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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3高 시대 지역에서 자생(自生)한다는 것
강구민 | 도시사람콘텐츠랩 대표

온갖 광고와 마케팅의 폭탄 가운데서 만들어진 가치를 따라가는 우리들. 일상은 서서히 무너지고 삶 속에 교환가치의 작동원리가 깊게 스며든다. 이제는 비단 상품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양태와 사고방식까지도 지배한다. 문제는 탈주하는 성장 시대의 끝 무렵에 교환가치는 막바지 가치 증식과 회수에 몰두할 것이라는 점이다. 3고(高) 시대의 위기는 비단 경제 분야에만 대단히 큰 충격이 아니다. 우리네 삶을 지탱하는 수많은 일상, 관계망, 생활과 의미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하여 3고는 나 자신과 지역에서의 ‘자생력’을 꺾을 것이다. 3고로 대변되는 성장주의의 배설물을 피해 지역문화가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현 시점에서 지역문화의 우선 과제는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 지역문화계는 여전히 예산과 지원이라는 테두리 내지 보호막 안에서만 생존할까? 예산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부문은 문화 향유적 경향을 띄게 되고, 예산이 없는 부문은 ‘문화백지’ 상태에 있다. 한편 거대한 위기의 파도 앞에서 지역문화는 문화계 자체뿐만 아니라 지역의 자생도 고민하여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자생은 ‘비우기’로부터

문화연구소에 8년 정도 있으면서 주로 한 일이 문화원 등 문화시설 평가였다. 200개가 넘는 지방문화원, 그리고 수많은 문화단체와 시설들은 숫자로는 수많은 시민들을 모아서 문화 공공재를 제공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몇 년째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숫자에 감춰진 허전함이 느껴졌다. 대부분 지방문화원은 내가 어릴 적 알던 문화원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문화원에서 ‘문학의 밤’도 열었고, 백일장에 나가 문학소년의 꿈도 펼치곤 했다. 그런데 지방문화원에 10대와 20대라는 단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30대와 40대도 찾기 힘들었다. 또한 문화원의 프로그램은 국비 내지 지방비를 지원받아서 지원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평가를 하며 직접 고향에 있는 문화원을 찾아가 눈으로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번 와 보고서야 고향으로 돌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지역에 작은 동네책방을 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생(自生)을 위한 몸 비틀기였던 것 같다. 홀로되기를 선언하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있으며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책방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동네 아지트가 되었다. 지역에 공연 연습할 곳이 없었기에 가끔은 시민연극단의 연습실이 되기도 했고, 아이들 바이올린 연습실이 되기도 했으며, 지역 어른들의 담론의 장(場)이 되기도 했다. 성공한 책방지기는 못 되었지만 2년여 지역살이를 하며 어느 정도 지역문화의 여건과 현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나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 영천은 답이 없다. "No답"

지역문화의 3無는 무엇인가?

그쯤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지역문화에 세 가지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것들이 지역문화의 자생력을 가로막고 있었다.
첫째 지역문화에는 민간이 없었다. 지역에서도 지역문화의 트렌드와 세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문화 사업의 외피는 여전히 일반적인 시니어 문화와 평생학습의 틀에 갇혀 있었다. 지역문화에서의 경로지향성은 대단히 견고하였고, 모든 정보와 사업이 기존 인맥 안에서 이루어졌다. 지역문화의 수월성을 논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이 생태계는 민간의 변화하는 지역문화 양태와는 사뭇 다르게 유지되었다. 지역문화 거버넌스의 큰 부분은 행정과 문화시설이 가지고 있겠지만 거버넌스가 올바르게 작동하려면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 즉, 민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마땅했지만, 문화 부문에서 민간은 보조사업의 수혜자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문화행정 구조 안에 있었다. 지역문화에 민간 영역은 사실 ‘포섭된 민간’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민간 영역은 지원받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힘과 회복력이 있는 정도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실상은 공적 지원 없이 문화 공공재를 지역에 공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와 우리는 공적 지원 없이 계절의 흐름에 따라 지역문화를 창작하고 생산하고 공유하는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 지난 2년의 결실은 여러 분야에서 이제 발화하고 있다. 생활문화협력체, 청년예술인 모임, 청년 크리에이터 모임 등을 필두로 최근에는 문학, 미술, 디자인, 다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발적인 소모임이 생겨났다. 더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기에 이르렀다. 민간은 그렇듯 ‘연결’의 힘으로 생겨났다.

