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아카이브 시대가 도래했다. 어느 사회학자가 “인생은 단편적인 것이 모여 이루어진다”(기시 마사히코)고 한 말은 한 사람을 공부하고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요약한 말이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아버지·어머니 세대를 공부하고 이해하며, ‘아버지·어머니 평전’을 남기는 기록문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대 간 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인권기록활동가들이 쓴 『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코난북스 2021)은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당신의 삶이 작품이 되도록.’ 애석하도다, 아홉 살에 작고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나는 어느 과녁에 활을 쏘아야 할까. _ 고영직, 「아버지의 스크랩북」, [경향신문], 2022.6.9.
고봉성의 스크랩북1_네 컷 만화 왈순아지매 등이 보인다.
어느 신문에 쓴 칼럼의 일부이다. 2022년 5월, 서울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웨이팅 포 더 선]전에 전시된 고봉성 선생(1935~1993)의 ‘스크랩북’을 보며, 본격화된 개인 아카이브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담고자 한 글이었다.
그렇다. 십년 전쯤부터 전국적으로 마을사업이 급부상하면서 마을기록활동 내지는 개인 아카이브 사업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어느 순간 개인 아카이브 시대라고 할 만한 상황이 도래했다. 개인 아카이브 시대가 갖는 의미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한낱 ‘잡음(雜音)’ 취급되지 않고, 특정한 커뮤니티 안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 아카이브 시대는 우리들의 시시콜콜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누구나 기록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 되었다.
소중한 결실 또한 적지 않다. 경북 칠곡군 교육문화회관에서 문해교육을 받아온 할머니들이 출간한 시집 『시가 뭐고?』(삶창 2017)가 대표적이다. 『시가 뭐고?』는 직접적으로 개인 아카이브를 다룬 기록물은 아니지만, 시집이 발화점이 되어 칠곡군 차원에서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삶을 집중 조명하는 개인 서사화 작업을 별도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 시집 출간 이후 자기의 민족지를 구성하려는 ‘문학할매’들의 시집이 전국적인 봇물을 이루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시집살이 詩집살이』(전남 곡성),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 머』(경북 칠곡),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전남 순천) 같은 시집들의 목록을 보라. 여하튼 『시가 뭐고?』는 흙과 더불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 땅 민중들의 겸허한 삶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살아 있는 입말[口語]들의 잔치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화비축기지 전시회 장면
마늘을 캐 가지고
아들 딸 다 농가 먹었다
논에는 깨를 심었는데
검은 깨 농사 지어서
또 다 농가 먹어야지
깨가 아주 잘났다
_ 박차남, 「농가 먹어야지」 전문
문화비축기지 전시장에서 고경태 기자가 포즈를 취했다.
시에 등장하는 “깨가 아주 잘났다”라는 표현을 보라. 나는 지금껏 기성 시인들의 시에서 “깨가 아주 잘났다” 식의 표현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농가 먹어야지”라는 제땅말 표현은 또 어떠한가. 자신이 손수 농사지은 곡식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행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할머니들의 마음에 투게더(together)의 원리가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는 할머니들의 시를 비롯해 개인 아카이브 기록물에서 지역화에 확실히 뿌리를 내린 투게더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뜬-소문전에 전시된 사물수집들
개인 아카이브는 힘이 세다. 이 글의 모두에서 언급한 고봉성 선생의 스크랩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20대 중반인 1959년부터 1992년까지 30여 년 동안 36권의 스크랩북을 남겼다. 뉴스, 네 컷 만화, 만평 등을 자신만의 안목으로 큐레이션하고, 정성껏 풀을 발라 마분지 양면에 붙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없던 시절, 자신만의 ‘1인 미디어’를 제작한 셈이다. 주요 사건 스크랩 여백에 시를 쓰고, 자신의 소회를 메모했다. 예를 들어 1971년 박정희 대통령 3선 당선 기사 스크랩에는 반(反)정부 성향의 시를 적는 식이었다. 스크랩의 제호는 ‘묘비(墓碑)’였다.
