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화분 키트를 제작하고, 장승 디퓨저를 개발했으며, 한복 업사이클링 상품을 만들었다. 모두 대학생, 문화기획자, 청년예술가 등 청년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인 과천·광주·구리의 ‘스토리’를 담아 제작한 로컬 굿즈(local goods)들이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과천·광주·구리문화원과 손잡고 지역 청년들과 함께 3년째 진행하는 [청년마을상점] 프로젝트에서 만든 지역 브랜드 상품들이다. 아직 만족스러운 제품 상태가 아니고, 개선해야 할 점이 있지만, 청년들이 문화원과 손잡고 자기가 사는 지역의 스토리를 담아 ‘터무늬’를 살리고자 제작한 굿즈라는 점은 분명하다.
굿즈도 굿즈이지만, 3년째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들이 부쩍 성장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청년마을상점]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첫해인 2019년에는 굿즈 제작을 지원하고, 지난해에는 더 섬세한 굿즈 상품화를 위해 고도화 작업에 집중했으며, 올해는 유통망 구축 등 판매와 보급에 집중하는 사업 설계를 했다. 하지만 실제 사업 운영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첫해 굿즈 아이디어를 실제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변형’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시행착오 과정에서 청년들은 ‘세상 물정’을 제대로 배웠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과천 청년들은 첫해 과천의 길 이야기를 담은 향초를 제작했지만, 기존 향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조향(造香)하기 위해서는 소위 ‘쯩[證]’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해야 했다.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격증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결국 전문업체에 맡기다보니 생산단가가 자연 높아졌고,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가격 책정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구리 청년들은 첫해 지역의 곱창골목을 상징하는 야고비(야채곱창), 순고비(순대곱창) 캐릭터 상품을 제작했지만, 지난해에는 지역의 스토리를 더 보강해 한복 업사이클링 상품을 제작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광주 청년들은 남한산성 인근 마을인 ‘엄미리 장승’을 활용해 비교적 순탄하게 로컬 굿즈 아이템을 확정하고 상품을 만들었지만, ‘단가 절약’이라는 최대 숙제를 해결해야 했다. 결국, 세 지역 청년 모두 지역 브랜드상품 개발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현실의 장벽을 마주해야 했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3년째 추진하는 [청년마을상점] 프로젝트는 ‘지역의 청년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 질문은 또한 지역문화원은 지역 청년의 성장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과제도 던져준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을 해온 심한기 서울시 동북권역마을배움터 대표는 청년 세대에게는 ‘생존의 시간’을 넘어 ‘실존의 시간’이 특히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생존의 시간 속에는 상상도, 바라봄도, 돌아봄도, 노래와 시(詩)가 쉬어갈 자리가 없다” 1)는 이유에서이다. 다시 말해 청(소)년들은 사람들과 따뜻한 소통과 접촉을 놓지 않으며, 한 사람의 ‘당사자’로서 삶과 문화를 찾아갈 수 있는 실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청년정책은 아직도 여전히 청년을 ‘문제’로 설정하고 설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지역의 청년들 또한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해 “안돼요” “없어요” “못해요”라며 ‘노(no)답’ 3종 세트를 입에 달고 사는 경우가 많다. 청년이 지역과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이고, 자산이며, 지속가능한 도시의 핵심인 주체적 ‘존재’라는 시선이 탑재된 실질적인 지원정책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을 ‘문제에서 존재로’ 바라보려는 시선 전환이 요청되며, 청년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실질적인 프로젝트들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3년째 추진하는 [청년마을상점]은 그런 프로젝트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올해는 경기문화재단 경기상상캠퍼스와 협력해 ‘로컬+메이커스’ 온라인 워크숍을 열고, 유통망 구축에 힘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 31개 지역문화원은 지역 청년들과 함께 사업을 협력해 추진해 본 경험이 많지 않다. 지역문화원이 지역 청년들과 연결되려면 ‘마음가짐(mindset)’이 중요하다. 청년은 문화원에 종속되어 활동하는 게 아니라 협력하고 지지하는 수평적 네트워크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 점은 2019년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도빈 동네형들 대표가 “문화원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해 청년단체나 기관들을 연결하고 매개자를 양성하고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고 한 조언과도 통한다. 쉽게 말해 ‘꼰대’ 마인드를 버리고, 청년들이 마음의 진입장벽을 허물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지역문화원 세 곳(과천·광주·구리)과 협력해 지역 청년들과 로컬 굿즈를 제작하고자 한 점은 매우 적절한 유인요소가 되었다. 지역 청년들은 로컬 굿즈 제작 경험을 통해 지역에서 자립할 수 있는 ‘실험’ 기회를 모색하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해 더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특히, 로컬 굿즈는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추구하려는 2030세대의 주목을 받는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문화원과 청년의 ‘교집합’으로서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2030세대는 ‘어떤 체험은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산천어, 연어 같이 생명을 담보로 한 인간 중심의 축제들을 매섭게 비판하며 동물권을 존중하는 새로운 (축제)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래서 로컬 굿즈처럼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일이 지역의 청년들에게 지속가능한 ‘일거리’가 될 수 있고, 지역을 생각하는 일종의 지역문화운동이 될 수만 있다면 청년의 자립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책보다 굿즈(goods)를 얻기 위해 인터넷 서점을 이용한다는 젊은 세대의 구매 트렌드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우리는 몸으로 함께하는 연대가 어려울 때 가치 있는 소비, 즉 ‘입금’을 통해 연대할 수도 있다.
