스프 리플렉스』(2023)는 노인 인구 40% 시대라는 근(近)미래의 대한민국을 설정해 초고령화 시대의 풍속도를 나름의 시각으로 파헤친 문제작이다. 그래스프 리플렉스(Grasp Reflex)라는 말은 신생아들이 손에 닿는 물체가 무엇이든 꽉 쥐고 놓지 않으려는 ‘반사 작용’을 뜻하는 의학 용어이다. 나이가 들어도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품은 작중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올더앤베러 ‘최만식’ 회장, 국회의원 ‘김영권’ 같은 인물이 그들이다. 이들은 올림포스의 신(神) 같은 존재가 되어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세상을 꿈꾼다. 소설 속 노인의 삶이 과연 진짜 나이 듦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항상 호기심을 갖고 행동하며 관심을 갖고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도전하게 할 것인가.

한 사람의 노인 혹은 노년의 삶을 이해하고 성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삶의 ‘이력’(履歷)을 온전히 주목하는 행위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력이라는 한자에 나오는 ‘이(履)’ 자는 신발이라는 의미이다. 이력이란 결국 ‘신발의 역사’를 의미한다. 한 분 한 분의 노인이 걸어온 신발의 역사를 더듬으며, 삶의 주인공으로서 관계 2막을 연출하며 살아갈 수 있는 노년 문화예술교육은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도전해야 한다’는 관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글의 모두(冒頭)에 거론한 원주 할매발전소 할매들의 모습을 자꾸 상기하는 것은 그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움켜쥔 손을 펼 줄 아는 어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년 문화예술교육/활동, 이제는 동사에서 형용사로 전환하자.

*1)지역문화진흥원 웹진 《지:문》 2023년 가을호 인터뷰 「사라지는 것들을 살아지게 하는 로컬 문화」, 동영상은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q5Vs6BfWcOU)를 참조하라.
*2)김훈, 『연필로 쓰기』, 문학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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