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도시는 특별합니다.”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한 문화도시정책의 정신입니다. “문화도시는 문화의 가치와 가능성을 바탕으로 진화하는 사회적 생명체입니다.” 문화도시 정책이 밝히는 문화도시에 관한 정의입니다.
모든 새 생명은 선대(先代) 생명들의 사랑과 희생, 죽음 위에 태어나고 성장합니다. 사회적 생명체로서의 도시 또한 그러합니다. 맘껏 사랑하기 어려운 사회 환경과 분위기는 새 생명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렵게 합니다. 거기에 더해 일자리가 사람을 부르기도 하지만, 사람이 일자리를 만들기도 한다는 점에서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재의 상황은 지방 도시들에 소멸의 위기감을 갖도록 하는데 충분합니다.
일찍이 리처드 플로리다가 통찰했듯이 “창의도시는 창의적인 사람이 많은 도시”입니다. 같은 의미로 ‘문화도시는 문화적인 사람이 많은 도시’입니다. ‘문화’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대체로 ‘여럿이 소통하고 공유하고 생산하며 함께 보존하고 가꿔가는 유·무형의 좋은 것과 그 과정’이라는데 동의한다면, ‘문화적인 사람’은 그러한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문화도시가 되려면 문화적인 사람을 찾아내고, 초대하고, 각자의 문화적 역량이 발현되고 커지면서 지역 사회의 문화적 전환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그래서 가뜩이나 지역에 사람이 없는데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방 소도시들에서는 “문화도시를 하고 싶어도 같이 할 사람이 별로 없다”는 한탄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한탄은 인구가 많고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많이 산다는 지역이라고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새로운 디지털 환경과 소통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시간이 많은 주민들의 나이 든 몸은 스스로와 배우자, 반려견, 혹은 손자·손녀를 돌보기에도 바쁘고, 문화도시가 되기 위한 정책이나 기획이 요구하는 성과의 속도와 크기를 맞춰내지 못합니다. 청소년, 청년, 주민들은 모두 학업과 생업에 지쳐 있거나 웹과 디지털 세상에서 취향이 비슷한 이들과 놀고 일하고 ‘좋아요’를 위해 소통하느라 바쁩니다. 자녀들의 시간표에 따라 사는 부모들의 시간 또한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예로부터 문화와 예술은 돈 많고 시간 있는 한량들이 하는 ‘쓸데없는 짓’이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문화도시 정책 참여와 협력 기획을 함께 할 돈 걱정 없고 시간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서울에서도 어렵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환경과 조건만 되면 더 나은 삶의 가치로서의 ‘문화적’인 삶을 살고 싶을 텐데, 지방 사람이나 서울 사람이나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 공공행정이나 전문기획자들이 할 일은 문화적인 삶을 살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지역민들이 처한 상황을 바꿔내는 것이거나, 이미 문화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개인의 취미활동으로만 그치고 있는 주민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활동을 문화적으로 해석하고 의미화하면서 지역 사회로 연결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은 지역민들 스스로 문화시민으로 탈바꿈하는 실패와 성공의 시간을 기다리며 그들의 활동을 돕는 것일 겁니다. 그 일들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지역 공동체의 우호성과 협력하는 문화에 기여할 만한 감각과 태도, 이야기, 혹은 기예를 가진 이들을 찾아내고 초대하고 연결하는 일입니다. 수원 서둔동 경기상상캠퍼스를 조성할 당시에 장소 기반 매거진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은 청년들과 인근 학교의 청소년들을 초대해 지역에서 20년 이상 거주하거나 오래된 생활기술을 가진 지역 장인들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먼저 진행해 지역의 스토리를 수집하고, 장차 캠퍼스의 생활문화 프로젝트 강사가 되어줄 지역 주민들을 발굴하는 활동부터 시작했습니다. 서울 세운상가 도시재생사업은 그림과 사진을 전공한 청년들과 스토리 발굴에 관심 있는 청년들을 초대해 지역의 기술 장인과 소상공인 300명 이상을 인터뷰하고 초상화를 그려 드리면서 입주 당시의 이야기, 지난 시기 흥망성쇠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생각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밝히는 활동으로부터 출발했고요.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여러 주체들이 생겨났고, 세대 간의 문화적 연결이 일어났으며, 이후 기획하고 전개할 프로젝트의 기반이 생겨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영등포에서도 300명 이상의 주민들을 알음알음 소개로 만나면서 인터뷰와 문화도시 프로젝트로의 초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둘째, 지역 주민들의 몸의 속도와 감각,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을 잘 살펴보고, 거기에 맞는 정책과 기획을 마련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입니다. 세운상가의 장인들에게는 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폄하 시선과 이제는 찾는 사람도 많지 않은, 자신들의 평생 밥벌이가 되어준 오래된 기술에 대한 안타까운 소회가 있었지만, 인터뷰를 한 청년들이 발견한 그분들의 기술과 경험, 그리고 일을 대하는 태도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획된 프로그램이 장인들을 교수로 모시고 청년들이 조교가 되어 운영되는 ‘청소년기술학교’와 ‘청소년창의학교’입니다. 이 과정은 교수로 호명된 장인들의 자존감과 세운상가 도시재생의 방향에 대한 이해 향상,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의 결합에 대한 참여 청년들과 청소년들의 융합적 사고 향상,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오래된 숙련기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숙련기술 밀집지의 보존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주민들에게 뭔가를 배워야 다음 것을 할 수 있다고 하기보다는 지금껏 해오던 일을 정리하고 의미화해 낯선 이에게 가르치도록 하면, 환대와 자기 성찰의 태도를 겸비한 문화주체로의 전환이 더 효과적으로 이뤄지기도 합니다.
