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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_ 생활문화의 시대 ‘스토리텔링’을 생각한다조선의 일기(日記), 어떻게 문화콘텐츠가 되었나
정창권 | 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조교수
‘학문일기’를 쓰기 시작하다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꼬박꼬박 일기를 쓴다. 벌써 수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일기를 쓰고 있다. 그렇게 하면 하루를 말끔히 정리하여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평안한 숙면을 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보다 일관성 있고 깊이 있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하루 동안 겪었던 개인적인 생활 이야기도 중시하지만, 나의 연구와 저술 및 콘텐츠화의 방법과 과정을 기록해두는 등 소위 ‘학문일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 사람들은 자기 직업 분야에서 겪은 일들을 꼼꼼히 기록하는 전문일기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나도 전문적인 학문일기를 써서 인생 말년에 타이핑과 출판을 해서 후대 사람들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그럼 21세기 전반기에 활동했던 한 학자의 연구와 저술 방법론이 자세히 알려질 뿐만 아니라, 향후 우리나라의 학문 발전에도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조선의 양반 남자들, ‘가계부’를 쓰다

조선은 ‘일기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시대에는 국가와 개인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썼다. 특히 양반 남성들은 날마다 집안 대소사를 꼬박꼬박 일기에 기록했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대표적인 조선 시대 일기로는 『묵재일기』(1535〜1567), 『미암일기』(1567~1577), 『쇄미록』(1591~1601), 『계암일록(1603~1641), 『흠영』(1775~1787), 『노상추일기』(1763~1829) 등을 들 수 있다. 조선 시대 양반 남자의 일기 쓰기는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대의 일기는 철저히 개인의 기록인 반면, 조선 시대의 일기는 집안의 대소사를 차례대로 기록한 일종의 가족 일지이자 가계부였다. 그래서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주어 생활의 귀감으로 삼도록 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살림 노하우를 후대에 물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16세기 미암 유희춘(1513~1577)의 생활일기인 『미암일기』 가운데 한 대목을 살펴보자.

1567년 10월 18일. 비가 오다.
새벽에 나주의 나사경이 서울에서 내려오고, 그 누이의 아들 강위호도 왔다. 내가 나가서 만나보고 술과 음식을 대접했는데, 나열과 김정간도 와서 함께 술을 마시다가 갔다.
나중묵 형의 편지를 봤다.
새참에 이순인이 다시 와서 나와 두 아이와 더불어 완심도(玩心圖) 놀이를 했다.
익산의 소이가 사람을 시켜 떡을 보내왔다.
송의평이 도사소(都事所)로부터 『성리문금(性理文錦)』을 써왔다.
이른 아침에 성핵과 성홉 형제가 꿩을 가지고 찾아와 인사를 했고, 좌수 손형이 단술과 떡을 보내왔다.
비 때문에 이순인 여기에서 머물게 되었고, 다른 손님은 오지 않아 저녁밥을 먹고 머물러 잤다.
관아에서 솜과 답호 옷감을 주고, 서익의 어머니가 15승의 나교직 옷감을 주고, 연산현감이 단령 옷감으로 12승의 무명베를 주었으니 큰 도움을 줬다고 하겠다.
들으니 경성의 의금부 북쪽에 책장수가 있는데 이름은 박의석이라고 하며, 모든 곳의 서책을 반값에 사서 전가로 판다고 한다.
김 현감이 서울로 갈 약식과 반찬을 주었는데, 백미가 10말, 콩 5말, 그밖에 일체의 반찬이 왔다.
주희문이 와서 책 몇장을 썼다. 나는 메밀쌀과 팥 2말씩을 주었다.

. 『미암일기』, 미암박물관 소장

조선 시대 일기는 대체로 날짜와 날씨를 기록한 후 하루 동안 집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차례대로 나열하는 식이다. 손님 접대와 편지, 놀이, 음식이나 의복 및 기타 물건 수수, 세상 소식, 책 만들기 등을 차례대로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기를 보면 당시 가족들의 생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또한 조선 시대 남자가 집안 살림에 꽤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도 미암은 떡, 꿩, 술, 양식, 반찬 같은 음식물, 각종의 옷감이나 솜 같은 의류, 찾아온 손님들과의 접대 방법 등을 그 수량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오늘날 가계부와 매우 흡사하다.

