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초 문화컨설팅 ‘바라’ 권순석 대표와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최영주 처장이 춘천에서 만나 ‘오픈 플랫폼’을 상상하는 지역문화원은 가능한가를 놓고 대담을 나누었다. 한 곳에 고정된 원사(院社)를 고집하는 대신에, 지역 내 유휴 공간과 공유 공간을 활용하며 코로나 ‘이후’ 전환의 문화를 생각하며 지역 문화현장에 개입하려는 문화원의 새로운 역할은 더 이상 가능성만이 아니라 ‘유동하는 문화원’으로의 형질변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기한다.
편집자 주.
최영주: 2018년에 진행된 [지방문화원 발전 방안 포럼]에서 문화원의 ‘오픈 플랫폼’으로 전환이라는 솔루션이 제안되었다. 오픈 플랫폼이 된다는 것은 문화원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있는 다양한 공간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문화원은 지원기구로서 시민들의 활동을 케어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알아서 노는 방법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전환해야 되는 것을 뜻한다.
지역문화원은 ‘공간’에 대한 고민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 지역문화원은 항상 문화원사 건설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사가 없어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픈 플랫폼 개념은 다양한 형태의 문화사업이 건물과 같은 공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문화원사 건립 가능성을 차단하자는 뜻은 아니다. 문화원사를 갖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문화원사’라는 건물 자체에 너무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지역구 전체를 문화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담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대부분의 문화원은 전통적인 한옥 지붕에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접목시킨 경외(敬畏)의 장소로서의 문화원사를 상상해왔다.
그동안 문화원은 시민에게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는 시혜기관으로서의 위상 정립을 원했고, 그로 인해 존경받기를 원했다. 그 때문에 문화원 이외의 공간은 ‘외부 세계, 외부 공간’이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시민들에게 경외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건축물인 문화원사에 들어오게 하여 긍정적 정서와 위안을 베풀고자 했다. 어쩌면 이것이 그동안 지방문화원이 문화원사를 중심으로 지역에 존재해왔던 방식이었다. 이제는 기존 중앙집중형 공간으로서 문화원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문화원과 문화도시와의 접속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권순석: 문화원, 문화의집, 생활문화센터는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중요한 미션이다. “우리가(단체들이) 준비했으니 오세요! 줄게요! 오시면 다 해드릴게요!” 하는 방식이 과거의 서비스였다. 그러나 요즘엔 시민들이 뭘 원하는지 찾게 도와주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도와주는 서비스로 생각이 바뀌었다.
춘천에서 문화도시 계획에 관여하면서 핵심 키워드를 ‘전환’이라 설정했다. 당시 ‘전환’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들 어려워했지만, ‘전환이 뭐지?’ 고민하는 것부터가 전환의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획에 포함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첫째 [전환학교] 사업은 전환의 가치를 고민하고 시민들이 합의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설계한 것이고, [전환가게] 사업은 생활권 커뮤니티 단위에 문화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공간 조성이 아닌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했다. 그 중 [인생공방]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자신의 삶의 기술이나 일상의 내용들을 나 혼자가 아닌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음식 레시피나 자신만이 갖고 있는 기술을 공유하는 것이었는데, 공유자는 할머니, 어머니뿐만 아니라 동네 꼬맹이도 될 수 있는 콘셉트였다. 약 25개 정도 만들었다.
인터뷰하는 모습
다른 지역에서도 빈집 등 유휴 공간을 활용한 유사 사업이 있다. 지원하는 지자체, 즉 시(市)에서는 언제나 커버리지(Coverage, 보험 담보)를 생각한다. 공간이 하나 생기면 수혜 범위는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제공자 관점의 서비스 마인드이다. 그래서 관점의 전환은 생각보다 어렵다.
현재 춘천은 카페 등 상업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도시가 살롱] 사업을 하고 있다. 카페를 창업하고 오랜 시간 동안 운영해 온 사람들이 오히려 문화적인 마인드가 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빵, 디저트, 커피를 팔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게 다 있었다. “원래 나는 여기에 커피 파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시(詩)도 같이 나누어 읽기도 하고, 커뮤니티 활동도 하는 것이 꿈이었어요. 하지만 다 못하고 있었어요.” 그들의 꿈을 지원해주자는 것이다. 즉 그날 매출을 보장해주고, 자기 공간으로 누군가를 불러서 그들이 꿈꿔왔던 것을 실현하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반응이 좋다. 그동안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지원해주니, 본인들이 나서서 초대하고, 새로운 활동들이 생겨나고 자연스럽게 그 카페가 문화 공간으로 변화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문화 공간이 부족해, 일상 문화가 부족해라고 말해왔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모든 공간이 문화 공간’이라는 마인드로의 전환이 중요하다.
