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쌓인 운동장을 함께 달리자
여름 샐러드를 먹으면서
흰 눈이 쌓인 운동장을 함께 달리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고, 또 있었더라도
우린 앞으로 잘 달릴 수 있다.
그런 믿음은 이상하게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1)
강지이 시인의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창비 2021) 끝에 실린 말이 이 시집을 자꾸 펼쳐보게 한다. 행간마다, 작은 쉼마다, 수평으로 곁에 선 사람들의 온기를 사려 깊게 살핀다. 이끌거나 끌려가는 관계가 아닌, 옆에 선 이들의 호흡을 살피면서 다독이며 ‘함께’ 달릴 때, ‘우린 앞으로 잘 달릴 수’ 있게 된다.
돌봄을 주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돌보면서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있으며, 개인의 생애주기 안에서도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면서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돌봄 대상자가 된다.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으니 돌봄의 대상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돌봄은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서로가 겪어가고 있는 활동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논리에서 지금의 돌봄은 효율과 경쟁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능력 있고 건강한 인간은 돌봄이 필요하지 않으며, 돌봄은 취약계층이나 혹은 건강상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독립 능력이 없는 나약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라며 정상과 비정상, 우성과 열성을 나누어버린다. 돌봄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일이면서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과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됨을 뜻한다. 이렇게 돌봄은 사회에서 외면당한다.
그러나 돌봄 받는 것을 나약하게 보고 독립적인 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생명의 순환성, 다양성, 관계성을 알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획일화 그리고 전체화된 사고에 묶여 상호취약성과 상호연결성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명의 활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2) 서로가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것은 결국,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상태인 독립이 인간으로서 가능하지 않은 허구라는 것을 아는 것과도 같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 서로 연결되는 안전망을 이루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보살핌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 혐오만 살아남는다. 우리 안에 있는 돌봄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3) 관계를 기반으로 한 안전망, 즉 공동체는 공감과 연결을 통해 동력을 갖는다.
1-3 :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아트러너(플랜포히어)
4:아트러너가 직접 그린 홍보 포스터(플랜포히어)
‘지금 이곳을 위한 계획’이라는 뜻의 ‘플랜포히어’ 정다현 대표는 무엇이든 연결하는 것에 계획이 많다고 말한다. 서로 연결되었을 때 공감에서부터 시작하여 움직일 수 있는 힘, 즉 동력(動力)이 생긴다는 정다현 대표는 2023년 용인문화재단의 <아트러너(art runner)> 사업에 기획자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이어달리기’라는 부제를 가지고 출발한 아트러너는 시민들을 기꺼이 달릴 수 있게 하기 위한, 우리가 함께 힘차게 달리기 위한, 모두를 위한 동기부여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데 필요한 사람들은 꼭 전문예술인만이 아니에요. 지역 주민이 문화예술의 수혜자임과 동시에 주최자일 수도 있고, 전달자이자 안내자일 수도 있어요. 주민들이 지역 문화예술의 전달자이자 매개자로서 성장하고 활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아트러너의 역할을 설정했어요.”
아트러너는 사람과 사람, 예술과 사람, 장소와 장소를 잇는 문화예술교육 매개자로서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가진 지역 주민들이 이웃을 향한 애정을 바탕으로 ‘함께, 같이’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따라서 아트러너의 교육과정은 문화예술교육자로서의 양성 교육이 아니다.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활동의 선(先)경험자로서 매개자, 전달자, 학습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진행된다. 나의 상태와 배경, 내 주변의 환경(장소)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예술로 다양하게 소통하는 각 분야의 사례를 경험하는 것, 즉 목표지점에 도달하고자 앞으로 달리는 것이 아닌, 옆 사람들과 함께 먹고, 쉬고, 이야기하며 연결하고 나누는 것에 초점을 둔다. 그렇기에 아트러너의 선발은 심사위원이 동석한 라운드테이블에서 자유롭게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다른 삶에 대한 배려, 문화예술교육 경험의 자기 해석력, 배움과 성장에 대한 적극성,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이 기준이 된다.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이 이웃들과 나누고 싶은 메시지를 찾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내 이웃과 연결되며 문화예술의 가치를 전달하는 거죠. 아트러너는 단순히 만들기와 그리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예술적 경험을 나눠주는 매개자로서 활동해요.”
지역은 단순히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금까지 오는 관계에서 구성된 장소감(感)과 장소애(愛), 그리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활동 범위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 시간 그리고 내가 구성되어온 기반이 바로 지역이다. 나의 생활과 지역은 연결되어 작동하고,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겹쳐져 현재의 운동성을 만들어 내며 그것이 결국 지역문화가 된다. 이러한 흐름에서 모든 지역 주민은 지역 문화예술을 생산하는 생산자이자 유통을 담당하는 유통자인 동시에, 소비자이고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의 전체이자 구성 요소이다. 따라서 지역문화의 주체는 지역 주민인 것이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우리의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모여 결국 지역성이 된다고 생각해요. 비정형(非定型)과 약속되지 않은 언어들 사이에서 다 같이 경험하고 공유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아트러너 모집 포스터(용인문화재단)
아트러너들은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 위한 규칙, 그리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둘러앉아 대화를 통해 정하고 약속한다. 정다현 대표는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낯선 경험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도 찾고,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들으며 감탄하는 것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역은 다양성에 기초해 개별적인 돌봄을 제공하면서도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연결되어 전일적인 삶이 가능한 ‘포괄적 돌봄’을 특징으로 한다. 공동의 자원과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지역 안에서 서로 돌보는 마음이 생기고 행위의 네트워크가 생성된다. 따라서 지역의 돌봄은 생활 전체를 포괄하는 ‘서로 돌봄’으로서 주민은 돌봄 당사자와 돌봄 제공자라는 이중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용인문화재단의 <아트러너>는 지역 기반의 돌봄을 이웃끼리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시도이며,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들의 힘을 모으고 도와가며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활동이다.
지역 사회마다 돌봄 욕구도 다르고 다양하다. 지역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시도되는 여러 형태의 운동이 활발하다는 것은 필요에 대해 말하고, 듣는 행위가 익숙하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결핍을 이해하고 사회구조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역의 협동적, 자율적 활동들은 그런 점에서 효율과 경쟁을 기반으로 한 지금의 돌봄과는 반대로 일어나고 있는, 대안과 저항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지방’ 소멸로 규정지어진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천들은 자본주의의 가치사슬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곳에서 새롭게 제시되는 대안적 흐름인 것이다. 따라서 돌봄은 결국, 필수적으로 구성원들의 근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관계와 결합을 바탕으로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적인 접근이 시도되어야 한다.
돌봄은 서로 의존하고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나약함을 수용하고 서로 보살피며 살아가는 태도는 자본주의 및 능력주의를 벗어난, 관계를 기반으로 서로가 서로의 ‘안전망’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자 실천이다.
*1) 강지이,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 창비, 2021, 129면.
*2) 이무열, 『지역의 발명』, 착한책가게, 2022, 65면.
*3) 안희경, 「보살피는 인간형, 지금은 ‘포스트남성휴먼’ 시대」, 한겨레, 2021.8.26.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9171.html (2023.7.1.접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