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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_ 와타나베 이타루·와타나베 마리코,『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더숲 2021)균(菌)에서 균(均)을 발견하다
신연정 | 시민기획단 나침반 대표
‘발효’라는 이름의 대우주와 매력을 알았다

일본의 빵집 ‘다루마리’는 한적한 시골 빵집에서 효모와 누룩 등 천연 발효균으로 빵을 구워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 웬만한 빵집마다 천연 발효종 열풍이 생긴 것도 이 다루마리의 영향이 크다. 다루마리 사장이자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빵집이 절정의 전성기를 누린지 얼마 안 돼, 가쓰야마란 시골에서 더 작은 시골마을 지즈초로 이주한다. 2015년의 일이다. 박수 칠 때 떠난 것일까? 궁금증에 답이라도 하듯 다루마리 사장 부부가 지즈초살이 8년 만에 새 책을 냈다.『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는 균(菌)이 이끄는 대로 살아온 와타나베 부부의 이야기다. 이들은 어떻게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은 작고도 작은 시골마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지키고 싶어서, 생활과 일이 하나가 된 인생을 살고 싶어서 빵이라는 무기를 들었다. 천연균과 자연 재배를 만나서 작은 빵 뒤에 펼쳐진 발효라는 이름의 대우주와 그 매력을 알았다.” _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231쪽

빵이라는 무기를 들고 다른 생을 살고자 한 이타루처럼, 내가 활동하는 ‘시민기획단 나침반’(이하 나침반)은 빵 대신 책을 들었다.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 독서토론 진행자 과정을 수강한 시민들이 후속 활동으로 북토크를 열었다. 처음 시작이 2015년이었으니 신기하게도 다루마리와 ‘8년’이라는 시간의 궤적이 겹친다. 발효(醱酵)라는 대우주까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나침반은 60여 회 강연을 기획, 진행하는 동안 동료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울어진 운동장에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방향을 잡고자 활동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올해 초 우리는 [돌봄이 없는 돌봄]이란 강연을 마련했다. 노인 돌봄 현장의 목소리를 구술생애사로 풀어내는 작가 최현숙 님의 이야기를 듣고,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저자 조기현 님은 영 케어러(Young Carer)와 돌봄 사회 이야기를 했다. 영화와 소설 속 돌봄을 살피는 등 8회차 강연은 저마다 주제가 달랐지만 공통분모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단절되는 동안 그나마 작동하던 가냘픈 연대의 끈마저 끊어진 지금, 성장과 개발을 멈추고 돌봄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누룩균이 하는 말, 세상을 넓게 보라

다루마리가 지즈초로 이사한 이후 이타루는 한동안 누룩 체취에 실패를 거듭한다. 해외여행이 사라지고 공장에 굴뚝 연기가 멈춘 시기, 빵집 고객도 반토막이 났다. 그런데 웬일인지 2020년에는 누룩 체취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누룩균이 ‘다루마리여, 더 큰 안목을 가지시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평소와 확연히 다른 환경, 누룩균이 깨끗하게 내려앉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원인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활동 정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작은 지역 차원에 머물던 내 사고가 얼마나 얕은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_ 『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 61쪽

코로나19 시기보다 앞서 다루마리가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더한 시골로 거듭 이동과 멈춤을 시도한 이유는 바로 자기 돌봄을 위해서였다.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개장 두 시간 만에 빵이 다 팔리던 때, 과로한 직원들은 사표를 쓰고, 이타루는 가벼운 우울증을 앓았다고 고백한다. 성장보다 돌봄이 절실했던 것, 자연도 돌봄이 필요했을까?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추자 환경이 살아나고 다루마리의 누룩도 그제야 활성화된 것이다. 돌봄이 누룩을 춤추게 한 것, 돌봄의 중요성을 알고 작은 지역 차원을 넘어 세상을 넓게 봐야 한다는 이타루의 성찰은 다루마리가 지역에서 살아남은 첫 번째 방법이다.