뜬-소문전에 전시된 김덕희 작가의 '구르는 배
이와 같은 고봉성 선생의 스크랩북이 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아들의 후속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스크랩북에서 네 컷 만화와 만평을 즐겨 보던 아들은 훗날 기자가 되어 『대한국民 현대사』(푸른숲 2013)를 출간했다. 아버지 사후 20년 만이었다. 아들인 [한겨레]고경태 기자는 어느 대담에서 아버지의 스크랩북이 남긴 최대의 발견은 “아버지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고독하고 허무했던 낯선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개인 아카이브 작업은 전국의 여러 도시들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부산 영도문화도시센터의 활동이 주목된다. 영도문화도시센터는 2022년 봄 [뜬-소문]을 개최한 데 이어, 6월부터 [영도 기억 전당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뜬-소문]전 전시 기간을 한 차례 연장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근대적 아카이브가 ‘사물-작품’에 기초했다면, [뜬-소문]전에서는 ‘사물-작업’의 관점에서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한 점이 주효했다. 김월식 기획자, 12명의 참여 작가, 협업 예술가들은 [뜬-소문]전에서 ‘사실적 진실’보다는 ‘서사적 진실’을 강조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재미있게 수행함으로써 우리 안의 아카이브에 대한 상투적 인식을 깨고자 했다. 특히 김도희 작가의 [김명태 승천기], 김덕희 작가의 [구르는 배] 같은 작품에서 새로운 공통감각을 형성하고자 하는 의례(ritual)의 강력한 힘을 엿볼 수 있다.
[영도 기억 전당포] 사업 또한 흥미롭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따라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구축 차원에서 ‘2000년 이전 영도’라는 시간과 장소를 중심으로 한 영도 주민들의 자료와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자료는 시청각류, 문서류를 망라하지만, 시대성·대표성·대중성·활용성·희소성/시급성의 현재적 의미를 꼼꼼히 살피게 된다. 예를 들어 대표성이란 영도아카이브위원회에서 선정한 ‘영도 10대 사건’과 관련 있는가를 묻는 식이다. 수집된 자료와 이야기는 앞으로 디지털 아카이브에 탑재하는 한편 영도다리축제 때 생활사박물관 전시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부천문화재단은 2022년 7월 시민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안심하고 말할 수 있는 무대인 [이야기 페스티벌]을 추진했고,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은 2020년부터 [동네기록관]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춘천문화재단은 2022년 여름 [도시편집자] 사업을 시작했다. 이와 같은 아카이브 사업들은 예술가, 시민, 기록활동가들이 내가 사는 동네를 더 깊이 생각하며, 커뮤니티는 ‘다양성의 공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확산하는 활동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뜬-소문전에 전시된 사물수집들
풀어야 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듣는다’와 ‘들려준다’의 차이를 직시하는 것이다. 기록과 구술의 주체가 ‘전문가에서 주민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이른바 전문가주의가 득세한다. 이와 관련해 19세기 후반 메이지 시대 초기에 발생한 아시오 동광(銅鑛) 공해 사건을 파헤친 다나카 쇼조(田中正造, 1841-1913)가 “‘알려주고’ ‘들려주는’ 자세에서, ‘배우고’ ‘가르침을 받는’, 혹은 ‘듣는’ 자세로 방향을 튼 것”(고마쓰 히로시, 『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상추쌈, 2019, 160쪽)과 같은 방향 전환이 개인 아카이브 활동에서도 필요하다. 그는 1901년 중의원 의원직을 사퇴하고, 광독(鑛毒) 피해마을인 야나카 마을에서 살며, 그곳에서 일종의 ‘야나카학’을 구축했다. 전라도 일대 오일장을 20여 년 동안 누비며 전라도의 맛, 멋, 말, 사람들을 깊이 있게 조명한 황풍년의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행성B 2016)의 뛰어난 성취는 현장과 함께하려는 ‘항꾼에’(함께) 정신을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이 점을 상기하는 데에는 ‘대화적 대화’(리처드 세넷)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한창훈의 소설집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한겨레출판 2016)에 수록된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에 등장하는 ‘쿠니’의 사례는 퍽 흥미롭다. 쿠니는 처음에 상담소를 운영할 때, “도중에 끼어들지 말고 말을 끝까지 잘 들어줄 것”이라는 방침을 정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맞장구쳐 줄 것”이라고 방침을 바꾼다. 상담소 이름 또한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에서 ‘쿠니의 대화하는 집’으로 문패를 바꾼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쿠니의 대화하는 집’이 저마다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 아카이브 작업은 사람 중심의 프로젝트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기쁘게 지내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近者悅 遠者來)는 『논어』의 언급은 활동의 철학과 지침이 되어야 마땅하다. 누군가에게 기꺼이 곁을 내주며,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될 수 있는 동네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우리 눈과 귀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보통 사람들을 ‘가시화’하는 개인 아카이브가 중요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은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라고 말한다. 호명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호명은 분명 중요한 단계라는 점을 직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 아카이브 시대를 맞아 경향 각지에서 나를 조금 더 드러내고, 나와 네가 서로를 ‘호명’하고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뜬-소문전에 전시된 김도희 작가의 '김명태 승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