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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_ 위기의 시대 커먼즈가 절박하다천마(天馬)는 왜 죽임을 당했는가?
이동준 | 이천문화원
천마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건만...

.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마. 각인의 눈이 눈부신 천마를 바라보고 있다.
(Anna Bron, Illust of ‘Pegasus and Bellerophon’, 2018. annabron.com/Pegasus-Bellerophon)

어느 날 천마가 나타났다. 이천의 어느 한 궁벽한 시골마을에 말이다. 그 천마가 어떻게 이 땅에 오게 되었냐에 대해선 몇 가지 소문이 분분하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마국산에 있는 어느 바위를 깨고 튀어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천마가 나타난 이천의 설성면 일대에는 명산이 셋이 있다. 바로 설성산, 노성산, 마국산이다. 이 산에는 모두 영험하기로 소문 난 산신령이 각자의 산을 지키고 있는데 모두 신령한 힘을 지니고 있어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천하의 명마가 나왔으니 주인을 가려야 하는 법. 세 산신령은 천마를 차지하기 위해 수십일 경합을 벌였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산신령들은 천마를 베어 나눠 갖기로 했다. 노성산의 산신은 말의 머리 부분을, 설성산신은 몸통을, 마국산신은 엉덩이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게 세 산에 말 형상의 바위가 있게 된 유래이다. 세 산의 말바위 형상들을 이어보면 마치 말이 엎드려있는 형국이 보인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덧붙여진 또 하나의 후일담이 있다. 머리 부분을 차지한 노성산신은 입으로 먹기에만 바쁘고 늘 허기져있었다. 반면 배를 차지한 설성산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아도 항상 배가 불렀다. 엉덩이 부분을 차지한 마국산신은 애석하게도 늘 똥만 치우느라 바빴다고 한다. 산신뿐만 아니라 그 산의 마을에 사는 주민들도 그와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근 마을에는 또 이런 얘기도 전해온다. 아주 오랜 옛날, 노성산과 마국산을 각각 다스리는 두 장수가 서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산신에 이어서 이번에는 그 싸움이 장수들에게 번진 모양이다. 당시 노성산에는 나무가 많았고 마국산에는 바위가 아주 많았다. 그런데 두 장수는 서로 상대편 산에 있는 것만을 열심히 끌어왔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노성산에 바위가 많고 마국산에는 나무가 많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국산은 옛날 삼한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어서 화로의 발이 세 개이므로 솥 ‘정’(鼎) 자를 써서 ‘정음산’이라고도 불렀고 마한의 산이란 뜻으로 ‘마국산’이라고도 불렀다. 지금도 마국산은 용인, 안성, 이천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세 지역 사람들이 산에 나무를 하러 왔다가 서로 시비가 붙어 싸우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산은 ‘마고산’으로도 불렀다. 마고가 누구인가. 마고는 세상천지를 지은 거대한 여신 할머니로 이천의 도드람산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 할머니가 금강산을 만들 때 흙과 바위를 퍼다 나르던 중 손에 쥔 흙 한 줌이 떨어져 산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도드람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고할미는 수많은 장수 자식들을 낳아 키운 설문대할망이나 민간에 아이를 낳도록 점지해주는 삼신할미와도 연결된다. 이천지역 일대에 유난히 장수설화가 많은 것도 바로 이 마고할미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힘은 있으나 그 힘을 제대로 쓸 지혜가 모자라서, 때를 잘 만나지 못해서, 아니면 장수로 자라도록 부모가 지켜주지 못해서 이야기는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이 일대에 장수 이야기가 끊임없이 구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장수들 간의 소모적인 힘겨루기 방식이 아니라 주민공동체와의 논의와 협력적 방식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 모자라는 부분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면 때로는 갈등과 분쟁, 다툼으로 긴장 관계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위드 코로나 시대에 삶의 전환을 위한 창조적인 에너지로 이어질 수 있는 그런 지역문화의 발전적 경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천마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 공유지의 비극

