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별보기

<칼럼/서평> <정책/이슈>
요즘 터무니없어? ‘이웃’하고 터-무늬를 새겨 볼래?
서민정 | 칠곡군문화도시지원센터

흔히 옆집에 사는 주민, 같은 동네에 사는 주민을 주로 이웃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 이웃들에게 시루떡을 나눠주는 문화가 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과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있을 만큼 한국 사회에서 이웃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높았다. 그러나 요즘은 과거와 같이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층간소음으로 인한 소음 공해, 주차(불법주차) 문제 등으로 서로 갈등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심한 경우 폭력 사태나 살인 사건으로까지 이어진다. 시루떡 돌리는 것도 많이 찾아보기 힘들어졌으며, 먼저 탄 엘리베이터에 누가 올까 ‘닫힘’ 버튼을 빠르게 누른다.
‘이웃’이라는 말이 점점 낯설어진다. 도시의 건조함이 반영된 것일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미디어 콘텐츠들은 내가 사는 도시에서 더욱더 문을 닫게 만들어 버린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런 와중에 우리에게 ‘이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이름도 긴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을 리메이크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가 바로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많은 이들이 사람 냄새 듬뿍 맡고, 마을에서의 삶에 대한 이상을 많은 이들에게 품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일종의 동네지식인 역할을 맡고 있는 ‘홍반장’은 서울에서 일하다 돌연 ‘공진마을’에 정착한 청년으로 이웃들의 다양한 요청을 받고 최저시급을 쳐서 돈을 받는 만능 심부름꾼(?)이다. 그가 가진 자격증만 수십, 수백 개에 이를 정도로 도색, 시공, 레크리에이션, 바리스타, 캐셔뿐만 아니라 [갯마을 차차차]의 무대가 되는 공진이라는 어촌마을에서만 할 수 있는 어업 관련 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홍두식을 ‘홍반장’이라 부르고, 그에 대한 신뢰가 가득하다. ‘홍반장’의 이웃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동네 주민들의 자잘한 인생 서사들은 또한 모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해주었다.

한편 홍반장이 이웃과 관계 맺는 방식과 대비되는 인물인 ‘윤혜진’의 등장은 꽤나 흥미로웠다. 윤혜진은 서울에서 공진이라는 지역으로 이주해 병원을 개원한 치과의사다. 윤혜진은 드라마 초반부 이웃들을 그저 치과 진료를 받을 ‘고객’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며 서울에서 하던 홍보 방식 그대로 홍보한다. 그러다 몇 번의 실수로 인해 공진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까지 받게 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두 사람은 서울에서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청년이라는 점,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지역 사람들을 위하는 행위를 하며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웃을 수단으로 대하느냐, 목적으로 대하느냐는 ‘태도’가 다른 탓인지 드라마 초반부 공진 주민들이 이 둘을 대하는 방식이 극명하게 다르다. 왜 달랐을까? 특히 홍두식과 공진마을 사람들과의 각별한 관계를 결정한 것은 ‘이웃하려는’ 마음과 함께 만들어 낸 ‘이야기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동네지식인’들이 존재하는 ‘씬’(scene)들을 찾다

