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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정책/이슈>
_ 로컬 크리에이터와의 대화를 중심으로청년은 지역에서 어떻게 성장하는가
최실비 | 《경기문화저널》 편집위원
회귀하는 청년

도시를 벗어나 지역에서 삶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이들은 지역의 자원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할 공간을 만들어 내며, 치열하고 경쟁적인 도시의 삶을 떠나 지역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삶을 만들어 나가려 한다. 스스로 선택의 폭을 넓혀 일할 자리와 일할 공간을 만들어간다. 이렇듯 지역에서 활동하며 지역 자원,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청년, 즉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의 자원과 자산을 창의적인 시각으로 재발견해 지역의 가치를 높이기도 하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 소규모 상점을 디자인하여 골목상권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에 관한 관심, 그 관심으로부터 시작한 주변을 둘러보는 힘. 그것이 결국 내가 발 디딘 이곳, 이 지역을 탐구하게 하고, 지역 자원을 발굴해 새로운 로컬 콘텐츠로 개발하는 원동력을 만들어 낸다.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긴 청년들을 도시에서의 경쟁에서 밀린 자들로 볼 수 없다. 회피가 아닌 회귀(回歸),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찾아 지역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혹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지역으로 향한 것이며, 개인의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회귀로서의 지역살이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들이 지역을 선택한다는 것은 도시의 성장 논리대로 지역에서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닌, 나와 내 주변 더 나아가 환경까지 살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다. 이는 삶의 목적이 아닌 삶의 방향, 태도와 맞닿아 있다.

“지역에서의 활동은 내가 재밌고 즐거워서 하는 거예요. 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주변의 바꿀 수 있는 것 하나씩을 바꾸는 즐거움이요.”

수원에서 만난 청년, 천인우 실장은 지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처럼 답한다. 천 실장은 행궁동에서 디자인 컴퍼니 ‘PQR(피큐알)’과 더불어 수제 햄버거집 ‘Oh, PQR(오피큐알)’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 청년들과 함께 수제 맥줏집 ‘신도시양조회’ 브랜드를 만들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다.

“로컬 브랜딩은 곧 스몰 브랜딩이라 생각해요. 대기업 프랜차이즈와는 다르죠. 지역에서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여 철학적 기반을 만들어 낸 후 시작해야 해요. 그 브랜드만이 가지는 개성이 중요하죠. 그래서 저는 자기 세계를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걸 끄집어내어 좀 더 정제된 모양으로 내보이는 것이 결국 로컬 브랜딩인 것이죠.”

로컬 크리에이터는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 만들어 내는 존재로서 스스로 가치를 만들고 높여야 한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브랜딩이란 최우선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효율을 추구하던 일률적 소비패턴이 개개인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소비 형태로 변했다. 『트렌드 코리아 2022』(미래의창 2021)에서는 개인의 취향, 산업의 형태, 사회적 가치가 점차 극소(極小) 단위로 파편화되는 현상을 ‘나노사회’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소비자의 취향이 미세화되고, 이전의 대량생산, 대량유통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더는 대규모 산업군에 관심이 없는 청년들이 나타났다. 가성비가 최우선의 가치였던 시대에서 이제는 ‘가심비’ 즉, 내 마음[心]의 만족을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브랜드가 가진 스토리와 영향력이 소비자의 심리적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요소가 되었다.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로컬 크리에이터 역시 자기 세계, 브랜드만이 가지는 개성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지역을 배경으로 삼아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일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골목을 살피고 잇는 움직임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모종린 교수는 로컬 크리에이터를 “골목상권과 같은 지역시장에서 지역자원,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 소상공인”으로 정의한다.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주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구성해 지역 자원을 지키고 활성화하여 대규모 자본에 대응한다. 때문에 그 커뮤니티가 해체되면 결국 로컬은 유행으로 그치거나 자본의 놀이터로 변질되기도 한다.

“행궁동이 소위 ‘행리단길’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자본에 잠식되는 상황이 가속화되었어요. 그러면서 행궁동을 부흥하게 한 크리에이터들이 자본에 밀려 많이 사라지게 되었어요. 크리에이터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줄어들고 있는 거죠. 이를 극복하고자 행궁동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각각의 브랜드 철학, 그리고 그 개성을 외부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역 내에서 분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로컬에 대한 시도를 모으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더 나아가 로컬에서 처음 활동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참고할 수 있는 지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기획의도를 갖고 만든 것이 바로 매거진 『YOSE(요새)』예요.”