셋째, 지역 주민들이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만날 수 있도록 주민들이 움직이는 동선 곳곳의 풍경과 장면을 문화적으로 바꿔놓는 기획입니다. 소통과 협력의 경험이 생겨나고, 사적 생활의 시공간이 문화예술활동의 시공간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주민들과 전문기획자, 창작자들이 함께 버스, 정류소, 학교, 마을회관, 주민센터, 논밭, 거리를 음악, 미술, 영상, 춤 등의 예술뿐 아니라 풀, 나무, 꽃 등의 자연물, 혹은 문자나 디자인, 더 나아가 생활용품을 활용한 예술적 설치와 의례가 있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꿔놓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미적 경험은 전염성이 커서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공공장소의 변화는 사적 공간의 변화, 관계의 변화 그리고 개인 스타일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서울 홍대 앞의 풍경은 그 풍경에 어울리는 홍대 앞 패션을 만들고, 네팔 포카라 거리의 풍경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패션이 되는 이치입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그곳을 찾는 이방인들의 사적 스타일의 변화는 다시 그곳의 풍경을 변화시키는 선순환 장면을 연출하게 될 겁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공유재의 폐쇄적 관광자원화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어 그곳 주민들의 일상과 겹쳐지지 않고 폐쇄적이고 완결적으로 개발·운영되는 관광지화는 이전 시대 주민 모두의 공유재를 특정 이들을 위한 사유재로 바꿔놓게 되고, 지역의 문화적 발전과 주민들의 문화적 삶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장소의 매력도 잃어버리게 합니다.
넷째, 지역 주민들이 자신과 이웃, 그리고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고 스스로 가꿔가도록 하는 문화기획입니다. 지역기록학교와 기록활동가모임, 문화기획자학교와 기획자네트워크, 지역문화공론장과 거버넌스, 의제발굴단과 의제실험단, 지역의례와 축제기획단, 리빙랩과 실행모임, 커뮤니티공간과 기획모임 등이 그것인데요. 이 과정의 운영은 대단히 섬세해야 합니다. 소통과 거리두기의 감각, 공감 능력, 그리고 이해관계 조정과 문화적 해결 능력을 두루 갖춘 퍼실리테이터, 코디네이터들의 활약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지역의 이야기와 주민들의 바람으로부터 출발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적·경제적 가치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수렴하는 모두의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 도시 인구의 3% 이상은 이러한 역량을 갖춰야 하지만, 그러한 인재를 발견하고 초대하거나 학습과정을 통해 육성하는 것도, 또 그들의 활동을 성과로 증명하기도 어렵단 이유로 쉽게 간과되는 활동 영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량은 지역과 인문, 예술에 관한 공부, 공동체 문화기획 활동 경험, 둘러앉는 대화와 이야기의 힘에 대한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 이와도 어울려 잘 노는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문화기획자양성, 지역전문인력양성, 지역인문과정 등 한 번의 프로그램 참여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동료든 선후배든 뒷배가 되고 의지가 되는 이들과 지속하는 유희와 상호돌봄의 학습 관계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지방의 소도시든 서울의 기초 지역이든 일자리, 교육, 이주민, 주거, 안전, 쓰레기 등 처한 문제는 유사합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 또한 그러하고요. 이는 사회의 성장 측면에서는 위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의 지구’라는 홀론(holon)적 측면에서는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지역단위의 성장 위주 정책과 기획을 유지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위기라 할 것이고, 더 늦지 않게 폭력적인 일문화와 토건 개발로 성장해 온 지난 시대를 반성하며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전환의 기획을 살펴본다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문화도시는 지역의 주민 개개인과 그들의 이웃, 더불어 멀리서 온 이방인과 스스로 태어날 때를 기다리는 새 생명들에 대한 먼저 온 사람들의 환대와 그렇게 모였거나 모이게 될 각각의 삶의 고민과 바람으로부터 기후 생태위기, 전 지구적 재난, 혐오와 차별, 고용 없는 성장, 지능화·자동화된 기계문명 시대의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문화예술적 방식으로 맞서고 모색하는 사람들이 도전하고 성공하고 실패한 수백 개의 이야기가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이 되면서 생동하는 도시일 것입니다. 이것이 영등포뿐 아니라 문화도시를 하려는 여러 도시들이 공동의 문제로 함께 다루며 지향해야 할 가치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