. 천마에 대한 집착은 권력에 대한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16C 이탈리아 조각으로 추정되는 부조)

나는 이 천마에 관한 구전설화를 오랫동안 새김질하면서 그 속에 전형적인 커먼즈 담론이 숨어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커먼즈(commons)란 ‘공동의 것’을 말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동체의 기본적인 필요와 이익을 위해서 (사유화하기보다는) 공동체의 것으로 유지되는 자원을 말한다. ‘공동의 것’으로 소유하고 이용하며 관리하는 것이기에 공동체가 공유하는 자원이라는 의미에서 ‘공유자산’, 또는 ‘공유재’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다. 나는 좀 더 대담한 상상을 해 본다. 만약 우리가 거버넌스적 논의구조를 통해 사회적 합의 과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시민적 역량과 경험이 있다면, 그동안 국가권력이 대신 관리해 주겠다며 국가에 귀속시킨 커먼즈를 다시 커먼즈로 되돌리거나 자본으로 전환시킨 커먼즈를 다시 공동체의 것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천마의 강림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니 하늘의 선물임이 분명하다고. 천마는 인간세계의 유익을 위해 하늘이 선사한 커먼즈가 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니 이 천마는 어느 한 개인이 차지해서도 안 되고, 국가권력이 조세를 징수하듯 빼앗아가서도 안 된다. 천마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누리고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천명을 어기고 산신들은 서로 먼저 천마를 차지하려 든다. 죽기 살기로 경합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겨뤄도 이 시합은 결판이 나지 않는다. 결국 산신들은 이 천마를 혼자 차지하지 못할 바에야 똑같이 분할하여 처분하기로 결심한다. 이런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 얘기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은 구전설화에서도, 실재 현실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마을의 초지를 공유지로 이용하기로 한 주민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소떼를 초지에 풀어놓게 되면 결국 초지는 황폐화되고 만다는 것이 이 가설의 요점이다. 교묘하다. 결국 이런 비극을 피하려면 국가권력이 개입하든지 공유지를 분할해서 사유화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봐라, 너희들은 공유지를 관리할 능력이 안 되니 내가 대신 관리해 줄게. 국가에 넘기든, 적당한 가격에 팔아넘기든, 내기를 해서 누구에게 몰아주든, 아니면 똑같이 분배해 가지면 돼.’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 주변에 공유재가 어디 초지뿐이겠는가. 자연은 인간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공유재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마도, 산의 바위와 나무도, 마을 숲과 길도 따지고 보면 모두 공유재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이 천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 가지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왜 산신이나 장수들은 이 천마를 칼로 베어 나눠 가져야만 했을까? 천마는 피를 흘리며 죽고 말았다. 참으로 분통한 일이다. 하늘이 내린 명마를 차지하려고만 들었지 말의 주인이 될 만한 장수다운 도량과 지혜는 왜 갖지 못했던 것일까? 천마가 참다운 영웅, 장수를 만났다면 어떤 일을 해냈을까? 도탄에 빠져 허덕이는 이 땅 사람들을 구원하고 모두가 갈구하는 평화의 시대를 기어이 이루어냈을까?

노성산과 마국산의 장수가 벌이는 힘자랑 이야기를 보자. 기를 쓰고 상대편의 것을 차지하려다 장수들은 가진 힘을 모두 소진해 버린다. 결국 달라진 것은 노성산의 나무와 마국산의 바위가 서로 자리 이동만 했을 뿐이다. 이마저도 인간 세상에 이롭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을지 모른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옮겨진 나무는 얼마나 힘겨운 적응을 시작해야 했을까? 노성산 이곳저곳에 내던져진 바위는 여름철 폭우에 마을의 안전을 위협하게 되진 않았을까? 알고 보면 이 전설들은 어리석은 권력자의 이야기를 비틀어서 전해주는 이 지역 민중의 독특한 내러티브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에 나오는 산신도, 장수도, 그리고 거기에 사는 주민도 모두 어리석기 그지없다.

