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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_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와 민간*1) 아카이브들여다보는 힘
최실비 | [경기문화저널] 편집위원
시선의 온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직업이 있다. ‘유품정리사’라는 생소한 직업은 여러 죽음의 형태를 정리한다. 표면적으로는 사망한 이의 장소를 정리하고 오염된 공간을 청결하게 청소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인의 장소를 정리하는 일뿐 아니라 그들의 메시지를 해석하여 언어화하고 고인(故人)을 비롯한 주변인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행위는 결국 안과 밖, 삶과 죽음의 기준선을 흐릿하게 만든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이하 ‘무브 투 헤븐’)]는 유품정리사가 행하는 작업이 단순히 물리적인 청소 행위가 아님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유품정리사인 ‘그루’는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삶의 공간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삶을 갈무리한다.

“이제부터 ○○님의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스무 살 청년 그루는 갑작스레 사망한 아버지 ‘정우’를 대신해 유품정리업체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게 된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어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해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으로 ‘경계 밖’에 속하는 그루는 오히려 비장애인에 대비되어 뛰어난 관찰력과 기억력으로 고인이 남긴 메시지를 찾는다. 드라마는 비정규직, 독거노인, 동성애, 동반 자살, 고독사라는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죽음을 다루며 우리들 사회 속 상처를 드러내고 공유한다. 유품정리사인 그루는 고인의 삶의 흔적이 담겨 있는 공간을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살피면서 떠난 사람이 미처 전달하지 못한 이야기를 물품, 편지, 사진을 통해 찾아내고 노란 상자에 정성스럽게 담아 유족과 지인들에게 전달한다. 그루를 통해 고인은 남은 자들에게, 세상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유품을 잘 들여다보면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그루의 행위는 고인을 경계 밖의 낯선 이가 아닌, 경계 안의 주변인으로 위치시키며 마지막 이사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경계 밖의 타인으로 여겨지던 그루도 고인과 우리의 상처를 공유하고 치료해 주는 이로 경계 안에 속하게 된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사회적 편견이 아닌, 매개자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그루의 행위는 아키비스트의 역할과 닮아 있다.

시선의 방향: 아카이브는 메시지 그 자체이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1995)에서 아카이브가 기록으로서든 제도로서든 권력과 함께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카이브가 공식적인 기억에 대항할 수 있는 기억을 전혀 보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아카이브를 수행하는 아키비스트는 정부 권력을 뒷받침하는 역사 복원의 보조자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를 찾아내 조화롭게 엮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2) 즉 아카이브란 그저 과거 기록의 집합체가 아닌 주변화되거나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담아내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무브투헤븐

우리나라의 경우, 1999년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기록관리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가 2006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면서 법의 적용 범위가 공공기관의 기록물과 더불어 ‘개인 또는 단체가 생산·취득한 기록정보 자료’로 확대되었다. 법률 개정에 힘입어 아카이브는 ‘정부의 기록’ 혹은 ‘공문서’라는 한정적 의미에서 ‘기록’이나 ‘기록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뜻의 범위가 넓어졌으며, 시민의 기록의식을 자극하고 독려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정부나 기관의 기록만이 가치를 인정받던 시대에서 민간의 자료도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민간에서 생산하거나 소장하고 있는,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기록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도 높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아키비스트는 모든 기록을 아카이브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기록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글, 사진, 영상 등을 통해 누구든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한다. 모든 기록을 보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판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기준으로 ‘보존할 가치’를 판단할 것인가. 보존한다는 것은 행위이기 이전에 선별이자 재구성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보존할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억’과 ‘기록’ 그리고 ‘해석’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일어난 사건은 그 사건과 관여된 모든 사람들에 의해 ‘기억’된다. 사람들은 사건에 영향을 받거나 개입하면서 사건을 인지하고, 그 사건을 각자의 논리적, 감정적, 감각적 방식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저장된 기억은 변형되고 왜곡되며 휘발된다. 이 불안정성으로부터 사람들은 기억을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 ‘기록’으로 저장해 두는데, 이때 공유의 필요성을 기준으로 기억을 선별하게 된다. 다시 말해 공동의 기억으로 저장할 필요가 있는 기억이 기록의 형태를 통해 공유되고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다. 기억은 기록됨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하여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며, 우리는 기록을 통해 사회 그리고 타인과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에서 기억은 ‘집단기억’의 일부가 되며, 집단기억은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생각과 신념을 구성한다. 그렇지만 집단기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사건의 기억을 담은 기록은 이용되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변화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지며 같은 내용의 기록이라도 이용될 때의 사회적, 시대적 상황과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3) 즉, 보존할 가치의 범위는 시·공간을 넘어서 어떠한 메시지를 남기고 전달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구분할 수 있으며, 아카이브는 메시지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키비스트는 메시지를 통해 생산자와 이용자를 매개하는 중개자(혹은 조력자)로서 당대 사회의 어떤 과거를 기억할 것인지, 어떤 기억을 지킬 것인지 판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더하여 아키비스트는 기록의 생산 과정에 개입하거나 생산자의 적극적 기록 생산을 유도하고 이를 아카이브 하는 것뿐 아니라 이용자들이 남긴 기록의 해석을 분석하여 기록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역할 또한 수행해야 한다.

시선의 힘

기록이 ‘고정된 이야기’였던 시대는 끝났다. 아카이브도 권력자의 입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기록 혹은 박제된 기록을 전시하는 곳이 아닌, 민간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끊임없이 담아내고 재생산해 나가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문화원은 앞서 언급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3조의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는 기관이며, 지역의 아키비스트로서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고 있다. 한 지역의 기록물의 생산, 관리, 보존 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도 문화원은 지역의 특수성과 정체성을 담은 아카이브 기준과 보존 환경 마련 그리고 지속가능한 아카이브 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원의 아카이브 자료에 대한 접근과 활용이 아직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아카이브의 가치는 다수에게 활용됨으로써 더욱 높아진다. 판단의 기준을 세우고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과 더불어 ‘활용’에 대한 깊은 고민 또한 필요하다. 기록을 위한 기록, 저장을 위한 저장이 아닌 기록물이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활용되면서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을 정리하는 <무브 투 헤븐>의 그루는 들여다본다는 것, 그 시선의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민간의 기록을 좀 더 촘촘하고 세심하게 아카이브하기 위해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에 시선을 두지 않고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선, 그것을 편견(혹은 관습)에 의해 그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기록에서 공공성을 살피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사회 구성의 주역으로서 인정하는 것과 같다. 이는 개인이 사회에 뻗은 뿌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뿌리로부터 자라난 나무를 키워내는 일이다.

1) 이 글에서는 ‘민간’을 지역민, 마을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 혹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상의 현장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2) 이종흡, 「서양 기록학계의 기억담론: 『아카이브 열병』을 전후로」, 『역사와 경계』 109호, pp.447-479, 2018.
3) 장대환·김익한, 「기억, 기록, 아카이브의 정의(正義)」, 『기록학연구』 59호, pp.297-29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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