드라마 시청자들의 후기들을 보면 ‘이런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이상(理想)을 품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꽤 많이 보였다. 드라마 속 홍두식처럼 수십 개의 자격증이 있는 청년은 아니지만 꽤 곳곳에 우리네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동네들이 존재한다. 이번 전국생활문화축제(포항, 10.8-10.10) 중 전국에서 100개의 생활문화 ‘씬(scene)’들을 찾는 생활문화‘백신’ 활동에 함께하게 되면서 이웃들과 마음의 문을 열며 이웃하는 ‘동네지식인’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중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자면 경북 의성 고즈넉한 농촌 마을인 생송3리 경로당. 흔히 여기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 마을 주민들이 모여 천연염색을 통해 마음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있었다. 장기화된 코로나19로 많이 침체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 경로당에 모여서 무엇을 먹거나 할 순 없었지만 천연염색 활동을 통해 주민들은 서로 ‘이웃하려는’ 노력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만들었다. 천연염색은 결과물로서 원하는 색으로 옷을 염색하는 것도 있지만, 염색하는 과정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 그 사이에 함께 시시콜콜한 혹은 진득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염색물을 끓이는 동안, 옷을 염색물에 담그고 기다리는 동안의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오늘 ○○댁 왜 안비노?”
“당뇨 때문에 혈당기 사러 나갔다데.”
“아이고, 마. 내한테 혈당기 2개나 있는데….”
“여기 왔으면 천연염색도 하고 혈당기도 내가 줄 텐디….”
그래서 빠르게 소환된(?) ○○댁님은 경로당에 오셔서 천연염색도 같이 하고, 당뇨에 관한 건강 정보도 담뿍 나누셨다. 농촌 마을의 경로당과 주민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이웃하려는 이웃’들이자 이웃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공동체 역할을 수행한다. 생송3리 주민들은 천연염색 활동을 하면서, 서로가 어떤 것이 부족한지, 필요한지 이야기하면서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것으로 이웃을 지켜내는 ‘백신’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다.

경북 칠곡군의 한 카센터는 그 외관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 곳은 자동차를 고치는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식물’을 좋아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주인장은 자동차를 고치러 오는 사람들과 동네 이웃들에게 ‘식물’을 통해 마음을 고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역할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이유가 있었는데 카센터 사장님 부부와 이웃으로 지내던 한 주민이 코로나19로 ‘일터’에서 오는 위협과 우울함이 지속되는 와중에 카센터로부터 ‘화분’을 받게 되면서부터였다. 작은 생명체를 키우면서 심적으로 힘들었던 마음이 치유가 되고, 더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에 카센터로 발길을 더 하게 되었다고 한다.
카센터 주인장이 자신의 취미이자 식물에 관련한 지식들로 이웃에게 마음을 열게 해주어서일까? 코로나19로 마음이 아팠던 이웃은 ‘나’만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에게도 영향력이 미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내었다. 카센터 주인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카센터를 동네 거점이 되어 식물을 매개로 하여 더 많은 이웃들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갔다. 식물을 키울 때 주의해야 할 정보, 화분에 그리고 싶은 그림 그리기 등 지식과 취미 공유뿐만 아니라 화분을 주고받은 이웃들 각자가 처한 고통과 더불어 식물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치유 과정 등을 나누며 ‘이웃하는 것’의 가치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카센터에 찾아오는 고객, 옆집 사람들은 그동안 명사적 이웃으로만 머물렀다면 아마 이런 장면들은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자동차 부품과 각종 연료 냄새로 무채색에 가까울 수 있는 카센터에는 기계 소리보다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이런 이웃의 만남들이 더해져 폐지를 싣는 리어카를 고치려고 찾아온 어르신이 쉬어가기도 하고, 자전거를 고치려는 학생들이 쉬어가기도 하고, 길고양이들이 비를 피해 쉬어가기도 하는 이웃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었다.