1차 문화도시 선정 당시 핵심 키워드는 문화민주주의였다.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서 함께 공론화하고 그 결과를 계획에 담아 문화도시가 되느냐, 사업 내용에 이 과정이 있느냐가 중요했다. 2차 선정 때의 핵심 키워드는 ‘전환’이었다. 춘천의 경우 전환을 대놓고 표방했지만, 나머지 도시들도 삶의 전환을 위한 사업을 기획했다. 3차 문화도시 선정의 화두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내가 생각하기엔 ‘커먼즈(commons)’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씀하셨던 문화원의 오픈 플랫폼으로의 전환, 즉 문화원으로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원사업을 하든, 현지를 문화 공간화하든, 문화원이 시민들의 문화활동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도시 전체를 문화원으로 만들어간다는 개념, 이것은 ‘커먼즈’와도 맥락이 닿아 있는 것 같다. 도시재생이나 지역 공동체 활동을 할 때 공유 공간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토지가 없다. 쓰임새에 맞는 유휴공간이 없을 수도 있다. 비탈, 하천, 골목 등을 공공개발해서 없던 공유지를 만들 수는 없을까. 개발은 경제활동하고도 맞닿아 있지 않은가. 커먼즈(commons) 안에서 시민자산화를 할 수도 있고, 시민자산화를 통해 마을경제활동을 성공 모델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화두들이 좀 보편적 화두가 되면 좋겠다.
그런데 이 커먼즈(commons)를 대체할 만한 쉬운 우리 말 개념이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문화기획자들도 커먼즈(commons)를 설명했을 때 너무 어려워한다. 작년 [전국 문화도시상생협의체 포럼]에서 커먼즈를 주제로 지역 사례를 모아보려고 했는데 잘 나오지 않았다. 사례는 있는데 잘 드러나지 않는다. 커먼즈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도시의 공간적 접근 방법, 의미를 담아내는 방식이 사실은 커먼즈(commons)이고, 커먼즈 자체가 문화라고 생각한다.
최영주: 문화원들이 각 지역의 거점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역의 유휴공간을 문화공간화하는 일, 그렇게 조성된 문화공간은 지역문화원 소유의 공간이 아닌, 시민 누구나가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오픈 플랫폼 구조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공간은 굳이 하나만 있을 이유가 없다. 골목이 될 수도 있고, 허름한 창고, 근린공원, 오래된 노포(老鋪)가 문화공간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지역문화원은 그것들의 연결과 네트워크,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형태로 운용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하되, 그 장소에 문화원 깃발만 꽂으면 그곳이 문화원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지역 전체가 곧 문화원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일정 공간은 필요하겠으나, 그것이 앞서 말한 근사하게 큰돈을 들여 새로 지은 건물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현재 문화도시 관련 다양한 창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문화원 관계자들은 ‘문화도시사업’을 어떤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지에 대해 막연해하는 것 같다. 지역을 말하고, 지역문화를 말하는 문화원이 ‘문화로 만들어지는 지역, 도시를 문화적으로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권순석: 그렇다. 틀리지 않고, 가능한 이야기라고 본다. 코로나 상황에서 초창기에 논의됐던 단어는 회복, 회복력이었다. 회복이라는 것은 아픈 사람이 아프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인데, 그렇다면 코로나 상황에서의 ‘회복’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인가?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고민으로 돌아가 코로나 ‘이후’를 말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과연 맞는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고민 말이다.
문화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코로나 이후의 전환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나는 이 시기를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문득 신이 있다면, 이제 전환에 대해서 고민하라고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를 우리에게 던진 것은 아닌가라는 상상을 한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써왔던 말들, 가치들…. 문학평론가 고영직이 ‘집, 땅, 차, 돈만 있으면 행복한가?’라는 말하는 것처럼 질문이 필요하다. ‘그럼. 뭐가 필요하지?’라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그동안 우리는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해본 적이 없고, 그 질문에 대답해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요즘 세대들도 소비에 최적화되어 있다보니, 우리의 삶이 행복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고민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바로 전환의 시대라고 하는 지금, 이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가서 삶의 행복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는 무엇인가? 스스로 답할 수 있는 고민의 계기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를 계기로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 질문의 계기를 지역문화원이 만들 수는 없을까?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 못하니까 온라인으로 무엇을 할까에 대한 방법론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 전환의 화두를 던지는 사람, ‘너 행복한지 고민해 봤니? 그거 한번 우리 같이 얘기해 볼까요?’라는 장을 지역문화원이 만들 수는 없을까? 이런 화두를 던지는 것이 지역문화원의 역할 혹은 문화도시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이것이 바로 전환의 가치인 것 같다.
이제 ‘돈이 행복이다!’는 인식을 한 번 부정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코로나로 일상이 부정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차피 부정당했으니까 새롭게 재(再)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혼자서 어려우면 모여서 하자. 그럼 누가 모임을 만드는가? 지역문화원이 만들면 된다. 코로나로 문화원사에서 못 모인다면 줌(zoom)으로 하면 된다. 하지만 줌은 수단이지 대응책은 아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기회다!
내 경우에도 그동안 전국으로 출장, 강의가 많았는데, 줌 회의가 많아지면서 출장이 줄었다. 일단은 경제적으로 기름값이 많이 줄었다. 이동 시간이 줄어드니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덕분에 생각만 하고 있던 화단에 꽃도 심어보고, 회사 차린 지 20년 만에 사무실 청소도 직접 해 봤다. 내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가치 전환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의 일상, 그리고 누군가의 일상, 이것이 우리 동네의 일상, 동네의 문화, 지역의 문화, 결국 이렇게 되는 것 아닌가. 결국 삶의 방식이 문화이니까.