둘째 지역문화에는 청년과 신중년이 없었다. 향토사연구회, 문화재 해설사, 평생교육 지도자 등으로 대변되는 지역문화 인적 자원에는 청년과 신중년이 보이지 않았다. 청년과 신중년의 높은 참여 의지와는 상관없이 참여 기회가 없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청년과 신중년은 각자의 방식대로 지역문화 활동을 해나갔지만 서로 ‘고립’된 채 ‘소비’되고 있었다. 그들은 호명(呼名)되기보다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후에도 이름이 남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활동성 높은 청년과 신중년 활동가와 기획자, 예술가를 만났다. 도시가 크지 않다 보니 좋은 점은 거리감이 적다는 점이었다. 쉽게 만날 수 있었고, 더 많은 시민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고립되어 표류하는 시민 각자의 서사(敍事)를 듣는 것부터 했다. ‘열정’ 있는 청년과 신중년을 모으니 10여 명 되었고, ‘문화우물’을 지역과 마을에서 파는 일을 만들어갔다. 지금은 20여 명 이상이 모이게 되었다.
셋째 지역문화에는 공존이 없었다. 처음 지역문화 영역에 오니 마치 교환적 가치의 부산물을 가지고 약탈적으로 경쟁하는 무법의 세상 같았다. 행정에서 주어지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하는 경쟁은 도가 너무 지나쳤고,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지역에서 다한 역할을 하는 분들이지만 문제에 봉착하니 경쟁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양성’이 자생의 또 다른 중요한 가치라면, 지역에는 다양성의 기본 원리로서의 공존의 자세가 부재했다. 모든 공모사업은 경쟁을 통해 철저한 순위 매기기를 했고, 그 결과 모두의 마음 속에 경쟁의식이 공고해져갔다.

. 영천 문학자료실

그래서 우리는 이 3고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앞두고 생존의 자세로 공존을 모색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상호 호혜의 자세로 나누고 공유했다. 가능하다면 프로젝트 자체를 최대한 많은 협력 단체와 함께 하고자 했다. 다문화, 장애인, 자원봉사, 평생학습, 청년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단체 및 중간지원조직의 문을 두드리고 만나서 함께할 수 있는 것 하나라도 발견하고자 언어를 교환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한 번쯤은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축적됐고, 그 결과 작은 일도 진심으로 논의하는 관계망이 생겼다.

자생하기 위한 ‘빅 피처’(Big picture) 그리기

하지만 한계에 부딪힌 적도 많았다. 지역의 중요한 문화사업의 공모에서 마주한 문화계가 아닌 타 영역에서의 문화영역에 대한 공격을 마주했고, 민간에 대한 문화행정의 인식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이른바 지역문화에서 민간 영역의 ‘비존재’를 실상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자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지역문화의 비(非)존재가 나와 우리의 비존재로 등치되는 시점에 이르자 새로운 도전 정신이 생겼다. “그저 불만만 하면 바뀌는 게 있어? 부족해 보여도 좋은 사람들과 연대하자!”, “지역에서 지속 가능하려면 행정의 지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만나지 않던 타 영역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나기 시작한 것이 문화예술계 청년들이었다. 순전히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위해 만났지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 다음은 청년 디자이너, 청년 사진사, 청년 디렉터 등 창작자들과 소통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도시와 사람을 연결합니다’, ‘청년과 지역을 연결합니다’라는 단체의 카피 문구처럼 연결하는 일에 매진하였고 이는 곧장 연대에 기반한 민간 영역의 새로운 자생 방법을 만들었다.

『약한 연결 : 검색어를 찾는 여행』(북노마드 2014)에서 저자 아즈마 히로키는 ‘몸이 움직이면 검색어가 바뀐다’라고 하였다. 어떤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이 책을 읽고 나와 우리는 여전히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여 검색어를 끊임없이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러한 태도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인 지역의 문화시설과 단체와의 연계까지도 해내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어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지역문화가 실현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즉 어느 누구도 소외되거나 고립되어서는 자생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 10년 후 우리 포스터

. 제1회 영천생활문화제 단체사진

느슨한 연결로 교환가치를 희석하기

최근에는 공모사업의 문법과 방법론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일방향의 관계망은 필연적으로 목적에 추종하는 관계를 설정되기 마련이고, 이는 곧 자생이 아닌 종속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차이와 반복을 통해 생성되는 지역문화를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이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 하지 않기’ ‘함께 하기’의 자세였다.

. 함께 자생하기

한편 교환가치는 본디 가격이라는 것에 본질이 종속되는 문제를 갖는다. 지역문화에서도 이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시도가 필요하다. 기존의 보조금 지원과 정산이라는 일차원적 접근을 넘어 우리의 일상과 문화의 실질적 의미와 가치를 공고히 하는 ‘실험’이 필요하다. 한 번쯤은 지원을 안 받고 스스로 자립하려는 시도가 필요한 때이다. 지금을 놓치면 영영 기회가 아니 올지 모른다.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방법은 ‘느슨한 연결’로 교환가치를 희석하는 것이다. 목적에 추종하는 지역문화가 아닌, 그저 연결하니 하는 자연스러운 지역문화의 장면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백무산, 「정지의 힘」)라는 시 문구처럼 우리 지역문화계도 이제는 한번 멈춰 관성을 탈피하는 정지(停止)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다시 피어오를 지역문화계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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