N명의 ‘홍반장’이 모이면, 백신 맞은 동네

[갯마을 차차차]의 홍반장은 자원봉사가 아니라 ‘노동’으로 주민들과 관계 맺는다. 그에게 일한 시간만큼 최저시급의 ‘물질적 보상’은 당연한 것이다. 드라마 안에서 홍반장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서사로 인한 설정이지만, 현실로 돌아와 우리 삶에서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대구 달서구의 성서 마을넷에서는 여러 가지를 잘하는 한 명의 홍반장은 없지만, 각자 잘하는 역할을 하나씩 해내는 여러 명의 홍반장들이 있다.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해 주는 것들의 제공자는 마을 안에서 ‘이웃하려는 이웃’들이다.
“이웃이 건강한 밥 해주고 공부 가르쳐주고 커피 내려주고…. 백신이에요”
어르신들 쉼터에 맛있는 커피 내려주는 바리스타 하는 홍반장, 마을에 재미나고 훈훈한 소식들 나누고 싶어서 라디오 송출할 줄 아는 홍반장, 건강하고 맛있는 반찬 만들어 아이들과 어르신들 나눠주고픈 홍반장들이 집 근처 공원 건너에 그리고 옆집, 앞집, 뒷집에 있었다. 코로나19로 오밀조밀 실내공간에 모일 수 없으니 공원에 돗자리 깔고 노래 부르는 버스킹 축제인 ‘돗자리 축제’도 하면서 사람들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누구의 엄마로 불리다가 이웃의 자녀들이 ‘선생님’으로 불러주니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와룡 배움터의 선생님은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본인도 더 살맛나고 즐겁다고 한다. 끼니를 잘 거르거나 몸에 해로운 음식들을 쉽게 접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대접해주고 싶었던 ‘우렁이밥상’의 사장님은 청소년들을 위한 도시락을 준비하다가 혼자 공원에 나와 계시는 어르신들이 많은 것을 보고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어 드렸다. 그러자 어르신들이 고맙다고 인사 나누고 반찬도 사주신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사회안전망 체계가 깨어지고 고립과 단절됨이 극에 다다를 때 성서 마을넷의 이웃들의 이웃하려는 노력들은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빗속에서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 같은 존재가 되어 주고 있었다. 더 나아가 먹고 사는 일과 연결되어 일자리와 성취감을 나누고, 더 넓은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웃하려는 이웃이 진짜 ‘인문(人門)’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가 처음 제안한 ‘동네지식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저 동네에 있는 ‘지식인’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활하는 ‘터전’에서 느끼고 배우고 어느새 쌓인 지혜들을 동네 이웃들과 함께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며, 그 실천들로 이웃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필자가 있는 지역 현장에서 ‘동네지식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시민분의 인터뷰가 있었다. 본인의 이런저런 활동 경험담들을 이야기하시는데 내 마음을 ‘쿡’ 찔러주는 한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인문(人門)’이 아닐까요?”
순간, 각자의 방 안에서 마음의 문을 닫아가는 사람들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 중요한 이 시대의 동네지식인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동네지식인의 역할을 마을에서 실천하고 있는 한 시민분의 ‘인문’에 대한 해석은 너무나 신선하였다. 내가 만나고 있는 다양한 현장에서도 하나의 어떤 행위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매개요 결국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드러내고 함께 하는 이웃이 있는 ‘관계의 문화’에 사람들은 다시 마음을 하나씩 채워가고 있었다.
“지키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보니 지켜지더라.” 지역 문화들이 꿈틀꿈틀거리는 현장에 밀접하게 있으면 너무나 많은 동네지식인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의 경험들로 툭툭 내뱉는 말들은 어느 ‘명언집’보다 더 와 닿고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들이 참 많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당연한 우리의 일상이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며 지켜내야 함을 경험하고 알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생활문화 씬(scene)에서는 사람과 사람들이 마음을 내고 만나며 자연스레 스스로의 일상을 지켜내고 있었다.
코로나19에 많은 이들이 지쳐갈 때, 12.7%라는 높은 시청률로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삶’에 대한 이상향을 심어 주었던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현실에 ‘홍두식’이라는 사람은 없어도, ‘홍반장’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적 이웃들이 분명 존재하며 그것이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갯마을 차차차]가 주는 평안함은 동네지식인의 역할을 실천하고 있는 홍반장뿐 아니라 조금씩이나마 그 역할을 함께 하고 있는 이웃들이 있어서일 것이다. 드라마에서의 주인공은 있었지만 드라마 속 이야기에선 모두가 동네지식인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미디어 매체를 뚫고 나오는 듯한 사람 냄새들, 그렇게 ‘삶’의 이야기들을 함께 써내려 보는 건 어떨까?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