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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_ 지역 문화원의 유연한 변신을 위하여문제는 ‘애티튜드’이다
고영직 | 문학평론가
작은 활동에서 큰 흐름 찾는 ‘지렁이’가 되자

우리는 각자 다르다. 하지만 저마다 각자 다른 ‘나-들’이 모여 관계를 맺고 공통의 경험을 쌓아가며 우리가 된다. 1인이 강조되는 개인의 시대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최근 코로나19 시대 혐오와 증오 감정이 비등해지는 것은 ‘1인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아도 좋다. 문화변동의 시대 1인 문화를 존중하며 수직적으로 위계화된 조직이 아니라 수평적인 협력구조의 조직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느 조직이든 간에 후배 또는 젊은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몰락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런 조직은 소위 ‘고인 물’ 취급받는다. 어느 순간 간판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개인이든 단체든 기관이든 간에 협력의 감수성을 기르고 키워야 한다.
협력의 감수성이란 무엇인가. 유연함을 배우는 과정이다. 개인이든 단체든 기관이든 간에 문화변동의 트렌드를 비롯해 외부 변화의 흐름에 대해 수용성을 가지며 유연한 태도와 조직문화를 위한 자기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러한 유연함이 조직의 자기 진화(進化)의 과정이 된다. 유사(有史) 이래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의 흥망성쇠를 보면 언제나 조직의 외부에 대해 수용성을 갖지 못할 때 스스로 붕괴했다는 점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개인이든 조직이든 간에 성숙한 개인·단체는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역 문화원은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 구축이라는 큰 문제를 유연하게 풀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지역 예술가 및 주민들과 협력의 경험을 통해 협력의 감수성을 더 많이 쌓아가야 하고, 작은 활동에서 큰 흐름을 찾아야 한다. 지역 문화원에서 활동하는 주축 세대를 이루는 50+ 신중년들의 생애전환 또한 마찬가지이다. 2020년 [n개의 서울_양천] 활동을 정리하는 어느 워크숍에서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유다원 대표가 언급한 ‘지렁이-되기’라는 화두는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는 개인 및 단체(기관)의 사유와 활동의 나침반이 되어야 마땅하다.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 구축이라는 미션은 결국 지역의 토양(soil)을 바꾸는 지렁이-되기의 태도와 관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영직: 저도 저 자신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삶의 근간에서 문화예술 활동이 가능하려면 ‘문체’(文體)가 달라져야 한다고 느꼈다. 요즘 후배들에게 많이 배운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유다원 대표가 어느 세미나에서 지역 기획자로서 3년 동안 맨땅에 헤딩하며 토양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결국 토양을 바꾸는 ‘지렁이 되기’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더라. 뭔가 사심(私心) 가득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필요에 의해서, 욕망이 차올라서, 사심 가득한 기획이나 활동을 해야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쓸 때 좀 더 쉽게 쓰려고 노력하고, 좀 더 설득력 있는 언어를 던지려고 한다. 이런 태도가 정원철 선생님이 말씀하신 토착적 삶과도 약간 이어질 것 같다. 시선이 낮아지고 겸허해져야 하며, 태도가 더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1)

이와 같은 지렁이-되기의 인식과 태도는 지역 네트워크 형성과 생태계 구축에서 기본이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강하게 표방하지 않으면서도 ‘느슨한 연대’를 꾀할 수 있는 공통의 사업 한두 개 사업을 지역에서 추진하는 방식으로 가볍게 시작하며 ‘공통적인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용인 느티나무도서관(관장 박영숙, http:// neutinamu.org)의 활동은 적극 참조할 만하다. 2000년에 개관하여 용인 리빙랩 네트워크가 된 느티나무도서관은 도서관이라는 플랫폼을 바탕으로 지역 사람들 및 단체들과 함께하며 ‘북돋우는 공공성’ 내지는 ‘불러일으키는 공공성’을 추구하며, 지금은 시민의 연구실로 변신했다. 스무 해 넘게 ‘가르치지 않아서 큰 배움터’가 된 느티나무도서관의 활동은 지역 활동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예를 들어 [결혼하지 않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 [번아웃, 소진과 버팀 사이],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인간과 비인간 동물, 유대와 배신] 같은 다양한 컬렉션들을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말을 거는 지역 활동은 지역 문화원이 참조해야 마땅하다. 다시 말해 지역 도서관이 그러하듯이, 지역 문화원은 하나의 ‘시설’로 만족하면 안 된다. 주민의 일상적 삶으로 깊이 파묻혀야(embeded) 한다. 지역 문화원의 주축을 이루는 50+ 신중년들의 생애 전환 또한 그런 방식으로 유연하게 전환해야 함은 말할 나위 없다. 이웃들과 작당(作黨)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관계자본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온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는 문화적 기획을 통해 문화적 삶을 누려야 한다.