천마를 베고 난 후 이어지는 뒷소문들

하늘에서 천마가 내려왔다. 하늘에서 온 것이므로 주인이 없다.*1) ‘무주공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먼저 발견하거나, 먼저 등록하거나, 아니면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다. 이른바 무주물(無主物)에 대한 이 세상의 법들이 그렇다. 세 산의 산신들은 식당에서 만나 먼저 회동을 한 듯하다. 아마도 모종의 합의를 했을 것이다. ‘경합을 해서 이긴 쪽이 천마의 주인이 되기로 하자.’, ‘천마를 국가에 상납하자.’, ‘천마는 당장 필요가 없으니 팔아서 이익을 나누자.’, ‘천마를 3년씩 돌아가며 사용하자.’, ‘천마를 자유롭게 놓아보내자.’ 이런 산신들의 논의는 인간사회에서도 수없이 반복되어 일어나는 일이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신령사회나 인간사회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경주 황남동고분에서 발견된 하늘을 나는 천마도(국보 제207호). 머리 위로 뿔이 있으며 신의 기운을 내뿜는 듯 혀를 내밀고 있다. 꼬리를 세우고 다리 앞뒤에 고리모양의 돌기가 있다.

아메리카는 서구인들에게 발견될 당시 어쩌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마로 여겨졌을지 모르겠다. 신대륙에는 먼저 울타리를 치고 말뚝을 박으면 소유가 인정되는 시기가 있었다. ‘비어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그 땅엔 권리를 주장할 시민도 없다. 인디언이나 토인들은 영혼이 없는 미개인일 뿐이라고 여겼다. . 아메리카의 대지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무주물이기에 사고파는 토지로, 부동산으로 전락해 버렸다. *2)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땅을 사고파는 서구인들의 문화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관습이었다. 땅은 사람에게 소유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야말로 땅에 속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유지의 비극이나 힘자랑이 가져온 비극은 왜 일어나는가? 거기엔 사적 욕구와 이익에만 눈이 먼, 개별화된 개인이 존재하고 있을 뿐 공동체나 공동체적 자각을 하고 있는 개인은 없기 때문이다. 산신령도, 장수도, 마을 주민도 이미 권력의 회유를 받았는지, 아니면 개발업자로부터 땅값을 비싸게 쳐주겠다는 언질을 받았는지 공동체 모두의 이익과 공동체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찾으려는 논의는 애초부터 보이지 않는다.

천마가 베임을 당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란 ‘기어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라는 불안심리를 이미 그 안에 배태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 산신령 간에는 힘의 균형이 절묘하게 유지되어왔을 것이다. 그래서 삼한의 세력이 이 지역에서 화로의 발처럼 균형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천마의 출현은 그 균형을 깨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천마를 차지하게 되면 그동안 유지되어왔던 이 지역의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세 산신령이 죽기 살기로 경합을 벌인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들의 관심을 굳이 힘자랑으로 격하시킬 필요는 없다. 하지만 힘의 균형 때문에 싸운 것이라고 다소 명분 있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천마의 죽음이 개운치 않다.
천마가 나타났다는 것은 권력을 쥔 이들에겐 그리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그들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힐 백성의 지도자가 곧 나타난다는 싸인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초기 정황으로 보아 산신들은 이미 세상의 권력과 결탁한 자들이다. 천마는 이들에게 포획되어 게임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포상물 신세가 돼버렸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종 우승한 이에게 부상으로 주어지는 외제승용차처럼 말이다. 내 생각에는 경합에서 이긴 산신이 나왔다 하더라도 천마는 승자에게 고분고분 등을 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마를 베고 난 후 산신들은 각자의 산으로 돌아가 즉시 후속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민가를 하나하나 뒤져 장차 천마의 주인이 될 아기장수를 색출해서 후환을 없애는 일이다.

천마를 다시 살려낼 수는 없을까?

