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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주민에 가까이, 통합적 정책의 흐름, 그리고 기초로 향하는 문화예술교육
허윤정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지역협력팀장
더 가까이, 더 일상 속으로

일흔이 넘으신 나의 어머니는 하루 세 번 버스가 들어가는 농촌에 살고 계시는데, 꿈에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집 근처에 병원과 목욕탕과 문화센터가 나란히 있었으면 하는 것이셨다. 그러다 몇 해 전 마을에 복지회관이 리모델링되면서 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희망사항이 채워지는 공간이 만들어졌는데, 그 이후부터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복지회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삶의 만족도가 부쩍 올라갔음이 옆에서 보기에도 느껴질 정도였다.

사소한 에피소드일 수 있는 이 일을 보면서 문화예술교육, 문화예술, 문화의 영역이 소위 주민(住民)이라고 하는, 다시 말하면 우리의 가족, 우리의 주변인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가, 예술교육가, 기획자들은 왜 주민들과 더 자연스럽고 쉽게 만나지 못하는지, 거기에 필요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정책이 고민해야 할 몫일 것이다.

실제로 정책 영역 전반에 걸쳐 지역의 자율성을 전제하면서 기초 단위, 마을 단위에서 필요한 정책서비스를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추진하려는 경향성이 뚜렷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더욱이 한 사람의 생활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정책이 주민들에 밀착되면 될수록 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하는 행정자치부의 사업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이러한 맥락에 있는 그 외 대표적 사업들 몇몇을 개괄해보자면 [표1]과 같다.

[표1]. 읍면동 단위 지역 대상 통합적 정책의 주요 사례
기관명 정책명 주요내용 통합적 정책 제공의 요소
보건
복지부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시군구 중심이던 복지 지원체계를 주민과 밀착된 읍면동 체계로 전환
·주민자치형 서비스 도모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에서 주민이 필요로 하는 문화 관련 서비스 안내 및 연계 제공
농립
축산
식품부
일반
농산
어촌
개발
사업
1)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 ·읍면 소재지 서비스 공급 거점(생활SOC) 조성, 배후마을로의 서비스 전달 위한 지원 ·지역사회 문화‧교육‧보육‧복지 서비스 제공 및 공동체 활성화 위한 다가치센터(복합커뮤니티센터) 조성
·중심지 문화‧복지‧교육‧보건 서비스 시행 위한 배후마을 시설 리모델링 및 인프라 확충(마을회관 증개축하여 다문화가족 공부방 신축, 문화복지 강좌 시행 등)
·배후마을 주민 수요(다문화 가정, 청소년, 노인 등)를 고려하여 찾아가는 교육․문화․복지 프로그램 운영
2)기초 생활거점조성 ·인접 도시와 기능 연계 강화
중심지 접근성 제한된 배후마을의 기초생활거점 조성 및 서비스 제공
3)시군 역량강화 사업 ·지역 주도 지역개발 및 공동체 활성화 위한 주민역량 강화 지원 ·지역리더 양성, 공동체 조직 발굴․활성화, 주민 화합마당, 지역역량강화 활동(교육‧모임) 지원, 시설 활성화 프로그램 운영 등
4)농촌 신활력플러스 사업 ·주민 주도로 지역자산 및 민간조직 활용, 지역 특화산업 고도화, 공동체 활성화 등 지역 자립적 성장과 활력 제고 ·추진단 내 코디네이터는 교육, 문화, 공동체 등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
·연계 가능 사업이나 복수 지자체 연계된 협력사업 발굴, 통합적 계획 수립
[표1]. 읍면동 단위 지역 대상 통합적 정책의 주요 사례

위의 내용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주요 정책들이 주민의 생활권 안에서 경제·교육·복지·문화 등 영역의 구분 없이 주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려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지점은 그러한 종합적 서비스에 포함되어야 할 ‘문화’와 관련된 정보나 자원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파악·정리되어 있고, 혹은 그런 인력이나 공간, 콘텐츠가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많은 정책들이 지역 맞춤형의 생활권, 마을 단위의 수요를 토대로 가고 있음에도 문화, 혹은 문화예술교육은 그렇지 못했을 때 생겨나는 그 공백과 격차를 어떻게 메워야 할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기초거점사업, 지역의 ‘내면적 정보’를 얻다