협력의 감수성을 위해 ‘에티튜드’를 바꾸자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특히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장 교체 이후 정책 기조의 변화에 따른 ‘지탱가능성’은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 구축 측면에서 큰 변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질문을 통해 무엇에 대한 자율성이고, 무엇을 위한 지역 문화 생태계 구축인가를 묻는 과정이 생략된다면 공통적인 것을 찾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런 질문 과정이 없는 생활문화활동 혹은 문화예술교육 활동은 쉽게 외풍(外風)에 의해 무너지게 마련이다.
지역 문화원 입장에서 지역의 예술가, 문화예술 단체, 기초문화재단 등과 더불어 어떤 ‘공통적인 것’을 추구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에서 ‘공유공간’의 중요성을 성찰하고 실제 구현하는 것,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생활문화/문화예술교육의 매개자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생활문화활동의 ‘자폐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다른 지역 문화원과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며 지역 문화원의 ‘지탱가능성’을 고민하며 활동해야 한다.
어쩌면 그런 질문을 품은 50+ 신중년 및 지역 문화원은 ‘조금 다른’ 애티튜드(attitude)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자신의 일상을 바꾸고, 동네(지역)를 바꾸는 것 또한 태도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지역 문화원의 주된 활동인 생활문화 및 문화예술교육의 경우 ‘공간이 네트워크를 만든다’라는 점에 대해 더 숙고해야 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공간에서 협력 자체가 예술이 되는 삶-예술의 경지를 일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놀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공간을 창조적 공유지라고 부른다. 결국, 사람을 키워야 하고, 지역 예술가들과 지방자치단체 간에 거버넌스의 회복과 부활이 필요하다. 미국 교육자 파커 J. 파머가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무엇이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례없는 3고(高) 시대 지역 문화원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라는 옛말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활동을 했으면 한다. 새 술은 언제나 차고 넘치며, 새 부대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을 자각하며, 지역에서 담담하게 활동했으면 한다. 다시 말해 미리부터 새 부대의 운명을 걱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오히려 더 중요한 태도는 ‘행동 먼저, 생각은 나중에’ 하겠다는 담대한 용기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러한 우연성의 힘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꽉 짜인 계획표대로만 움직이지 않았던가. 배움은 결코 매뉴얼로 완성되지 않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협력의 진화를 위해서는 먼저 협력의 감수성이 요청된다. 협력의 감수성은 개별 문화원이 제일 잘하고 있고, 혹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게 하는 네트워크 활동에서 충족되어야 한다. 협력의 감수성을 위한 네트워크 활동이 개별 문화원에게 힘이 되지 못하고, 또 다른 짐으로 작용하는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가벼운 마음과 태도로 참여했지만, ‘뜻밖의’ 힘을 얻을 수 있는 협력 활동이 요청된다. 그리고 그런 네트워크 활동 경험에서 개별 문화원과 개인·단체들이 자기 활동을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유연성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과정에서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경기도 및 지역 문화원들과 소통하고, 지역 단체들과 교류하며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항상 지지자로서의 관점과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미소니즘(Misoneism)이다. 사람이든 단체든 간에 ‘하던 대로’하려 하고, ‘살던 대로’ 살려 하는 무의식적 관성·관행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미소니즘이란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반응을 의미한다. 미리 도달해야 하는 어떤 목표를 상정해 놓고, 거기에 모든 프로세스를 짜맞추는 방식으로는 미소니즘을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작고 시시해 보이는 지역 이슈를 발굴하고, 공통의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어가면서 ‘함께 해석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어쩌면 그런 협력의 의례가 약한 나-들을 더 강한 우리로 변신시킬 것이다. 그러려면 찾아가고 초대하는 양방향의 연결을 꾀하려는 ‘애티튜드’가 더없이 필요하다. 이것은 50+ 신중년의 생애전환 또한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애티튜드이다! 당신의, 지역 문화원의, ‘애티튜드’를 유연하게 바꿔라.

1) 고영직·정원철·조은아·최보연 좌담, 「가지 않은 낯선 길을 느리게 걷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웹진 《아르떼365》, https://arte365.kr/?p=84154,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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