이런 식으로 이 지역에서 태어난 수많은 아기장수들이 권력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땅 방방곡곡에 퍼져있는 아기장수 설화를 보면 아기장수를 관아에 신고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모였다. 물론 장차 역적이 될 아기를 키우다가 삼족이 멸할 참화를 겪지 않으려고 그랬으리라. 안타까운 일이다. 이 두려움이 새 시대를 열어젖힐 희망의 불씨를 스스로 끄게 만들었으니... 이 시대에 천마를 다시 살려낼 방도는 없을까? 나는 천마의 강림을 목격한 세 산신이 오늘날 커먼즈를 바라보는 세 가지 주류 권력에 대한 절묘한 은유로 이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국가와 시장, 그리고 도시의 관점이다.
국가권력의 관점은 사유화되지 않은 공백지대, 무주지역을 국유화한다거나 빈번하게 지역 갈등을 일으키는 커먼즈에 직접 개입해서 공동체의 활동을 진압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천마의 출현으로 일어날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천마를 국가에 귀속시키는게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의 관점은 어떤가? 능력 있는 자가 먼저 차지하는 것이 시장의 원리다. 경합을 벌이든지, 비싼 값으로 사들이든지 어떤 식으로든 사유화하고 상품화하여 천마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도시는 더 교묘하게 커먼즈를 침식하고 이용한다. 도시는 자본을 끌어들여 더 큰 욕구와 경쟁을 유도한다. 천마는 그 지역 공동체와 맺고 있던 유대감을 잃어버리고 원래의 상징성과 의미도 상실한다. 도시적 욕구에 던져진 커먼즈는 서서히 탈공동체화되어 자본으로 전락한다.

천마는 커먼즈다. 커먼즈는 한갓 물건이나 재화가 아니다. 커먼즈를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공동체적 주체가 ‘커머너’(commoner)이고, 커먼즈를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길고 긴 공유화의 여정이 바로 ‘커머닝’(commoning)이다. 천마의 강림과 아기장수의 도래는 그 지역 공동체를 이루는 지역민의 열망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나는 천마를 살릴 방안은 무엇인지 제시하고 싶다. 그것은 세 등분으로 나뉜 천마의 몸체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국가권력과 시장의 자본, 그리고 더 안락한 도시적 삶을 지향하는 욕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체가 있는 공동체적 기반에서 다시 지역을 세워나가야 한다. 바로 마을이다.
데모스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데모크라시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원래 구체적인 지역 기반의 주민공동체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더,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문화는 공동체적 커먼즈가 작동하는 범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개인으로 원자화되고 균질화된 시민이 아니라, 모래알 같이 서로 결합되기 어려운 파편화된 개인이 아니라, 네트워크적 점착력을 가진 공동체적 주체로서의 시민이 먼저 있어야 한다. 커머너로서의 시민의 탄생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 기후역습, 기후재난, 기후중립의 시대에 마을 중심의 새로운 일상공동체와 그에 따른 생활양식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 지역의 미래는 없다는 것. 바로 이 점을 마음에 새겨두기로 하자.