“다루마리의 빵을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맛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오히려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개성 넘치는 빵은 존재만으로도 다양성을 보여준다. 각자의 개성을 허용하고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상태야말로 다 같이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닌가.” _ 『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 158쪽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지 않는 것 중에는‘독립 예술영화’도 있다. 독립 예술영화라고 하면 ‘어렵지만 뭔가 느낌 있지만, 별로 재미는 없어서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나침반은 올해 독립 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의 커뮤니티 시네마 기초지원 단체가 되었다. 영화를 상영하고 관련 주제에 관해 얘기하는 강연은 몇 차례 마련한 경험이 있지만 공동체 상영만을 목표로 활동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제작자 보다 투자자의 목소리가 큰 상업 영화는 주제와 형식이 자본과 소비자의 입맛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 비켜난 독립 예술영화는 다루마리의 빵처럼 존재만으로도 다양성을 보여준다.

나침반의 역할은 발효균이다. 독립 예술영화와 동료시민과의 거리를 친근하게 만드는 발효균, 첫 시도는 ‘밀려난 자리’란 상영회를 연 것이다. 둔촌주공아파트의 고양이 이주 프로젝트를 담은 [고양이들의 아파트]정재은 감독, 2022), 수원 재개발 지역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 [파장동](송원준 감독, 2021), 재개발을 앞둔 신도림의 주택에 사는 감독과 가족의 인터뷰[가족의 모양](양승욱 감독, 2020)을 상영했다. 영혼까지 끌어야 한다는 부동산 광풍과 개발 이익보다, 개발 바람에 밀려나는 사람과 동물에 빛을 비추는 영화들, 이는 관객에게 들뜬 욕망을 가라앉히고 현실에 발을 딛게 한다. 다양한 영화가 있어야 할 이유다.

서로가 서로의 ‘누룩’이 되어도 좋겠다

빵의 제조 단가를 낮추기 위해 대규모 업체 밀가루를 쓰게 되고, 그에 따라 소규모 제분기 수요가 줄면 이 소규모 제분기가 아예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타루는 유기농으로 기른 밀을 직접 제분하려고 해도 제분기가 없어 좋은 재료를 쓰지 못하면, 다루마리 식 빵은 영원히 만들 수 없다며 다양성의 가치를 강조한다. 다양성 추구는 다루마리가 지역에서 살아남은 두 번째 방법이다.

“나는 다루마리를 수련의 장으로 여긴다. 이곳은 ‘더 오래 살아남는 힘’을 얻는 장소다. 빵을 레시피대로 만들어내는 기술은 극히 일부밖에 쓰지 않는다. 오히려 빵을 만들기 위한 ‘터’와 ‘동선’을 어떻게 다듬어 균과 공생할지, 어떻게 하면 타인과 동화되는 기술을 얻을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_ 『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 165쪽

다루마리가 지역에서 살아남은 세 번째 방법은 빵을 만드는 기술보다 균과의 공생을 위해 터와 동선을 다듬는 것이다.
나침반이 책에서 영화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자생력이 커졌다고 생각했다. 이건 단장인 나만의 오판, 여러 단원이 빡빡한 일정에 지치고 소통이 잘 안되어 힘들었다는 얘길 전한다. 이러다 8년 전 다루마리처럼 나침반도 멈춰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시점, 균과의 공생, 터와 동선 다듬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침반에 누룩은 무엇일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상상력 아닐까? 고된 노동에 지친 직원이 떠나려 할 때는, 누룩 대신 반드시 푸른곰팡이가 꼈다는 다루마루의 제빵실을 떠올리며, 내 마음속 푸른곰팡이는 없나 살핀다. 혹 내가 우월한 사람인 양 젠체하지 않았을까 반성도 해본다.

“작아도 좋으니 틀을 깨고 ‘자기답게’ 표현할 때 사람은 만족할 수 있다. 자기답게 표현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열린 형태를 띨 것이다.” _ 『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 159쪽

자기다움의 길을 먼저 찾아간 다루마리 이야기를 통해, 나침반도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서로가 서로의 ‘누룩’이 돼도 좋겠다. 아무리 주변 환경이 변해도 서로가 말할 존재가 있다면, 누룩은 죽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누룩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잡고 시민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능력이다. 누룩이 살아야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를 살릴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자생력이다.

. 나침반 단체사진

. 균의소리 자본론 책사진

. 와타나베가족사진_출처도서출판더숲

. 밀려난자리상영회_GV

. 다루마리사람들단체사진_출처도서출판더숲

. 다루마리빵_출처다루마리페이스북

. 다루마리 지나온 시간

. 누룩균_출처다루마리페이스북

. 나침반_단체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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