이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일 수는 없겠지만, 작게라도 기초 혹은 생활권 단위에 문화예술교육의 거점이 그러한 부족함을 채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관련 사업을 2020년부터 시범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기초 거점에게 요구되는 궁극적인 과제는 우리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려면 향후 장기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할 것인지를 찾아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현 상태를 섬세하게 진단하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주체들과 의논하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을 필수적인 과정으로 보고 있다. 사업 설계 당시 논의과정에서 가졌던 의문은 지역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은 어떤 사업에서든 가능한 것이고, 중앙이나 광역 단위에서도 크고 작게 자원조사를 하기도 하는데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였다. 사업 3년차인 지금에 와서 결과적으로 보자면, 기초 거점이 있는 지역은 이제야 지역의 문화자원에 대한 ‘실체적’ 조사와 파악, 냉정한 진단이 가능해진 게 아닐까 한다. 그리고 ‘조금 알게 된’ 그 진단 위에서 더듬더듬 누구에게 말을 걸고, 누구와 뭔가를 도모해 볼 수 있겠다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중앙이나 광역 단위에서도 흔히 문화예술 자원조사를 한다. 하지만 그 표본은 당연히 지역 전체를 포괄할 수 없고, 그 방식 또한 문헌분석, 설문조사와 FGI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 수치는 보고서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정작 지역 현장에서 보고서에 담긴 그 자원과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는 정작 활용할 수가 없다. 최근 많이들 생겨나는 자원지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공식적 행정통계나 관리시스템에서 포착되지 않는 지역의 공간이나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은 협조공문 등의 단편적 노력으로는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결국 지도상에 포함되지도 못한다. 더군다나,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지도상의 점(點)이 아니라, 그 각각의 점이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 무엇을 추구하는지, 과연 나와 말이 통할 것인가 같은 일종의 ‘내면적 정보’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전주문화재단이 지역 안에 존재하는 생활문화센터, 도서관, 작은 창작공간 등을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 거점으로 자원화하려는 전략은 전주라는 지역이 갖는 공간자원의 현재를 냉정히 돌아보고 이를 열어놓고 함께 의논한 과정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협력’이 목적이 아니라, 전주 지역의 상당한 공간자원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에게 가까운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현실과 필요성에 대한 열린 논의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계가 가능해진 것이다. 전남 구례의 지리산씨협동조합 또한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지역으로서 교육, 복지 등 각각의 정책이 결국 단일한 중간행정조직을 거치게 된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어 파편화된 정책을 문화예술교육을 매개로 엮어내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기초 거점으로 참여한 주체들은 그 목적이나 교류의 깊이에 따라 한 겹, 두 겹, 세 겹의 네트워크 구조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일일이 찾아가고, 회의를 하면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지역의 문화자원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현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당연히 지역의 구석구석 모든 자원을 아는 것은 어렵지만, 멀기만 한 문서상의 데이터보다야 당장 다음 결합 여부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집중적이고 심층적인 자원분석이 현실적이다. 이런 토대가 있어야만, 우리 지역에서 누구와 머리를 맞댈 수 있는지,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연계를 한 번 해볼 수 있을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정책문서에서 지나치게 자주 사용하는 ‘협력’이라는 것은, 사실은 아주 구체적이어야만 실현 가능하다. 당장 우리 동네 누구와 얼마나 자주 이야기할 수 있을지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중앙이나 광역 단위에서 정책문서로만 설계하는 정형화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 지역이 가진 자원을 누구와 어떻게 엮어내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지역을 파악하고, 협력과 논의를 하는 구심점이 되는 주체가 있어야만, 교육․복지․지역활성화 등 타 영역에서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하려고 할 때에 기꺼이 문화예술의 영역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고 연계 지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정책의 지역화에 대응하는 유연함 기르자

하지만 기초 단위의 거점을 형성해 나가는 시범적 과정에는 여러 한계지점을 가지고 있다. 기초 거점 사업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는 바로 ‘사업’이라는 점이다. 2~3년에 걸쳐 지역 내에서 겨우 협력의 가능성을 싹틔우지만, 광역센터와 달리 제도상으로 인정되는 공식적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공들인 그 토대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이상적으로 볼 때,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하고 정식 조직으로 설립할 수도 있겠지만, 지자체장의 의지가 각별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런 상황이 요원한 것은 사실이다.

[표2]. 기초 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 사업의 주요한 성과와 한계
성과 한계
‧ 지역 내 자원의 실체적 분석 가능
‧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가치확산, 기대욕구 상승
‧ 조직정비, 조례 제정 등 제도화 움직임 발생
‧ 다양한 영역과 경계 넘나드는 실험과 시도 가능. 이로 인한 지역 내 담론 형성
‧ 기초 거점이 생겨남으로 인한 광역의 역할 변화
‧ 실무인력의 역량조건 정리와 지원제도 필요
‧ 제도화의 어려움 지속. 지자체의 인식 저조
‧ 다양한 영역 간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 가운데서 문화예술교육의 변별력에 대한 고민 상존
‧ 광역-기초 간 수평적 관계성의 한계
‧ 기초 거점에 대한 지속적이지 않은 지원의 한계
[표2]. 기초 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 사업의 주요한 성과와 한계

 

또 한 가지 주목할 필요가 있는 지점은, 그간 존재하지 않았던 기초 단위 거점이 생겨나면서 광역 단위 추진체계인 광역센터의 역할변화가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광역센터에서는 기초 단위의 문화재단이나 문화시설, 문화예술단체 등 대부분의 주체를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주체로만 인식해 오다가, 이제는 기초 단위 지역을 아우르는 거점과 수평적인 관계로 협력적 방식을 고민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와 더불어, 광역센터들은 공모사업의 직접적 배분보다는 광역 단위의 환경분석과 정책수립, 협력망 구축 등 기반을 탄탄히 만들어가는 역할로의 무게 중심 전환이 느리지만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기초 거점 단위에 거점을 형성해 가면서 나타나는 역할이나 관계의 변화는 중앙, 광역, 기초 단위 주체들 모두에게 아직은 경험이 쌓이지 않아 어색하고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때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앞으로 예상되는 전반적인 정책의 흐름은 주민에게 더 가까이, 더 통합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점을 전제로 받아들인다면, 중앙-광역-기초 단위에서 어떠한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인지, 어떤 유연함을 가져야 할 것인지 조금은 더 명쾌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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