지역기반의 문화커먼즈가 희망이다

대기와 강물, 바다, 땅과 숲은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공공의 것이었다. 그런데 모두의 것이어야 할 이 공유재들이 언제부턴가 조금씩 침식당하기 시작했다. 땅에는 금이 그어지고 초지에는 울타리가 쳐지면서 인클로저라는 자연에 대한 사유화 과정은 힘없는 사람들과 야생의 돌물들을 공유지에서 몰아냈다. 이렇게 확보된 땅을 사람들은 두부 썰 듯 분할해서 등기를 하고 소유권과 이용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모든 생명에게 공통적인 것을 인간이 침탈해온 결과 이제 자연의 영역은 극도로 줄어들어 버렸다. 많은 야생동물들이 서식지를 잃거나 멸종되었고 지구자원이 고갈되면서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자연은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여기서 모두는 인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이 자연을 공유한다. 아니 모든 생명이 자연으로부터 왔고 자연에 속해있다고 맣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자연을 지배할 권리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누가 그 권리를 부여하는가? 인간의 법이 부여한다.*3) 그 법이 국가의 주권과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정당한 것으로 규정한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값을 지불하면 권리가 생기는가? 바다의 물고기는 누가 처음 그 값을 매기는가? 누군가 처음 물고기를 낚아올리고 거기에 자신의 노동력과 이윤을 더해 팔아넘기는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고 나면 어느덧 그 물고기의 원초적 생명성은 사라지게 된다. 생명에서 그저 음식거리로, 등분화되고 계량화되어 고작 몇 킬로그램의 재료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사유화 과정은 가장 구체적인 공동체 단위인 마을에서도 발견된다. 마을은 동(洞), 리(里), 촌(村)이란 이름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동(洞)은 우물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런 이름이 붙은 마을은 원래 물 공동체, 우물 공동체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때 우물은 그 마을의 공동의 자산이다.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며 이용하는 일종의 공유재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을 길, 마을 숲, 마을 우물, 마을 빨래터, 공동목장이나 공동어장도 공유재에 속한다. 이렇게 마을에는 원래 공공의 영역, 자치의 영역이 존재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마을의 자원은 하나둘씩 사고파는 재화로 바뀌었고 마을 공유지는 개발을 위한 토지로 수용될 위기에 놓였다.
그렇다면 공기, 물, 지하자원과 같은 자연물 이외의 영역에서도 이런 침탈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화, 언어, 지식, 복지, 교육, 경제 등의 영역에서도 그 공동체 성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이용하는 자원이나 재화가 원래는 없었는지, 그리고 거기서도 자본의 힘이 사유화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는 되돌아보아야 한다. 문화재, 표준어, 공유지식, 무상복지, 의무교육, 공유기업 등 우리 사회에 편만히 퍼져있는 개념들을 하나하나 의심해 보아야 한다.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안치된 수많은 문화재를 돌아보면서 왜 이 문화재들이 원래의 자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왜 이 많은 문화재들은 지역에서 출토된 것임에도 지역민의 동의나 승인도 없이(그렇다고 대여형식도 아닌데) 국가 소유가 된 것일까? 국가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중앙에 귀속되어야 하는가? 문화재는 중앙에 보관해야만 더 안전하고 더 지속적이며 더 많은 주민의 관심을 받게 되는가? 우리가 지난 세기 식민지역으로부터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해간 제국주의의 논리를 단호히 거부하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는 내부적으로 아직까지 청산되지 않고 있는 중앙의 논리를 거부할 수 있는 지역의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재에 대해서 우리가 가야 할 보존의 원칙은 중앙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해서 분산, 보존하는 것이다.
당시 우리 지역에 있던 유물이 가상하게도 국보로 지정되어 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지역의 자긍심을 느꼈다. 지금 돌아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문화재라는 것은 국가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공공의 재산이라는 이해 정도에 불과했다. 서구적 관점의 ‘문화재’(cultural property) 개념은 무엇보다도 그 유물이 그들의 관심에 의해 ‘발견된’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신대륙의 발견처럼 처음 발견한 이가 사유화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 이렇게 발견된 유물은 쉽게 부서지거나 원형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국가의 통제와 보호를 당연시했다. 이렇게 국가의 관리하에 귀속되면 그 문화재는 원래 그 지역과의 공동체적 연관성을 잃고 국가의 자산으로서 종속적 의미만 가지게 될 뿐이다.

.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된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국보 제103호로 지정되어있다.