생활문화 자료, 어떻게 스토리텔링할까

기존의 국문학자들은 주로 시, 소설, 수필, 희곡 등 문학의 4대 장르를 대상으로 연구하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일기, 편지, 고문서, 문집 등 개인 기록물을 대상으로 연구해왔다. 이들 자료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문화와 함께 그들의 인간적 면모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글쓰기에 있어서도 기존 연구자들처럼 딱딱한 설명체나 논문체가 아닌, 한 편의 옛 이야기처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는 ‘스토리텔링형 글쓰기’를 시도해왔다.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생활문화사는 기존의 설명체나 논문체로는 그 맛과 의미를 제대로 살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저서들을 두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사계절 2003)

이 책은 미암일기를 토대로 16세기 양반 가정의 일상 생활사를 있는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미암일기는 16세기 미암 유희춘이 11년간 기록한 것으로, 조선 중기 양반 가정의 생활문화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가부장제가 정착되기 이전의 선진적인 여성사가 잘 드러나 있다. 다시 말해 한 양반 가정을 배경으로 당시의 여성이나 하층민 문제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나는 미암일기를 몇 번씩 읽으면서 거기에 나타난 생활사를 최대한 섬세하고 다양하게 찾아냈다. 예컨대 의식주 등 유형의 생활사만이 아니라 꿈이나 사랑, 가족애 같은 무형의 생활사도 중시했다. 또 양반 가족을 비롯해서 노비, 첩, 기녀, 의녀 등 하층민에게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와 함께 음식사, 복식사, 건축사, 가족사, 노비사, 기녀사 등 주변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읽으며 미암일기에서 부족한 내용들을 보완했다.
그런 다음 일기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되, 미암 일가족의 생활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여섯 가지 테마를 추출했다. 제1부의 관직 생활, 살림살이, 나들이, 제2부의 재산 증식, 부부 갈등, 노후생활 등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16세기인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대단히 개방적이고 열린 사회였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실제로 이 시기만 해도 우리나라는 장가와 처가살이가 보편적인 혼인 풍속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족관계에서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았고, 친족관계에서 본손과 외손을 구별하지 않았다. 또한 재산을 아들과 딸이 균등하게 상속받았고, 조상 제사도 서로 돌려가며 지내는 윤회봉사(轮回奉祀)를 했다. 남녀의 권리와 의무가 서로 동등했던 셈이다. 나아가 여성의 바깥 출입도 비교적 자유로웠을 뿐 아니라 학문과 예술 활동도 장려되었다.
나는 글쓰기에 있어서도 기존의 설명체나 논문체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픽션과 논픽션이 결합된 퓨전식 글쓰기, 즉 ‘이야기체’라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이었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처럼 작가가 설명도 하고 일화도 들려주는 등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글쓰기 방식이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야기체는 기존의 설명이나 논문 형식보다 오히려 힘든 글쓰기 방식이다. 소설처럼 작가가 허구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고전을 토대로 해서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체로 풀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고전을 접하게 되므로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돌베개 2021)

이 책은 지금까지 나의 생활문화사 연구를 종합하되, 특히 남성들의 집안 살림에 대한 참여 모습을 집중적으로 검토해본 것이다.
조선 시대의 집안 살림은 크게 안살림과 바깥살림으로 나뉘었다. 음식 장만과 옷 짓기 등 안살림은 주로 여성의 몫이고, 각종의 생계 활동, 재산 증식, 노비 관리 등 바깥살림은 주로 남성이 담당했다. 그 밖에도 남성은 정원 가꾸기, 자식 교육, 가족 돌보기 등 정서적 활동에도 참여했다.
조선 시대 양반 남성들은 평소 수많은 집안 살림에 참여했고, 만약 그러한 일들을 조금이라도 등한시하면 부부싸움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조선 시대 사람들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여 무엇보다 집안을 먼저 생각했다. 다시 말해 사회보다 집안을 우선시했고, 남성들의 모든 바깥 활동은 궁극적으로 여자의 안살림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어쩌면 조선 시대는 오늘날과는 정반대의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조선 시대 양반 남자가 평소 집안 살림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는지 유형별로 나누고, 다시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당시 바깥살림의 종류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고, 남자는 과연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차례대로 알아보고자 했다. 또 그들만의 살림 비법과 고충도 자세히 알아보고자 했다.
지금까지의 조선 시대 생활사 연구에서는 대상 인물의 행장이나 묘지명, 언행록 등이 주요 자료로 사용되었는데, 이것들은 당시 사람들이 지향하는 규범적이고 이념적인 모습을 부각시켜 해당 인물을 위인화하기 위한 것으로, 그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실제 생활의 기록인 일기나 편지, 그리고 개인 문집의 다양한 기록 등을 토대로 조선 시대 남자의 살림 참여 모습을 살펴보았다.

. 『단원풍속화첩』, [자리짜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상으로 나의 생활문화사 연구방법론을 간략히 소개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일기나 편지, 문집 등 개인 자료를 통해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문화사를 그야말로 섬세하게 연구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정치사, 사건사 위주의 거대 역사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미시사는 물론 왕이나 양반층에 가려진 여성, 장애인, 하층민 등 역사 속의 소외된 사람들을 재발견하고자 했다. 이러한 방법론을 참고하여 앞으로도 조선 시대 일기, 편지, 문집, 고문서 등 개인 기록물을 활용한 문화콘텐츠화 작업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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