매거진 『YOSE(요새)』는 행궁동에서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청년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 골목의 풍경, 그리고 그들의 방향성을 담아낸다. 천 실장은 정조(正祖)가 화성을 건축한 이유에 대해 “호위를 엄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변란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나의 깊은 뜻이 있다. 장차 내 뜻이 성취되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했다며, 매거진 『YOSE(요새)』를 만들어 내고 나니 정조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웃음 짓는다.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 등 밑천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네트워크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비슷한 고민과 영역에 있는 주체들이 생존의 기술을 공유하고, 또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과 연결되면서 그 너머를 만날 가능성을 열어준다. 때문에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지역과의 상생은 정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필요하다. 독립적인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즉 대기업과 차별화된 지역답고 지역 기반이 튼튼한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지역 콘텐츠, 공간, 커뮤니티가 지역과 로컬 크리에이터를 연결하기도 하고,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자원이 되기도 한다. 지역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을 수 없는 경험과 상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고, 이를 위해 그 지역에서 홀로가 아닌, 함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결과 상생을 위한 로컬 매거진은 로컬 크리에이터들에게 가장 필요한,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협업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 사람과 공간의 연결, 사람과 지역의 연결은 지역 고유의 콘텐츠에 기반하는, 지속 가능하며 미래 지향적인 동네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된다.

. 매거진 YOSE(요새)2

. 매거진 YOSE(요새)

멀리서 지켜보기의 필요성

“로컬이 트렌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생태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청년이 단순히 유행으로 소비되지 않길 바라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로컬 크리에이터를 위한 지원정책이 청년이 지역을 탐색하고 적용할 시간, 스스로 이주와 정착을 돌아보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면 해요.”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지역으로 돌아온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정작 청년 당사자가 겪는 현실, 욕구, 의식이 촘촘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또한 1년 단위 지원사업에 참여한 청년들이 지역을 살리기를, 이전 세대들이 해결하지 못한 지역의 산재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 청년의 로컬 활동을 일자리 창출, 인구 증가의 문제 해결의 창구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청년이기 때문에 사회 문제를 더 많이 떠맡아야 할 책임은 없다. 내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기 위해서, 내가 잘 살아보려고 지역으로 돌아온 건데 지역사회의 과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이다.
모두가 사회적 책임 때문에 어떤 일을 하지는 않는다. 지원정책의 주체는 청년들을 멀리서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청년들이 걸어가다 넘어지면 일어설 힘을 주고, 걷다가 뛰기 시작하면 응원해 주는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리고 로컬 크리에이터 또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지역의 일들을 모르는 체할 수는 없다. 지역을 기반으로 수익이 창출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지역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기게 된다. 지역에도 청년이 필요하지만, 로컬 크리에이터에게도 지역이 필요하다. 조금 더 기다려 준다면 지역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성장하는 기업들이 나올 것이다. 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창의적인 힘을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형태로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면서, 결국 그것이 지역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좋겠어요.”

천 실장은 이제까지의 경험 중 만들어 내야 하는 성과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로컬 크리에이터를 믿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해주며 함께 결과를 만들어 나갔던 지원사업이 스스로의 성장에도, 그리고 지역과의 상생을 고민하는 데에도 의미 있었다고 말한다.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을 ‘주어진 프로젝트를 실행해 주는 존재’가 아닌, ‘자신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와 활동을 제시하고 실행해 나가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딱히 느리게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내 속도로 살고 싶었다. 그것이 세상의 속도, 도시의 속도보다 느릴 수는 있다. 하지만 사는 곳이 달라지면 어떨까. 내 속도가 그곳의 속도보다 느리지 않을 수도 있다.”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일도 2022)의 김희주 작가는 나만의 ‘속도’를 이야기한다. 청년이 지역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나와 내 주변, 더 나아가 환경까지 살피며 삶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태도이다. 내 의지로 오늘 하나 바꿀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바꾸어 간다는 그들의 속도를 존중하는 지켜봄이 필요하다.

. Oh, PQR(오피큐알) 수제 햄버거

. PQR(피큐알) 천인우 실장

. Oh, PQR(오피큐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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