오늘날 문화재와 함께 통용되고 있는 또 다른 개념인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은 어떤가? 문화유산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의 ‘보존’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미래세대로 물려주어야 하는 ‘상속’의 차원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유물의 지향적 의미를 과거보다는 미래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관점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유물 그 자체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그 유물을 아우르는 공간과 주변경관, 그리고 이를 보존하고 가꾸어갈 마을주민 등 그 유물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과 함께 보존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유산 개념에는 ‘인류 공동의 유산’(common heritage of humanity)이라는 표현 뒤에 서구 제국이 보유한 약탈문화재의 취득과 사유화를 정당화하려는 책략이 숨어있다. 국가와 자본의 논리는 이런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그 유산을 만들고 형성해온 당대 지역주민들과 그 역사를 이어온 주민들의 삶을 그 유산으로부터 분리시켜 버린다. *4)
‘문화커먼즈’(cultural commons)는 그 유산이 유산답게 보존되기 위해서는 그 유산을 만들어낸 지역과 그 지역의 주민을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문화재가 커먼즈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 유산을 통해 주민에게 공동체의 기억이 환기되고 그 유산을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그 유산은 공동체를 결속시켜주는 수단이자 자원으로서 커먼즈의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 유산이 지역의 주민과 그 지역의 공동체적 정체성 형성에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 과정은 문화커머닝이 되는 것이고 주체가 되는 지역의 주민은 문화커머너가 되는 것이다.
왜 문화재는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가? 해외로 반출된 국외소재 문화재보다는 그에 앞서 국립박물관으로 차출된 지역의 문화재부터 제자리로 찾아오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얼마 전 지역문화 사진공모전 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단번에 내 관심을 끄는 사진이 있었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의 제목은 “이제는 돌려주세요!”였다. ‘왜 광양에 있어야 할 쌍사자 석등이 광주에 있을까? 언제 돌아오려나, 석등아...’ 이런 시민 의식이 싹트고 있다면 지역은 아직 희망이 있다. 문화분야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국가권력과 사유화된 자본으로부터 시민 모두가 공유하는 커먼즈로 다시 돌려놓을 것인지, 그 분야와 범위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에 잠식된 도시의 절망적인 상황

지금 도시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도시는 공동체를 상실한 인간이 균질화된 개인으로 자신을 은닉하는 장소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도시의 비정한 속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도시로 모여들고 있다.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있는 이 상황은 대체 어떤 미래를 우리에게 예감하게 하는가? 도시민들에게 계절의 변화는 이제 더 이상 꽃과 나무로부터 경험되지 않고 그저 몇월 며칠로 이해될 뿐이며 물은 정수기나 수도꼭지를 돌리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도시민들은 행정적으로 구획된 동(洞)에 살고 있지만 그 동이 원래 우물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적 삶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모른다.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도시민은 도시가 주는 익명성과 은닉성, 편의성에 기댄 채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오늘을 그럭저럭 열심히 살아간다.

. 파이낸션 타임즈(2017.11.29.)에 실린 기 사 ‘페북이 직면한 공유지의 비극; 소셜네트워크의 개방성은 창의성도 가져오지만 착취도 불러온다’의 풍자 삽화

도시에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로 하는 자원은 도시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주변지역으로부터 공급받은 것이다. 특히 인근의 덜 도시화된 변두리 지역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해야만 한다. 대도시는 자연자원과 인적자원, 또는 그들의 노동자원을 공급받아야만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도시적 조건 속에서 도시민이 스스로를 공동체적 존재로 자각하고 도시에서 커먼즈를 다시 세우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물론 도시 내부에서도 대안적 사회질서로서 커먼즈를 시도해 보려는 움직임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공동체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커먼즈를 상상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도시의 힘은 도시 곳곳에서 커먼즈를 획책하는 소규모 공동체의 준동을 24시간 감시하고 적발한다. 그리고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다시는 공동체로 회복되지 못하도록 이들을 개인 단위로 분쇄해버린다. 도시민들이 시도하는 커먼즈에 대항하기 위해 도시권력이 만들어낸 괴물이 있다. 바로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철저히 수익성이라는 관점에서 자원들을 합치고 공유화시켜서 도시민 전체의 공공적 이익증대와 편리성을 가장하고 커먼즈 개념을 혼란에 빠드렸다. 우버, 에어비앤비, 카카오택시 같은 플랫폼기업이 상업적 공유(sharing) 개념을 확산시키며 공유자원의 공동관리를 의미하는 커먼즈 개념을 훼손시키고 있다. 참으로 교묘하다. 도시민들은 무엇이 진정한 커먼즈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아런 상황이지만 도시 커먼즈 운동은 지역의 문화가 국가권력에 의해 지배되거나 자본시장을 통해 사유화, 상품화되는 것을 더는 방관하지 않고 도시에 남아서 끝까지 저항하고자 할 것이다.