이 지면에서 현재 진행형인 [청년마을상점]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아직 섣부를 수 있다. 로컬 굿즈의 상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되어서도 안되고, 한 사람의 성장 혹은 성숙을 평가하는 일 또한 단기간에 판명 나는 것도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청년문화상점]은 여느 사업보다 지역문화원 사업 담당자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점에서 지역문화원이 청년들과 함께 협력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과천·광주·구리문화원 담당자들 또한 지역 청년들과 지난 2-3년 간 재미있게 협력의 감수성을 차곡차곡 쌓으며 노하우를 축적했다. 사업 담당자들의 몸에 밴 이 소중한 ‘경험’이 결코 헛되이 되지 않도록 지역문화원과 연합회가 지역 청년들과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마련해야 한다.
“‘피어나’라는 팀 명칭에 걸맞게 어떤 것도 새로운 것으로 피어나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 _ 과천·유소영 팀장
“마을 청년들을 발굴해 지역 굿즈를 개발하는 것이 사업 취지인 만큼 이 사업을 계기로 청년들이 마음 놓고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즐겁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_ 광주·이종남 실장
“‘청개구리’팀이 만든 로컬 굿즈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상인들을 위로해주고 ‘곱창데이’를 빛내주었다” _구리·전은선 대리
[청년마을상점]은 올해로 3년차 사업이 모두 끝난다. 첫해 굿즈를 ‘제작’하는 경험을 하고, 지난해 ‘판매’를 위해 더 섬세한 굿즈 마케팅을 준비했으며, 올해는 ‘유통’을 고려한 지역 네트워크 형성에 집중하고 있다.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과천의 경우 한때 수도권 화훼 물량의 60%가 거래될 정도로 대규모 화훼유통단지가 있었던 과천의 지역적 특성을 살린 ‘스토리텔링’을 더 강화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광주의 경우 원가를 절감하고 디자인을 보완하며 근사한 엄미리 장승 굿즈를 제작했지만, 향을 다룬다는 점에서 식약청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크고 작은 복병들이 여전히 산재해 있다. 구리의 경우 3년차로 접어들면서 대학생들로 구성된 최초 참여자들이 굿즈 제작보다 자기 앞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며 올해는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첫해부터 지금까지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한 오다예는 “‘자립이란 의존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도쿄대 야스토미 아유미 교수의 명제를 자주 생각했다”고 말한다.
청년의 자립은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기책임의 윤리’로 포장된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혼자 고립된 삶이 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로컬 굿즈 사업을 통해 지역문화원이 지역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어 협력의 경험을 축적하고, 청년들 또한 지역문화원을 비빌 언덕으로 생각하는 관계가 형성될 수만 있다면 향후에 어떤 시너지 효과가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없고, 손 내밀 곳이 점점 줄어드는 세계는 지역의 청년들을 ‘노답’이라고 외치며 떠나게 한다. 이 점에서 “의존하는 대상이 늘어날 때 사람은 더욱 자립한다”라고 한 아유미 교수의 주장은 지역 청년들에게 화폐보다 관계를 추구하는 ‘관계부자’의 삶을 권장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으로 지역의 유휴공간을 발굴해 로컬 굿즈를 전시, 판매할 수 있는 실질적인 ‘마을상점’으로 연결하여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이 한 뼘씩 성장했으면 한다. [청년마을상점]을 생각하면 ‘깨금발’이라는 키워드가 생각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람. 그것은 성장과 성숙의 의미가 먼저 생각나서일 것이다.
1) 심한기, 「청년의 아포리즘(Aphorism)」, 지역문화진흥원 웹진 《지;문》, 202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