문화도시도 머지않아 이런 도시 커먼즈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지금의 문화도시 정책은 지역이 처해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지역을 성급하게 도시 문화사업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물론 사업추진방식은 진화했다. 과거에는 성과 목표만을 제시했는데 지금은 일일이 거쳐가야 할 지점과 트랙을 그려놓고 과정 목표까지 친절하게 멘토링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전문가의 역할은 이전보다 더 커졌다. 이런 방식으로 지역을 문화도시로 내모는 것 자체가 어쩌면 지역을 더 소진시키고 지역문화를 황폐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 과정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하더라도 말이다. 문화도시가 아닌, 문화지구부터, 좀 더 작은 실천의 단위에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들에 의해 일상 속에서의 작은 변화부터 시도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지금부터라도 전환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변화가 모색되지 않는다면 문화도시 정책은 더는 운동이 되지 못하고 몇 개 도시를 끝으로 마감해야 하는 그런 사업에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현장에서 겪은 뼈저린 경험으로는 사업이 주민보다 너무 앞서지 않아야 겠다는 것이다.
내가 현장에서 겪은 뼈저린 경험으로는 사업이 주민보다 너무 앞서지 않아야 겠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언제나 이렇게 충고하고 있었다. ‘전문가 양반, 제발 정부가 선도하려고 하지 말고 마을주민들에게 더 배웠으면 하네’라고 말이다. 이제 그들에게 닭장 안에 모이를 뿌려놓고 트랙을 따라가라던가, 전문가가 제시하면 따라가라는 식의 정책으로는 더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화도시 주변에 모여있는 전문가 양반들은 깨달아야 한다. 전문지식은 공유되어야 한다. 그들이 가진 지식이야말로 커먼즈로 다시 되돌려야 할 사회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탐욕적인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온 지식을 이제 공동체의 커먼즈를 가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게 지식커먼즈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들이 가진 지식의 원천은 사실 지역으로부터, 지역의 주민이 자연과 역사를 통해 몸으로 체득한 것들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삶의 탄소중립을 맞추기 위해서 나는 손(損; 덜어냄)의 삶을 살아야 한다. 바로 덜어냄의 문화다. 커먼 파버티가 커먼즈의 한가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 로마 시대에는 사유화되지 않은 공공재산을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것(res nullius), 또는 ‘모두에게 속하는 것’(res communis omnium)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부류가 있었는데 공유지, 광장, 수로 같이 ‘도시에 속하는 것’(res publicae)도 로마에서는 공공재산으로 보았다
2) 빈 땅을 그대로 두어 황폐하게 만들기보다는 울타리를 치고 사유화해서 더 많은 이익이 창출되도록 하자는 인클로저 개념은 아메리카에 정착한 초기 미국인들에게 신대륙의 땅을 사유화하기 위한 정당화의 논리를 제공했다.
3) 서구인들에게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전권을 부여한 선물로,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통의 풍요로운 부(common wealth)로 이해되었다.
4) 일제는 조선의 강제병합 후 여러 차례 고적조사를 통해 그 출처와 소유가 불분명한 문화재를 국가재산으로 귀속시키려고 했다. 폐사지의 석탑이나 폐사찰의 이름조차 불확실한 탑들은 손쉽게 국가의 재산으로 귀속시킬 수 있었고 매매되거나 사유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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